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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송합시다!
    2001-12-08 15:08:31   read : 1541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엡1:3)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하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지난 시간에 우리는 에베소서의 서문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편지를 받은 사람은 누구였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축복의 문안이 주어졌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예수님의 보내심을 입은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과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이땅에서 구별함을 입은 성도요, 예수님을 믿는 자들임을 알게 되었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는 은혜와 평강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서문에 이어 바울은 일장의 찬송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3-14절의 말씀인데, 원래 원문에는 이 찬송이 끊어지지 않는 한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인사를 하고 난 뒤 북받치는 감격에 못 이겨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긴 한 문장으로 찬송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감격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감격 가운데서 찬송이 이어집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그 첫 부분인데,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찬송합시다!'라고 잡았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찬송의 종교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찬송이 있는 종교인데, 제일 이상한 것은 장례식 때도 찬송이 있는 것입니다.
    아마 장례식 때 노래하는 종교는 우리 기독교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면 찬송해야 합니다.
    사 43:21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임에는 마땅히 찬송해야 하는데, 사도 바울처럼 찬송해야 합니다.

    행 16장에 보면 바울이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붙잡혀 감옥에 갇힌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서도 그는 찬송했습니다. 기도하고 찬송하고 나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옥문이 열리고 간수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찬송을 회복하면 기적이 나타납니다.
    기적의 삶이 이어지면서 우리를 통해 계속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우리들이 이 말씀을 듣고 찬송의 능력이 회복되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의 능력이 회복됨으로 우리 삶의 기적이 창출되고 구원의 능력도 회복되는 놀라운 시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찬송하자고 했습니까?
    오늘 우리들이 찬송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시 한번 오늘 본문을 봅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무엇 때문에 찬송하자고 했습니까?
    우리가 복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 '복'이라는 말, 우리들이 참 좋아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왜 교회 나옵니까? 결국 따지고 보면 복 받기 위해서 나온 것입니다.
    또 우리가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결국 복 받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 복을 이미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 '우리에게 복 주시되...'라는 말은 헬라어 문법적으로 보면, 단순과거로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것을 나타내는 시제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우리가 이미 복을 받았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하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을 받기 위해서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여기 저기를 가지만, 우리는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찬송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 복을 주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복을 저절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뭘 잘해서, 자격이 있어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니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고 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을 늘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
    결국 그것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받고 그것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게 되었지만 예수님은 절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시는 것을 양보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님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며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도 되시고 우리 아버지도 되십니다.
    요 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신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도 되시고 또 우리의 아버지도 되십니다.
    바로 그 예수님의 아버지, 또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누구 안에서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까?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우리에게 복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주셨습니다.
    이 '그리스도 안에서', 'In Christ', '엔 크리스토'(헬)라는 말은 에베소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일 뿐 아니라 바울 서신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글 하나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도 많은 사람에 의해서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많이 듣겠지만 오늘 말씀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복은 모든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만이 받는 복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복이 있습니다.
    소위 일반 은총이라고 해서 일반적인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햇빛과 비를 선인에게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악인에게도 내려주십니다. 그래서 이세상의 일을 보면 하나님의 자비가 있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내려지는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복과 달리 특별히 주어지는 복이 있는데,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미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세상의 일반적인 복이 아닌 특별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복이란, 쉽게 말해서, 예수를 믿음으로 받은 복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어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I believe in Jesus' 라고 합니다.
    In 이라는 전치사가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요 15장에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5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7절)
    여기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하나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는 것처럼 믿음으로 예수님과 하나됩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영양분을 받는 열매맺는 신앙생활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복이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과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를 모르고 특별한 복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보다 더 잘되고 복을 받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만 특별히 주어지는 복이 있습니다.

    그럼 그 복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그 아래에서 예수님을 믿어 얻게된 특별한 복에 대해서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과거에 받은 은혜, 현재에 누리고 있는 복, 또 성령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누릴 복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리는 앞으로 몇 주간 동안 우리 믿는 성도들이 찬송할 수밖에 없는 이런 복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는 그런 복의 특징 두 가지를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먼저, 그 복은 하늘에 속한 복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속한 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쉽게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복은 영원한 것입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의 복을 누려서도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해야 할 터인데, 하늘에 속한 영원하고 변치 않는 복을 누렸으니 얼마나 더 찬송해야 하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땅의 복에 집착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땅의 복에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이 주신 하늘의 복을 잊어버리고 내던져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복은 쉽게 지나갑니다. 그리고 이 복은 복인 것 같으나 자주 변질됩니다.
    가령 우리가 이 땅에서 추구하는 성공이나 출세가 그렇게 좋은 것 같지만 다 이루고나면 얼마나 부패가 따릅니까? 그리고 이루어본들 자기에게 얼마나 만족이 됩니까?
    요즈음 주말 드라마 가운데 '태양은 가득히'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자기의 친구를 배반하고 애인도 배반하며 성공을 위해서 줄달음질 치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그렇게 해서 이루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그 드라마를 다 보지 않아도 그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성공, 그가 추구하는 출세가 결코 그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이 땅의 것에 목매여 그 소중한 것은 다 버리고, 심지어 예수믿는 우리 조차 하늘의 것을 버리고 땅의 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4:17,18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비록 우리가 이 땅에서 환난을 받는다 할지라도 장차 누릴 하늘에 속할 영광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거꾸로 땅의 것을 소중히 여기고 연연하다보면 영원한 하늘의 것을 놓치기가 쉬워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누리는 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하늘의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 보화를 하늘에 쌓아두고 이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 쌓아두면 좀이나 동록이 나서 썩어지고 도둑이 와서 훔쳐가나 하늘에 보화를 쌓으면 좀이나 동록이 없고 도둑이 와서 훔쳐가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하늘에 속한 복이 있습니다. 이것을 인해 찬송하고 기뻐하십시오.

    또 이 복은 신령한 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복이 아닙니다. 이런 육체적인 복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모하는 물질이라는 것, 있다가도 쉬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 23:5에 보면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했습니다.
    돈에 소망을 걸고 돈을 복으로 아는 사람들이 그 모든 것이 날라가는 날에는 얼마나 허무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싼 것 사다 먹고 건강관리를 한다 할지라도 우리 겉사람은 후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늙고 병들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신령한 복을 인하여 찬송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희망을 걸면 너무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복, 신령한 복은 영원합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 한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어렸을 때 농고를 졸업하고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남이 돼지치는 곳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자신도 돼지치는 농장을 가지고 성공하는 생활을 하며 돈을 벌고 싶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사 농장을 경영하는 사장이 되게 하시고, 자동차도 굴리고 집도 사고, 큰 빌딩도 사게 해주셨습니다. 얼마나 기쁨과 찬양이 넘치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찬송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지 한 10년이 지나고 나서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사기를 당해 빌딩을 날리고 빌딩 위층에 있던 집마저 없어졌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을 잘못 만나서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남의 땅에서 간이 건물을 짓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건강한 몸까지 이상이 생겨 병원에 가니 직장암이라고 해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만일 이 사람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알지 못했다면 그대로 삶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분은 믿음이 있어 늘 다른 사람의 귀에 닳도록 이 세상의 것이 전부가 아니라 하늘의 세계가 있고, 또 눈에 보이는 물질이 전부가 아니라 신령한 것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가지고 건강할 때 깨닫지 못했던 하늘의 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자기가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으시대고 찬송을 불렀지만 이제는 겸손하게 속에서 우러나오는 과거보다 더 참된 감사와 찬송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에베소서를 쓰고 있는 사도 바울을 생각해 봅시다.
    그에게는 이 땅의 것은 감사할 만 하고 찬송할 만 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 로마 옥에 갇혀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언제 죽을는지 알지 못하는 불안한 처지에 있습니다.
    먹을 것도 넉넉하지 못하고 입을 것도 충분하지 못하여 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덮을 것을 갖다달라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가족도 없습니다. 자유롭게 만날 친구도 없습니다.
    춥고 배고픈 곳에서 격리생활을 하며 몸은 늙고 병들었습니다.
    늘 찌르는 가시가 있어 그를 괴롭힙니다.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바울은 지금 찬송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말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그들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난 후에는 '찬송하리로다, 찬송합시다'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땅만 바라보았다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바울이 만약 이 세상의 물질을 바라보고 육신만 생각했다면 어떻게 찬송하자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에게는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을 보았습니다.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복이 아닌 신령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쓴 고린도전서 2:9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이 생각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하늘에 속한 신령의 복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온 찬송을 드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쩌면 우리들도 오늘 이 시대를 보면 세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물질적으로 감사할 것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밑바닥이 나도 감사할 조건을 충분히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독수리와 같은 눈이 필요합니다. 독수리라는 새는 하늘을 높이 날아다닙니다. 높이 날면서 멀리 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이 땅바닥을 뒹굴면서 썩을 것을 찾아 다니는 두더쥐 같은 짐승과는 다릅니다.
    독수리는 결코 썩은 것을 앉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높은 곳을 날며 멀리 바라보며 고고히 살아가는 독수리는 날짐승의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볼품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가진 것이 없고 우리의 육체가 날마다 후패하여도 늘 독수리와 같은 눈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축복, 신령한 복을 늘 보면서 이것으로 인해 감사하고 찬송하는 우리가 될 때, 놀라운 기적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삶을 보고 다른 사람이 놀라고 계속해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찬송을 잃은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풍요로운 시대, 건강식품이 발달하고 의료기술이 발달하여 의료혜택을 누리고 사는 시대에도 그리스도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수한 축복에 대한 눈이 어두워져서 우리의 입술에 불평과 원망이 나오고 감사 찬송이 약해 지는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이 사도 바울의 편지를 읽으며 우리의 눈을 뜹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의 신령한 복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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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열매 / 롬1:13-17
    인내의 열매 / 약5:11-17
    화평의 열매 / 요14:27
    기쁨의 열매 / 눅10:17-21
    사랑의 열매 / 갈5:22-23
    성령의 열매 / 갈5:16-26
    이제는 ‘열매’ 입니다. / 요15:1-8, 요15:16
    하나님이 행하신 대사(大事) / 시126:1-6
    수련회로 부르시는 주님의 목적 / 막3:13-16
    보내심을 받은 자 / 마10:5-15
    세례의 의의
    잔치로의 초대
    영적 추수
    잃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벧엘로 올라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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