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있는 설교 듣기 / 성도들은 과연 어떤 자세로 2015-12-16 10:03:44 read : 2925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승구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설교와 종교적 강의들이 넘쳐 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많은 설교와 종교적 강의들이 있는데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더욱 더 가깝게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 더 많이 있다.
또한 그 결과들 중의 하나로 나타나는 괴이한 현상이 있다. 즉,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일이 많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이 세상이 가는 대로 따라 가고, 또 때로는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이 세상보다 더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이 괴이한 현상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들 가운데 중요한 하나로 우리들의 설교와 종교적 강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설교와 종교적 강의를 하는 분들에게 있는 문제를 철저하게 드러내고 바른 방향으로 그 내용과 태도를 이끌어 가도록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 이제는 설교와 종교적 강의를 듣는 성도들에게 과연 어떤 자세로 설교와 종교적 강의를 들어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물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성도들은 과연 어떤 자세로 설교와 종교적 강의를 듣고 볼 것인가?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설교와 종교적 강의를 들으면서 두 가지 태도를 동시에 가지도록 강하게 유도하고 있다.
그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 설교나 종교적 강의를 듣는 것이다. 사실 이것으로도 상당히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과연 하나님 앞에서 설교를 듣는다면 우리는 부지런히 하나님께서 그 설교나 강의를 사용하셔서 내려 주시려는 뜻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마음으로 항상 하나님과의 대화 가운데서 설교나 강의를 듣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성경은 “그것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상고하는 태도를 촉구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비추어서 옳으면 그 설교 말씀과 강의를 자신의 사상에 반영하도록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서 옳지 않은 것이면, 그것이 아무리 감동적이거나 아무리 유익이 되는 것이라도 그것에 무슨 가치를 크게 부여 하지 않는 것이 성도들의 바른 태도일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실천해야 할 책임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 만일에 이 시대 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두 가지 일을 제대로 실천한다면, 참으로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상하게 해석하거나 그 말씀을 왜곡하고, 그리하여 성도들을 이상한 데로 인도하는 이들이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한국 교회 전체를 위하여 정신을 바짝 차리고서 진정 하나님 앞에서 성경에 근거하여 설교를 듣고, 종교적 강의에 임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성도들이 그렇게 하는 일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몇 가지 생각을 같이 나누어 보고자 한다.
이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비교적 쉽게 바른 설교와 강의와 그렇지 못한 것들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아래서 제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에 제시하는 것들은 우리들의 <책임 있는 설교 듣기>를 위한 잠정적인 시금석과 같은 것이다.
설교의 내용과 사상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하자
무엇보다 먼저 성도들은 설교자와 종교적 강의자가 말하는 내용과 사상을 정확히 파악해 보려고 해야 한다. 그것이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그것을 성경에 비추어서 내 것으로 하든지, 아니라고 하든지 무슨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 설교와 강의는 우리들로 하여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태도로 살도록 하려는 것인지를 잘 살펴 들어야 한다.
그 후에 그 내용을 성경과 비교해 보자
비교적 성경에 대한 전반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이 일이 비교적 쉬울 것이고, 성경적 지식이 적은 분들은 이 일이 조금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설교자가 말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비교하여 과연 어떤 것인지를 잘 살피는 일은 종국적으로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일이다.
이 일을 잘 하기 위해서 성경을 정통적 기독교에서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를 비교적 잘 알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통적 기독교가 성경을 해석해 온 바는 비교적 안전한 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성경을 읽고 성경에 대한 설교와 강의를 들으면서 이단적 방향으로 나아 갈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적 신조와 그 해석들에 친숙하여서 정통적 기독교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를 익숙하게 알고 그 빛에서 우리에게 들려오는 이야기를 잘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그 설교나 강의가 주어진 성경 본문에 충실한 것인지를 잘 살피면서 듣고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내용은 옳지만 주어진 성경 본문과 맞지 않는 것은 엄밀하게는 좋은 설교나 좋은 강의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성경의 내용에 근거해서 생각을 가다듬고 고치고 해야 하기에 언제나 본문 자체의 의미에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성도들도 전문적인 성경 해석자들은 아니라고 해도, 주어진 본문의 자연적 의미와 앞 뒤 관계를 잘 관찰할 때 자연적으로 알 수 있게 되는 문맥적 의미와 관련하여 주어지는 해석이 일치하는 지의 여부를 물어야만 한다. 문맥만 잘 살펴도 이상한 성경 해석의 80%는 방지하고 거부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된 그 본문의 의미가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성경의 전체 사상과 과연 어떻게 조화 될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바르게 해석된 말씀은 결국 나의 기독교 사상을 그만큼 풍성하게 할 것이고, 그 결과 나는 보다 성경적 사상에 가깝게 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바르게 해석도지 않은 말씀은 성경의 전체적 가르침이 아닌 것을 부분적으로 강조하여 나의 사상을 기형적(畸形的)인 사상으로 만들 것이다. 그런 사람들로만 구성된 교회의 모습이나 한국 교회에 그런 이들이 더 많은 그런 상황은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
이와 같이 한국 교회 전체에 대한 깊은 우려에서라도 나의 사상을 기독교적으로 바르게 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하고, 그것을 위해 바른 설교를 많이 듣는 일에 힘써야 한다.
사상을 표현하는 도구인 설교 언어의 특성에 주의하라
그런데, 만일에 어떤 이가 기독교적인 사상을 전혀 비도덕적인 표현들로만 가득 차게 하여 전달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교회에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듣는 이들도 사용되는 언어의 성격과 그것이 줄 수 있는 묘한 뉘앙스에 신경을 쓰면 설교와 강의를 들으려고 해야 한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모임에서 오고 가는 언어는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며, 이 사회 속에서 기독교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안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성경의 사상을 전달하는 데 적합한 언어인가를 모든 이들이 깊이 신경 쓰며 말하고 들어야 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 교회 안에서는 설교자나 강의 자들이 욕을 해가며 설교를 하는 일들이 소위 부흥사들과 그런 분위기를 지닌 분들에게 많이 있었다.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때서부터 강한 비판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고, 그 결과로 무엇인가 일을 이루어 내니 그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이요 축복해 주신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만 계속해 간다면 우리네 교계는 정말로 희망이 없는 곳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내에서의 이야기나 심지어 사적인 언어의 사용에서도 욕을 하거나 하는 이상한 언어가 우리 주변에 있지 않도록 하는데 매우 힘을 써야 할 것이다.
또한 설교자나 강의 자가 나이가 많고 듣는 이들이 비교적 어리고 젊은 성황에서도 그것이 공적인 상황이라면 늘 앞에 나가서 말하는 이는 경어를 쓰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야 얼마나 더하랴?
우리의 설교와 강의가 공적인 일인 만큼 경어를 쓰는 일이 일반화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소위 은혜만 되면 된다는 미명 하에 마구 하대해가며 설교하거나 말하는 이상한 분위기가 불식되어야 할 것이다.
설교하거나 강의하는 태도에도 주의하라
아무리 좋은 것은 가르친다고 해도 그것을 전달하는 태도가 옳지 않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서도 마땅한 판단을 해야 한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 말씀의 의미를 전달하는 일에서야 그 태도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설교를 드는 이들은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 그 말씀이 요구하는 태도로 우리에게 나아오는지, 아니면 성경이 보여 주는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나아오는 지에 대해서도 깊이 신경 써야 만 한다.
그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성도들이 위와 같은 자세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의 비교 가운데서 설교나 강의를 들은 결과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성경을 사용하여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말씀에 따라 더욱 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생각과 사상에 복종시키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참으로 좋은 설교와 강의를 들은 후에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께 의존하게 되고, 매 순간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며, 그것을 잘 표현하는 말을 하고 활동을 하며, 이 땅 가운데서 주께서 세우신 교회를 신약 성경이 말하는 모습으로 드러내는 교회의 지체 역할을 바르게 감당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서 잘 드러내는 일에,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최선의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도구나 그런 성도이며 겸하여 목사가 된 분들은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부합하는 설교를 하며, 그 언어와 태도와 삶도 가장 성화된 방향을 항해 나아갈 것이고, 그 설교나 강의에 비성경적인 내용이 없으며, 사람을 무시하거나 욕하거나 하대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또한 성도요 겸하여 목사가 된 이들이 이와 같이 설교하고, 성도들이 진정 이런 태도로 하나님 앞에서 설교를 듣는다면, 우리 주변에는 이런 시금석에서 벗어나는 분들의 설교와 강의에 대해 성도들이 안타까워하는 일이 많이 생길 것이다.
그 성도들은 하나님께 그런 분들을 위해 그것이 고쳐지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께 바르게 기도하는 이들이라면, 결국 그와 같은 이들이 그 기도의 결과로 점차 고쳐지게 되든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고치지 않는다면 그렇게 바르게 기도하는 참된 성도들은 그런 이들의 설교와 강의는 듣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이 시점에서 기도하며 바라야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곧 바로 이와 같이 되리라고 기대하는 일을 쉽게 허용하지 않을 만큼 심각한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참으로 그와 같은 현실이 지속된다면 그것은 우리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들 가운데 참되지 않은 설교자들과 목사들이 넘쳐 나게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다 엉터리라는 것을 잘 보여 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개개인 성도들은 자기만을 생각하지 말고 한국 교회 전체를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서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설교 듣기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다양한 기독교 매체들은 특히 주의하여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주변에 이상한 설교가 범람하게 만드는 주역이 기독교 매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점들을 각 매체 담당자들은 잘 살펴서, 아무리 돈을 많이 주는 이들이라도 바르지 않은 설교와 강의를 하는 이들은 매체에서 배제시키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책임 있는 일을 하는 자세가 될 것이다.
개개인 그리스도인들과 기독교 매체들이 이런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만일 우리가 지금과 같은 현실을 지속적으로 방치한다면 결국 우리는 배교한 교회의 전형이 될 것이다.
그런 위험에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주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어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각성하여 성경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게 하여 주시며, 각 매체 담당자들이 제 기능을 잘 발휘하게 하도록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