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성전을 건축하다가 재정 문제 때문에 부도가 나거나 지었다 하더라도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난관에 처한 교회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무리하게 교회를 신축하다가 큰 낭패를 당하는 목회자도 부지기수다. 건축 후유증으로 교인들이 뿔뿔이 흩어지는가 하면 사이비교단이 버젓이 교회를 낙찰을 받아 사용하는 등 기막힌 일도 왕왕 벌어진다.
교회는 건축하고 싶은데 재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면 돔형 천막교회를 지어보면 어떨까.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이나 서울대공원 같은 초대형시설의 지붕을 공사한 ㈜타이가(tiger.co.kr)는 방음과 방열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등 건축비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 교회에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외 천막교회 사례를 연구하고, 국내법에 맞게 응용하여 만든 천막교회는 방음벽과 보온벽까지 설치해 찬양할 때 자체적으로 울리는 아쿠스틱효과가 뛰어나고 외부에서는 소음이 들리지 않는 장점이 있다. 600∼700여명 들어갈 수 있는 성전을 불과 2달여 만에 지을 수 있고 게다가 무주공간, 즉 기둥이 없고 천장이 높기 때문에 주중에는 체육관으로 활용하여 주민들을 위한 체육공간으로 개방할 수도 있다.
도심지교회보다는 전원교회 즉 외곽에 위치한 성전 건축에 유리하다. 이미 미국에서는 천막교회 건축이 대중화돼 있다. 새들백교회는 천막교회를 지어 아주 잘 활용하고 있는 예를 볼 수 있다. (02-586-9146).
기존의 공간을 두 배로 활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도 있다. 교회 공간의 부족 문제를 신축하거나 증·개축하지 않고 기존 교회 건축물의 빈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교회건물에 있어서 옥상이나 베란다는 잘 활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천장을 개폐시키는 돔슬라이딩시스템(tentchurch.co.kr)을 도입하면 야외공간을 아늑한 실내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
폭우나 폭설에도 안전한 돔슬라이딩 시스템은 천장을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기 때문에 용적률이나 건폐율 등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안곡로 길과빛교회(배철 목사)는 2층 옥상을 돔슬라이딩시스템을 활용해 교회 공간을 두배로 활용하고 있다. 점심때에는 교인들 전체가 모여 식사하는 식당과 친교의장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로부터 ‘하늘문이 열리는 교회’라는 소리를 듣는다(010-6331-9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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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인들, 폭력 진압 규탄하며 십자가·꽃 들고 행진
제2차 민중 총궐기 대회, 개신교·불교 등 평화의 꽃길 기도회…
기독교시국회의, "박근혜 정권,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 중단하라"
이용필 기자 f
▲ 제2차 민중 총궐기 대회에는 일반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개신교인들도 함께했다. 꽃송이와 십자가를 들고 평화 행진에 동참했다. ⓒ뉴스앤조이 강혜원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제2차 민중 총궐기 대회가 열린 12월 5일, 개신교 목회자와 교인들이 꽃송이와 십자가를 들고 평화 시위를 전개했다. 불교·천도교·원불교 등 이웃 종교와 함께 '평화의 꽃길 기도회'를 하고, 개별적으로 시국 기도회를 개최했다.
개신교·불교·천도교·원불교 소속 단체들로 이뤄진 (가)종교인평화연대는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평화의 꽃길 기도회'를 열었다. 기도회에 참석한 이들은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로 빨강·노랑 국화꽃 한 송이를 손에 들었다.
평화의 꽃길 기도회가 열린 장소는 지난 11월 14일 제1차 민중 총궐기 대회에서 시민과 경찰이 충돌한 곳 부근이다. 당시 경찰은 차벽을 설치해 집회 참가자들의 행진을 막고, 물대포를 쏘았다. 이 과정에서 농민 백남기 씨가 물대포에 맞아 큰 부상을 입었고, 사경을 헤매고 있다. 사회적으로 폭력 진압과 폭력 시위 논란이 일었다. 민중 총궐기 대회 주최 측은 제2차 집회를 예고했고, 경찰이 이를 거부하면서 또다시 마찰이 예상됐다.
그러자 종교인들이 나섰다. 조계종 화쟁위원회는 차벽이 있던 자리에 종교인들이 사람벽을 만들어 평화지대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대한성공회‧원불교‧천도교 등에 제안했고, 25개 종교 단체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가칭 종교인평화연대라는 이름을 내걸고, 기도회를 개최했다.
평화의 꽃길 기도회에는 목사, 성공회 신부, 스님, 일반 신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총인원의 60%는 불교인으로 참여율이 가장 높았다. 참가자들은 △위헌적 차벽 설치 중단 △안전 집회 및 행진 자유 보장 △집회 참가자의 과도한 폭력과 경찰 폭력 진압 중단 △정부 사과 및 재발 방지 약속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호소문을 통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이를 앞세운 배제와 다툼, 분열과 갈등의 논리는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다름을 이해하고 소통해 서로를 존중할 때 우리 사회에 다시금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발언자로 나선 이인혜 목사는 "불교계가 제안하고 종교인들이 만든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걸음이 아름다운 결실로 이어질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장기용 신부는 "민주주의와 민생이 몰락하는 절박한 현실 속에서 평화의 꽃길을 여는 것만으로도 하늘의 큰 도움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 종교인평화연대는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평화의 꽃길 기도회를 열었다.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로, 국화꽃을 들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강혜원
행진은 30분 만에 끝났다. 애당초 호소문 발표 이후 차벽으로 이동해 꽃 수백 송이를 차벽이나 경비 병력에 놓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집회에는 차벽이 설치되지 않아 행사는 행진으로 대체됐다.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은 "지금 우리의 걸음이 평화의 물줄기가 되고, 이 물줄기가 모여 거대한 강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 집회가 열리는 서울시청 방면으로 행진했다. 스님들이 선두에 섰고, 성공회 신부와 목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 모습을 지켜본 또 다른 집회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같은 시각, 성공회 서울성당 앞에서는 시국 기도회가 열렸다. 국가폭력중단과민주주의회복을촉구하는기독교시국회의는 현 정권을 비판하며, 자유로운 시위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성결행동 박찬희 목사는 "박근혜 정부는 시민을 신민으로 만들려고 한다. 대통령은 없고 마리 앙투아네트만 있다. 성경에 나오는 제사장들은 옷에 피가 묻을까 강도 만난 자를 피해 갔지만, 우리는 시민과 함께 물과 캡사이신을 맞을 각오로 가운을 입고 왔다"고 말했다. 안홍택 목사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참 평화의 길을 트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평화 집회를 위해 개신교인들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기도회에 참여한 100여 명의 목회자와 교인은 성명서를 통해 "지난 40년간 수많은 이의 희생과 헌신으로 일궈 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백척간두에 서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폭력적 진압 방식 중지 △박근혜 정권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 중단 △안전하고 자유로 집회 참여 보장 등을 촉구했다.
이번 제2차 민중 총궐기 대회는 5만여 명의 시민이 참여해, 지난 11월 14일 발생한 경찰의 폭력 진압을 규탄했다. 이와 함께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고, 세월호 진상 규명, 노동 개혁 등을 외쳤다.
우려했던 시민과 경찰의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후 4시 20분부터 시작된 행진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경찰은 차벽을 설치하는 대신 시민들의 행진을 위해 차선을 확보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청계천과 보신각을 거쳐, 백남기 씨가 입원 중인 서울대병원까지 행진했다. 기독인들은 십자가와 꽃송이를 들고 행진에 동참했다.
▲ 기도회를 마친 종교인들이 민중 총궐기 대회가 열리는 서울시청 방향으로 행진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강혜원
▲ 개신교·불교·원불교·천도교 등에 소속된 25개 단체가 이날 기도회에 참여했다. ⓒ뉴스앤조이 강혜원
▲ 국가폭력중단과민주주의회복을촉구하는기독교비상시국기도회의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국민과 함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뉴스앤조이 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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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종의 아내, 예수 태어난 땅에 서다…
사모 27명이 받은 특별한 선물 ‘이스라엘 성지순례’
▲사모들이 고대 도시가 보존돼 있는 이스라엘 벳샨국립공원 반형극장 무대에서 찬송가 79장 ‘주 하나님지으신 모든 세계’를 부르고 있다. 미국 조지아에서 온 성지 순례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다비드투어 제공
예수님은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목사는 목회를 통해 그 선물을 나눈다. 사모는 그의 돕는 배필이다. 그 사모에게 평생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님의 부르심’(요 21:17)일 것이다. 전국 각지의 사모 스물일곱 명이 ‘이스라엘 성지순례’라는 선물을 받았다. 이들은 성지 순례가 “올해 하나님에게 받은 가장 큰 선물”이라고 했다.
사모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헌신과 사랑’이었다. 하나님의 종이 된 남편에게 순종했고, 하나님의 몸이 된 교회에 헌신했고, 하나님의 양된 성도들을 사랑했다. 목회하겠다는 남편을 울며불며 말린 이도 있었고, 남편을 목사로 만들었다고 천국 가서 하나님께 자랑하겠다는 이도 있었다. 사모들이 있기에 지금 우리 교회가 있다. 국민일보와 다비드투어(대표 이윤)가 공동 기획한 여행을 최근 기자가 동행했다.
“은퇴 전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큰 선물”
사모들이 주일 늦은 밤 인천공항에 모였다. 일행 중 최고 연장자인 박향순(70·부천 만평교회) 사모는 아이처럼 들뜬 얼굴이었다. “목사님 저녁 밥 차려주고 얼른 챙겨서 왔어.” 박 사모는 한참 연하인 기자가 편한지 말을 낮췄다. 대부분 초면이지만 사모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일행은 친숙감을 느끼는 듯했다.
박 사모는 비행기를 탑승하는 시간까지 내내 혼잣말로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처음 가는 해외여행지가 이스라엘인 게 얼마나 고마워. 예수님 태어나신 곳에…. 목사님과 난 내년엔 은퇴하려고 해. 이번 순례가 은퇴하기 전에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큰 선물이야.”
첫날 사모들은 1947년 구약사본이 처음 발견된 쿰란 동굴에 갔다. 바로 앞 사해(Dead Sea)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사모들은 몸에 점토를 바른 채 해변에 일렬로 서서 일명 ‘미스코리아’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었다. 허리에 손을 올리거나, 한 손을 들어 흔드는 것이다.
신나게 찍는 중에도 “성도들이 보게 되면 민망한데” “목사님이 이건 하지 말라고 할 텐데”라고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버스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이어지는 와디켈트 계곡에 가는 길이었다. 현지 안내를 맡은 조형호 재이스라엘 한국문화원 목사는 “창밖을 한번 보십시오. 황량하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 광야를 40년 동안 헤맸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는 하나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이유입니다”라고 했다.
목회도 어쩌면 광야의 연속이다. 박 사모의 얘기다. “서른일곱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어. 우리 목사님이지. (웃음) 버스 토큰(Token) 하나가 없어 서울에서 부천까지 걸어 다닌 적도 있어. 지난해까지 성도가 스무 명쯤 됐는데 근처에 종말론 내세우는 큰 교회가 생겼어. 아이고, 거기로 다 빠져나가고 지금은 딱 다섯 명 남았네.” 그는 교회 자모실에서 잠을 자고 기도한다. 왜 그러냐고 묻자 “그게 편해”라고 했다.
강원도 산골 사택 섬돌 위 ‘냉이 한줌’ 아직도 생생
사모들은 순례 중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오순흥(49·원주 화평교회) 사모는 처음 남편에게 청혼을 받았을 때 거절했다. “사모할 자신이 없었어요. 근데 목사님(남편)이 ‘제 옆에만 있어주면 된다’고 해서 마음을 돌렸어요. 하지만 사모가 그런 자리가 아니더라고요.” 91년 강원도 정선에서 1시간 더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시골 임지로 갔다.
산골이기 때문에 연세가 많은 어르신을 차로 모셔야 할 일이 많았다. 차 살 돈을 마련하기위해 도시 교회의 여름 수련회 신청을 받았다. “제가 밥을 해주고 청소를 했어요. 어느 여름 쉴 새 없이 일했더니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더라고요. 한 성도의 집으로 도망을 갔어요. 목사님은 제가 혹시 정말 물에 빠져죽은 건 아닌가 하고 어두워질 때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찾으러 다니고….”
사모는 쉴 새 없이 봉사해야 하는 자리였다. 순례 중 점심 도시락을 먹고 정리를 할 때다. 식사를 먼저 마친 사람이 일어나 도시락을 정리하자 한 사모가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이상하네”라며 불편해했다. 늘 성도들보다 먼저 봉사하는 습관이 배어 있기 때문이었다.
오 사모의 기억 한 토막. “강원도 교회 사택에 이사 갔을 때예요. 봄이었는데, 누군가 섬돌 위에 냉이 한줌을 올려놓고 갔더라고요. 어느 성도가 가져다 놓은 것이었겠죠? 얼마나 좋던지….” 어제 일인 양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아름다운 기억도 많아요. 하나님이 목회자에게 주시는 은혜가 말할 수 없이 커요.”
김화자(69·성남 영광교회) 사모는 평생 시각장애인인 목회자 남편과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목회를 했고, 2년 전 남편이 소천했다. 김 사모는 “임종 직전 남편에게 ‘나 당신 참 사랑했어’라고 말하니 남편이 손을 펴면서 편히 눈을 감더라”며 눈물을 보였다. 지금도 그는 시각장애인 성도 10여명과 말씀을 나누며 교회를 지키고 있다.
“내가 암에 걸려 다행”이라 기도
목회자의 딸인 조혜경(55·여수 여천은현교회) 사모는 신앙이 깊지 않던 남편을 결혼 후 목회자로 만들었다. “남편을 위해 기도를 많이 했어요. 저는 나중에 천국 가서 하나님이 뭐했냐고 물으시면 할 말 있어요. ‘하나님, 저는 남편을 목회자로 만들었어요’라고.”
박호경(60·대구 갈보리은혜교회) 사모는 순례지 중 갈릴리의 베드로수위권 교회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하나님이 목회자와 사모에게 명한 것이 ‘내 양을 먹이라’는 것이잖아요. 제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데 성지를 다닐수록 드는 생각은 우리의 영원한 성지는 우리 마음과 삶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남의 ‘땅끝마을’에서 온 강미애(51·해남 함께하는교회) 사모는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 말씀을 전한 갈릴리 호숫가, 십자가에 매달린 골고다 언덕을 묵묵히 걸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찬송 부르고 기도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어요.” 강 사모는 99년부터 해남에서 목회를 해왔다.
“남편이랑 차를 타고 가다가 바닷가에 아담한 집과 터가 마음에 들어 목회를 시작했어요. 남편은 어디 가다가 마을에 교회 십자가가 안 보이면 ‘여기 교회가 들어오면 좋겠네’ 그러면서 다른 목회자에게 소개해주곤 했어요.” 함께하는교회는 성도 수가 많지 않은 시골 교회다. 강 사모는 학습지 교사로 생활비를 벌어 오다 2013년에 그만뒀다.
“사실 제가 그때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어요. 재발률이 높기 때문에 5년까진 안심할 수 없어요. 이번 여행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그는 김화연 인솔자의 자상한 안내에 따라 일주일간의 순례를 무사히 마쳤다.
“처음 암 진단 받고선 왜 나냐고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일주일쯤 지나니 기도가 바뀌더라고요. 만약 저희 남편이 걸리면 교회는 어떡합니까. 성도들이 걸리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남편이나 성도가 아니라 제가 병에 걸리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이것이 우리가 만나는 사모의 기도이다. 이 사모들에게 하나님이 준비한 큰 선물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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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폭탄 목회자 또다시 노역살이
김홍술 목사, 강정 운동으로 벌금 300 판결
고수봉 기자
▲ 7일 노역에 들어가는 김홍술 목사에게 광화문 40일 단식을 함께 한 방인성 목사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 ⓒ에큐메니안 집회와 시위 과정에서 벌금폭탄을 맞은 목회자가 판결에 저항하며 노역을 선택했다. 광화문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40여일간 단식을 벌인 김홍술 목사(부산 애빈회)이다.
▲ 방인성 목사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 반대 시위에서 도로를 불법점거하고 교통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5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시위 참여자에게 무분별하게 벌금을 부과하는 정부의 방침에 저항하는 의미로 자진 노역을 택했다.
서울 종로경찰서부터 그는 자유의 몸이 아니었다. 유치장으로 향할 때나 경찰서 밖으로 나갈 때, 그의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몸은 포승줄로 묶였다. (사진 제공 방주일)
김홍술 목사는 2011년 제주 강정해군기지 건설 반대에 집회에 참여했다가 ‘업무방해’와 ‘공무집행방해’로 기소, 300만원의 벌금을 판결 받았다. 하지만 김 목사는 판결과 강정해군기지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 30일의 노역을 선택했다.
기독교강정대책위 임왕성 목사는 “노역투쟁이 강정의 지킴이들과 주민들에게 새 힘을 불어넣을 수 있길 원한다”는 기도로 김 목사의 안녕을빌었다.
말씀을 전한 방인성 목사(개혁연대 공동대표)는 “광화문에서 함께 굶으면서 김 목사가 동생이 됐지만, 그의 모습에 많은 감동과 가르침을 받았다”며, “그는 세례 요한처럼 예수의 빛과 생명이 필요한 때에 이를 증거하는 이었다”고 전했다.
방 목사는 “우리 모두가 이 어둠의 세력에 맞서 작은 촛불이 되어 싸우자. 우리가 인간임을 잊지 말자”고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이어 김홍술 목사가 기도회 참가자들에게 노역에 들어가는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그는 “애빈회 주최 노숙인 초청 성탄만찬회를 준비하던 중 착찹한 마음으로 열차에 몸을 싣고 서울까지 올라왔다”며, 제주 강정해군기지 반대 운동에 대해 “국가기관의 위력과 폭압적 집행은 문제 삼지 않고, 반대운동의 몸부림치는 저항은 ‘위력’이고, ‘폭력’이라면서 강제연행, 체포, 구속, 재판을 받게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불편한 진실과 현장을 정직히 고발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잘 되게 하려함에 있따”며, “국가기관이 국민을 누루고, 압박하여 강제로 이끌고 가는 나라가 아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끝으로 그는 “기득권을 쥐고 오만방자한 자들에는 분연히 맞서더라도, 겸손히 그 기득권을 나누려는 자와 기득권으로부터 억눌린 자에게는 한 없이 너그러운 예수를 바라보는 성탄이 되었으면 한다”며, “권력과 자본이 역사에서 심판을 받느냐는 것은 작은 국민 한사람, 한사람에게 달렸다고 경고하고 싶다”고 심경을 전했다.
이로써 김홍술 목사는 벌금 300만원에 해당하는 노역 30일을 치름으로써 성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됐다. 집회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과 법원의 과중한 벌금형이 민주적 의사 표현과 양심적 인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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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떠도는 'IS 성직자의 크리스천 가정 아기 살해'는 거짓
잘못 재가공돼 SNS 유포, "이슬람 개종 거절시 여자는 강간, 남자는 총살, 아이는 참수형"
김동문 yahiya@hanmail.net
아래는 '이슬람 개종을 거절하는 크리스천 가정의 아기를 IS(Islamic State) 성직자가 공개적으로 밟아 죽이는 장면'이라며 지난해 가을에 돌았다가, 지금 다시 온라인과 SNS에 퍼지고 있는 사진이다.
한 페이스북 친구에게 이 같은 내용을 공유받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진과 글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사진 속 인물들의 옷차림과 표정, 생김새가 낯설었다. 아랍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진 속 인물들은 무슬림 복장을 하고 있지 않다. IS가 장악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 지역이나 시리아 북부 지역 옷차림은 전혀 아니다. IS 성직자로 소개되는 사진 속 인물도 아랍 지역 이슬람 성직자 옷차림을 하고 있지 않다. 사진과 사진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내용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뭔가 이상했다.
그렇다면 사진 속 인물과 그를 둘러싼 이들은 어디 사는 누구인가. 이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함을 풀기 위해서는 수고가 필요하다. 출처를 찾아봤다. 사진 속 무대를 인도로 지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방글라데시였다. 사진이 찍힌 시점은 2010년 봄이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암자드 파키르(Amjad Fakir)라는 방글라데시인이었다. 사람들에게 그는 이크발 치스트(Iqbal Chist)로 불리는 예언가다. 사람들에게 신적인 치료 능력자로 받아들여진다. 방글라데시 북동부, 잘랄라바드로 불리는 인구 50만의 실헷 지역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악한 것을 몰아내 준다는 그만의 치유 의식 장면을 담은 것이었다. 아래 사진들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의 사진 모음은 Activist Hub에서 옮겨 온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사진이 IS가 크리스천 아기를 살해하는 장면이라고 하면서 온라인과 SNS에 돌게 되었을까. SNS에 돌아다니는 글은 영문판 자료가 원출처다. 영문판 자료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2014년 9월 23일에 올라온 글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핀터레스트라는 이미지 공유·검색 사이트다.
여기서는 단순하게 사진만 올라와 있다. 2014년 9월 28일을 전후로 많은 사이트에서 동시에 사진과 글을 공유했다. 단지 한 사이트에서 번져 간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올해도 1~5월까지 매달 새롭게 이 자료를 공유하는 사이트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놓고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달랐다. 시간과 장소, 대상과 내용 모두가 달랐다. 의도성 없이 이렇게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각색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글판이 2014년 10월 1일 온라인에 노출된 것을 보면 영문 사이트에 대대적으로 이런 주장 글에 공유된 것 같다. 한 단체의 강 아무개 씨가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에 옮겨 둔 것을 재공유하는 식으로 한국교회 안팎에서 공유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한글판의 공유 과정을 살펴본다. 강 아무개 씨의 카카오스토리에 실린 내용을 확인할 수 없어서 2차 공유 자료들을 개략적으로 짚어 보고자 한다.
한국에서는 2014년 10월 1일 포털 사이트 다음 카페에, 10월 2일 다음 블로그에 소개되었다. 이 글들의 인용 출처는 두 개가 나와 있다. 블로그 링크는 아래 주소이지만 출처는 강 아무개 씨의 카카오스토리로 보인다. 게시 글에 걸려 있는 링크는 지금 닫혀 있다.
온라인에서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내용은 전체적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조금씩 첨삭되는 느낌이 든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충격을 넘어 분노하게 만드는 사진 한 장…. 고민하다 올립니다. 아래 슬라이드 포스터는 이슬람으로 개종을 거절하는 크리스천 가정의 아기를 IS 성직자가 공개적으로 밟아 으깨어 죽이는 장면을 포착한 것입니다.
자칭 평화의 종교? 개종 거절시 여자는 강간, 남자는 총살 내지 십자가형, 아이는 참수형. 이슬람의 현주소입니다. 종북 세력 못지않게 대한민국 생존에 위험한 이슬람의 확산을 적극 막아서지 않으면 현재의 미국·유럽처럼 한국 내에서도 IS 같은 극단주의 조직이 자생하게 될 것입니다."
이 포스팅을 다시 인용한 곳은 다른 사이트였다. 10월 9일에 올라갔는데, 그 내용은 1차 한글판 게시물과 크게 차이가 없지만 약간의 변형이 있었다. 그리고 10월 11일, 갓톡에 비슷한 내용의 글이 올려졌다.
"아래 사진은 이슬람으로 개종을 거절하는 크리스천 가정의 아기를 IS 성직자가 공개적으로 밟아 죽이는 장면입니다! 이슬람은 개종을 거절하면 여자는 강간, 남자는 총살, 십자가형 아이는 참수형을 합니다! 이슬람의 확산을 적극 막아서지 않으면 현재 미국, 유럽처럼 한국 내에서도 IS 같은 극단주의 조직이 자생하게 될 것입니다."
2015년 12월 현재 다시 갓톡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이 공유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IS와 전혀 무관한, 2010년 봄에 방글라데시 매체에서 보도한 사진을 IS가 크리스천 가정의 아기를 살해하는 장면으로 묘사한 것은 단순한 실수로 보이지 않는다. 부주의했다고 해도 그 정도는 지나쳐 보인다(영문판 글을 염두에 둘 때).
이 내용을 한글로 번역하고 다듬어서 한국교회에 공유한 이들은 이 글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것 같다. 사진이 담긴 영문판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이슬람의 잔악성을 알리고 경계할 것을 요청하기 위해 다시 사용했던 것 같다. 이런 일련의 행동에는 부주의함 또는 이슬람에 대한 고정관념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사진과 내용이 이슬람을 악하다고 묘사하기에 적절한 자료로 보이기에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공유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건강한 토론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건강한 비판을 위해서는, 상대는 악하다고 혐의한 상태에서 자신의 신념을 주장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보다 사실에 바탕을 둔 근거를 제시하고, 그만큼만 비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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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표지 코란으로 바꿔 행인에게 읽어 줬다, 반응은?
폭력적이거나 여성 비하하는 구절 소개…코란인 줄 알고 거부 반응
이은혜 기자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최근 SNS를 통해 이슬람과 코란에 대한 루머가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이슬람과 상관없는 일을 다르게 재가공하거나, 코란의 일부 내용만 발췌해 악의적으로 편집한 글이 교인들을 통해 퍼져 나간다.
사람들은 성경과 코란의 내용을 얼마나 구분할 수 있을까. 네덜란드의 코미디언 두 명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재밌는 실험을 진행했다. (동영상 바로 가기)
이들은 먼저 서점에서 성경을 산 후 내용을 샅샅이 뒤졌다. '여성은 남성에게 순종적이어야 한다', '남색하는 자는 돌로 치라' 등 오늘날 현실과 맞지 않거나 폭력성을 띄고 있는 구절에 밑줄을 긋고는 겉표지를 코란으로 바꿨다.
▲ 실험을 진행한 두 코미디언은 성경 겉표지만 코란으로 바꿔서, 사람들에게 코란에 있는 내용인 것처럼 성경 구절을 읽어 줬다. (<파테오스> 기사 갈무리)
겉표지는 코란이고 속 내용은 성경인 책을 들고,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밑줄 친 구절을 읽었다.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3)", "내가 칼을 너희에게로 가져다가 언약을 어긴 원수를 갚을 것이며(레 26:25)", "내가 너희의 산당들을 헐며 너희의 분향단들을 부수고 너희의 시체들을 부숴진 우상들 위에 던지고(레 26:30)."
실제로는 성경 구절이지만, 코란에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한 젊은 남성은, 누군가 이런 이야기로 가득한 환경에서 성장한다면 분명히 사고 체계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한 여성은 그들(이슬람교인)이 믿고 있는 것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고 했다.
두 코미디언은 여성을 비하하거나 동성애자를 돌로 치라는 등 네덜란드 현행법과 맞지 않는 부분도 사람들에게 읽어 줬다.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딤전 2:11-12)",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3)."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떻게 지금 같은 시대에 여성을 이렇게 가르치고 있느냐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또 다른 여성은 이렇게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글을 완벽한 진리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거슬린다고 했다. 20대로 보이는 여성은 이제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단어도 그에 맞춰 덜 폭력적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자신들이 들은 구절이 모두 코란에서 발췌한 내용이라고 믿고 한 말이었다.
질문자가 코란이라고 쓰인 껍데기를 벗기고 'BIBLE(성경)'이라는 글씨를 보여 주자 이들은 모두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성경이라고 알려 주기 전까지만 해도 "성경에는 긍정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성경은 덜 잔인하고 더 평화롭다"고 대답하던 사람들이었다.
인터뷰에 응했던 젊은 남성은 "나도 (이슬람교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이미 내가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대답했다.
▲ 지학수 목사(부평 임마누엘교회)
감리회 감독회장 선거사태 백서를 최초 기획하고 자료들을 모아 편집해 낸 지학수 목사를 만나 발간의 취지와 배경, 전망 등을 인터뷰 했습니다. (기자 주)
1. [감리회 선거사태 백서](이하 백서)라고 하셨는데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까? 분량도 상당하던데요?
-백서에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선거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지난 8년간의 사태속에 나타난 현장의 생생한 소리들이 담겨져 있고, 개인과 단체들의 주장이 있으며, 각종 회의록과, 언론을 통해 배포된 다양한 기사들이 있습니다. 또한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쓴 연구 논문들이 (백서에는) 담겨져 있습니다.
물론 자료는 수없이 많지만 이중 엄선하여 총 5,600여 페이지로 마무리 하였고, 학술 논문을 합하여 약 6,000페이지 백서가 완성되었습니다.
2. 왜 백서를 만들 생각을 했나요?
- 저는 2007년에 감리사가 된 후 2008년 첫 총대가 되어 안산총회에 참석했다가 충격적인 폭력 사태를 목격하였습니다. 그 후 2010년 재선거에 참여하고, 전감목 활동에 참여했는데 머릿속에는 늘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안산 총회 이후에 다양한 단체에서 갖가지 감리회를 개혁할 수 있는 좋은 개혁안들을 제시하는데도 거의 반응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물음에 대해 스스로 찾은 답은 지난 감리회 선거사태에 대한 성찰과 회개 없이 제시되는 개혁안은 사상누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각종 자료들을 모으고 분류하여 2007년 선관위 회의부터 시작하여 2015년 4월 전용재 감독회장과 신기식 목사의 합의까지의 자료들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3. 백서를 만들 때 어려웠던 것은 무엇인가요?
-개인이 보관하고 있는 자료와 언론에 게제 된 기사 등은 협조를 얻어서 수집할 수 있었지만 주요 회의록 등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서 접근하거나 자료를 구하는 일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앞으로 본부에서 운영하는 각종 회의의 회의록은 감리회 홈페이지에 공개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발언이나 표결에 더욱 신중할 것이고 위원들도 위원회 활동에 책임감을 갖고 임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백서의 기준(원칙)은 무엇인가요?
-백서 발간위원회를 조직하고 1년에 가까운 토론과 회의를 통하여 백서는 첫째, 객관적, 합리적, 학문적이어야 한다. 둘째, 개인을 일방적으로 변호하거나,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편향된 내용들을 지양한다, 셋째, 법정 자료와 언론 자료와 각종 회의록과 단체의 성명서와 자료집 등을 날자 별로 편집 한다는 원칙을 정하였습니다.
이 원칙 하에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 편집 했으며, 임의로 가감하거나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아쉬움은 초기에 나온 기사아래의 댓글이나 개인이 심혈을 기울여 쓴 기고문 등을 다 넣지 못한 것입니다. 초기 댓글들은 때로 본 글보다 더 날카롭게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글들이 많았는데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댓글과 개인 기고들만 모아서 별도의 자료집을 내고 싶습니다.
5. 불편한 진실이긴 하지만 감리회 사태는 KD와 본부라는 두 개의 커다란 세력간 다툼이 있었습니다. 감리회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다를 수 있겠는데요, 편향된 내용은 없나요?
-이 자료집은 130년 감리회 역사의 응축으로 보았고, 분명 차세대에 중요한 교훈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일차적으로 편향된 것들은 배제시켰고, 학문적으로도 학술 논문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료들을 모았기 때문에 철저하게 개인 의견들은 가능한 빼고 법정 자료, 언론 자료, 단체 자료, 각종 회의록 등을 선별하였습니다. 때문에 매우 중립적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6. 편향된 시각도 역사일 수 있는데 뺏다는게 아쉽군요. 백서 작업은 어떻게 하였나요?
-2012년도에 종교교회에서 최초로 모임을 가지면서 가칭 “감리회 감독회장 선거사태 백서 발간위원회”를 조직, 공동위원장에 전용철 목사(목원) 최이우 목사(감신) 고신일 감독(협성)이 맡았으며, 위원으로 정명기 목사, 박신진 목사, 김상현 감독, 유기성 목사, 송정호 목사, 안희군 목사, 이상윤 목사, 김영민 목사, 성백걸 목사 등이 있으며, 연구 교수로 이덕주 교수(감신) 김흥수 교수(목원) 이후천 교수(협성)로 구성을 했는데 이들이 큰 방향을 잡아 주었습니다. 이후 후원회를 조직하여 소액의 후원금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소송 사태가 발발하여 활동을 중단한 채 자료만 모으다가 2014년 활동을 재개 하였는데 당시 장단기발전위원회 위원장이셨던 임준택 감독께서 백서의 필요성을 확신하시며 저를 장단기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위촉해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주셨지만 자체 예산 부족으로 발간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 현재, 자료집을 완성하였고, 소장 학자와 목사 등을 통하여 학술 논문도 완성 되었습니다. 성백걸 교수(백석대) 박종현 교수(관동대) 서형석 교수(남서울대) 고성은 교수(목원대) 최태관 교수(감신대) 임찬순 박사(UMC) 최민수 목사, 이상윤 목사, 신기식 목사(당사자 논문)가 학술 논문과 현장 논문을 썼습니다.
7. 학술발표회를 가지셨는데 선거사태의 조명은 다음세대가 해야 하지 않나요?
-“모으면 역사고 흩어지면 쓰레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혀진 역사로 간주될 것이고 소실된 자료는 복구할 수 없다는 생각에 지금 자료집을 만들어 두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리회사태를 돌아보는 학술 논문이 막 시작됐을 뿐입니다.
지난 8년의 시간은 감리회에 있어서 굴욕과 수치와 오욕의 시간이었습니다. 피눈물 나는 기간이었다고 말은 하는데 실상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잊혀지고 아무도 관심이 없다가 다시 선거가 돌아오면 또다시 구태가 재현 됩니다. 이런 현상을 목격하면서 아무도 반성과 회개를 하지 않고 있다는 참담한 심정에 더욱 백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번 논문은 시작을 알리는 것에 불과하며 백서를 가지고 더 유능한 목회자와 교수들에 의하여 감리회 발전과 부흥에 크게 이바지 할 논문들이 계속해서 나올 것을 기대하고 또 논문을 써 주시기를 간곡히 바라고 있습니다.
8. 학술 심포지엄은 어떻게 기획됐나요?
-“백서 발간위원회”가 발간한 이 자료집을 기반으로 5개월여의 시간 동안 학자들이 논문을 썼습니다. 학술 논문 발표는 “감리교 역사와 신학연구소”(소장 유동식 박사)가 주관했습니다. 당당뉴스와 기독교타임즈에서 후원해 주었고 논문 발표는 9명의 연구진들이, 논찬은 김기택 감독(전 임시감독회장)께서 해 주셨습니다.
9. 백서에 담긴 감리교 선거사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무엇인가요?
-이번 학술 심포지엄에 공개되었지만 1차적으로는 장정의 미비와 왜곡, 권력욕에 근거한 위원회 정치와 신학의 부재에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고 진단을 했습니다. 따라서 처방은 입법개혁을 통하여 왜곡된 장정을 바로 세우고, 권한을 분산시키며, 선거브로커가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 선거법의 개정과 지금 시대에 맞는 신학(교회론, 구원론, 기독론 등) 제공을 처방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10. 백서가 7권으로 되어 있군요. 분량이 만만치 않습니다. 비용이 많이 들었을 텐데 어떻게 예산을 마련했나요? 판매할 계획이 있나요? 가격은요?
-내용이 방대하여 수집, 정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이에 따른 비용도 많이 들었지만 발간위원회의 원칙은 ‘소액 후원만 받는다.’ ‘이해당사자나 특정 단체의 후원은 받지 않는다’ 등이었습니다. 어쩔수 없이 소액 후원금에 사비를 충당해서 예산을 집행했습니다.
백서는 총 7권 한 질의 발간원가만 25만원 정도인데 100질을 출간할 경우에 그렇고요 소량일 경우 가격이 많이 올라가더군요. 오늘 현장에서 10질 정도 주문을 받았습니다. 후원을 받아 출간한 백서를 우선적으로 대학도서관, 본부 자료실 등에는 기증할 예정이고 백서가 필요한 개인이나 단체에는 발간비용만 받고 판매할 계획입니다. 30만원을 입금하고 주소를 보내주시면 택배로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11. 이 백서가 감리회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감리회 감독회장 선거사태는 우리의 치부를 드러낸 것처럼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만, 외부의 시선은 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선거로 인한 부작용은 한국 교단 어디에나 있는 일들이지만 유독 감리회만 이 치부를 드러내 치료하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 교단에서는 역시 감리회는 살아있고, 한국교회의 희망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오늘도 장로교에서 참석하신 한 장로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지요. 사태발발 후 법정 다툼과 이전투구로 끝이 났다면 다를 바 없겠지만 그나마 스스로 정화 능력을 가지고 양측이 성숙한 자세로 합의하고 사태를 종결하였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저는 자료를 모으고 논문을 쓰고 개혁과제를 제시하는 백서를 발간하는 것은 감리회가 앞으로 한 세대를 부흥으로 이끌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12. 감리회 사태의 한 축인 신기식 목사와 전용재 감독회장의 소송정국을 끝내게 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지요? 어떻게 했나요? 그래서 감리회 사태는 이제 종식되었나요?
-저는 지난 8년간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들의 문제를 법원 판결로 끝낼 이유가 없다고 보았고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16개월 동안 양 측을 오가며 수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물론 상호 불신의 골이 너무 깊어 그것을 불식 시키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갖게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목회자로서, 지도자로서의 책임과 사명이 있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가 시작되습니다. 주변의 반대도 많고, 여러사람들이 끼어들면서 수차례 합의가 깨지기를 반복했지만 결국은 양측이 성숙하게 합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합의 도출을 위하여 노력을 했습니다만 실제적으로 본인의 역할은 양측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양측에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미래를 포기할 것이냐?
언제까지 개인감정으로 수렁에 빠져 있을 것이냐? 이제는 과거를 거울삼아 개혁 통하여 미래를 열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이것이 설득이라면 설득일 수 있겠지만 양측에 탈출구가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감독회장은 지위를 위협하는 소송에 직면해 있었고, 신기식 목사는 오랜 소송으로 피로감이 누적되어 있었지요. 그랬지만 “이제 그만하자”고 말해 주는 사람이 둘 사이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감리회 역사 앞에 섰을 때 오명을 남길 순 없었지요. 감리회라는 공동체에 대한 의무와 책임감이 있었고 동역자 의식이 뚜렷하여 대화가 시작되자 급속하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쌍방이 소송취하에 의한 감리회 선거사태 종식이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감리회사태가 종식되었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당시 대립했던 세력 간 다퉜던 여진이 남아 있고, 무엇보다 감독 감독회장 선거에서 금권선거가 사라졌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구조적으로 선거 지향적이고 권력지향적인 감리회 문화가 지난 8년의 과정과 달라 진게 거의 없기 때문에 사태는 언제든지 재발 될 수 있는 불씨를 안고 있습니다. 감리회 선거사태는 완전히 종식되었다고 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13. 과거에 매이지 말고 개혁을 통하여 미래를 건설하자고 설득했다고 하셨는데 아무래도 그 열매는 지난 입법의회로 평가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개혁이 되었다고 보는가요?
-너무나도 아쉽고 속상합니다. 그러나 개혁을 전제로 합의를 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입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책임이 합의를 주선한 본인에게 있다는 비난과 책망도 들었습니다. 이 또한 달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결과는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나 책임은 아닐 것입니다. 단지 아직 개혁의 여건이 성숙되어지지 않았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사회를 본 감독회장, 장개위를 이끈 위원장, 입법의원 모두 공동의 책임이며, 감리회 전체가 개혁을 하지 못하면 공멸한다는 분위기를 깨닫지 못하는 입법위원들도 책임이 없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앞으로 있을 임시입법에서는 의회법 중 총대제도 만큼이라도 개혁적으로 개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며, 교역자 생활보장법도 합리적인 대안이 만들어져 모두 목회에 전념할 수 있는 희망을 주는 방향으로 개정되었으면 합니다. 이번에 하지 못한 개혁은 다음에 또 도전하면 된다고 봅니다.
14. 9명의 논문위원을 선정하셨는데 어떤 기준이었나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주제로 썼나요?
-논문위원을 구성하는데 상당한 애를 먹었습니다. 일단 과연 지금 사태를 검증하는 것이 타당한가? 지금 교권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는데 이들에 대하여 논문을 쓸 수 있겠느냐 등등 너무 많은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간에 인간관계가 얽혀 있어서 선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각 분야에서 비교적 현 사태와 직접 연관이 없으며, 다양한 분야의 소장 학자나 목회자, 당사자 등의 명단을 작성하여 접촉해서 지금 선정된 분들이 논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번 논문에서 밝히듯이 개인의 잘못이나 책임을 추궁하는 방향이 아니라 그 동안의 관행과 교권에 대한 지나친 욕심, 제도의 미비와 장정의 왜곡 등에서 온 구조적 문제로 봤으며, 특히 지금 시대를 진단하고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재의 신학 부제에서 문제점을 찾아보려고 하였습니다.
15. 앞으로 다른 계획이 있나요?
-입법의회에서 개혁 법안이 나올 것이라고 믿고 백서발간과 학술 심포지엄으로 이 사태를 정리하고, 이제 감리회가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하여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특히 감독제도, 선거법과 재판법 등이 금권선거를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에 또다시 불법과 탈법. 금권, 패거리 선거로 진흙탕 싸움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닌지 매우 걱정스러운 상황입니다.
지금 계획은 최종 장정개정안이 나오면 그것을 검토하면서 총체적으로 가칭 “입법의회 평가회”를 심포지엄 형태로 열어서 장정 개혁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 반개혁적인 내용은 없는지 꼼꼼히 점검하여 대안을 제시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를 위하여 주변에 있는 분들과 깊이 있게 논의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바람은 감리회의 모든 소송이 끝나고 개혁입법이 이루어지면 그 동안 선거와 소송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모든 이들이 함께 모여서 화합의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감리회와 모든 목회자,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 좌절과 절망의 시기를 보냈고, 사회의 혹독한 비난을 받으며 선교에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으니, 이제는 감리회를 향하여 화합과 일치가 이루어졌으며 사회를 향하여는 소송을 끝내고 이제 미래를 향해 간다는 사실을 선포하여 모든 감리회 구성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줘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선교를 방해한 가해자이며 피해자 아니겠습니까? 이제 모두 손에 손을 잡고 대화합의 길로 가야 합니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2014년 2월, 조용기 목사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후 "하나님이 나를 진주 만들려고 고난을 주셨다"는 말을 남겼다. 그를 영적 아버지로 여기는 콩히 목사는 교회 돈 400억 유용에 대한 법원의 '징역 8년' 판결에 불복하며, 자신을 사도 바울에 빗댔다.
중요한 재판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심정을 털어놓던 그는 이번에도 페이스북을 이용했다. 11월 27일 콩히 목사는 '기독교인은 항소할 수 있는가?'라는 항소의 변을 올렸다. 그는 변호사들과 함께 재판 결과를 검토하다가 발견한 몇 가지 잘못된 점 때문에 법원에 항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11월 27일 콩히 목사는 페이스북에 법원의 '징역 8년'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콩히 목사 페이스북 갈무리)
콩히는 바울의 일생을 설명하며, 감옥에 가게 될 자신을 바울에 비유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법정에 한 번, 로마인의 법정에는 세 번 섰다. 총 네 차례나 심판대에 섰으나 선고에 굴복하지 않고 항소했다"며 사도 바울도 네 번이나 법정에 섰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항소를 정당화했다.
바울이 순교할 운명이었지만, 당시 법체계가 보장하는 모든 일을 시도한 후에 순교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항소하면서 얻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바울은 유럽에서 놀라운 사역의 열매를 맺었다. 그는 '천국의 비전'에 순종했다"고 전했다.
콩히는 바울이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항소를 택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모든 증거들이 바울에게 유리했고,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명하신 꼭 이행해야 할 명령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바울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얻은 로마 시민의 특권으로 다시 법정에 설 수 있었다고 했다.
콩히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그는 "지난 5년의 재판 과정이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여러분의 기도 덕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했다. 항소하게 되면 앞으로 진행될 재판 과정도 길고 힘들 것이다. 또 다른 좋은 결과를 위해 기도를 부탁한다"고 했다.
콩히 목사는 1심 판결로 2016년 1월 11일 감옥에 가야 한다. 징역 8년이 선고될 때 변호인단이 콩히가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해 달라고 재판부에 건의해 그의 보석 기간이 늘어났다.
▲ 콩히 목사는 징역 8년을 선고받은 후에도 여전히 시티하베스트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재판부가 형 집행일을 내년 1월 11일로 정했기 때문이다. (시티하베스트교회 설교 영상 갈무리)
형 집행까지 해외로 출국하는 것 외에 별다른 활동의 제약이 없는 콩히는 이전처럼 시티하베스트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한다. 외부 강사를 초청하는 주에는 찬양을 인도하고, 아닌 경우에는 직접 설교했다. 매주 콩히가 단상에 올라서면 교인들은 두 손을 뻗어 그를 위해 방언 기도를 했다.
지난주 콩히는 '두려움 극복하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그는 "인생에 어려운 순간이 오면 부정적인 이미지는 다 잊고 오직 말씀만 명상하고 기도하라"고 했다. 그는 "내가 여러분의 목사인 것이 정말 감사하다. 하나님이 나를 이 강단에 얼마나 더 세우실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약속한 것들을 이루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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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목사를 비판하면 안 되는가
교회와 목회자 문제, 침묵만 능사 아냐
심용환
목사를 비판하면 안 된다는 말이 망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있다. 목사를 비판하면 안 된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사실 이들이 하고 싶은 얘기는 하나다.
'교인들은 묵묵히 교회를 세우는 일에만 전념해야 한다.'
이 간단한 말을 하기 위해 온갖 수사를 동원한다. 왜 목사를 비판하면 안 될까. 목사도 사람이고 국민이며, 국가법·교회법 아래 있다. 대통령·국회의원도 잘못하면 비난을 받고, 대기업 총수도 법률을 위반하면 처벌받고, 학생들도 잘못을 하면 혼나는데 왜 목사는 비판하면 안 된다고 할까.
또 기독교인의 덕은 침묵이라고 한다. 기독교인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투표하고, 의견을 내고, 온갖 자유와 권리를 누린다. 그런데 왜 교회 일, 그것도 교회의 잘못에 관해서만은 침묵해야 하는가.
교회 운영 시스템을 보자. 신학교에서 수련하고 안수받은 다음에 목사가 될 수 있고, 청빙 과정을 거쳐야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다. 모든 교회에는 당회와 공동의회가 존재하고, 당회와 의회를 구성하는 성도들 역시 오랜 교회 생활 가운데 절차와 신임 과정을 거쳐서 집사와 장로가 된다.
매해 예산이 짜이고, 여러 교회 활동을 제직별·부서별로 모여서 의논하고 소통하며 결정한다. 그런데 왜 유독 교회의 부정적인 측면, 목사의 비리와 추문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사실 교회는 '말'의 천국이다. 설교, 간증, 성경 공부가 있고, 큐티 나눔이 있다. 이보다 말을 많이 하는 집단이 우리 사회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 잘못을 지적하거나, 문제를 고쳐야 한다는 말을 왜 못하고, 침묵하는 것을 덕이라 하는가.
목사는 모세, 다윗과 다르다
많은 목사들은 모세, 다윗을 주님의 종이라 말하며 자신들이 이들의 계보를 잇는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모세와 다윗과 오늘날의 목사를 수평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근거는 부족하다. 구약에서 모세의 권위는 절대적이며, 히브리 역사의 정체성 그 자체이다. 구약사 전체를 돌아볼 때 누가 모세의 권위에 비견할 수 있겠는가.
다윗이 국가적인 전성기를 열었다는 측면에서 모세를 계승·완성했다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 역시 세속적 지배자였지 모세 정도로 종합적인 권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신약을 보더라도 예수님의 행적이 모세와 비견해 서술되거나
본인 스스로 모세적 전통을 완성·극복하려는 태도를 보이신다. 다윗과 비견되어 서술하는 부분은 빈도도 낮을뿐더러 예수께서 스스로 다윗의 자손 됨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는 구절도 등장한다. 단순한 유명세나 정치적 관점을 벗어난다면 모세에서 다윗으로 내려오는 계승론적 관점은 막연한 통념에 불과하다.
모세, 다윗처럼 구약을 쓰거나 히브리적 전통을 만들어 낸 목사가 어디 있는가. 차라리 직업적인 특성상 목사는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비슷할 텐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성전 휘장이 찢어졌기 때문에 더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필요하지는 않다. 또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만인사제론이 모든 개신교도들의 신앙고백이라면 목사가 특별한 대우를 받을 이유가 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칼뱅은 성직자 출신도 아니었다.
간혹 신약에 나오는 교회 여러 직책 중 하나로 목사가 인용되는 경우가 있다. 목사는 '사도'를 계승한 것도 아니다. 신약에는 오히려 장로나 집사 직분의 형성 경위는 자세히 써 있는 반면 목사에 대한 구절은 극히 미미하다.
성경에 장로나 집사가 목사를 비판하면 안 된다는 구절이 있던가. 사도 베드로나 바울도 성도들과 소통했고, 이방인 전도나 음식 문제 그리고 로마 상경 문제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비판
누군가를 '비판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신 분은 예수님 본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비판하지 않으셨던가. 아니다. 조목조목 비판하셨다. 바리새인의 장단점을 꼼꼼히 지적하시되 그들의 허례허식을 남김없이 공박했다.
장로들의 전통 역시 예루살렘 입성 전후로 주요 비판 대상이 된다.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거나, 금식을 거부하는 등 여러 의도적인 행동을 통해 예수님은 끊임없이 현실의 구석구석을 문제 삼았고, 논쟁하고 비판하셨다. 이런 상황 가운데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면 그 맥락과 문맥과 저의를 이해하고 상황에 맞추어서 적용해야 한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예수님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교회에서 주일마다 강조하고, 우리가 삶의 지침으로 삼는 바가 무엇인가. 예수님의 삶 아닌가. 예수의 제자로 그 길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문제 제기하고 논쟁하며 비판하셨다. 온갖 사회악을 직면하시면서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몇몇 사람들은 목사를 비판하면 연약한 자들이 넘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연약한 자들은 누구인가. 신앙이 약하다고 그의 이성적 판단 능력이 약하다고 보면 안 된다. 초신자라 하더라도 대부분 연령대에 따라 그에 걸맞은 사고를 하며 살아가는 일반인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정말로 배려한다면 오히려 죄의 뿌리를 근본부터 도려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죄악이 창궐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세상이 타락했어도 교회가 엄격하고 도덕 수준이 높고 죄에 대한 회개와 치리 과정이 명확하다면 오히려 연약한 자들의 신앙심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왜 안 하는가. 연약한 자들을 생각한다면 교회는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정의롭고 윤리적이 되어야 한다. 교회 안의 여러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적극성을 가져야만 한다.
말만 죄, 회개, 변화를 강조하지 않고, 실제로 그것을 교회에서 구현해 나간다면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강건해지고, 초신자들이 성숙한 신자가 되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알아서 심판하실 것이다?
한국교회에 문제가 많지만,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다. 심판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물론 심판이 하나님의 영역이라면 당연히 그 심판은 하나님만이 하실 것이다. 그런데 목사의 전횡을 '비판'하거나 교회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행위를 심판이라고 볼 수 있을까. 죄를 죄라고 지적하고, 처벌을 요구하고,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지 판결을 내리고, 그에 따른 응분의 조치를 취하는 게 하나님의 심판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