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5월 08일 (목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카이캄, 51회 134명 목사안수식 / 4페이지 설교법               지구촌교회 담임목사에 김우준 목사 청빙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명성교회에서               빗속에서도 울려 퍼진 부활의 기쁨 / 지구촌교회 제4대 담임 후보에 한인 목회자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 '무장공비→ 목사' 김신조 별세 / 이재명 지지율 1위               헌재 전원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 /교회 건물 명의만 소유했던 목사…법원               산불 피해 한국교회 지원 총력 / 고령 교인 10명 중 6명               기독교인 수, 감소 멈추고 안정세 /일제 침략으로 예수 믿었으니 '수고했다'고 말해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이마에 십자가 인터뷰 출연               사순절에 대한 흥미로운 5가지 사실/ 트럼프 2기 첫 내각 회의, 목사·장관인 터너의 기도로 시작               국회 앞 25만 인파 “3.1정신으로 체제 전쟁 승리” /인사만 잘 해도 좋은 일이 생깁니다              

  홈     강대식     강문호     계강현     고신일     곽선희     곽창대     권오선     권오진     김경진     김광일     김기석     김도완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상수     김성광     김성수     김승규     김양인     김영훈     김용혁     김원효     김은호     김의식     김재곤     김정호     김진수     김진흥     김창규     김창진     김형익     김홍도     남수연     노창영     노환영     류영모     명설교(A)     명설교(B)     명설교(C)     문기태     박병은     박봉수     박신진     박요한     박일우     박진호     박한응     박형근     배영진     배의신     배진기     배혁     서명성     서진규     손재호     송기성     스데반황     신만교     신현식     안두익     안효관     양인국     양향모     염두철     오주철     오창우     옥한흠     원영대     유기성     유민용     유은호     유장춘     유평교회     이강웅     이건기     이국진     이규현     이기복     이대성     이동원     이동희     이백민     이삼규     이상호     이성우     이성희     이양덕     이영길     이영무     이우수     이윤재     이은규     이익환     이일기     이재철.박영선     이재훈     이정원     이정익     이종철     이준원     이지원     이하준     이한배     이호준     임현수     장부완     전승문     정근두     정오영     정준모     조봉희     조상호     조성노     조영식     조용기     조학환     조향록     주준태     지성래     지용수     차용철     채수일     최동규     최인근     피영민     피종진     하용조     한경직     허창수     홍문수     홍정길.임영수     홍종일     외국목사님     .     괄사(왕)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주례사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구약사건     신약사건     구약삽화     신약삽화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김기홍 설교학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설교(내부에 많이있음)
  웃음치유와 영업
  기타

설교내용검색

성경 찾기

네이버.다음.구글


검색



Daum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김명혁목사
  • 김형준목사
  • 양인순목사
  • 이동원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Home

    성령충만을 받으라
    2001-12-08 15:33:10   read : 1577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엡5:18-21)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엡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지난 주간에 우리는 너무나도 끔찍한 사건을 목격했습니다.
    미국의 심장부라고 하는 뉴욕과 워싱톤, 그것도 미국 경제와 세계경제의 중심지인 월드 트레이드센터와 미국 국방의 중심인 펜타곤이 몇 명의 자살 테러단이 납치한 비행기에 의해서 파괴되고 수많은 인명이 희생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건의 보도를 TV로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특별히 사건 첫날은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오랫동안 제가 살던 곳이고 아직도 제 두 딸이 그곳에 살고 있으며, 특별히 둘째 딸은 바로 그 월드 트레이드센터에서 두 블럭 떨어진 곳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 종일 전화가 통하지 않고 또 간신히 통화가 되었을 때는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심히 걱정도 되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제 딸은 무사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놓았습니다만, 그 때 비행기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 또 건물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참변을 당한 사람들, 특별히 그들을 구조하러 들어갔다가 건물이 붕괴함으로 함께 희생당한 구조대원들을 생각할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세상이 이렇게 악한가?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워오면 전쟁과 전쟁 소식, 난리와 난리 소식이 들린다고 했는데, 바로 지금이 그 때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주일에 들은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무어라고 했습니까?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지혜 있는 자같이 행하라고 했습니다.왜 그래야 한다고 했습니까?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때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주의하면서 살아야 하고 또 세월을 아끼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 오실 때가 가까운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이 그런 일을 당했으면 어딘들 안전하겠습니까? 특별히 우리가 사는 이 지역은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지역입니다. 지금 평화무드가 형성되고 있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항상 깨어서 조심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잘 쓰며 하나님의 뜻을 늘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말씀이 그 대안입니다.

    여기 18절 말씀을 읽읍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술 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술에 정신을 잃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술은 방향감각을 잃고 방탕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어찌 술만을 가리키는 말이겠습니까? 다른 것으로 인해서 취하고 방탕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변하지 못하고 사는 삶은 정신을 빼앗기고 사는 삶과 같습니다.

    이번에 미국에서 참사를 당한 사람들, 그들이 일하고 있는 그 건물은 사람들이 돈 버느라고 정신이 없는 곳입니다.
    저도 그곳에 가끔 가 보았습니다만, 그곳 사람들은 움직이는 것이 다릅니다. 얼마나 바쁘게 움직이는지 정말 음식 먹을 겨를도 없습니다.
    그 건물 바로 옆에서 패스트푸드 가게를 운영하는 교우가 있어서 자주 가 보았는데, 그곳에서는 질 좋은 음식을 얼마나 빨리 빼내느냐가 승부를 결정짓는다고 합니다.
    제가 한 번 점심때 가보니 사람들 줄이 길게 서 있습니다. 짧은 점심시간에 많은 손님들에게 음식을 공급하는데, 질 좋은 햄버거를 종이에 싸서 서 있는 사람들에게 던져줍니다. 주인은 숙달이 돼서 아주 잘 던져주고, 받는 사람도 음식을 던지는 것을 기분나빠 하지 않고 잘 받아서 고맙다고 하고 돈을 놓고 갑니다.
    그렇게 하고 빨리 가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돈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돈 버는 데에만 정신을 잃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는데 정신을 팔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쾌락을 즐기는 데 정신을 잃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자기 일에, 자기 목적 달성에 정신을 잃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가정도 안보이고 교회도 없습니다. 나라와 민족도 없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있을 리 없습니다.
    여기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그렇게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사람들은 그것이 전부이니까 그렇게 살지 모르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여기 분명히 말합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그러면 성령의 충만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입니까?
    그것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상태, 곧 성령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누구에게나 성령이 와 계십니다.
    고전 12:3에 보면, "성령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고전 6:19-20 에 보면, 우리 몸을 가리켜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님이 우리 안에 와 계십니다.
    계 3:20에 보면,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해 들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와 함께 거하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은 예수님이 친히 육체적으로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이 아니고 영으로,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었을 때 이미 성령은 우리 안에 와 계십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다 그 성령에게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 지배를 받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우리는 성령에게 지배를 받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성령을 지배하는 그런 삶을 삽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주인인 삶을 산다는 말입니다.
    원래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主)로, 다시 말해서, 주인으로 받아 들였는데,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내가 나의 주인이 되고 예수님은 뒷방 늙은이처럼 쳐다보지도 않고, 찾지도 않고 관심도 기울이지 않다가 오늘처럼 예배드리는 날이 되면 목사님이 말할 때야 그 때서야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지 생각하고, 또 예배 끝나면 일주일동안 잊어버리고 삽니다.
    여기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은 이렇게 예수님 대신에 우리 안에 와 계시는 성령을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에게 전적으로 순종하며 따르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여러 가지 결과가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 오늘 읽은 말씀에 보면, 우리의 생활 가운데 나타나는 세 가지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찬송하는 생활입니다.

    19절을 봅시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 가운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생깁니다.
    그 노래들은 세상이 부르는 노래와는 다릅니다. 세상이 부르는 노래는 다 자기를 즐겁게 하는 노래요 사람을 높이는 노래이지만, 성령 충만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는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노래, 하나님을 높이는 노래입니다. 이런 노래들을 혼자서도 부르게 되고 또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부르게 됩니다.

    저도 예수 믿기 전에는 세상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한 시도 노래가 없이는 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성령 충만함을 받고 나니까 노래가 바뀝니다. 그렇게 좋던 세상노래보다 찬송가가 좋아지고, 그 찬송가를 부를 때에 세상 노래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느끼고 은혜를 받아 눈물을 흘리는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정말 찬송가를 통해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배 시간만 되면 물론 말씀 듣는 시간도 좋지만 찬송 부르는 재미로 참석했습니다.
    세상 노래는 부를 때는 신나고 실컷 부르면 시원한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허전하고 뒷맛이 씁슬합니다. 마치 술을 마실 때는 신나지만 다음날에는 속이 쓰리고 기분이 개운치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신령한 노래를 부를 때는 부르고 난 후에도 기쁨이 생기고 진정한 평강이 생깁니다. 이것을 그대로 유지하면 세상에 나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지난 번에 제가 미국에 갔을 때 그곳에서 주일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곳 여러 교회에서 설교를 부탁해 왔지만 사양하고 우리 식구들과 함께 어느 조용한 시골 한인교회에 가서 다른 성도들 속에 파묻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곳에서 찬송을 부르는데 얼마나 좋은 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예배 때 나와서 사회보고 말씀전하면 아주 좋은 것처럼 생각하지만 예배 자리에서 설교나 기도의 부담없이 예배드리니 참 좋았습니다. 특히 찬송 부르는 것이 좋아 마음껏 찬송하고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나중에 우리 딸들이 아빠 때문에 챙피해서 혼났다고, 그렇게 큰 소리로 찬송을 하니 사람들이 다 쳐다보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 마음껏 찬송하고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교회에서 찬송하라고 하면 개미소리 만큼 하다가 노래방에 가면 신난다고 큰 소리로 유행가를 부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 성령충만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성령충만하면 찬송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찬송을 통해 은혜를 받고 힘을 얻습니다.
    저는 바라기를 여러분들이 예배드릴 때마다 이런 찬송을 부르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성령 충만한 생활에는 감사가 있습니다.

    20절을 봅시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가 감사하는 생활을 가리켜 가장 차원 높은 신앙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William Law 라는 사람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인이라는 사람은 기도를 특별히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고, 금식을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니고, 구제를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절제를 잘하는 사람도, 의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감사할 줄 알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하려는 그 사람이 진정한 성자이다"
    그래서 살전 5:18에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뚯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찬송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마음에 항상 감사를 가지고 감사를 표현하고 나타낼 줄 아는 사람, 이 감사를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 감사가 잘 되는가? 감사처럼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말하기는 쉬워도 실행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하면 감사가 됩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잡혀서 실컷 얻어맞고 옥에 갇히게 됐을 때에도 그런 가운데서도 찬미하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분명히 감사의 기도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쓴 편지를 보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잊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찬송과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거기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그들이 성령 충만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다니엘도 보십시오. 그가 사자굴 속에 던지운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에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그도 하나님의 신에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에 왜 찬송이 없어지고 감사가 없어집니까?
    그것은 다른 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진정한 찬송을 부를 수 있게 됩니다.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성령 충만하면 진정한 복종이 나타납니다.

    21절을 읽어봅시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여러분,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복종하는 것입니다.
    복종이라는 것은 나의 의견이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나 자신을 낮추고 나를 남 아래에 두는 것인데, 주관을 가진 한 인격으로서 이렇게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면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면에서 이런 복종을 요구합니다.

    가령, 그 다음에 보면 아내 된 자들에게 성경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편들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또 남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론 아내를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인데, 사실 이 사랑은 이것은 더 높은 차원의 복종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복종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자녀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 역시 부모에 대한 순종입니다. 또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직장의 상전들에게 해야 하는 것도 무엇입니까? 그것도 복종입니다.
    그밖에 교회생활에 있어서도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보면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취해야 하는 가장 기본인 자세로서 복종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종이 쉽습니까? 정말 어려운 것이 복종입니다. 사람들이 잘 못하는 것이 이 복종입니다.
    가정에서도 아내가 복종하라는 말씀은 들었어도 곧 남편에게 대들고, 남편들도 아내를 사랑하겠다고 마음먹다가도 어느 순간엔가 주먹이 올라가고, 직장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잘 하겠다고 하다가 감정이 나오면 다른 사람의 멱살을 잡게 됩니다. 특히 교회에서 성도들이 복종하는 것은 당연한데 목사님이나 장로님에게 무슨 말을 들으면 그렇게 보기 싫고, 자기 맘대로 합니다.
    복종은 우리 힘으로 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복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게 되고, 성령충만한 남편은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성령충만한 사람은 직장에서도 모본을 보이고, 성령충만한 교우가 교회에서 복종하게 됩니다.
    성령충만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지만, 성령충만하지 못하면 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해 질 수 있습니까?

    말씀을 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령 충만은 피동적으로 받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우리가 구원을 위해서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성령 충만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이란 받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케 하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안 받습니까?
    그것은 그들에게 더 좋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것을 더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부귀나 영화나 즐거움이나 세상의 사람을 더 사모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의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상 것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 것 가지고는 우리가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성령 충만함입니다. 성령 충만함만 있으면 우리들이 이 세상을 얼마든지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성령의 충만함을 더 사모해야 합니다.

    요 7:37에서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서서 외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이 말씀이 무엇을 두고 하신 말이라고 했습니까? 그것이 바로,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 곧 성령 충만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함은 사모하는 자가 받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하듯이 이 세상에서 성령충만 없이는 지탱할 수 없을 깨닫고 간절히 사모할 때 받습니다.

    또한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으려면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기 때문에 죄가 있는 곳에 같이 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생각나는 대로 다 고백해야 합니다.
    요일 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 59:1-2절은 하나님의 팔이 짧아서 구원치 못함이 아니요,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 돕지 못함이 아니요,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구원과 도움을 가로막는다고 했습니다. 이 죄를 제거하고 깨끗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가로막힌 것, 사람과 가로막힌 것을 다 허물어야 합니다.

    또한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요, 우리가 사모한다 해도, 또 우리가 죄를 다 고백했다해도,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면 성령 충만함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시면서, 뒤에는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9,13)고 하셨습니다.
    좋은 아버지가 주실 가장 좋은 것이 성령인데, 이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사모하고, 하나님과 가로막힌 모든 죄를 회개하고 본격적으로 성령충만을 위해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한 다음에는 받은 줄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면 들으신 바 되고, 들으신 즉 받은 줄로 믿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성령 충만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까? 이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보다 더 성령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 충만을 구하면, 약속대로 반드시 주십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줄로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성령 충만을 감정적으로만 생각합니다. 기도한 후 뜨거운 감정이나 변화가 있어야 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했으면 성령 충만한 것입니다.
    그 후에는 성령 충만한 줄 알고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 증거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은 어디 가든지 그리스도인을 숨기지 않고 나타내며 말로 증거하는 삶을 삽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령 충만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면 나의 적은 말로 상대방이 변화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정말 자신이 성령 충만한 것, 성령님이 나를 통해 역사하시는 체험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고 순종에 옮기는 사람은 성령 충만을 많은 체험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함을 알지 못하고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니 모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칼날이 잘 들어도 잘라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요, 아무리 힘센 대포라도 쏴보지 않으면 그 위력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성령 충만했어도 순종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체험하지 못합니다.
    체험은 성령 충만 후에 오는 것이고 우선은 성령 충만을 구하고 믿음으로 이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주로 삼아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악한 세대를 살아가는 유일한 길이 성령 충만인 줄 알고 자신을 돌아보기 바랍니다.
    내가 성령 충만해서 진정한 찬송과 예배의 감격이 있는가?
    내게 감사가 있고 복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살펴보면서, 이제까지 성령충만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성령의 선물을 위해 기도하기 바랍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한 번 기도하지만 성령충만은 지속적으로 구하고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 순종하며 말씀대로 살아갈 때, 능력을 체험하고, 성령님이 내 안에서 역사하심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복음의 열매 / 롬1:13-17
    인내의 열매 / 약5:11-17
    화평의 열매 / 요14:27
    기쁨의 열매 / 눅10:17-21
    사랑의 열매 / 갈5:22-23
    성령의 열매 / 갈5:16-26
    이제는 ‘열매’ 입니다. / 요15:1-8, 요15:16
    하나님이 행하신 대사(大事) / 시126:1-6
    수련회로 부르시는 주님의 목적 / 막3:13-16
    보내심을 받은 자 / 마10:5-15
    세례의 의의
    잔치로의 초대
    영적 추수
    잃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벧엘로 올라가자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 김효자 /사업자번호831-29-0156/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 /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4394-4414 /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