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묵상하는 사순절… ‘재의 수요일’이란 /상처를 부르는 잘못된 언어표현들 2017-03-03 10:01:50 read : 4125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1일부터 고난 묵상하는 사순절… ‘재의 수요일’이란
부활절인 4월 16일까지 주일 제외한 40일
'재의 수요일'인 3월 1일부터 오는 4월 16일 부활절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 간이 '사순절(Lent)'이다.
사순절(四旬節)이라는 말은 본래 '40일(라틴어로 quadragesima)'을 의미한다. 초대교회에서는 부활절 새벽에 세례가 베풀어졌는데, 세례 예비자들이 '회개'를 통해 세례를 준비하던 기간이 40일이었다. 이미 세례를 받은 신자들도 자신들이 받은 세례를 되돌아보고 자신을 갱신하는 일에 힘썼던 기간이다.
'40일'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40일을 상징하기도 한다. 성도들은 사순절 기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하신 예수님의 수난에 초점을 맞추고, 예수님을 집중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의 필요를 구하기보다는 예수님이 가신 희생의 길을 묵상하며 그 분께서 가신 길을 우리도 따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재의 수요일
사순절의 첫날은 항상 수요일로, 교회는 이를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또는 '참회의 수요일'이라 부른다. 이렇게 불린 것은 이날 예배에서 재(Ash)를 사용했기 때문인데, 전통적으로 재의 수요일 예배에서는 목사가 성도들의 머리 혹은 이마에 물에 적신 재를 갖고 십자 성호를 그으면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임을 기억하라"는 순서를 가져왔다.
재의 수요일에는 인간의 죄와 유한성, 인생의 무상함을 분명히 인식하고 기억해 하나님의 용서와 도우심을 구하면서 살아갈 것을 깨우친다. '재'는 참회와 회개, 유한성, 정화와 순수, 농경문화에서는 새로운 생명과 성장을 위한 밑거름 등을 의미한다.
특히 재의 예식에는 1년 전 종려주일에 사용했던 가지를 태워 만드는데, 1년 전부터 이를 준비하면서 우리 자신을 온전히 태우는 헌신을 통해 온전한 제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사순절의 시작, 주제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최초의 교회에서는 부활절 전 하루나 이틀을 금식함으로써 부활주일을 준비했으나, 곧 부활절 전 한 주간을 통째로 거룩하게 지키는 관습이 생겨났다. 그 후 한 주간이 3주간으로 길어졌고, 325년 니케아 공의회 이후 최종적으로 6주간 40일로 정해졌다.
특히 사순절의 마지막 한 주간은 부활절 준비의 절정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인데, 서방교회에서는 이를 '성 주간(Holy Week)', 동방교회에서는 '성 대주간(Great Week)'이라 불렀다.
사순절의 주제는 예수님의 고난과 이를 대하는 성도의 참회를 뚜렷하게 하는 것들로 채워진다. 전통적으로 사순절 주제는 첫째 주에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유혹을 생각하고, 둘째 주는 죄를 물리치라는 명령을 생각한다. 셋째 주는 회개로의 요청을 묵상하고, 넷째 주는 치유와 회심을 생각한다. 넷째 주는 '장미 주일(Rose Sunday)'이라고도 불리는데, 주일의 강조점이 죄인의 회개에서 그리스도의 치유 능력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다섯째 주일은 종려주일로 부활절을 미리 맛보는 주일이다.
사순절의 영성
1세기 말 기록된 '디다케(Didache)' 문서는 세례 예비자들이 초대교회에서 사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보여준다. "세례를 베풀기 전 세례베풀 자와 받을 자, 할 수 있는 다른 이들도 금식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다른 이들'은 신앙공동체 전체를 뜻한다. 초대교회는 이처럼 세례받는 사람들과 함께 전체 공동체가 금식하면서 각자가 받은 세례를 기억하고 그때 했던 신앙의 다짐들을 다시 확인하는 언약 갱신의 기회로 사순절을 활용했다.
사순절의 영성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세례의 영성'과 '금식과 기도, 자선의 영성'이다. 세례의 영성은 사순절 영성의 핵심으로, 회개와 개종에 기초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음을 의미한다. 또 금식의 올바른 목적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립하고 개선하며 변혁시키는 것이다.
금식과 기도, 구제는 음식과 시간, 돈 등 우리 삶을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스스로 포기하고 더 본질적인 무엇인가를 취하게 된다. 오늘날 범람하는 각종 매체에서 자신을 떼어놓는 '미디어 금식'도 이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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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부르는 잘못된 언어표현들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시대마다, 지역마다, 오랜 관습에 의해 내려온 언어 표현들이 있다. 어떤 것들은 속담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전혀 다른 의미로 회자되기도 한다.
그 중에 우리가 뜻을 제대로 모르고 사용하거나, 잘못된 해석을 해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인간관계에 금이 가게 하는 표현들이 많다. 그 표현들은 너무나 흔하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속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타인을 해치는 독이 된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아무 생각없이 함부로 말하여 상처주는 행위를 이제는 반드시 멈추어야 한다.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한다.
-넌 너무 여려
눈물이 많고 상처를 잘 받는 사람에게 '너는 너무 여려서 큰일이야'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마음이 여려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가겠냐는 투의 빈정거림이 담겨있다. 여리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마음이 착하다, 마음이 따뜻하다, 마음이 부드럽다, 라고 표현할 수 있다. 마음이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 눈물이 많고 상처를 더 깊게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쁜 것인가.
여리다는 말이 부정적이고 비난투의 의미가 표현되는 것은 상처를 잘 받는 그들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나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여리다는 말의 반대는 강하다, 세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하고 센 것 역시 나쁜 것은 아니다. 강하고 센 것이 타인에게 가해의 이미지로 다가올 때 나쁜 것이다.
여리다는 말 대신에 "너는 너무 독해. 너무 강해"라고 말하면 기분이 좋을까. 그것 역시 좋지 않을 것이다. 여리다, 강하다, 그 두가지의 표현 어느 것도 비난할 수 없다. 그것은 그저 각 사람의 특성일 뿐이다.
서로 취약한 부분이 있을 뿐 어떤 쪽도 나쁘기만 하거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여리다는 말을 부디, 마음이 따뜻하고 착한 사람을 빈정거리기 위해 쓰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은 강하고 센 성격의 사람을 선호하는가?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반대 성향을 디스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또한 센 쪽이 여린 쪽을 주로 상처주게 되는데 상처를 받는 쪽이 특별히 더 나쁜 것은 아니다. 부디 어느 쪽도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길 바란다.
-넌 고집이 세
고집이 센 것과 소신 있는 행동은 보기에 따라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집이 세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에도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며 타인의 충고나 조언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신념이 강하거나 소신이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올바른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화가 나면 "너는 정말 고집이 세구나"라고 비난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사람마다 자신의 신념과 생각이 다르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고 고집이 세다며 비난하는 것은 상처를 일부러 주는 행위가 된다.
그러므로 함부로 고집이 세다는 표현을 하면 안 된다. 범죄를 저지른 후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고집이 센 사람인 것이다. 나쁜 짓을 서슴치 않고도 절대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계속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고집이 센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고집이 세다고 말하라.
그러나 그런 범죄자가 아니라면 섣불리 고집이 세다고 빈정거리지 말아야 한다. 특히 자신의 어린 자녀에게 고집이 세다며 폄하하거나 모욕을 주면 아이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난 A형이라 소심해
혈액형으로 성격을 규정하고 표현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범하는 잘못된 표현이다. 혈액형별 성격을 확고하게 믿는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상처가 되면 "O형 같은 A형"이라는 표현이 나왔을까. 단 네 가지의 혈액형으로 수많은 성격을 어떻게 가름할 수 있겠는가.
네 가지의 혈액형 특징은 사실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섞여 있다. 혈액형이 맞는지에 대한 실험으로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상황에 따라 심리상태에 따라 소심한 A형처럼 보였다가 활발한 B형처럼 보이는 것 뿐이다.
나는 누구보다 말을 잘 하고 대담한 A형 혈액형의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또한 아주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은 O형도 많이 알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있는 일반적인 특성을 한 가지만 끌어내면 혈액형별 성격 특성이 아주 비슷하게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제발 혈액형으로 성격을 가늠하지 말자. 사람의 성격과 기질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며 매우 복잡하며 장점과 단점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 사람의 뇌리에 각인되어 견고한 선입견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에 쉽게 변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우선 혈액형을 물어보는 사람을 경계하고 무지한 태도라는 것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넌 너무 내성적이라 큰일이야.
많은 엄마들이 조용한 성격의 자녀들에게 하는 말이다. 내성적인 성격이 뭐가 문제인가? 내성적이면 손해 본다는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엄마들은 내성적인 자신의 아이를 성격개조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해병대캠프에 보내서 더 큰 문제를 부르기도 한다.
내성적인 성격의 반대는 외향적이다. 둘 다 장점과 단점이 있다. 내성적인 것을 소심한 것과 동의어로 사용하는 것은 반드시 고쳐야할 인식이다. 내성적인 사람이 반드시 소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외향적인 사람도 소심해진다.
내성적인 성향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머리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후에 말을 하기 때문에 말의 실수가 적고 훨씬 더 능률적으로 공부나 일을 할 수 있고 성과를 더 낼 수 있는 성향이다. 외향적인 성향은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하기 때문에 내성적인 사람보다 말의 실수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 물론 생각과 행동을 동시에 하기 때문에 뭐든 빠르게 진행하며, 낯선 사람에게도 쉽게 다가가 사교적이라고 보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내성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과 친해지려면 상대를 신중하게 파악하기 위한 시간이 걸린다. 외향적인 사람에게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내성적인 사람이 느리고 굼뜨고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약 7 초 정도만 기다려 주면 된다. 그러면 발표도 잘 하고 논리적으로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바로 내성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내성적인 것을 자꾸만 나쁘게 비난하면 자꾸만 움츠러들고 주눅이 들어서 소심해지게 된다. 소심해지는 것은 성격과 상관이 없다. 외향적인 아이와 내성적인 아이 모두에게 매일 모욕감을 주는 말을 한다면 틀림없이 둘 다 소심해진다. 어떤 사람이든 상처를 계속 받으면 소심해진다. 소심해지는 것은 대범하고 자신감있는 모습을 잃어버리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결코 성격이 아니다.
내성적인 것이 나쁜 것이 아님을 꼭 기억하자. 오히려 장점이 훨씬 많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최근 한 드라마의 제목이 "내성적인 보스"란다. 나는 그 제목을 "소심한 보스"라고 바로잡고 싶다. 그런 드라마를 본다면 소심하고 주눅들어 있는 남자 주인공을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더욱 오해하게 될 것이다.
소심한 것은 마음 속 상처가 쌓여서 생긴 증상 같은 것이다. 상처를 씻고 원래의 자기자신을 찾으면 내성적인 것이 열등한 성격이 아니며 소심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난 다혈질성격이라 욱하는 거야.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자기 합리화를 하기 위해 흔히 쓰는 언어습관이다. "나는 욱하는 성격이지만 뒤끝은 없어"라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마구 한다. 세상에 화를 잘 내는 성격은 없다. 화를 잘 내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미성숙한 상태이기 때문에, 화를 잘 내는 못난 자기자신을 조금이라도 합리화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다. 마음 속 밑바닥에 수많은 상처들이 모여 불안과 분노를 짚불처럼 지펴올리는데, 이것이 툭하면 화를 내는 습관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아주 외향적이고 화통한 성격이라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화를 내고 나면 자신은 조금 시원하겠지만, 곁에 있던 사람들은 분노의 파편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다. 자신은 시원해져서 뒤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주위사람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피투성이가 되어 신음하며 뒤끝 작렬 상태가 된다.
차라리 그런 말로 합리화하지 말고 "난 정말 치유해야 할 상처가 많은가봐. 난 아직 화를 잘 내는 어린애 같아"라고 솔직해지는 편이 더 훌륭해 보일 것이다.
-넌 왜 이렇게 예민하니
예민하다는 것이 나쁜 의미로 쓰이고 있다. 까탈스럽고 불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로 쓰인다. 이런 잘못된 의미를 바로잡아야 한다. 예민해야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아니 예민하지 않으면 무엇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술가나 세밀한 연구직의 사람들이 주로 그럴 것이다. 그들이 예민하지 않았다면 훌륭한 예술 작품도 과학 발전도 없었을 것이다.
예민한 것이 나쁜 것이라면 무뎌져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성격이 무디다면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장점이 있지만 타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쉽게 무심해지는 단점도 크다.
자신의 심기가 불편해지면 상대를 쉽게 공격하려는 연약한 인간의 심리가, 뭐든 무의식적으로 나쁘게 해석하여 공격의 빌미로 삼게 되는 것이다. 예민한 사람들이 이 세계를 발전시켰으며 아름답게 만들었다. 예민한 사람들의 헌신으로 세상에는 아름다운 음악과 미술과 문학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예민하다는 말이 칭찬의 말로 쓰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넌 너무 착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착한 남자" "착한 식당" "착한 가격" 등의 표현이 정착하게 되었다. 착하다는 말은 분명히 긍정적인 말이다. 여자들이 흔히 수다를 떨며 하는 말로 "뭐니 뭐니 해도 착한 남자가 최고야. 아무리 돈 많아도 성질이 더러우면 꽝이야. 착한 게 최고"라고 말한다. 카페 한 쪽에서 커피를 마시다보면 듣게 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너무 착하다는 말이 자기 주관이 없어서 남들에게 휘둘리는 유약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또한 "넌 착하니까 엄마 말 잘 들을 거지?" 라는 식으로 어린아이를 조종하기 위해 엄마가 무의식적으로 이 말을 한다. 아이도 무의식적으로 '나는 착해야 하는구나....착하지 않으면 엄마가 나를 싫어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억지로 자기 생각을 억누르고 착한 아이가 되려고 한다.
남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어 인간관계에서 늘 긴장하고 할 말도 못하게 되고 거절도 할 수 없는 유약한 사람이 된 자신을 향해 '난 너무 착해서 힘들어'라고 생각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늘 들어온 말이기 때문이다.
착하다는 말로 남을 조종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어느새 착하다는 표현은 듣기 싫은 말이 되었다. 착한 사람이라는 말은 선하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착한 것이 나쁜 의미라면 악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모두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고 오히려 위로해주고 도와주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넌 왜 이렇게 감정적이야?
감정적이라는 말이 나쁜 뜻으로 오해받고 있다. 사람의 성격 척도 중 감성형과 이성형이 있다. 두 가지 모두 나쁜 것이 아니다. 장점과 보완점이 있을 뿐이다. 감정적으로 되는 것은 두 성향 모두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감정을 상하게 되면 아픈 감정이 살아나고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이 문제이지 감정을 잘 느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감정적인 사람은 아주 질이 나쁜 사람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이런 표현보다는 "너의 감정이 상했구나. 기분이 안 좋아보여"라는 말로 고쳐야 한다. 감정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 인간적인 것이며 바람직한 것이다. 누군가 기분 나쁜 말을 했는데도 아무 감정을 못 느낀다면 그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된다.
나는 종종 너무 큰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이 마음을 마취한 것처럼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본다.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마비시켜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무 감정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이 가장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사람은 상처받은 사람이니 그런 사람의 아픔을 공감해주고 위로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누군가를 공격하여 자신이 우위를 점령하기 위해, 자신의 열등감을 잊기 위해, 자신의 못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상대방을 조종하거나 위협하려는 무의식적 동기로 생각없이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있다. 상처 주는 언어 표현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성경에 기록된 표현을 보면, "소자를 실족하게 하면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닷속으로 빠지는 것이 낫다"고 했다. 바닷물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고 할 정도로 상처주는 행위를 강도 높게 경계하고 있다. 함부로 말하고 잘못된 표현을 쓰는 것이 바로 소자를 실족하게 하는 행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상처주는 것은 죄악이다. 자신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지 않도록 회개하고 돌이키고 바른 언어 표현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치유와 따뜻한 동행 www.kclatc.com
~치유가 있는 방송~강선영의 힐링카페 http://wowccm.net/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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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컴패션, 3월 16일 사역 중단
인도 정부의 해외 후원금 규제로 48년 만에 사역 멈춰...14만 5천 명 어린이 지원 끊겨
컴패션, 가난의 두려움으로 돌아간 14만 5천 명의 인도어린이를 위해 계속 기도
전 세계 가난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를 1:1 결연하여 전인적으로 돌봐온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의 인도어린이 양육 프로그램이 오는 3월 15일 중단된다고 밝혔다.
컴패션은 현재 14만 5천 명의 인도어린이를 양육하고 있으며, 1968년부터 28만 명의 인도어린이들과 그 가족들을 돌봐왔다. 컴패션은 다시 가난에 대한 두려움으로 돌아간 14만 5천 명의 인도 어린이를 위해 계속 기도하겠다며 함께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컴패션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지난 2016년 6월, 인도 내 589개 컴패션어린이센터에 후원금을 전달하는 것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인도 정부는 컴패션을 사전 승인 기관 목록에 포함시켜, 매번 송금 때마다 내무부(Ministry of Home Affairs, MHA)의 승인을 얻도록 했다. 컴패션은 인도 정부가 요구한 절차들을 준수하고 지켰으나, 인도 정부는 컴패션 후원금 승인을 거부했으며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인도 정부는 모디 정권 출범 이후 해외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NGO 관련 법의 규제를 강화하면서 국제 NGO들의 후원금 송금을 차단하는 등 국제 NGO 활동을 제재해왔다. 이로 인해 컴패션 뿐 아니라 인도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던 11,000개가 넘는 NGO 단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컴패션은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모색해왔다. 후원금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여 기회가 될 때마다 어린이센터에 후원금을 보냈으며, 외교적 노력 또한 기울여왔다.
컴패션은 "지난 해 여름, 존 케리(John Kerry) 전 미 국무장관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 정부와 이야기를 나눈 바 있으며, 지난 12월 6일에는 국제컴패션의 총괄 변호사가 미 하원 외교위원회(House Foreign Affairs Committee) 청문회에서 인도에서의 컴패션의 상황을 증언하는 등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그러나 인도 정부의 해외 후원금 송금 규제가 계속됨에 따라 인도컴패션의 운영이 3월 15일 중단될 수 밖에 없게 되었다."고 밝혔다.
한국컴패션에 따르면 현재 한국 후원자들을 통해 양육 받고 있는 인도 어린이들은 약 1만 3천 명이다.한국컴패션은 지난해6월부터 홈페이지, 레터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후원자들에게 인도컴패션이 처한 상황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들을 알려왔으며, 후원자와 함께하는 인도를 위한 기도 운동을 계속해왔다.
컴패션은 "인도어린이들에 대한 컴패션 후원이 중단된다는 것은 14만 5천 명의 태아·영아, 어린이 및 청소년들이 받아 왔던 교육, 건강검진, 식사제공, 영적 지원 등이 포함된 전인적 양육이 중단됨을 의미한다."면서 "컴패션은 극심한 가난 가운데 살고 있는 인도의 어린이들을 섬기고 양육할 수 있는 그 날이 다시 올 수 있게 되길 기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국제컴패션 산티아고 지미 메야도(Santiago Jimmy Mellado) 총재는 “후원자분들이 어린이에게 전해주었던 사랑과 지원은 아이들의 삶에 있어 큰 변화를 이끌어냈으며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인도에서 하나님의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컴패션어린이센터가 있었던 지역교회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이후에도 인도 내 극심한 가난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을 섬기고 지원하는데 헌신할 것이다. 그리고 컴패션은 이 어려운 결정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인도의 어린이들과 가족, 스태프들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컴패션(Compassion)은 전 세계 26개국의 가난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를 1:1 결연하여 성인이 될 때까지 전인적(지적, 사회·정서적, 신체적, 영적)으로 양육하는 국제어린이양육기구이다. 1952년 미국의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한국의 전쟁 고아를 돕기 위해 시작했으며,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현재 170만 명 이상의 어린이를 양육 하고 있다.
한국컴패션은 가난했던 시절 전 세계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되갚고자 하는 마음으로 2003년 설립되었으며, 현재 약 12만 명의 어린이들이 한국 후원자들을 통해 양육 받고 있다. (컴패션 후원 신청 및 문의: 02-740-1000 / www.compass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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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순간, 하나님의 뜻을 묻다”
영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신작 ‘사일런스’ 개봉
“하나님, 우리가 고통 당할 때 왜 침묵하십니까.”
‘인간의 고난’에 대한 논제는 오랜 시간 가장 어려운 종교적 딜레마로 존재해왔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 아무리 울부짖어도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만 같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이 흔들릴 수 있는 가장 큰 위기의 때가 고난의 순간일 것이다.
고난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섣불리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말하기도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이처럼 풀리지 않는 인간의 고난 문제를 다룬 영화가 개봉해 눈길을 끈다.
▲ 영화 ‘사일런스’는 17세기, 실종된 스승을 찾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 2명의 선교사의 실제 이야기를 그린다.<영화 스틸컷>
영화 ‘사일런스’는 17세기, 실종된 스승을 찾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 2명의 선교사의 실제 이야기를 그린다. 17세기 포르투갈 출신의 가톨릭 예수회 지도자인 신부 ‘크리스토바오 페레이라’는 에도 막부 시대, 선교 활동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선불교로 개종한 뒤 불교학자가 되어 일본인 아내를 얻는다.
영화 ‘사일런스’는 이처럼 명망 높은 페레이라고 불리는 신부가 배교한 실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극에 달했던 17세기, 일본에서 사라진 스승을 찾아 나선 두 신부는 온갖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은 현지 사람들을 만나고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신부들 역시 박해의 현장 속에서 고통 받는 신자들과 함께 배교를 강요당한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이들은 침묵하는 신을 찾는다.
신자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신을 부르짖고, 신은 가장 비통하고 절실한 순간에 침묵한다. 배교를 강요당한 신부들은 자신들을 지금까지 이끌어온 절대적인 믿음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영화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믿음과 의심, 나약함, 인간이 처한 상황 등에 대한 본질적인 해답을 찾고 싶었다”며, “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가진 믿음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에 대한 신의 대답에 대한 메시지를 읽기 바란다”고 밝혔다.
영화는 20세기 일본 문학의 대가 엔도 슈사쿠의 동명 소설 원작으로, 가혹한 천주교 박해의 현장으로 떠난 두 명의 선교사를 통해 종교계의 가장 오래된 논제이자 ‘신은 고통의 순간에 어디 계시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깊은 고찰을 그린다.
영화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연출 아래 앤드류 가필드, 아담 드라이버, 리암 니슨을 비롯해 카세 료, 아사노 다타노부, 고마츠 나나 등 일본 최고의 배우들이 함께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제작진은 영화에 당시 시대적 배경을 완벽하게 담아내기 위해 2년 동안 뉴질랜드, 캐나다 등 수많은 장소를 찾아 해맸다. 결국 이들은 대만에서 지형, 기후, 바닷가에 인접한 산악지대의 풍경까지 원했던 지점과 딱 맞아 떨어지는 최적의 장소를 찾아내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영화의 제작진은 “대부분 거의 산악지대거나, 수시로 변하는 급격한 날씨 변화 덕에 좋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모든 배우와 제작진들은 열정 어린 모습으로 임했다”며, “이러한 노력은 결국 더욱 생생한 17세기 당시의 모습을 담을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영화 ‘사일런스’는 2016년 전미비평가협회 각색상을 수상하고, 올해의 작품으로 꼽히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상 후보에 오르며 더욱 주목 받고 있다. 2월 28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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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인질 총살’ 명령 거부한 소년병 2명 손목 절단
▲2017년 1월 8일 IS가 공개한 선전 영상에 등장한 소년병들의 모습(기사 내용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습니다). ⓒ@terror_twitter
IS 캠프에 소속된 2명의 소년병이 심각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인질로 잡힌 2명의 시민을 총살하라는 IS대원의 명령을 대담하게 거부했다.
불복종에 대한 처벌은 가혹했다. 이들의 손목을 절단한 것.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2일(현지시간) 지역 소식통을 인용해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대원들 중 한 명이, 2명의 인질들을 가족들 앞에서 처형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아이들 2명의 손목을 절단했다고 이라크 뉴스를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의하면, 손목이 절단된 처벌을 받은 아이들은 이라크 니네베에 소재한 IS 캠프의 소년병들로 이들의 나이는 고작 10살, 14살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칼리프의 컵스’(Cubs of the Caliphate)로 알려진 소년병들은 IS의 선전 영상에서 인질들을 처형하는 모습으로 자주 등장해 왔다.
작년 12월에는 IS 지도자들이 어떻게 소년병을 훈련하여 자살폭탄 테러에 이용하는지를 소개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8월에는 마흐무드 아흐마드로 알려진 15살 소년이 이라크 키르쿠크에서 자폭 테러를 일으키기 전, 고민하며 우는 영상이 공개됐다. 그는 결국 쿠르드 대원들에게 붙잡혔다.
아흐마드는 자신이 지하드 교리에 세뇌되어 소년병으로 길러진 수 십명의 소년병 가운데 한 명이라고 고백했다.
쿠르드 정보기관 관계자는 “이라크와 시리아 전역에 IS에 의해 소년병으로 길러지고 있는 아이들이 수 천명이 넘는다”면서 “자살폭탄 테러에 이용되는 아이들 가운데는 9세 정도 되는 아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11월에 IS가 공개한 영상에는 IS대원이 소년병들에게 인질의 처형을 강요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IS 지도자들은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해, 반역 혐의의 죄수들을 십자가에 매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