한 사람을 귀하게 여깁시다 2001-12-08 15:05:51 read : 1518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18:1-14)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없음)
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교회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머리로 하고 그 머리되신 예수님의 뜻대로 행하고 살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예수님 다음으로 귀한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모임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이런 교회의 본질이 왜곡되는 듯한 인상을 갖습니다.
사람보다는 건물이 더 주가 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사람보다 조직이나 프로그램이 우선되는 것 같은 교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사람보다 헌금이 더 중요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양상들을 봅니다.
특별히 우리 한국 교회는 갑자기 인구가 불어나고 또 교회에 교인수도 늘어났기 때문에 사람 귀한 줄을 모르는 경우가 종종 일어납니다.
사실 저도 한 때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목회할 때 사람이 그렇게 귀한 줄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너무 많아 사람이 귀찮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사람 귀한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인 약 5,60명 모이는 교회를 목회하면서, 아침에 자동차를 몰고 두어 시간을 가야 한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 다음 집을 가려면 또 2 세 시간을 운전해 가야하며 서너 집을 돌고 오면 해가 지고 온 몸은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생활을 몇 년 하면서, 교인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이런 심정으로 목회를 했으면 성도들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하며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못했던 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깊이 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있던 16년 동안 정말 한 사람을 귀히 여기면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 때에는 정말 성도들의 이름은 물론 그들의 가족들의 이름까지 다 기억하면서 그들의 이름을 불러 기도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대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나올 때쯤 되어서는 장년이 약 400명 정도 출석하던 교회를 섬기고 있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나를 거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처음 교회 나오면 저와 8주 동안의 새가족 성경공부를 하였고, 세례받지 않은 사람들은 8주 동안 저와 세례 준비공부를 했으며, 전 교인을 상대로 12동안의 제자양육성경공부도 했습니다.
또 장로들과 집사들과는 함께 '최선의 삶'이라고 하는 지도자 훈련코스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인 한 분 한 분, 제직 한 분 한 분이 다 저를 통해 신앙을 갖게 되었고 자라게 되었으며 훈련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관계가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저는 목회란 그렇게 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남서울 교회에 와 보니 양상은 매우 달랐습니다.
제가 목회하던 교회의 근 열 배나 되는 성도들을 새롭게 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수 많은 성도들을 잘 알지 못하고 목회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부사역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저를 대신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제 마음 속에는 과연 내가 진정한 목회를 하는가 하는 자책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은 제가 처음 미국 가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목회자의 마음 그대로입니다.
비록 제가 이곳에 서서 수 많은 성도들을 일시에 대함으로 한계는 있어도 저의 목회 이념은 첫째는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는 목회를 하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목회를 하자는 것이며 또 하나는 공동체를 귀하게 여기는 목회를 하자는 것입니다.
많은 수도 중요하지만 충성스러운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목회, 그래서 교육을 중시하고 인물을 키우며 미래를 준비하는 목회를 해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목회를 하는 데에 지침이 되는 말씀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 10절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이 소자 중 하나라도, 다시 말해서 그 앞에서 말씀하신 바 어린 아이 하나라도, 또 어린아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보잘 것 없이 취급받는 사람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다시 말해서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래야 한다고 하셨습니까?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우리 인간은 크나 적으나 다 하나님께는 귀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존재들이지요.
그래서 요즈음 청년들이 자주 부르는 노래 가운데 그런 노래가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새 80장)
그렇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얼마나 귀한 존재들인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도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일까요?
특별히 우리들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길 수 있을까요?
먼저, 여기 5절을 보십시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어린 아이 하나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영접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꼭 어린 아이만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 다시 말해서 주님 때문에 사랑으로 영접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주님을 영접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나오는 사람들을 주님 이름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따뜻하게 주님을 영접하듯 영접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어린 아이이든 어른이든, 잘 난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정상적인 사람이든 장애인이든, 전에 교회 나갔던 사람이든 안 나갔던 사람이든, 누구든지 주님 영접하듯이 영접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한 사람을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들의 생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사람을 귀하게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의 가장 큰 병폐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사람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희소가치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 무시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팽배되어 있습니다.
길을 갈 때도 사람보다는 자동차가 먼저입니다.
사람이 가다가 자동차가 오면 사람이 피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에서는 안 그렇습니다.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차가 기다려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사람보다 차가 더 중합니다.
어찌 그뿐이겠습니까?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한 사회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돈만 된다면 사람에게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불량식품도 만들어 내고 사람에게 중요한 자연을 파괴하는 산업도 돈만 되면 합니다.
관공서에 가든, 학교에 가든, 심지어는 교회에 와도 친절이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회를 빨리 고쳐야 합니다.
교회에서부터 고쳐 나가야 합니다.
또 우리의 자세도 달라져야 합니다.
교회에 한 사람이 나오면 그들을 영접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야합니다.
오려면 오고, 가려면 가라는 식의 태도는 버려야 합니다.
대개 큰 교회가 사람 귀한 줄 모르고 그러기 쉽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새로 온 사람들이 대우를 받고 귀하게 여김을 받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교회를 주님은 축복하시고 부흥케 해 주십니다.
우리 교회에는 새로 오는 교우들을 위해서 새가족부가 있습니다.
거기에 잘 훈련된 새가족부 교사들이 있어서 우리 교회에 새로 오신 분들을 잘 영접하고 영적으로 양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새 가족들을 영접하는 일이 새가족부 만의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새로 오신 분들이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그들을 환영하고 그들이 우리 교회에 정착하여 신앙생활 잘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구역에서도, 각 부서에서도 그들을 돌보는 데에 최우선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일입니다.
시설도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형태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는 우리 교회가 아주 많이 모자랍니다.
우리 교회는 장년 교우들 나오기는 큰 문제가 없어도 어린 아이들이나 어린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나오기는 매우 불편한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들에게도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분들에게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특별히 갓난아이들을 데리고 오시는 분들에게 충분한 공간을 마련해 드리지 못함에 대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또 어린이들이 예배를 드리거나 성경공부를 할 때 어른들의 의자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것을 보고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있습니다.
어린이들만의 공간이 없이 어른들과 함께 사용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어린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건축을 하든지 새로운 시설을 가지게 되면 누구나 나올 수 있는 공간, 특별히 어린아이들이 거리낌없이 나올 수 있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회, 청소년들이 마음놓고 그들의 꿈을 키울 수 있는 교회, 노인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장애인들의 편의가 제공되는 교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귀히 여기는 교회의 모습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때까지는 불편하시더라도 좀 참아 주시고 앞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 생각부터 바꾸고 또 우리의 자세도 고치며 더 나아가서 우리들의 시설에 있어서까지 배려하면서 사람들을 귀하게 영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여기 6절에 보니까 한 사람이라도 실족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
여기 실족케 한다는 말은 '범죄케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7절에서 그런 일이 있음으로 세상에 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남으로 죄 짖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특별히 어린이들과 청소년들로 하여금 죄 짖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린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학교 앞에 퇴폐 영업소들이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다든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돈을 버는 상행위라든지, 아이들을 유인해서 범죄에 빠지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는 몇 년 전에 원조교제란 말을 듣고 뜻을 잘 모르기 때문에 좋은 말인 줄 알았습니다.
원조교제, 그 의미는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런데 그 말이 엄청나게 나쁜 말이더군요.
어떻게 아직 어린 젊은 학생들에게 그런 일을 시킵니까?
이렇게 이 사회는 남을 타락케 하고 범죄케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교회에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도 말씀을 잘못 가르친다든지 권징을 바로 하지 않으면, 교리적으로도 잘못된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또 도덕적으로도 부패한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잘 가르쳐야 합니다. 신실히 징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표지 세 가지가 있지요.
말하자면 바른 교회가 어떤 곳인지 나타내는 세 가지 표식입니다.
하나는 올바른 말씀의 선포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교회입니다.
그 다음에는 신실한 권징의 시행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잘못 할 때는 바른 징계를 베풀어야 합니다.
교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잘못하고 있는데도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것은 바른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성도들도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것이므로 간접적으로 실족케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정당한 성례의 실시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말씀을 바로 선포해야 합니다.
권징을 신실하게 시행해야 합니다.
성례도 정당하게 실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성도들로 하여금 실족케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온 사람들을 잘 영접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말씀 안에서 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이 세 가지를 잘 해야 합니다.
특히 지도자 된 사람들의 말과 행위는 중요합니다.
믿는 자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혹시 우리들의 잘못된 삶을 본 받아서 성도들이 타락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들 때문에 범죄하고 타락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것은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혹시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내 손을 찍어 버리는 심정으로 내 눈을 뽑는 심정으로 나 때문에 남이 실족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무슨 도덕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나 때문에 우리 교회에 새로 온 사람들이 교회에 있지 못하고 떠나는 일이 있다고 생각이 되거나, 나 때문에 교회 잘 다니던 사람이 교회를 떠나는 일이 생기거든 그것도 남을 실족케 하는 일인 줄 알고 회개해야 합니다.
나의 어떤 말, 나의 어떤 행위가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정말 내 손을 자르는 심정으로 내 눈을 뽑는 심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과 같은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기 14절에 보니까 한 사람이라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라고...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한 영혼은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온 영혼은 어떻게 해서든지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잃은 한 마리의 양에 비유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다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할 것이라고 했다.
저는 이것도 아주 중요한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교회는 성도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사람쯤 없어져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 교회에는 아직 등록도 안 하고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또 등록은 했어도 그냥 부담 없이 교회생활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교회가 별로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고, 또 때로는 무슨 일이 생겨도 알지 못하며 이사를 하고 교회를 옮겨도 모르는, 심지어는 본인이 돌아가시거나 가정에 상이 생겨도 알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그런 것을 오히려 편하게 생각하실는지 모르지만 목사인 저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운지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라고 하셨고 한 사람이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했는데, 교회는 그런 사람들을 알지도 못하고 또 그냥 앉아서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으니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이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한 영혼이라도 잃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의 목사로서 간절히 부탁합니다.
여러분은 한 분 한 분 귀중한 분들이십니다.
주님이 귀하게 여겨 우리 교회에 나오게 하신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을 교회가 귀하게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로 하여금 여러분들을 섬길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교회생활을 하셔도 떳떳하게 등록을 하셔서 하시고, 또 등록하셨으면 여러분의 소속된 교구를 알고 교구 목사님과 교구책임자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주님께서 주신 성도의 교제에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목사님들과 장로님들 권사님들에게는 말씀드렸습니다.
금년부터 우리 교회는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심정으로 교구 안의 성도들을 책임껏 잘 돌아보자고 했습니다. 교구를 중심으로 잃은 양 하나도 없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구에서 구역에서 여러분들에게 크게 실례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연락도 하고 기도도 하며 우리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을 최선을 다해서 돌볼 것입니다.
그것을 귀찮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우리의 사랑으로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여러분을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 받아 주십시오.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라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하게 영접하는 교회입니다.
또 아무라도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해서 말씀을 가르치고 여러분들을 바른 신앙의 삶을 살도록 힘쓰는 교회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주님의 말씀대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철저히 돌보는 교회입니다.
요즈음 교회들이 사람보다 건물을 더 귀하게 여기고 사람보다 프로그램이나 조직을 더 중히 여기며 사람보다 물질을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되어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귀히 여기는 교회로 또 한 사람을 귀히 여기는 교회로 우뚝 서서 우리 한국 교회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교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