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설교 분석 - 감성의 설교자 프란체스코 2015-12-16 13:50:33 read : 2875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김기홍
우리에게 성 프란시스로 알려져 있는 프란체스코, 그의 설교는 아주 감성적이었다. 목소리도 부드럽고 풍부했다. 청중에게는 그로부터 강한 감동적인 감정이 몰려 들어왔다. 자연스러운 표정과 자세는 언제든지 설교 시작하기도 전에 마음이 열리게 만들었다.
오늘날에도 감정적으로 청중과 교감을 잘할 뿐더러 그 감정상태의 시작과 높낮이와 절정을 잘 이끌어갈 줄 아는 설교자는 사람들을 움직인다. 설교는 원고 내용의 전달이 다인 줄로 알면 대단히 부족한 것이다. 어느 설교자이건 청중과의 감정적인 교감을 늘 연구해야 한다.
잠깐 학문적인 말을 좀 한 뒤에 계속 하자. 버드휘스템에 의하면 보통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눌 때 말을 통해서는 35%이하밖에 의사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65%는 비언어적인 형태로 전달된다. 언어전달의 거의 두 배 정도나 된다. 여러 사람을 상대로 할 때는 더욱 비언어적인 요소가 힘을 쓰게 된다.
보통 사람이 하루에 말하는 시간은 합쳐봐야 10분에서 11분 정도라고 한다. 한 문장 말하는 데 2초반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언어 외에도 외모, 복장, 몸짓, 음성, 분위기 등에 의사소통을 더 의존한다. 귀만이 아니라 오감, 무의식, 직관 등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언어보다는 비언어적 요소들을 더 믿는 경향이 있다. 들뜬 음성과 불안한 얼굴로 “여러분 아무 것도 무서워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확실하게 돌보십니다” 한다면 어떨까? 분명히 말한 내용은 진리이지만 사람들은 말한 사람의 음성과 표정을 믿어 버린다.
메라비안은 언어적 요소와 비언어적 요소의 의사소통의 효과를 공식으로 만들었다. 전체 커뮤니케이션의 7%만이 연사의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38%는 음성, 55%는 표정에 의해서 된다. 그러니 아무리 해도 말만으로는 십분의 일의 효과도 내지 못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설교자는 비언어적인 요소를 개발시켜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청중의 감정이 열리도록 분위기를 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마음이 열리게 만들면 무슨 말이든 경청할 것이다. 물론 그런 다음에는 그리스도의 복음 메시지를 심어야 한다. 자기 욕심만 채우는 설교를 한다면 아무리 감동을 주어도 악한 설교자가 될 것이다.
프란체스코는 이 면에서 탁월한 설교자였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 그가 숲에 들어가서 설교 연습을 할 때는 자연을 느끼면서 그리하였다. 사람들 앞에서 할 때는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함께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했다.
본래 그를 따르는 프랜시스칸들은 설교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였다. 도미니칸과는 다르게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행동했다. 힘든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그들을 도왔다. 그리고 철저하게 가난을 자기 신부로 삼아 살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에서부터 나오는 실천이었다. 이것을 가르친 사람이 프란체스코였으니 그의 설교는 그러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철저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개인적인 삶은 극단적이라 할 만큼 금욕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설교는 절대로 금욕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의 설교는 타오르는 불처럼 열정과 감성으로 가득 찼다. 그는 사랑과 동정심과 인간적인 면을 표현했다. 그래서 청중은 마음으로부터 그와 만났다.
당시 이태리에서는 부자들이 힘을 쓰며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자들 간에는 세력 다툼이 심화되어 각각의 이권에 따라서 갈라져 있었다. 프란체스코는 늘 서로 증오심과 이기심을 버리라고 강조했다. 기독교 공동체의 영광과 형제애를 강조했다.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평화’였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그의 노래 내용대로이다.
프란체스코의 감성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 그가 새들에게 한 설교이다. 그가 한 마을에서 설교할 때 제비들이 요란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그는 설교를 마칠 때까지 조용히 하라고 명했다. 그러자 제비들이 복종한다. 조용한 가운데 그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시작하였다.
당연히 그의 설교는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들은 마을을 떠나서 설교자를 따르려고 하였다. 수도사가 되려는 것이다. 프란체스코는 그들을 저지했다. 그리고 집에서 일상 생활을 하며 수도하도록 권했다.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큰 위로와 확신을 얻었다.
그가 다른 마을로 가다가 길에서 조금 떨어진 숲을 보았다. 거기에는 수없이 많은 새들이 앉아 있었다. 그는 함께 가던 동료들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새들에게 다가간다. 새들은 도망하지 않았다. 그가 설교를 시작하자 나무에서 날아와 땅에 내려왔다.
그의 설교가 마쳐지고 축복이 내려질 때까지 새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걸어다니면서 새들 사이를 지나고 심지어는 그의 옷이 스쳐도 새들은 그대로 있었다. 얼마나 자연스러웠고 얼마나 사랑의 확신으로 충만했던가. 이제 그가 새들에게 한 짧은 설교를 들어보자.
나의 형제 자매인 새들이여, 그대들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우러러 찬양해야 합니다. 어느 때건 어디에 있든지 그렇게 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대들이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또한 두 겹 세 겹의 아름다운 옷으로 입혀주셨습니다.
더욱이 그대들 종족이 멸절되지 않게 하시려고 그대들의 조상을 노아의 방주로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나의 형제 자매인 새들이여, 하나님이 그대들에게 공기를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심지도 않은 음식을 그대들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주셨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대들이 안전히 거할 수 있는 산과 계곡을 주셨습니다. 둥지를 틀 수 있는 높은 나무들을 주셨습니다.
바느질하는 법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대들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셨습니다. 또한 그대들의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나의 형제 자매인 새들이여, 하나님께서 끊임없는 사랑으로 이처럼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형제 자매인 새들이여 그대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기 바랍니다.
프란체스코가 새들에게 설교를 마치자 모든 새들이 일제히 날개를 펴고 머리를 숙여 절했다. 그리고 일제히 노래를 하며 거룩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혜를 감사했다. 하긴 누구든 이렇게 짧고 아름답게 설교하면 열심히 듣고 감사할 것이다.
이 전설 같은 이야기는 어느 정도 진실인지 모르지만 그의 깨끗한 마음과 탁월한 감정이입을 설명하고 있다. 눈을 감고 그 모습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풍부한 감정이입인가. 새들도 그것을 느낀다. 우리가 긴장하면 청중도 그것을 느낀다. 그래서 분위기는 긴장된다.
긴장하면 절대로 프란체스코의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성령에 충만한 설교자는 긴장하지 않는다. 그 분위기를 즐긴다. 만약 긴장이 되면 그 감정부터 정리해야 한다. 편안한 마음이 된 뒤에 설교가 시작되어야 한다. 사랑과 확신의 마음으로 청중 한 사람씩 바라보라.
프란체스코를 보면서 설교자들은 비언어적인 요소를 충분히 훈련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많은 경우에 청중의 감정에는 상관이 없이 자기 입장에서 자기 말투로 자기 할 말만 하고 들어가는 설교자가 너무도 많다. 설교자는 지금 청중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거기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전할 내용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말을 얼마나 많이 주느냐가 아니다. 지금 청중과 내가 커뮤니케이션이 되고 있는지를 살피면서 설교해야 한다. 그래야 그 좋은 내용이 그들에게 물이 흘러 들어가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때로는 밀물처럼 때로는 폭포수처럼 밀려들 것이다.
주목할 것은 프란체스코의 일생이다. 그가 금욕하고 가난했음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새들처럼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오직 하나님과 하나되어 살아간 것이다.
그의 삶이 곧 설교였기에 그의 감정이입도 자연스러웠고 감동도 강한 것이다. 그만큼 그의 마음은 믿음 안에서 늘 평안했다. 결국 설교자의 삶이 곧 설교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