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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락 맞아도 끄떡없는 교회 / 목사가 에쿠스를 타도 되나요?
    2017-07-25 04:08:28   read : 3422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뭘 잘못해서 벼락을…” “벼락 맞아도 끄떡없는 교회”

    ▲오대식 목사가 마이크 없이 청중들에게로 다가가 설교하는 모습. ⓒ페이스북 캡처

    오대식 목사(높은뜻정의교회)가 지난 23일 '벼락 맞은 교회'에 대한 글을 SNS에 남겼다.

    높은뜻정의교회는 지난 23일 주일,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학교 강당이 번개를 맞아 음향·조명 시설 없이 예배를 드려야 했다고 한다.

    오 목사는 "1부 예배 중 맞은 벼락. 꽤 크게 두 번 정도 심각하게 맞았는데, 벼락으로 인해 전기가 나가니 오르간과 모든 악기, 조명들과 마이크를 비롯한 음향기기 모두가 작동이 되질 않는다"며 "그리고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끈끈한 날씨에 에어컨까지..., 말 그대로 예배 중 날벼락을 맞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평생 처음, 설교를 하다가 맞이한 황당한 상황. 잠시 당황하다가 결단을 하고는 교인들에게로 내려가 육성으로 설교를 마쳤다"며 "예배 후 어느 교인이 말한다. '우리교회가 뭐 잘못한 게 있나요? 벼락을 다 맞게....' 그런데 어느 교인은 또 이렇게 말한다. '목사님, 홍보하세요. 우리교회, 벼락 맞아도 끄떡없는 교회라고!' 다 생각하기 나름인가"라고 전했다.

    오 목사는 "그나저나 나는 지금 목이 굉장히 아프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이에 성도들은 "'생목'으로 믿음에 대해 귀한 말씀 증거하셨다고 들었다", "앞으로 교회가 더 벼락같이 부흥할 것", "마이크 전기시설 없었던 때 예수님은 어떻게 설교하셨을까", "더욱 말씀에 집중이 되었던 은혜로운 예배였다", "벼락 맞은 주일 설교, 좀처럼 잊지 못할 듯" 등의 반응을 남겼다.


    ===================================================
    목회, 설교보다 성숙한 인격이 더 중요하더라"

    향상교회 정주채 은퇴목사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교계 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연합 기구 통합 움직임을 시작으로 각종 세미나와 포럼이 열립니다. 겉으로는 그럴싸하지만, 실속은 없어 보입니다.

    누구나 한국교회 위기를 말합니다. 교세는 갈수록 줄고 있는데다 개신교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곱지 않습니다. 연합 기구를 통합해 한목소리를 내고 '나부터 회개 운동'을 한다고 해서 쉽게 해결될 문제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진짜 한국교회 위기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멀리 가거나 바깥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개혁실천연대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한국교회의 가장 큰 분쟁 원인은 '목회자의 전횡'입니다. 독단적 운영과 목회자의 성폭력 역시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씁쓸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목회자가 바로 선다면 한국교회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목회자가 바로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계의 어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세상도 교회도 커지려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가 커지자 담임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목사·장로 임기제를 도입하고, 정년보다 5년 일찍 은퇴했습니다. 경기도 용인 향상교회 정주채 은퇴목사 이야기입니다. - 기자 주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교계 어른'으로 불리는 정주채 은퇴목사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초대형 교회 두 곳을 2주에 걸쳐 취재했다. 예배 스타일과 분위기는 차이가 있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수만 명의 교인은 예배 말미 '교회 부흥'을 위해 목 놓아 기도했다. 단상에 선 목사가 "교회 부흥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고 말하자, 교인들은 "아멘"을 외쳤다.

    '얼마나 더 커져야 만족할까.' 물론 큰 교회만 부흥을 좇는 건 아닐 것이다. 작은 교회는 중형 교회를, 중형 교회는 대형 교회를 추구하는 게 한국교회 현실이다.

    정주채 목사(향상교회 은퇴)는 이러한 '관습'을 깨뜨렸다. 출석 교인이 1,500명을 넘어서자 분립했다. 보통 부목사를 파송하는데, 정 목사는 자기가 직접 나갔다. 2000년 10월 서울에서 벗어나 용인에 향상교회를 세웠다. 240여 명의 교인이 함께했는데, 9년 만에 2,000명으로 늘었다. 교인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향상교회는 2011년 교회를 분립, 개척했다.

    교회 분립이 전부가 아니다. 정 목사는 2013년 11월, 담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의 나이 65세였다. 교회에서 공을 인정받아 원로로 추대될 법도 했지만, 그는 사양하고 '은퇴목사'로 남았다. 그는 원로로 남을 경우 자칫 후임 목사와 갈등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건강이나 다른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깨끗이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목사가 교회를 분립, 개척하고 조기 은퇴한 게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안위와 사리사욕을 채울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결단은 쉽게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시대의 어른'을 찾기 힘든 요즘, 정 목사가 교계의 어른으로 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나 교회 개혁을 이야기하는 시기. 어떤 이는 이제 더 이상 목회자 그룹에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하며, 일반 신자가 깨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득력 있는 말이다. 하지만 목회자 한 사람이 바뀌었을 때 교회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여전하다.

    목회자가 욕심을 비우고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면, 한국교회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목회자의 가치관이 기존과 다르게 바뀌면 교인도 교회도 변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정주채 목사와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7월 21일 향상교회에서 진행됐다.


    정 목사는 교인이 늘어나자 용인에 향상교회를 분립, 개척했다. '높은 곳을 향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를 보면 왠지 들뜬 분위기다. 회개 운동과 각종 기념 세미나가 열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행사도 많이 하고, 세미나도 열심히 한다. 그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행사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일례로 2007년 평양 대부흥 운동 100주년 행사를 들 수 있다. 평양 대부흥 운동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한국의 오순절이라고 불렸다. 그 정신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회개 운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달라진 게 없다. 열심히 했으면 열매가 있어야 하는데, 열매가 없어서 그게 좀 답답했다. 개인적으로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기대해 본다.

    회개와 개혁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 정말 쉽지 않다. 지금까지 자신의 삶과 지위, 명성을 버리고 돌아서야 한다. 사실상 다 내려놓아야 가능하다. 약간의 양심적 가책과 지적인 반성으로만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인 수가 불교인 수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일부 목사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평가하며 자축하더라.

    나는 통계 자체에 의문을 가진다. 교세 통계는 믿기 힘든 부분이 있다. 옛날 이야기지만, 개신교, 불교, 천주교 인구를 합했더니 대한민국 인구보다 많이 나왔다는 설도 있다.(웃음) 숫자 자체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진지하게 자기를 돌아보고 근신, 반성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 많은 사람이 한국교회 위기를 말한다.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각종 조사에서 드러나듯이 '목회자의 전횡'(성 문제, 재정 문제 등)이 가장 크지 않나 생각한다. 높은 윤리 의식을 보여야 할 목회자가 오히려 일탈하고 있으니, 교회를 다니든 안 다니든 실족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단순히 목회자 전횡만이 문제가 아니다. 참 말하기 어렵지만, 목회자들 수준이 문제다. 자질도 모자라고. 세속적 가치관에 휩쓸린 나머지, 목회 성공의 기준을 교인 수와 재정으로 판단한다.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니까, 너 나 할 것 없이 대형 교회를 만들려 한다. 또 대형 교회는 보통 담임목사의 말씀과 카리스마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런 은혜(?) 속에서 부흥한 교회의 교인들은 그 목사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담임목사가 절대권을 가지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전횡을 하게 되는 거다.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과 존경을 목사가 자신도 모르게 가로채고 누리는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냐고? 글쎄…전체적으로 교회의 영적·윤리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기독교가 사회를 이끌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반대가 됐다.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기 급급하다. 이 흐름을 역전시켜야 하는데, 막연하고 안타깝다.

    - 원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목회자 양성 구조 문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목사님은 2013년 한 인터뷰에서 "신학교 졸업생들에게는 정말 할 말이 없다. 꼭 말하라면 칼뱅이 말한 대로, 할 수만 있다면 목사 되는 일을 피해 보라. 개척교회도 피해 보라. 생명에 대한 외경,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이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도 많은 신학생과 목회자가 쏟아져 나온다. 소수 정예만 배출하면 좋겠지만,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나는 신학 교육이 갱신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갈 데까지 갈 거라고 본다. 지금도 목사가 엄청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전보다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지원하는 사람이 많다. 가만 보면, 은혜 받았다며 감정적인 사명감으로 목사가 되거나, 생계 수단으로 목회를 하거나, 대우받기 위해 목사가 되기도 하더라. 심히 우려된다.

    신학교도 확 줄여야 한다. 비인가 신학교까지 더하면 우리나라에 신학교가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교단이 하나 새로 생기면, 신학교도 하나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나는 무분별한 신학교 설립과 신학생 배출 문제를 30년 전부터 제기해 왔다. 신학교 정원을 줄이고, 사관학교처럼 정예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입학생은 교단이 100% 지원하고, 치열한 교육과 훈련을 시켜야 한다. 그렇게 10년만 하면 한국교회는 새로운 영적 리더십을 갖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말을 할 때마다 어른들에게 욕먹었다.(웃음)

    교회 갱신과 개혁을 생각하다 보면 결국 신학교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기존의 목회자를 변화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새싹들을 잘 길러 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신학교 교수들이 분발해야 한다. 비인가 신학교는 그렇다 치더라도, 정식 인가 신학교 교수들이라도 제정신을 차리면 뭔가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밥그릇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하는 교수가 많다. 특히 보수 교단은 신앙의 보수만 생각할 게 아니라 교회의 생명을 위해서라도 신학교 갱신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안타깝게도 보수 신학교일수록 이런 감각이 없다. 오히려 소위 진보적인 신학교 교수들 중에 '신학 교육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을 가끔 보았다.

    신학교 교육 갱신이 일어나야 한다. 내가 속한 예장 고신이나 보수적인 신학교 교수들을 만나 보면 개혁이란 말은 많이 하면서도 개혁 정신이랄까 야성이 별로 없다. 신학교 교수는 칼뱅의 직분 분류로 말하면 교회의 교사다. 미안하지만, 신학 교육 개혁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교수들 중 많은 사람이 교단 정치에 짓눌려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한. 신학 교육 갱신을 위해 어느 때보다 자기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

    너무 비판적으로 이야기해서 좀 그렇지만, 한두 마디 성경 번역이나 해석상의 차이 혹은 여성 안수 문제 등에 열을 올릴 게 아니다. 그게 뭐가 그리 중대한가. 그런 것들은 교회를 개혁하는 데 중요한 이슈들이 아니다. 이런 거 토론하는 것보다 신학교 갱신을 위해 머리를 맞댔으면 좋겠다. 그리고 교회는 신학생들이 재정에 쪼들리지 않고, 영성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공부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정 목사는 목회자를 배출하는 시스템을 지적했다. 한국교회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신학교부터 손을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한국교회의 배타성과 사회문제에 대한 공감대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사회와의 공감이라고 할까, 사실 이 부분은 나도 약하다. 나는 모태신앙이다. 오직 교회 안에서 생활해 왔고, 신학 공부를 하고 목회만 해 왔다. 세상을 보는 눈이 별로 없는 거다. 칼 바르트는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두라고 하지 않았나. 우리 같은 보수 신학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은 오히려 '하나님나라'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나라를 이해하게 되면, 자연히 이 세상 전체를 바라보게 되고 안목도 달라질 수 있다.

    - '하나님나라'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예전에 신학 교육받을 때만 해도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해가 천당의 개념을 크게 넘지 못했다. '이미 실현됐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정도'의 개념이었다.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떤 국가의 정체성은 그 국가가 가진 통치 이념에 의해 드러난다. 하나님나라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나라의 통치 이념은 사랑과 공의 또는 정의다. 교회가 사랑만 외칠 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위해서 올바른 잣대와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에 본을 보여야 한다. 이게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사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식하는데, 공의 곧 사회정의에 대한 인식은 약하다. 성경에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 끊임없이 나온다. 그런데 보수적인 교회들은 사회적 평등이나 공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 이게 바로 나와 같은 사람의 약점이기도 하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나라 관점은 소위 사회정의, 사회 평등 이런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하나님나라의 이념인 사랑과 공의가 실현되어 사람들이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 이게 하나님나라 운동이 아닐까 싶다. 교회에서는 십자가 사랑을 강조하지만, 사회정의나 공의에 대해서는 별 인식이 없다. 사랑과 공의는 별개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같은 말이다. 이 둘은 함께 어우러져 가야 한다.

    - 목사가 사회정의와 평등을 강조하면 아직도 '좌파' 또는 '빨갱이' 목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많은 목사가 '문화적 보수'와 '신학적 보수'를 구별하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는 문화적 요소인데 그걸 신학적으로 생각한다. 그런 관점을 유지하다보니 현실 문화와 교감을 못하고, 사회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하는 것이다. 이념적으로 좌우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걸 나무라거나 반대할 수는 없다. 신앙인들 중 좌파나 우파를 보면 신앙보다 정치 신념을 더 앞세울 때가 많다. 정치적 신념이 신앙에 우선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면 신앙보다 정치적 신념이 앞설 수 없다.

    - 많은 목회자가 '교회 부흥 = 하나님의 축복(영광)'으로 생각한다. 작은 교회는 중형 교회를, 중형 교회는 대형 교회를 꿈꾼다. 엄밀히 따지면 성장 욕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목사님은 교회를 두 번 분립, 개척했다. 교회를 더 키울 수도 있었을 텐데.

    교회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건 하나님의 축복이자 영광이다. 그러나 소위 성장주의와 물량주의에 빠진 성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교인 한 명이라도 늘리고, 교회당을 크고 아름답게 지으려 하는 성장주의와 물량주의에 빠지면 물불을 가리지 못한다. 그야말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기에 함몰된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오늘날 개척교회부터 대형 교회까지 열망은 하나다. 대(大) 교회가 되는 것이다.

    목회자가 늘 생각하고 목표로 삼아야 할 건 '영혼 구원'과 '영적 복지'의 향상이어야 한다. 이게 확장되면 사회복지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점을 타깃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관심이 없고, 교회를 키우고 재정적 안정과 목회적 성과만 추구하니까,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많은 목회자가 아주 비본질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은퇴하기 전 주일예배 성인 출석 교인이 2,000명 정도였다. 대형 교회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경험해 보니 교회는 커지면 커질수록 여러 문제가 일어난다. 제일 큰 문제점을 지적하라면 '세습'을 들 수 있다.

    교회가 커지면 세습 안 할 수가 없다. 교인이 5,000명~1만 명으로 늘게 되면 목사는 절대적 위치에 앉게 된다. 담임목사 한마디에 교회가 굴러간다. 때론 누가 교회의 머리(주)인지 헷갈린다. 그런데 이런 절대적인 리더십(대형 교회 담임)이 물러날 경우 그 공백은 누가 채울 것인가. 방법이 없다. 혼란이 일어난다. 그래서 교회를 세습하는 것이다.

    나는 대형 교회를 반대한다. 목사 리더십이 비성경적으로 강력해지면 치명적인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 목사가 100년을 살 건가, 200년을 살 건가. 가능하면 교회 사이즈를 안 키워야 한다. 교회를 안 키우고, 건강한 중·소 교회를 많이 세워야 한국교회가 건전하게 나아갈 수 있다.

    정 목사는 이 시대 젊은 목회자들에게 '성품 개발'을 주문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교인 수가 1,000명 단위로 넘어갈 경우 실질적인 목회가 가능한가. 자료를 찾다 보니 "3,000명 이상은 힘들다"는 말도 있던데.

    3,000명이라는 말은 어디서 들었는가.(웃음) 해 보니까, 1,000명까지는 목회다운 목회를 할 수 있겠더라. 그때는 내가 교구 목사들보다 교인들을 더 잘 알았다. 부목사는 3~5년 정도 있다 나가는데, 담임은 계속하니까.(웃음) 교인 형편뿐만 아니라 영적 문제를 파악해야 하는데, 1,000명이 넘어가니까 잘 안 되더라. 안 그래도 나는 사람을 기억하는 게 약한데… 저분이 교인인지 동네 주민인지 헷갈리더라. 내 경험상 제일 이상적인 교인 숫자는 400~700명이다.

    향상교회로 분립·개척하기 전 잠실중앙교회 담임 당시 교인들과 논의를 통해 1,500명이 넘으면 분립하기로 했다. 이 숫자에 어떤 신학적인 의미는 없다. 공간적으로 도저히 교인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교회에서 '장'을 맡고 있는 교인들과 기도원에 들어가서, 교회 10년을 내다보고 미래상을 그리는 컨센서스(consensus)를 했다. 그때 우리는 건강한 중·소 교회를 지향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교회가 커지면 확장해서 짓지 말고, 분립하자고 한 것이다.

    - 보통 분립 개척하면 부목사를 파송하는데, 본인이 직접 나왔다.

    교회 장소를 찾다보니, 용인까지 왔다. 모교회로부터 이렇게 멀리 떨어진 지역에 와서 땅을 사고 예배 처소도 준비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빚을 져야 했다. 담임(목사)이 안 가면 누가 따라오겠나 싶었다. 그때 내가 거룩한 희생정신을 발휘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형편이 그러했다. 200명 정도 따라왔는데, 9년 만에 출석 교인 2,000명에 등록 교인 4,500명으로 늘었다.

    - 교회가 이렇게 빨리 커질 줄 예상했나.

    전혀 안 했다. 우리는 중·소 교회를 지향하기 위해 나왔으니까. 많아야 500~600명 생각했다. 사실 갑자기 교인이 불어난 건 나와 교인 때문이 아니라 언론과 관련이 있다. 기독교 언론은 물론이고, 주요 방송사와 일간지까지 우리 교회의 분립을 대서특필했다.

    사람들이 몰려드니까 처음에는 당황했다. 안 되겠다 싶었다. 지역에 개척교회도 많고 해서, 용인에 사는 기존 세례 교인은 안 받는다고 계속 광고했다. 그런데도 찾아오더라. 일일이 면담을 했는데, "좋은 교회인 것 같아서 왔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일단 목장으로 보내고, 구역장이 추천하면 받아 줬다.

    세례 받은 교인들이 등록하려면 보통 석 달 정도 걸렸는데, 귀찮으니까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예 등록은 안 하고, 십일조도 하고 감사 헌금을 내며 다니는 분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자원봉사자들이라고 칭한다.(웃음)

    - 세례도 아무한테나 주지 않았다고 들었다.

    교회를 갱신·개혁하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게 세례다. 세례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져야 한다. 예배당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건 다른 문제다. 세례 절차를 강화했다. 무조건 성경을 1독하게 하고, 12주 동안 내가 직접 교육했다. 중급, 고급반 과정은 부목사들에게 맡겼다. 교인이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들어오면, 가만 놓아두어도 일취월장한다.

    이런 절차 없이 세례를 남발하면,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몰라도 가면 갈수록 교인과 일반인은 구별되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타락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는 소위 거룩한 공동체다. 문자 그대로 '거룩'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부름을 받은 구별된 공동체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별됨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가장 무서운 타락이라고 생각한다.

    - 생각지도 못한 교회 부흥을 경험했을 때, 원칙을 깨고 '좀 더 키워 볼까'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나.

    사실 여기에 달관할 수 없었다. 부흥에 대한 유혹은 끊이지 않았다. 은연중 내 마음 바닥에 깔려 있는 걸 많이 느꼈다. 대접받고 싶고, 알아주길 바라는 게 인간의 본능이 아니겠는가. 그 누구라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이 컸다. 또 다행이랄지 나에게 대형 교회를 세울 만한 능력도 없었다.

    - 만 65세가 되던 2013년에 조기 은퇴했다. 교단법에 따르면 5년 더 할 수 있었다.

    잠실중앙교회 부임 이후 첫 당회를 열었을 때, 나는 목사·장로의 정년을 65세로 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 원로목사, 원로장로, 공로목사 명칭도 쓰지 말자고 했다. 예수님이 피로 세운 교회라고 고백하면서 명예직을 얻는 게 마땅치 않다고 느꼈다. 하나님 앞에서 죄송한 일은 하지 말자고 했다.

    나중에는 생각을 좀 더 정립했다. 원로목사가 된다는 건 다른 동역자들을 생각해 봤을 때 이는 공평치 않다고 생각했다. 하나님나라는 공평한 나라인데, 한 교회에서 20년 시무했다고 그 목사에게는 생활을 보장해 주고, 대우해 주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20년간 생활 보장을 받을 정도로 목회한 것만도 감지덕지 아닌가. 미자립 교회나 농어촌 교회, 선교사들은 자립한 교회의 목회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과 헌신을 하지 않았나. 그래서 원로목사가 되는 것을 사양했다.

    한편 이런 말을 한다는 게 미안한데, 사실 나는 교회에서 재정적으로는 원로목사로서의 대우를 받고 있다. 일찍이 교회가 국민연금도 들어 줘서 매달 80만 원을 받고 있다. 여기다 생활비도 지원받고 있다. 원로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어서 다른 은퇴목사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 그럼에도 65세 은퇴는 이른 감이 있어 보인다.

    나는 결코 조기 은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절한 나이라고 본다. 사람이 60세가 넘기 시작하면 생각이 고정되고, 열린 사고를 잘 못한다. 그게 사람의 한계다. 그리고 리더십도 아주 딱딱해진다. 그때부터 내리막길을 걷는다. 실제로 친구들이나 선배들을 보면,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목회를 잘하다가 65~70세 사이에 (좋은 평판을) 다 까먹어 버리더라. 지금도 65세 은퇴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 목사 임기제뿐만 아니라 장로 임기제(9년)도 실시하고, 성장이 아닌 분립, 개척을 계속해 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하는 장로도 많았을 것 같은데.

    반대하는 장로는 어딜 가나 있다.(웃음) 나는 그분들을 '목사 지킴이', '파수꾼'이라고 말한다. 목사가 엉뚱한 길로 못 나가도록 시비 거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생각도, 기도도 더 하게 된다. 그러나 그분들과 대적하거나 싸우면 안 된다.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설득이 된다. 어떨 때는 양해를 구하고 다수결로 결의하기도 한다.

    - 목사님과 달리 초대형 목회자 중에는 미련을 못 버리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은퇴한 지 한참 됐는데도, 원로목사나 동사목사로 남아 설교 등을 하며 영향력을 계속 미친다.

    개인적 욕심도 있겠지만, 후임자의 교회 안정적 정착을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지도 않을까 싶다. 하지만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은퇴'라고 볼 수 없다. 은퇴를 했으면 진짜로 은퇴를 해야지. 후임 목사를 사랑하고 돕고 싶다면 교회를 떠나는 것도 좋지 않나 싶다.

    원로의 개입은 여러 폐단을 낳는다. 가령, 지금 우리 교단의 '원로장로' 제도가 그렇다. 원로 신분인데 당회에 참석할 수 있고, 발언권까지 허용된다. 그러다 보니 교회를 좌우지한다. 선배 장로가 뭐라고 하는데, 후배 장로가 거절하거나 반대할 수 없다. 목사들은 더 그렇지 않겠는가. 목사들이 은퇴한 뒤에도 계속 개입하면 교회에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 한편으로는 자기가 세우고 수십 년 목회해 온 교회를 미련 없이 떠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최근 1년간 향상교회에 출석한 게 10번도 안 된다. 대부분 다른 교회에 부름을 받거나 방문하여 예배했다. 은퇴 이후 약 3년간 강대상에 서지 않았다. 내 입맛에 길들여진 교인이 새로운 목사에게 안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3년간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다.

    - 몇몇 교회를 보면, 은퇴한 목사가 일부 교인 부탁을 받고 교회 문제에 개입한 경우도 있다.

    나는 치명적인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은퇴한 목사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향상교회는 아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모르겠다.(웃음)


    교회에서 일찍 물러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교인을 변화시킨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사역 여정을 들여다보면, 철저히 사사로운 욕심은 배제한 듯하다. 목회하면서 절대로 양보하지 않은 가치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신학교에 다닐 때, 목사를 유혹하는 대표적인 것이 3가지가 있는데 바로 돈, 이성, 명예라고 배웠다. 당시 그 이야기를 듣고 돈과 이성에는 절대 휘둘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돈 문제에 깨끗하려고 노력하니 교인들이 굉장히 신뢰하더라. 돈 문제 앞에서는 처연하게 행동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 교인들로부터 다른 면들에서까지 매우 큰 신뢰를 받았다. 교인 중에는 "우리 목사님은 돈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 분도 있더라. 하…세상에 돈 안 좋아하는 사람 있나.(웃음)

    교회가 어려울 땐 담임목사 사례금은 동결해 달라는 부탁을 자주 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 부목사님을 청빙했는데, 우리가 책정한 사례금이 전에 시무하던 교회에서보다 크게 적어서 놀란 적도 있다. 대개 부목사의 사례금은 담임목사와 비교 책정하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언젠가 어느 부목사님 한 분이 다른 교회 담임으로 가면서 뼈 있는 말을 한마디하더라. "목사님이 성자가 되시면 우린 거지가 됩니다." 그 후로는 사양을 자제했다.

    - 개척하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라고 한다. 교회 부흥은 안 되고, 생계는 이어 가야 하니 이중직을 하는 목사가 많다. 목회자 이중직 어떻게 생각하나.

    이중직을 하는 목회자들에게 굉장히 미안한 이야기인데, 나는 몇 년 전만 해도 목사의 이중직 반대를 주장했다. 일을 병행할 거면 목사를 사임하라고 했다. 왜 그런 이야기를 했냐 하면, 목회는 결코 녹록한 사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심을 기울여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 목회는 다른 일 하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대 흐름을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이중직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 많더라. 갑자기 교회에 변수가 생겼다든가, 가족이 중병을 앓게 됐다든가, 이런 일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돈을 벌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분들은 교단에서 은급 제도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으면 한다.

    목회자 이중직… 뭐라 말하기가 참 쉽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중직 목회자들에게 기도를 권하고 싶다. 목사를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목회를 중단하고 생계를 위해서 일에 전념할 것인지 기도 많이 하고 결정을 내리라 하고 싶다. 동기 목사 중 한 명은 자기 가족들을 온갖 고생 다 시키고 교인까지도 힘들게 했다. 이 친구에게 능력이 없는 게 아니다. 목사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했으면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한번 목사로 임직을 받으면 절대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는 관념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소명도 자가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소명감이라는 게 과연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자가 발전한 것인지 깊이 따져 봐야 한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목회의 열매가 없으면 은사도 없다고 봐야 한다. 이럴 때는 빨리 일반 생활 전선으로 뛰어드는 게 좋다.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섬겨야 할 대상을 통해서 생계와 신분 유지에 도움을 받는 것이 죄짓는 일일 수 있다. 부르심이 어디에 있는지, 내게 주어진 은사가 뭔지 기도해 보는 게 필요하다.

    -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목회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과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후임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느낀 게 한 가지 있다. 교인들이 목사님을 모실 때 능력도 보지만, 인격과 성품을 더 중하게 여긴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인격이 성숙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늘 하고 싶다.

    인생 자체가 그렇지만, 목회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에 품성과 인격이 중요하다. 설교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목회를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설교보다 성숙한 인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젊은 목회자들이 성품과 인격 개발을 위해 기도했으면 한다. 이 점에 있어서 성령의 9가지 열매가 필요하다고 본다. 절제, 온유, 성실, 양선(친절), 자비, 오래 참음, 화평, 기쁨, 사랑을 표준으로 삼을 수 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참아야 할 일이 많다. 인내하고 포용해야 할 게 많다. 목회자의 인격이 성숙되면 내적인 화평을 느끼고, 다른 사람과의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성품 개발에 신경을 썼으면 한다. 사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싶다.(웃음) 단지 원칙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다. 오늘 인터뷰에서 좋은 말만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 양심에 찔린다.

    - 지나온 목회 여정을 돌아봤을 때, 아쉬움은 없는가.

    목회를 나름대로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말 솔직하게 반성해 봤을 때, 하나님의 안목으로 본다고 했을 때 '열매가 얼마나 있었나' 하는 자책감이 든다. 단적으로 말하면 사람은 참 안 변하는 것 같다. 뭔가 달라졌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자기 본성대로 돌아가더라. 10~20년간 내 설교를 들은 사람도 근본 가치관은 변하지 않더라. 이런 경우를 보면 약간 허탈해지기도 한다. 교회 직분에 연연해하지 말라 했는데, 여전히 권사와 장로 되는 것에 목매는 교인도 있고,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 하나님, 성령과 함께한 목회였다면 사람이 변화돼야 하는데… 뭐 한두 사람이야 있겠지. 전체적으로 봤을 때, 교회 분위기나 사람들 생각을 보면 변함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사람을 참으로 거듭나게 하는 게 성령님인데, 나의 인간적인 지식과 노력으로 하다 보니 변함이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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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가 에쿠스를 타도 되나요?

    손성찬 목사, ‘기독교인의 소유’에 대한 이야기 전해



    ▲에쿠스. ⓒ손성찬 목사 페이스북

    손성찬 목사(람원교회)가 '목사가 에쿠스를 타도 되는가?'라는 제목으로 '기독교인의 소유'에 대한 묵상을 24일 자신의 SNS를 통해 나눴다.

    손 목사는 "소그룹 모임을 하다 '소유'라는 주제가 나오면, 일부러 '목사는 에쿠스 타도 되는가?' 이 질문을 던지곤 한다. 에쿠스가 갖고 있는 함의가 있지 않나, 부유함의 상징이랄까"라며 "게다가 '목사'라는 직분의 함의도 있다. 목회자의 윤리, 소유에 대한 신앙적 답변과 철학에 대한 문제 등이 뒤섞여 있다. 결국 '목사가 과연 그런 부유함을 누려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젊을수록 이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변하더라. 일부 부유함을 추구하는 목사들의 일탈로 인해 이런 부정적 뉘앙스는 더욱 강해졌다"며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가 배운 신학교에서는 '괜찮다'고 답한다는 사실이다. 학교에서 무슨 이사회 같은 것 하면 검정색 에쿠스가 학교 주차장에 쫙 깔리더라"고 했다.

    차에 관한 또 하나의 기억으로, 신학교 시절 한 교수가 타고 다닌 구형 '링컨 컨티넨탈'에 대해 "학생들 사이에서 '과연 저런 차를 타도 되는 것인가?'라는 주제가 나름 화두에 오르곤 했다. 물론 미국에서 오래 머물다 오셨고, 가족들이 여전히 미국에 계시고 꽤 돈을 잘 벌고 계셨으며, 미국에서 타던 차를 그대로 들여와 타고 있다는 팩트가 제공되었지만, 그래도 대부분 부정적 결론을 내렸다"며 "그분이 교수 이전에 목사셨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 생각해 보면, 링컨 논쟁은 지나치게 잔인하고 할 일 없는 대화처럼 여겨진다. 그것이 과연 비판의 자리에까지 나아갈 일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살아온 맥락과 환경 등에 대한 이해가 누락된 채, 내 기준을 일방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진지한 의미로 목회 철학을 고민한 이들도 있었겠지만, 돌아보니 사실 부러워서 그랬던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것은 지나친 추측일까"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자기가 물욕이 없다면 사실 누군가의 에쿠스가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다. 관심이 없으니까"라며 "애견가나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나가던 개가 세인트버나드이던, 치와와이던 관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손성찬 목사는 "한때 청빈하셨던 예수의 행적, 그리고 빈부격차로 발생되는 사회의 혼란한 현실과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돌아보며, 돈과 소유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하자라는 확고한 결단과 고백이 있었고 그리 살려고 노력했다"며 "그러나 돌아보면 지금까지 단지 강렬하게 원하는 것이 눈 앞에 주어지지 않아서 였을뿐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손 목사는 "소유를 부정적으로 보며 천착하지 않기 위해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나름 만족할 정도로 물욕이 없어졌다 여겼는데, 어느날 확인했다. 다른 것은 다 줄였는데, 책은 늘어가고 있더라"며 "좋은 것이지만, 그 안에 지적 과시욕도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놈의 성도제압용 책들, 이사가며 700여권 정도 정리했지만, 이미 3년 사이에 그만큼 채워졌다"고 전했다.

    그는 "깨끗한 부자를 제창하는 '청부론', 뭔가 있어보이나 그리 성경적이지 않다. 그보다는 더 성경적으로 보이는 정반대의 '청빈론' 역시,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결국 예수 코스프레로 끝난다"며 "소유욕은 일부 초인같은 이들을 제외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 쉬이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스로를 속이고 있거나 아직 강렬히 원하는 것을 만나보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더 농후하다. 불의하게 모은 것이 아님에도 타인의 소유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미 스스로의 욕구가 투영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손 목사는 "욕구와 욕망은 구분해야 한다. 욕구는 '절제와 교정'이 필요한 것이지, '압제와 부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며 "다만 스스로 느끼는 결핍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욕망은 다르다. 궁극적으로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나아가 타인의 것을 빼앗는 방법으로 변질된다. 혹은 그 정도의 배알도 없다면, 타인을 정죄함으로 대리만족을 느끼기 마련"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느날 누가 주는 선물 하나에도 기뻐하지 못하고 내 기준을 넘어선다는 이유로 불편해하는 제 모습이 참 가엽더라. 또 어떤 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비싼 것을 거절했다며 자랑스레 얘기하지만, 어떤 분들은 그런 제안조차 받을 수 없는 분들 가운데서 묵묵히 자리매김하시는 분들도 계신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며 "결국 소유에 대한 부정도 자기 의가 될 수 있다. 차라리 이런 자신의 욕구를 인정하되,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소유욕보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더 강렬해질 때, 자연스레 포기하고 희생하게 되는 것 아닐까"라고 했다.

    손성찬 목사는 "구조적 악이나 기득권이 내뿜는 악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더 크게 보고 더 강력하게 외쳐야 한다. 다만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제발 좀 너그럽게 접근하자"며 "'에쿠스'라는 특정 물화의 소유와 사용에 대한 상황윤리를 절대적으로 해석하면 늘 피곤한 것은 자신의 머리통과 기분이다. 나중엔 주변 사람들마저 피곤하게 할 뿐이다. 평범한 우리 주변에 뭐 그리 잘나고 특별한 인생들이 있다고, 그리 쥐 잡듯이 잡아대는가? 사치 비용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마시는 스타벅스도 누군가에겐 사치"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과연 목사는 에쿠스를 타도 됩니까?' 원론적으로는 타는 것도, 안 타는 것도 가하지만, 개인적으로 안 타는게 지혜롭다 생각한다"며 "하워드 스나이더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에서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부자가 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부자가 되는 동시에 가난한 자에게 등을 돌린다는 점이며, 새로 확보한 사회적 지위로 인해 태도가 변한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말한다. 사회통념을 기준으로 가급적 검소한 차, 혹시 가능하다면 친환경적인 차를 이용하는게 지혜로워 보인다"고 권면했다.

    또 "다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덕 차원의 권고인 상황윤리를 절대윤리로 환원시킨 시점부터, 우리는 신(新)바리새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많은 목사님들이 봉고도 겨우 타고 다닌다는 사실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며 "나아가 만인제사장론을 강력하게 설파하면서 목사에게는 다른 잣대를 강력히 갖다대는 지독한 언발란스 상황을 자초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윤리학의 기본은 '내로남불은 불가하다' 아닌가? 결국 이 모든 논의는 목사만이 아닌 그리스도인 모두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글 전문.



    ▲짐을 가득 실은 한 교회 봉고 모습. ⓒ손성찬 목사 페이스북

    목사가 에쿠스를 타도 되는가?
    예전에 들었던 어떤 목사님의 강의. 주제는 '설교'였습니다. 한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유명하신 분이라 실물로 보며 강의를 듣는다는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뻔한 이야기라도 연륜의 지혜로부터 나온 스쳐지나가는 단 한 문장이라도 얻어가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뜬금없이 '부가티 베이런'이라는 값비싼 외제차 끌고 다니시는 얘기를 하시며, 설교 잘하면 이런 차도 누가 사준다는 동기부여를 하시네요. 많이 불편합디다. 너무 세속적으로 들려서도 그러하지만, 근 30년 목회하시고도 교회 봉고나 끌고 다니시는 제 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에쿠스 타도 되는가?' 소그룹 모임을 하다 '소유'라는 주제가 나오면 일부러 이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에쿠스가 갖고 있는 함의가 있지 않습니까? 부유함의 상징이랄까요? 게다가 '목사'라는 직분의 함의도 있습니다. 목회자의 윤리, 소유에 대한 신앙적 답변과 철학에 대한 문제가 뒤섞여 있지요.

    결국 '목사가 과연 그런 부유함을 누려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젊을수록 이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변하더군요. 일부 부유함을 추구하는 목사들의 일탈로 인해 이런 부정적 뉘앙스는 더욱 강해졌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가 배운 신학교에서는 '괜찮다'라고 답한다는 사실입니다. 학교에서 무슨 이사회 같은 것 하면 검정색 에쿠스가 학교 주차장에 쫙 깔리거든요. 뭘 피곤하게 기독교 윤리를 따집니까? 그냥 그 모습이 답입니다.

    그런데 차에 관련 된 또 하나의 기억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한 교수님께서 구형 '링컨 컨티넨탈'을 타고 다니셨습니다. 부가티 베이런에는 쨉(?)도 안되지만, 당시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외제차였습니다.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과연 저런 차를 타도 되는 것인가?'라는 주제가 나름 화두에 오르곤 했지요. 물론 미국에서 오래 머물다 오셨고, 가족분이 여전히 미국에 계시며 꽤 돈을 잘 벌고 계셨으며, 미국에서 타던 차를 그대로 들여와 타고 있다는 팩트가 제공되었지만, 그래도 대부분 부정적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분이 교수 이전에 목사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웃긴건 정작 본인은 모르셨을 거라는 사실이지요. 참 우리가 거시기해요. 저도 그 뒷담화의 현장들에 있었습니다. '도그마'의 본의는 개나 줘버린 채, 마치 '도그마귀'처럼 물어 뜯기만하던 시절이었지요. 실상 바른 믿음과 관계없는 내적 기준에 의한 부역자 청산이었습니다. 뭔가 배부름은 뱃대지에 기름낀 신앙없는 부르주아들의 모습처럼 보였기에, 저 역시 그 교수님을 마음속으로 신랄하게 폄하하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링컨 논쟁은 지나치게 잔인하고 할 일 없는 대화처럼 여겨집니다. 그것이 과연 비판의 자리에까지 나아갈 일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온 맥락과 환경 등에 대한 이해가 누락된 채, 내 기준을 일방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진지한 의미로 목회 철학을 고민한 이들도 있었겠지만, 돌아보니 사실 부러워서 그랬던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 것은 지나친 추측일까요? 자기가 물욕이 없다면 사실 누군가의 에쿠스가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습니다. 관심이 없으니까요. 애견가나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나가던 개가 세인트버나드이던, 치와와이던 관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청빈하셨던 예수의 행적. 그리고 빈부격차로 발생되는 사회의 혼란한 현실과,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돌아보며, 돈과 소유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하자라는 확고한 결단과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리 살려고 노력했지요. 그러나 돌아보면 지금까지 단지 강렬하게 원하는 것이 눈앞에 주어지지 않아서 였을뿐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유를 부정적으로 보며 천착하지 않기 위해,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나름 만족할 정도로 물욕이 없어졌다 여겼는데, 어느날 확인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줄였는데, 책은 늘어가고 있더군요. 좋은 것이지만, 그 안에 지적 과시욕도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놈의 성도제압용 책들. 이사가며 700여권 정도 정리했지만, 이미 3년 사이에 그만큼 채워졌습니다. 또한 애들을 낳고 나니까, 전혀 관심 없던 주거공간에 대한 욕심도 생깁니다. 좀 더 넓고, 마당 있는 집에서 키우고 싶어요. 솔직한 심정입니다.

    깨끗한 부자를 제창하는 '청부론'. 뭔가 있어보이나, 그리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더 성경적으로 보이는 정반대의 '청빈론' 역시,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결국 예수 코스프레로 끝납니다. 소유욕은 일부 초인같은 이들을 제외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 쉬이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스로를 속이고 있거나 아직 강렬히 원하는 것을 만나보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더 농후하지요. 불의하게 모은 것이 아님에도 타인의 소유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미 스스로의 욕구가 투영된 것입니다.

    욕구와 욕망은 구분해야 합니다. 욕구는 '절제와 교정'이 필요한 것이지 '압제와 부정'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스스로 느끼는 결핍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욕망은 다릅니다. 궁극적으로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나아가 타인의 것을 빼앗는 방법으로 변질됩니다. 혹은 그 정도의 배알도 없다면, 타인을 정죄함으로 대리만족을 느끼지요.

    어느날 누가 주는 선물 하나에도 기뻐하지 못하고, 내 기준을 넘어선다는 이유로 불편해하는 제 모습이 참 가엽더군요. 또 어떤 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비싼 것을 거절했다며 자랑스레 얘기하지만, 어떤 분들은 그런 제안조차 받을 수 없는 분들 가운데서 묵묵히 자리매김하시는 분들도 계신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소유에 대한 부정도 자기 의가 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이런 자신의 욕구를 인정하되, 성령의 인도하심아래 소유욕보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더 강렬해질 때, 자연스레 포기하고 희생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구조적 악이나 기득권이 내뿜는 악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더 크게 보고 더 강력하게 외쳐야 합니다. 다만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제발 좀 너그럽게 접근합시다. 예전에 한 진보정당 총의 때, 유시민 씨가 고작 2,000짜리 아메리카노 마셨다고 부르주아라고 비난했던 사건이 떠오르네요.

    '에쿠스'라는 특정 물화 소유와 사용에 대한 상황윤리를 절대적으로 해석하면 늘 피곤한 것은 자신의 머리통과 기분입니다. 나중엔 주변 사람들마저 피곤하게 하지요. 평범한 우리 주변에 뭐 그리 잘나고 특별한 인생들이 있다고, 그리 쥐 잡듯이 잡아댑니까? 사치비용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내가 마시는 스타벅스도 누군가에겐 사치지요.

    그래서 '과연 목사는 에쿠스를 타도 됩니까?' 원론적으로는 타는 것도, 안 타는 것도 가하지만, 개인적으로 안 타는게 지혜롭다 생각합니다. 하워드 스나이더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부자가 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부자가 되는 동시에 가난한 자에게 등을 돌린다는 점이며, 새로 확보한 사회적 지위로 인해 태도가 변한다는 사실이 문제이다" 사회통념을 기준으로 가급적 검소한 차, 혹시 가능하다면 친환경적인 차를 이용하는게 지혜로워 보입니다.

    다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덕 차원의 권고인 상황윤리를 절대윤리로 환원시킨 시점부터 우리는 신(新)바리새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봉고도 겨우 타고 다닌다는 사실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만인제사장론을 강력하게 설파하면서 목사에게는 다른 잣대를 강력히 갖다대는 지독한 언발란스 상황을 자초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윤리학의 기본이 다른 게 아닙니다. '내로남불은 불가하다' 아닙니까? 결국 이 모든 논의는 목사만이 아닌 그리스도인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묘수가 있습니다. 제게 에쿠스 EQ900 리무진 한 대 주시고 시험해 보세요. 물론 절대 안탑니다. 소유에 자유해서가 아니라, 소유에 천착하는 제 모습을 알기에 피할 것입니다. 성도 중에 어려운 인생들이 있기에, 혹은 그것을 절대윤리로 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실족할까봐 안 탑니다. 실족은 너무 고상한 표현이네요. 걍 '눈치'봐서 안탑니다.

    예전에는 청교도적 고결함 때문에, 시간이 조금 더 흘러서는 예수 코스프레 때문에 안탔겠지만, 이젠 유지비 많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못 탑니다. 차라리 팔아서 현금으로 쓰렵니다. 고결한 의미부여하며 더 이상은 구라 못 치겠습니다. 결론은 그저 복음에 빚진 자이기에, 누군가 그 복음을 오해하기 싫어 지혜롭게 행동하렵니다. 같이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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