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F의 타격으로 퇴직 후 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성공적인 학원 경영으로 십일조를 가장 많이 드리는 시골 교회 장로님을 꿈꾸었던 그는 아내와 사별한 후에 목회자가 됐고 이제 당구장까지 경영하며 새로운 발상의 목회, 섬김의 목회를 실천하고 있다.
목회자가 운영하는 당구장이 대전에서 기네스에 올라 화제다. 대전의 최초, 유일, 최고, 독특함 등 4개 분야로 기네스를 뽑았는데, 김영진 목사의 ‘주은당구클럽’이 독특함 부문에서 기네스에 뽑힌 것. ‘주은’은 ‘주님의 은혜’라는 뜻(건물이 주택은행에서 지어서 주은오피스텔이지만 김 목사는 당연 ‘주님의 은혜’로 받아들인다).
담배를 꼬나물고 자욱한 연기 사이로 큐대 질을 하는 사람들과 그 뒤에 먹다 남은 짜장면과 내기 돈들이 어수선하게 널려져 있는, 불량스러운 아이들이 아지트로 삼는, 그런 당구장으로 생각하고 이곳의 문을 연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고난도 축복도 주님의 은혜
금연당구장인 이곳은 쾌적한 환경을 자랑한다. 아빠가 두 딸을 데리고 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당구를 가르쳐 주는 곳이고, 부부가 함께 와서 다정히 당구를 치는 모습이 흔한 풍경이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도 등장하는 당구장이다.
게다가 이곳에서 남는 수익금으로 교회를 운영하기도 하고 시골교회를 돕기도 한다. 사실 처음부터 이 당구장을 운영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다. 아니, ‘당구장 목사’가 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니, 이 모든 게 주님의 은혜라고 밖에. 그는 참 간증거리가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
“그때는 힘들었어도, 되돌아보면, 모든 게 주님의 은혜가 아닌 게 없더라고요. 어려서부터 그래요. 초등학교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서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할머니가 사시던 방 두 개짜리 월세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됐죠.”
그가 ‘살던 집’은 안채, 아래채, 중간에 대청마루에 텃밭이 있고, 한가운데 마당은 축구를 할 만큼 큰 집이었다. 경주 김 씨 왕족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으로 고래 등 같은 집에서 살던 그의 가족은 사업이 망하면서 경주 외곽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그게 되레 은혜였어요. 겸손해진 것이죠. 우리 집안이 전부 불교집안이었는데, 제가 처음 아홉 살 때에 교회를 다닌 이래로 지금은 전부 기독교 집안으로 바뀌었습니다. 형도 지금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죠.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가면서 집안 형편도 좋아졌죠.”
주님의 은혜로, 잘 나가는 샐러리맨이 됐다. 90년도 엘지가 야구단을 창단했을 때에 매니저 겸 운영과장으로 몸을 담았는데 그해 바로 우승을 했다. 대구 구장에서 헹가래를 탔던 짜릿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IMF가 닥치면서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필요했다.
“부장 네 명 중에 한 명이 그만 둬야 했는데, 제가 제일 젊었어요. 아이들도 어렸고요. 기도 가운데 제가 희생하자는 마음이 생겨서 회사를 그만 뒀죠. 그런데 업친데 덮친 격으로 아내의 음악학원이 부도가 나면서 전세금을 다 날렸습니다. 자산이 제로가 된 거죠. 제가 다시 취직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대기업에서 어린 나이에 부장 5년차까지 했으니 중소기업에서 저를 쓰기 어려웠죠.”
▲ 농촌교회 섬김의 자리에서
학원 경영해 재물 얻었지만
밤마다 교회 문고리를 잡고 기도하며 버텨냈다. 그래도 한번도 하나님을 원망한 적은 없다. 이 고난 속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주님의 은혜가 다시 임할 것이라 믿었다. 그는 이런 믿음의 태도를 하나님께서 좋게 봐주셔서 그때마다 복된 길로 인도하셨다고 생각한다.
“교회 전도사님이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학원을 해보라는 겁니다. 저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일주일 후에 누가 학원을 사라고 연락이 왔어요. 돈도 없었는데 아는 교우께서 자기 이름으로 대출도 해주시고요. 그래서 학원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학생이 60명이었던 학원은 그 이듬해 3월엔 180명, 그 다음 해에는 900명으로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엘지 근무 시절에, 엘지가 럭키금성에서 사명을 바꾸고 ‘사랑해요 엘지’라는 고객 중심의 가치를 창조하던 일을 기획했던 그는 학원 경영에서 그 기획을 적용했다. 학부모의 눈높이에서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자 학원은 나날이 성장해갔다.
“교회에서 제일 십일조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었죠. 당시에 어려운 시골교회에 봉고차나 피아노도 많이 사드렸어요.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제가 교만했던 것 같아요. 언제든지 돈을 벌면 사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죠. 학원을 네 개나 경영하면서 아내와 얼굴 볼 시간도 없었고요. 돈 열심히 벌어서 나중에 나이 55세 되면 시골에 가서 장로로 교회를 열심히 섬기며 잘 살자는 약속을 아내와 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됐다. 모든 재산이 아내의 이름으로 등기되어 있었고 두 아이는 미성년자라서 처갓집에 후견인을 만들어 동의를 받아야 그가 상속을 받을 수 있었다.
아내를 화장한 뼛가루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옹기를 납골당에 넣고 돌아서자마자 처가에서 돈 이야기가 나왔다. 갈등도 심했고 실망도 컸다. 그의 재산 형성에 전혀 상관이 없었던 이들이지만 원하는 대로 다 주었다. 물질의 덧없음을 절감케 됐다. 학원도 정리했다.
“교회에만 전념하게 됐죠. 섬기던 교회 목사님이 여수에 개척을 해서 거기 가서 2년 반을 섬겼어요. 그 과정에서 믿음이 자라게 됐고, 목회자의 소명을 받아 신대원에 입학해서 목회를 시작한 거죠. 2학년 때에 개척을 했습니다. 그때 평생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겠다고 서원을 했어요. 저는 그래도 남은 자산이 좀 있으니까요.”
지난 추석엔 시골 교회 장로님 과수원을 찾아가 사과를 사서 교인들에게 한 상자씩 나눠줬다. 명절 때면 목사님께 뭘 대접하기도 하는 ‘풍습’에 역발상으로 접근했다. 어려운 시골교회도 돕고 교우들에게 선물도 주고, 일석이조의 기쁨이다.
당구장서 예배의 삶을 산다
“예수님도 섬김을 받으려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잖아요. 이중직 논란이 있는데요, 성도들은 열심히 일해서 교회 와서 섬기는데, 목사가 설교 같은 사역을 너무 크게만 볼게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같은 의식구조로는 한국교회도 쇠퇴해가는 유럽교회처럼 될 겁니다.”
지금 당구장은 임대가 잘 안돼서 그 동안 관리비만 냈던 자리다. 작년 연말에 누가 당구장을 하겠다고 했다가 타산이 안 맞았는지 포기했는데, 이왕 관리비만 내느니 아예 당구장을 직접 경영하자고 나선 것이다.
“제가 78학번인데, 당시 학교 휴교령 때문에 많이 쉬었거든요. 그때 당구장에서 쌓은 실력이 300점인데, 이제야 그거를 써먹네요. 건전하고 깨끗한 당구클럽을 경영하면서 새로운 레저문화를 정착시키고 싶었어요. 또 남는 수익금이 생기면 교회도 운영하고 농촌 교회들도 돕고 싶었고요.”
얼마 전엔 당구장으로 찾아온 후배 찬양사역자와 함께 농촌교회를 방문해서 찬양 집회를 열어드리고 동행한 간호사들이 의료적 혜택도 드리는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또 시골 농작물을 가져와 팔아드리는 일도 하고 있다. 그는 현재 신대원 때 소개로 만난 전도사님과 재혼해서 교회를 함께 섬기고 있다.
“저는 당구장도 예배의 장소라고 생각해요. 손님들과 좀 친해지면 제가 목사라고 밝힙니다. 그러면 상담도 하게 돼요. 얼마 전엔 아내와 사별한 후 우울증 위험에 있는 박사님을 여기서 만나 상담해드린 적도 있어요. 이런 저런 일들이 알려지면서 이번에 대전 기네스 상을 받은 것 같아요. 이게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성원 기자 jos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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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총리 “복잡했던 브렉시트 이슈… 신앙이 내 일의 바탕
▲테레사 메이 수상.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가 최근 자신의 신앙과 가정에 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언급해 화제가 되고 있다고 영국 크리스천투데이가 보도했다.
영국성공회 목사의 딸로 자란 그녀는 먼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관련된 이슈가 가장 도전이 되고 복잡했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메이 총리는 “이는 '스스로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느냐'가 아니라 '옳은 일을 하고 있느냐'에 관한 문제였다”면서 “나는 영국성공회 신앙을 가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신앙은 내가 하는 일의 바탕이 된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는 “'내가 맘 먹은대로 반드시 해내겠다'가 아니라, 직감을 갖고 충분히 생각하고, 증거를 살피고, 논의를 통해 일해나갈 것"이라며 "왜냐하면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 또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모든 준비를 마쳤고, 옳은 일을 한다고 믿는다면, 반드시 그 일을 해야한다. 때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메이 총리는 그녀의 아버지가 사제직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나이에도 의무감을 가질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섬김의 마음을 배웠다. 아버지는 외부 심방을 다니셨다. 때로는 아버지와 함께 참석을 했는데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 가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번은 크리스마스 때, 마을의 한 부부가 사고를 당해 가족을 잃었다. 크리스마스 예배를 마친 아버지가 그분들의 집을 방문해 선물을 전해주었다. 그 때가 오전 9시였는데 그 부부를 심방하는 것이 아버지의 사역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 그날 저녁 6시까지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속한 보수당에 대한 비난을 일축하면서 “우리가 모든 이들을 먹일 수 있는 경제를 가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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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손으로 쓴 성경 유산으로 물려주렵니다”
성경 쓰기운동본부 ‘공모전’ 가보니…
성경쓰기운동본부(본부장 황연호 목사)는 성서주일(12월 둘째주)을 앞둔 5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성경쓰기운동 26주년 기념 대성회 및 2016 성경쓰기 공모전’을 실시했다(사진).
공모전에는 성도 130여명의 성경 완필작을 출품했다. 이 가운데 변욱섭(69·서울안창교회) 집사는 컴퓨터로 성경을 필사해 눈길을 끌었다. 변 집사는 좋은 시력이 아니고 타수도 느렸기 때문에 한 자 한 자 ‘독수리 타법’으로 쳐서 1년간 성경을 옮겨 적었다. 변 집사는 “천식을 앓았는데 성경을 쓰는 동안 아프지 않았다. 필사한 성경을 시집가는 딸에게 선물로 주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대전광명교회 박우봉(70) 장로는 23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경을 썼다. 보통 볼펜이나 만년필로 필사하는데, 박 장로는 가는 붓으로 성경을 썼다. 훨씬 시간과 정성이 더 들었던 셈이다. 손자·손녀에게 필사 성경을 신앙유산으로 물려줬을 때 가장 기뻤다고 했다.
정규환(69) 장로는 필사성경을 출석 중인 평택성곡감리교회에 봉헌했다.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관둔 어려움을 성경을 쓰며 극복했다고 한다. 그는 “성경 쓰는 일에 정년이 없지 않느냐”면서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성경을 쓸 것”이라고 간증했다.
태국 컨깬 장로교회 교인 40여명도 태국어 성경 필사에 참여했다. 이스라엘성지순례 여행권이 주어지는 대상수상자는 미국 오하이오주 박진영(87) 권사가 추첨으로 선정됐다. 1987년 서울동인교회에서 시작한 성경쓰기운동은 그동안 국내외 약 3만 5000교회에서 교인 35만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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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의원 “최순실 게이트 중심에 기독교 있다” 막말
5일 열린 '서울인권콘퍼런스'에서 언급, 발언 근거는 제시 못해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서울시청에서 개최된 ‘2016 서울 인권 콘퍼런스’에서 토론자로 나와 “현재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중심에 보수 기독교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중심에 기독교가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제기했다.
표 의원측은 이 같은 주장에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표 의원은 5일 서울시청에서 개최된 ‘2016 서울 인권 콘퍼런스’에서 토론자로 나와 “현재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중심에 보수 기독교계가 있다”면서 “정치와 종교는 명확한 실체규명과 정리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은 신앙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차별금지법안을 강하게 저지했던 기독교를 비판하는 과정에 나왔다.
표 의원은 “올해 총선에서 주로 야당 후보들에 대한 ‘당신이 동성애를 지지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공격, 공개적인 십자군 밟기식의 공격들이 있었다”면서 “이것은 차별금지법 입법으로 집약된다”고 말했다.
이어 “차별금지법 국회에서 실패한 이유는 보수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반대 로비와 압력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기독교계를 상대로 보여줬던 자세가 진심이 아니었음을 암시하는 발언도 했다.
당시 선거를 앞두고 표 의원은 “성경에서 금지한 동성애가 이 사회에 확산되는 것을 저도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표 의원은 이날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저를 포함해 비겁하다”면서 “문제가 없고 위기가 아닐 때는 진보적인 목소리를 낸다. 동성애자의 인권보호에 함께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선거철이 다가오거나 눈앞에 위협과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잃을 위기에 처하면 주저한다. 때로는 변절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도 총선에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드려 동성애자 여러분께서 상당한 실망을 한 것이 여전히 제 마음에 무겁게 남아있다”면서 “실제로 돌이켜보면 그 총선과정에서 타협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선거에서) 떨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고 회고했다.
표 의원실 관계자는 이 같은 발언에 대해 “표 의원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근거 없이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최순실 게이트의 중심에 기독교가 있다는 발언은 우리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 때 표 의원이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는다’고 딱 부러지게 말했다. 본인이 ‘노(NO)’라고 했다”면서 “표 의원이 소수자, 약자 보호차원에서 그런 말을 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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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서 나무 파는 할아버지 사연에 네티즌 ‘울컥’
▲Jessica Pittman 페이스북 캡처
아내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뒤에도 밀린 병원비를 내기 위해 나무를 베어 파는 할아버지의 사연이 많은 네티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지난달 30일 한 페이스북 보도매체는 제시카 피트만이란 페이스북 사용자의 글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글은 외신에서도 화제가 된 미국 미시시피 주에 사는 케네스 스미스(80)의 사연입니다.
▲Jessica Pittman 페이스북 캡처
제시카 피트만은 지난해 고향인 미국 미시시피 주 걸프포트 시에서 운전을 하던 중 길모퉁이에서 노부부를 발견했습니다. 혹시 도울 일이 있을까 싶어 제시카는 차를 세우고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케네스 스미스와 헬렌 스미스 부부는 폐암을 진단받은 헬렌의 치료비로 노후자금까지 모두 써 길에서 나무까지 팔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제시카는 부부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 뒤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올해도 같은 자리에서 여전히 나무를 팔고 있는 케네스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헬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케네스로부터 이유를 들은 제시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Jessica Pittman 페이스북 캡처
얼마 전 헬렌이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헬렌은 떠나고 없지만 갚지 못한 치료비 때문에 여전히 케네스는 나무를 팔아야 했습니다. 손도끼로 나무를 잘라 가정용 벽난로에 쓸 만한 땔감을 만들어 케네스는 지나가는 차들에게 팔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제시카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제시카는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케네스와 헬렌의 사연을 알리고 모금 사이트를 열었습니다. 처음 목표액은 7000만원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온정을 보태며 1억2000만원이 모였습니다. 모금된 돈으로 케네스는 밀린 병원비를 다 갚을 수 있게 됐습니다.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할아버지의 순애보가 마음을 울린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란다"며 감동을 나눴습니다.
오늘날 목사가 교회의 주인처럼 온갖 권력을 독점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사람인들 ‘목사 없는 교회’는 감히 상상조차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에서 밝혔듯이 ‘목사’라는 직분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성경에 기록된 ‘원형적인’ 직분이 아니다.
신약성경에 18번에 걸쳐 예외 없이 ‘목자’로 번역했던 ‘포이멘’이 유일하게 에베소서에서만 ‘목사’로 옮겼을 뿐이다. 이를테면 개역성경에 등장하는 목사라는 이름은 헬라어 포이멘(poimen)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잘못 옮긴 것이다.
한글성경만의 오역이 아니다. 예수께서 스스로 ‘선한 목자’(good sheperd)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영어 성경에서도 포이멘을 빠짐없이 ‘목자’(sheperd)로 번역했지만 유독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만 ‘목사’(pastor)로 번역했다. 이는 목사가 처음부터 있었던 성경의 원형적인 직분이 아니라는 뚜렷한 반증이다.
목사는 종교개혁 이후에 중세 가톨릭의 사제주의에 맞서 개신교에서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새로 만든 직분으로, 목사라는 직분을 개신교의 새로운 성직으로 만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포이멘’을 목사(pastor)로 변개한 것이다.
사역자의 직분은 시대에 따라, 그리고 종교·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세워질 수 있지만 시간과 공간의 차이에 상관없이 사역자에게 반드시 적용돼야 하는 일반적인 원칙이 있다. 이를테면 목사를 비롯한 교회의 모든 사역자는 신약성경이 명시적·암시적으로 제시하는 사역자의 규범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목사’는 성경적인 관점에서 정당한 직분인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목사를 ‘가르치는’ 직분으로 정의한다면 현대 교회에서 목사라는 직분은 마땅히 성경적인 직분에 해당한다. 성경은 ‘가르치기를 잘 하는 자’를 사역자의 기준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목사라는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르치는 장로’로서 목사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며 ‘반성경적인 직분’으로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성경적인 직분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데는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다. 단지 처음부터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사역자로서 오늘날 목사의 역할이 성경의 가르침에 좀처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에서 새로운 ‘교회권력자’로 대두된 목사가 과연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역자의 역할’, 다시 말해 제자와 종의 사명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분명히 가리는 것이 목사가 성경적인 직분인가를 가름하는 뚜렷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약성경은 예수 시대의 ‘새 부대’에 합당한 사역자의 공통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성적인 논리 이전에 성경에 근거해서 목사를 비롯한 오늘날 교회의 사역자들의 역할이 성경에서 제시하는 규범에 합당한지 가리는 것이 우선이 돼야 한다.
목사를 비롯한 사역자의 역할에 대한 성경의 지침은 분명하다. 예수와 더불어 스승과 제자라는 사제관계와 더불어 주인과 종의 주종관계에서 살펴볼 때, 교회의 사역자로서 목사는 예수의 계명을 준행해야 하는 ‘제자’인 동시에‘종’이다. 요컨대 목사는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종의 직분을 맡은 ‘낮은 자’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스승, 또는 주라고 부른다.”라고 하시며,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제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고 하셨다. 스승이며 주인인 예수가 ‘섬기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면,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마땅히 ‘섬기는 종’이 돼야 한다는 말씀이 아닌가.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주의 종이며 제자인 사역자는 어떤 경우에도 교회의 주인일 수 없으며, 교회를 지배하는 권력자가 될 수 없다. ‘높은 자’를 자처한다면 목사는 결코 성경적인 직분일 수 없다.
세상에 속한 ‘집권자’는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권세를 부리’지만, 교회에 속한 주의 종은 모름지기 주인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 ‘섬기는 자’가 돼야 되기 때문이다. ‘온유와 겸손’을 강조하신 예수는, ‘제자도’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크고 높은’ 자가 되기 원했던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종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이방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이방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 26)
본문에서 말하는 ‘크고자 하는 자’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가 정녕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자들 가운데 진정 ‘큰 자’, 이를테면 주의 뜻에 가장 합당한 자는 주께 온전히 순종하는 자이며, 온전히 순종하는 자는 예수께서 보이신 겸손의 본을 오롯이 따르는 자이다.
따라서 제자를 비롯해서 모든 사역자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교만한 자의 탐심과 정욕을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겸손한 자가 돼야 한다. 예수께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간으로서 ‘섬김의 본’을 보이기 위함이다. “나는 너희에게 본을 보이려 하노라”
전지전능의 초월적인 신성에 눈이 가려져 예수의 ‘특별한 신성’을 보지 못한다면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이유를 절대로 깨닫지 못한다.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어 주시면서 ‘종’으로서 섬김의 본을 보이셨다. 예수로부터 섬김의 본을 받은 제자들은 마땅히 섬기는 자가 돼야 한다.
목사가 성경적인 직분이 아니라고 거세게 비난하는 이유는, 교회권력에 탐닉하는 목사들이 ‘종이 되라’는 예수의 계명을 어기기 때문이며 예수의 명령에 따라 ‘섬기는 자’가 아니라 자기 욕망에 따라 섬김을 받는 자로 교회에 왕처럼 군림하기 때문이다.
결국 목사라는 직분에 대한 날선 비난은 오늘날 한국교회 목사들이 섬김의 본을 보이지 못하고 교만한 자의 자리에 섰기 때문에 일어난 자업자득의 당연한 결과이다. 그들은 예수의 계명을 지키기는커녕 예수의 몸 된 교회를 제멋대로 통치하며 마치 세상의 제왕처럼 교인들을 지배하기 때문에 목사가 반성경적인 직분이라는 참담한 비난을 듣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목사는 교회의 주인도, 지배자도, 권력자도 아니다. 예수께서 그랬듯이 ‘섬기는’ 사역자로서 목사는 생명을 바쳐 교회를 섬기는 종이 돼야 한다. 그리고 충성스러운 종에게 요구되는 것은 재물이나 권력, 명예를 위한 탐욕과 교만이 아니라 섬김을 위한 희생과 헌신이며 겸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목사를 성경적인 직분이라고 당당히 말하려면 목사는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자신의 언행이나 신앙이 주의 종이며 제자로서 거리낌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단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목사가 성경적인 직분이 아니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겸손한 종의 자세를 저버린 목사에게 ‘반성경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당한 비판이다.
개신교의 목사, 특히 메가 처치의 ‘배부른’ 목사들이 성경에서 벗어난 사이비 직분이라고 호되게 비난을 받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다시 말하지만, 목사가 섬기는 종의 자세를 버리고 섬김을 받는 주인인 양 행세하며, 제반 권력을 독점한 채 교회를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목사는 종이다. 종은 결코 주인이 맡긴 ‘양’의 털을 벗겨 자기 몸을 따뜻하게 할 수도, 양의 살을 찢어 제 배를 채울 수 없는 ‘낮은’ 신분이다. 교회의 영적 질서를 주장하면서 섣불리 목사권력을 정당화하지 말라. 목사는 교회의 권력자가 아니며 교회는 속된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과 분명히 구별돼야 한다.
주인이 주인의 자리에, 그리고 종이 종의 자리에 있는 것이 ‘주의 몸 된’ 교회를 바로 세우는 진정한 질서다. 그렇다면 목사의 자리는 어디가 돼야 하며, 목사가 제자리에 바로 서기 위해서 교회는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가? 요컨대 목사가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역할을 다하면서 주의 몸 되신 교회인 성도를 섬기는 것이 교회개혁의 근본이다.
강만원 mw1440@naver.com
[미주뉴스앤조이(LA)=김동문] 최태민 교주의 무덤의 존재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채널 A와 동아일보의 보도 이후, 다른 매체들도 현장 방문 보도를 이어가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 과장된 보도와 왜곡된 해석도 번져가고 있다. 최태민 교주 묘역 관련한 이야기가 일간베스트나 다른 공간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최태민 교주의 출생 비밀이 밝혀지다?
묘지의 비석에는 최 교주의 출생 사망 관련 기록이 새겨져 있다. 1918년 음력 11월 5일 출생, 1994년 양력 5월 1일 사망이다. 음력을 양력으로 바꾸면 1918년 12월 8일(일)이다. 주민등록상의 생일보다 6년 7개월 늦은 것이다. 일부에 알려졌던 8월 25일 보다도 6년 6개월 늦다. (일부 매체는 양력, 음력을 구분하지 않고 양력으로 착각한 경우도 있다.) 최 교주는 그동안 자신의 나이를 6살이나 속여 온 것으로 풀 수 있다. 호적상 생일과 실제 생일이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이 생일 논란 관련, 최순실 씨의 강남 A교회 주보에 실린 최순실 씨의 기도제목 내용이 의문을 푸는데 도움을 준다.
묘비 뒷면에는 최순실 4자매 가족들 이름과 시편 23편 1-3절이 적혀있다. 이를 두고 비난의 목소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묘비를 세우는 것은 죽은 이가 아니라 남은 가족들의 몫이다. 이 묘비는 최 교주 사망 직후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최순실 자매의 생모 임선이 씨가 2003년 2월 6일 사망하고 난 이후에 합장하고, 그 이후에 지금과 같은 묘지 정비와 묘비와 상석, 석물이 갖춰진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2003년 2월9일치 '교우 소식'에는 “2월6일 최순실 성도 모친 임선이 성도 소천”이라는 부음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임선이 씨가 사망 당시에 강남 B교회에 출석 중이었고, 교회 당사자들로부터 확인할 수 없었지만, 기독교식으로 장례가 치러졌을 것이다.
최순실 씨의 언니 최순득 씨 가정도 교회 출석을 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2000년대 초반 장남 장승호(39)씨의 결혼식을 강남 역삼동 순복음강남교회에서 치룬 것은 물론, 며느리와 손녀의 이름이 전형적인 기독교식인 것에서도 이들 가정이 교회 생활을 한 것은 분명하다. 또한 2006년 5월 하순 최순득 씨의 장녀 장시호(37) 씨의 명동성당에서의 결혼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하객으로 참여했던 것에서도 기독교 활동의 경력을 두드러진다.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2003년 이후에 만들어진 현재의 묘비 등에 시편 구절이 적혀있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것을 최 교주의 의지나 의도로 읽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토지 소유자는 누구인가
최태민 교주 가족묘역이 포함된 전체 임야 면적은 6576㎡이다. 김 회장의 친지인 축산업자 김모(68)씨 소유였던 이 땅을 2003년 김 전 회장의 부인 하 모(61)씨가 2612㎡(전체의 40%), 동서 박 모(52)씨가 1982㎡(전체의 30%)를 가등기했다. 최순영(69)씨와 최순실씨도 각각 991㎡ 도합 1982㎡(전체의 30%)의 권리를 가등기했다. 임야의 70%는 김찬경(60)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 측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최순영, 순득, 순실, 순천 씨 4자매는 원소유자 김씨를 상대로 2억5000만원의 근저당을 설정해두고 있다, 2012년 저축은행 비리로 김찬중 회장이 구속된 후인 2013년 4월 하씨의 임야 지분은 국가가 압류한 상태이다.
분묘 관련 위법 사실은 분명, 호화분묘는 글쎄?
최태민 교주의 묘지 위치 관련 최초로 보도한 매체는 채널A와 동아일보이다. “채널A와 동아일보 취재 결과 최 씨의 묘는 약 2000m²(약 600평)의 규모로 다섯 번째 부인 임선이 씨와 합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최태민 씨의 묘 크기는 김영삼 대통령의 묘 264m²와 비교하면 7.5배에 달한다.”고 적고 있다.
최태민 교주 가족묘역(왼쪽 위), 김대중 대통령 묘역(오른쪽 위), 박정희 대통령 묘역(왼쪽 아래), D여대 이사장 가족 묘역(오른쪽 아래)
최태민 교주 가족묘역(왼쪽 위), 김대중 대통령 묘역(오른쪽 위), 박정희 대통령 묘역(왼쪽 아래), D여대 이사장 가족 묘역(오른쪽 아래)
그러나 이런 보도는 과장되었다. 용인시에 따르면, 분묘를 포함한 묘역의 규모는 720m² 정도이다.(매체마다 600m²부터 800m², 2000m² 등 다양했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2012.2.17)”에 따라 대통령 묘역은 264㎡이다. 외형상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묘역의 2.7배에 해당한다. 그러나 위 이미지(다음지도 동일 비율 비교)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다. 이것은 호화 묘소 운운한 언론 매체의 선정성이 엿보인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규정된 가족묘 설치 기준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다. 현재의 시행령에 따르면 가족묘지의 면적은 100㎡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묘역 조성 시점의 법률이나 시행령을 기준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1994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가족묘의 경우 묘역의 규모는 500㎡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점차적으로 가족묘나 문중묘의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시행령'[시행 1992.12.15.]에서는 가족묘역의 규모를 500㎡ 이하로, 종중, 문중묘역은 2,000㎡ 이하로 규정했으나,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시행 2003.1.1.]에서는 가족묘역의 규모는 100㎡ 이하로, 종중, 문중묘역은 1,000㎡ 이하로 축소시켰다.
그러나 분묘 자체와 시설물에 대한 규정은 큰 변화가 없다. 봉분의 높이는 지면으로부터 1m 이하여야 하고, 분묘 주변에 설치할 수 있는 시설물로는 2미터 이하의 비석 1개, 상석 1개, 인물상이 아닌 2미터 이하의 석물 1개 또는 1쌍을 설치할 수 있다.
이런 규정을 바탕으로 최태민 교주의 가족 묘역을 짚어볼 때, 다소간에 규정 위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호화 묘역 등으로 몰고 가면서 사실 관계에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박대통령의 일관된 비현실적 현실 이해는 변함없다. 박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을 갖고 있는 목소리는 꺼지지 않은 불씨로 보인다. 박대통령 스스로 그런 민심을 자극하려는 듯한 담화를 이어서 발표했다.
"저로서는 좀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1차 담화문 중)
"국가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입니다. 저의 큰 책임을 가슴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 (2차 담화문 중)
현실 오독박 대통령의 3차 담화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입니다." (3차 담화문 중)
이런 와중에 한국사회 일각에서 강화되는 최태민 교주나 최순실 일가에 대한 악마화와 마녀사냥의 이면에는, 최순실 등에 의해 피해를 입은 불쌍한 대통령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는 듯하다. 최태민 묘역 관련한 기사도 선정적이기 그지없었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 정국에서 무리한 억측이나 과장된 해석은 진실의 가치를 훼손하곤 한다. 그래서 사실과 진실 사이에 균형을 잡아가야할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 정국에서 박근혜 대통령 자신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는 이슈들은, 주의를 기울여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