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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을 위한 4가지 권면// 20011104
    2001-12-07 23:53:10   read : 1578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주일 낮예배// 시편 1편 1-3절

    서울에 있는 한 큰 교회 목사님이 어려웠던 시절에 했던 고생담입니다.
    그분은 서울 인근 시골 지역에서 약 60명의 교인과 함께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교회 부흥이 되지 않고, 10년 가까이 답보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황이 10년 이상 계속될 때 생기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비전이 없어 보이니까 교인들이 떠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 교회도 부흥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교인들이 하나 둘씩 교회를 떠났습니다.
    목회자가 말은 안해도 목회하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 바로 그런 일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 아픈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분들이 교회는 떠나도 다음 번에는 복 있는 길을 택하게 하소서!"
    아무리 생각해도 복이 없는 길인데 그 길을 택하니 정말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언젠가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것을 믿고 묵묵히 교회를 섬겼습니다.

    1970년대 말, 우리 나라에 아파트 건축 붐이 일었을 때
    교회의 부흥이 안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떠날 사람들은 다 떠난 상태에서
    별로 능력도 없고, 그냥 말없이 자기 직분을 감당하는 평범한 교인들과 함께
    서울 외곽지역에 있는 아파트 입주지역으로 들어와서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교회가 지금은 상당히 큰 교회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목사님이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분들이
    교회가 부흥이 안될 때 기대치를 낮추고 같이 인내했던 교인이라고 합니다.

    지금 그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 중에 유력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목사님은 어려웠을 때 같이 인내한 사람들에게 교회의 중직을 맡긴다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전문적 능력보다 성품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묵묵하게 참는 것이 어리석어 보여도 결국 그 길이 복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교회 목사님이 미국에서 연합 부흥성회를 인도하는데,
    그 부흥회에 옛날에 교회에 비전이 없다고 교회를 떠난 한 분이 참석했습니다.
    22년만에 만나 그분은 반갑게 인사했지만 목사님은 담담하게 악수만 했습니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 그분을 위해서 다시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분이 넓은 길만 찾지 말고 복 있는 길을 찾아갈 수 있게 하소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분 소식을 들어보니까 아직도 자기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신앙과 충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되었고,
    "왜 많은 사람들이 복된 길을 못 갈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진정 복이 있는 길을 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은..."이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히브리어에는 복을 말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는데, 바로 바라크와 아쉬레입니다.
    바라크는 축복(blessing)으로, 아쉬레는 행복(happiness)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바라크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 받는 것을 말하고, 아쉬레는 내적 행복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 나오는 복은 바로 아쉬레의 복을 말합니다.
    이 복은 인격적인 내적 행복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병들면 더 기도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실패하면 모처럼 겸손을 배워서 행복하고,
    고독하면 자유가 있어서 행복하고, 가난하면 작은 친절에도 감격해서 행복합니다.
    우리는 바라크의 축복을 받은 존재로서 아쉬레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어느 옥탑방에 세 들어 사는 한 부인은 자신이 가장 행복을 느낄 때가
    밤에 옥상 위 빨래 줄에 네 가족의 옷을 널면서 별을 바라볼 때라고 합니다.
    이처럼 고달픈 셋방살이에서도 행복을 찾아 사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없어도 감사할 줄 알면 행복한 삶이고, 있어도 감사를 모르면 불행한 삶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작은 것에서도 행복의 가능성을 찾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행복한 사람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 말씀은 만사형통이라는 말이니까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말씀입니까?
    그런데 가끔 어떤 분들은 "예수 믿어도 별로 나아지는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의 만사형통을 '문제가 전혀 없는 만사형통'으로 오해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에게 정말로 묻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신앙을 이용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정말 진실하게 믿었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콩나물 기르는 정성을 가지고 산삼을 얻겠다고 하니 문제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형통한 느낌보다는 막힌 느낌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정말 예배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살았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말로는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고 하면서, 자기 중심으로 사는 분도 꽤 많습니다.
    그러니까 많이 뿌리는 것 같은데 열매는 적고 잎사귀는 점점 말라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말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다려보십시오.
    때가 이르면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 6:9).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도 복 있는 사람(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1-2절은 우리들에게 4가지 권면의 말씀을 합니다.

    < 악인의 꾀를 좇지 말아야 합니다 >

    하나님은 지혜를 주시고 사단은 악한 꾀를 줍니다. 악한 꾀돌이 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행복을 원하면 생각부터 잘 생각해야 합니다. 죄는 자라기 때문입니다.
    생각(악인의 꾀)이 잘못되면 잘못된 행동(죄인의 길)을 낳고,
    행동이 계속 잘못되면 잘못된 행동양식과 습관(오만한 자의 자리)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생각할 때부터 악한 꾀를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요새 유행하는 몇몇 교회성장학 이론은 지혜보다는 꾀로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성장학 이론대로 실천해도 교회성장이 더 안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꾀는 헛똑똑이고, 일종의 처세술이며, 그것은 뿌리 없이 흔들리는 삶을 만듭니다.

    여러분! 악인의 꾀를 좇지 마십시오. 그것을 위해 먼저 악인을 멀리하십시오.
    악한 동료, 악한 친구를 멀리하고, 사랑을 아는 동료와 친구를 가까이 하십시오.
    악한 친구와 사귀면서 "악인의 꾀가 없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면 모순입니다.

    어떤 분이 죄수들을 조사했는데 혼자서 죄를 지은 사람은 아주 적었다고 합니다.
    죄는 대개 같이 짓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 좋은 친구를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혜를 받는 사람을 보십시오. 먼저 그 사람 주위 환경부터 은혜롭게 변합니다
    그러므로 힘써 악인을 멀리하십시오. 그래야 악한 꾀를 좇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사람을 멸망시키는 악인의 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멀리해야 할 악인의 꾀는 바로 기복주의의 유혹입니다.
    요새 강남의 점치는 집이 성행하고, 신문에 점치는 광고가 참으로 많이 나옵니다.
    그 점을 믿고 쩔쩔매고 사는 모습을 보면 참 인간이 연약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요즘에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주는 신내림 특별기도까지 있다고 합니다.
    그 저주를 끊어주신 예수님은 어디 두고 다시 무엇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그런 무속적 행동을 하나님이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성경은 누누이 강조합니다.
    예수님 믿었으면 저주가 끊긴 줄 알고 믿는 사람답게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적이고 미신적인 방법으로 갈급함을 해소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목이 마를 때 물 대신 청량음료를 마시면 당장은 좋아도 목이 더 마르게 됩니다.
    영혼이 갈급하고 목마를 때 달콤한 세상적 방법을 따르면 그것은 실패의 길입니다.
    때로 집을 떠나 여행하면 잠깐은 좋습니다. 그러나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내 집을 놔두고 계속 여행을 하다 보면 사마리아 여인처럼 더 갈증은 심해집니다.
    내 집, 내 남편, 내 교회가 소중한 줄 알고 사랑을 작정할 때 갈증이 해소됩니다.

    지금은 정말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의지할 사람을 찾고 싶습니다.
    다들 점잖게 넥타이 매고 앉아있어도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간 분도 있을 겁니다.
    혹시 지금 힘들고 어렵고 눈물나고 가슴이 답답한 사연을 가지신 분이 계십니까?
    그래도 사람 찾아 여기 저기 다니지 말고 하나님만 꼭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 죄인의 길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

    헬라어로 죄란 하말티아라고 하는데, 목표한 과녁에 활이 빗나간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목표로 하지 않고 다른 것을 목표로 사는 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요? 불교에서는 탐욕, 유교에서는 불효를 듭니다.
    소크라테스는 무지를, 헬라 철학에서는 교만을 가장 큰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죄는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길과 하나님의 길이 있을 때 꼭 하나님의 길을 택하십시오.

    어떤 분들은 오늘도 이런저런 일 때문에 교회에 올까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중요한 줄 알고 나왔으니 잘하셨습니다.
    사실 세상에서 조금 더 재미있게 산다고 해서 삶 자체가 재미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의 눈을 피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일시적 쾌락을 즐기는 것은 재미가 아닙니다.

    어떤 남자는 여자에게 참 인기가 좋습니다. 그래서 상대하는 여자가 여러 명입니다.
    드라마에서 그런 남자를 보면 대개 남자들은 "저 친구 복도 많다!"고 부러워합니다.
    그것을 내색하면 찬밥 신세가 될까봐 모른 척 할뿐이지 누구나 그런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본능을 억제하고 주님을 섬기겠다고 나선 길이 진정 복된 길입니다.
    여러분! 피 흘리기까지 죄의 길에 서지 않도록 싸워서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

    하나님은 오만한 사람을 싫어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더 주십니다.
    그러므로 높은 자리는 추구하되, 그 자리가 오만한 자리가 되게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배울수록, 얻을수록, 높아질수록 더욱 겸손해야 행복을 잃지 않습니다.

    그런데 혼자 겸손하게 허리를 낮춘다고 진짜 겸손한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겸손이 진짜 겸손이 되려면 나의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것을 없는 사람, 불행한 사람, 소외된 사람과 구체적으로 나누려고 할 때
    그것이 적극적인 의미의 겸손이요, 그런 겸손한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며,
    이런 겸손한 리더가 많아져야 우리 교회, 우리 나라가 더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국비 장학생 최종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 질문했습니다.
    "역사의 발전에 다수의 군중과 소수의 엘리트 중 누가 더 공헌을 했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잠깐 고민하다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면접관들 앞에서 대답했습니다.
    "다수의 공동체 위에 소수의 엘리뜨가 있기 때문에 다수와 소수 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럴듯하게 대답을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회색분자처럼 대답한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아무리 생각해도 면접관은 자기 의견이 확실한 사람을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회색분자처럼 대답을 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떨어졌습니다.

    그후 저는 가끔 그때 생각을 하면서 "그때 이렇게 대답할 걸..."하고 아쉬워합니다.
    "면접관님! 저는 면접관님의 질문에서 엘리뜨와 리더의 개념을 구분하고 싶습니다.
    엘리뜨는 벼락치기나 당일치기나 고액과외 등을 해서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리더는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의 숙성을 통해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순발력 있는 엘리뜨 의식을 가진 사람은 약한 사람과 대중을 우습게 봐서
    전체 공동체의 조화를 깨뜨리고, 결국 인류 역사를 후퇴시키는 길로 가지만
    숙성한 리더는 겸손함을 갖추고 있어서 대중과 같이 호흡하는 길을 찾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인류의 발전에 가장 공헌을 한 사람은 겸손한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겸손한 리더는 반드시 사람을 얻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그를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오만한 자리에 서지 마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자녀들에게 겸손을 가르치십시오.

    어제 은혜가 낮에 친구들을 초청했는데 저녁에 식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우린 언제 아파트로 이사가요? 버스가 많이 다녀서 이곳은 시끄러운데...."
    제가 말했습니다. "은혜야! 아빠는 목사님이니까 돈이 없어!
    아빠가 돈 없이 그냥 목사님 할까? 아니면 목사님 하지 말고 돈을 많이 벌까?"
    은혜가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목사님 하세요." 하길래 제가 한 마디 했습니다.
    "은혜야! 너는 앞으로 작은 집에서 월세 사는 친구들에게는 더 잘해줘야 돼!"
    우리는 기회가 있는 대로 자녀들에게 겸손함과 이웃 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떤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체육 선생님이 체육시간에 쓸 나무 하나를 학생들에게 구해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난하고 모든 일에 뒤쳐지는 한 학생이 나뭇가지 하나를 구해왔는데
    그가 나무를 만지니까 한 학생이 "야! 더러워! 만지지 마!"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체육 선생님이 참지 못하고 그 학생의 뺨을 때리며 말했습니다.
    "못된 자식! 아무리 가난해도 그 애의 인격을 그렇게 무시하면 되냐!"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오만하고 못된 자식으로 키워서는 절대 안됩니다.
    하나님은 오만한 자를 싫어하십니다. 친구를 무시하는 자녀는 미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오만한 사람을 멀리해야 합니다. 가까이 하면 꼭 다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시려고 했는데
    나보다 조금 못하다고 그 사람을 무시하면 얼마나 주님과 반대되는 태도입니까?
    여러분! 항상 겸손한 모습으로 나눔과 섬김의 삶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

    오늘 본문 2절은 복 있는 사람에게 있는 뚜렷한 특징 한 가지를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 구절에서 특히 "오직"이라는 말에 더욱 주목해서 보시기를 바랍니다.
    복 있는 사람은 말씀의 맛이 하도 달게 느껴져 밤낮으로 말씀을 음미합니다.

    어떤 분은 말씀에서 '속박'을 느끼지만 어떤 분은 말씀에서 '자유'를 느낍니다.
    기차는 철로 위에 있을 때 자유가 있고, 비행기는 항로를 따를 때 안전하듯이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아멘' 하며 살려고 할 때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할 때는 불편해 보여도 나중에 보면 그것이 행복의 길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냥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듣고 나서 그 말씀대로 실천하려고 할 때 그것이 복된 것입니다.
    정말 주야로 묵상해보십시오. 그러면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런데 현대 성도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말씀 묵상입니다. 너무 바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우리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말씀 묵상에 드려야 합니다.
    그 시간이 언제입니까? 첫 열매가 소중하듯이 하루의 첫 시간이 소중합니다.
    그 시간에 기도하고 하루를 값지게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곧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 뇌에 말씀은 없고 드라마나 무협지 같은 것만 들어있으면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의 뇌 컴퓨터에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입력시키기 바랍니다.
    그러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또한 깊은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을 보면 말씀을 듣고 행하면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해보십시오. 그러면 우리 가정, 우리 행복은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5장에는 베드로가 말씀에 순종해서 많은 고기를 잡는 장면이 나옵니다.
    말씀 속에 사업성공의 길이 있고, 풍성한 삶을 누리는 길이 있다는 말입니다.
    자본이 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 같아도, 결국 말씀이 있는 사람이 성공할 것입니다.

    <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되십시오 >

    여러분! 신앙생활의 뿌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십시오. 말씀을 가까이에 두십시오.
    말씀을 듣고, 들을 때 메모하고, 주보의 말씀을 읽고, 성도들과 말씀을 나누십시오.
    그렇게 할 때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가물 때에도 결실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복 있는 사람은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장수의 복, 재물의 복, 건강의 복, 아들 많은 복을 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장수가 나쁜 이름, 추한 이름을 남기는 사람에게는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재물도 없었으면 행복할 수 있었던 사람이 재물이 있어서 인생을 망치기도 합니다.
    건강도 잘 써야 복입니다. 깡패가 아무리 건강해도 복 받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아들 많으면 복이라고 했지만 이기적인 아들만 많다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여러분! 복을 위해서 기도할 때 눈에 보이는 복, 환경적 복에 너무 연연하지 마십시오.
    참된 행복은 환경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복된 사람이 될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내부가 변화되어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참된 복은 세상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및 이웃과 사랑의 관계를 형성해서 오는 깊은 만족감이 진정 행복입니다.

    그러한 내적인 만족의 힘을 우리는 어디에서 얻습니까? 하나님 말씀에서 얻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그 말씀을 대할 때마다 어떤 선물보다 소중한 선물을 얻은 것처럼 즐거워하면서
    성경 보는 시간, 말씀 듣는 시간을 사모하며 산다면 진정 복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항상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려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풍성한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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