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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과 변혁이 만나는 북촌 안동교회 / 예수 안에는 '예'만 있습니다
    2009-03-27 09:25:26   read : 6553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전통과 변혁이 만나는 북촌 안동교회

    토요일 저녁 첫 주일예배 시작...100년 저력 지닌 이웃 섬기는 열린 공간
    [뉴스앤조이]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고 그 사이로 싱그러운 봄바람이 부는 화요일 정오. 날씨 때문일까. 북촌한옥마을 한가운데 있는 안동교회(황영태 목사)가 북촌의 고유한 멋을 더하고 있다. 때마침 울리는 교회 종소리는 정겹기까지 하다.

    북촌한옥마을은 서울 종로구의 가회동·삼청동·송현동·재동 일대의 마을을 일컬어 부르는 이름으로 한양 북쪽에 있어 '북촌'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100년을 함께 한 안동교회. 100년이라는 역사와 어울리지 않게 규모는 크지 않다.

    그렇다고 웅장한 멋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예배당이다. 아마 십자가나 교회 팻말이 없어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교회라는 생각이 들도록 '딱' 교회처럼 생겼다.

    하지만 100년이라는 시간은 무시 못하나보다. 교회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하나둘 발걸음을 멈추고 교회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교회 안에 발을 들여 보기도 한다. 100년을 지내온 보이지 않는 안동교회만의 분위기가 사람들 시선을 잡기에 충분한가보다.

    안동교회는 나라의 미래를 신앙과 교육에서 찾은 양반들이 만든 교회다. 1908년 개화파 지도자 박승봉, 유성준, 김창제 등은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생각하며 기호학교(지금의 중앙중고등학교)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09년 3월 김창제의 집에서 첫 예배를 드리며 안동교회는 시작했다. 100주년이라는 교회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열린 교회, 에큐메니칼교회로 잘 알려진 안동교회. 초대 목사는 한국 장로교에서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은 7명 목사 중 한 명인 한석진 목사다. 한 목사는 7명의 목사 중 유일하게 상투를 틀지 않고 짧은 머리를 고집했다.

    30년 가까이 담임목사로 시무했던 유경재 원로목사는 여성장로 1호를 배출하고, 민주사회를 위해 앞장섰다. 일제하에서 한글을 지키다가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 전신)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순국한 한글학자 이윤재 선생은 안동교회 장로였다. 또 안동교회 바로 앞에 살던 제2대 윤보선 대통령도 안동교회 교인이었다. 지금은 그의 장남 윤장구 장로가 대를 이어 출석하고 있다.

    안동교회 주일 첫 예배는 토요일 오후 5시에 열린다. 일요일 오전 11시가 2부, 오후 1시 30분이 3부 예배. 주일 예배를 이틀 동안 진행한다. 황영태 목사는 "주일에도 일해야 하는 자영업자나 교회에서 봉사하는 청년 등 불가피하게 주일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좋다"며 토요 예배 취지를 설명했다.

    황영태 목사는 "안동교회가 100년이라는 전통과 어울리게 선비 정신을 바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앞장서는 역할에 최선을 다 할 것이다"면서 "원로목사님 목회 철학을 잘 이어 받고 지역주민을 섬기고, 열린 교회의 모습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교회는 교인 모두가 '1인 1섬김의 현장 갖기 캠페인'을 실시해 신월복지관, 생명밥상공동체, 벧엘의집, 아름다운실버 등 사회복지 시설을 직접 찾아 봉사활동을 하며 이웃 섬기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교회 건물을 지역주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로 부속 한옥 건물인 소허당을 개방해 길 가는 사람 누구나 들어와 차 한 잔하며 쉬어 갈 수 있도록 쉼터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가을쯤에는 골고다에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구레네 시몬을 담은 '구레네 시몬 7부작'을 공연할 예정이다. 황 목사는 "안동교회는 대형 교회들이 할 수 없는 기독교 전통 음악의 맥을 잇고 있다"며 "또한 곧 예배당 파이프오르간을 개방해 누구나 와서 연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황 목사는 지역 주민을 위해 개방한 소허당을 소개했다. 하늘의 은총을 입고 허심의 마음에서 즐겁게 웃음 짓는 집이라는 뜻을 지닌 소허당은 안동교회 한옥 별채로 북촌의 사랑방이다.

    이곳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후 1시 30분에 단전호흡 강좌가 열린다. 물론 지역 주민과 교인을 위한 강좌다. 황 목사는 "처음에는 교회에서 무슨 단전호흡이냐는 우려와 편견의 목소리도 있었다고 들었다. 유경재 목사님 때부터 진행한 강좌고 단전호흡에 대한 편견일 뿐, 지금은 교인이나 지역 주민들 모두 관심 갖는다"고 말했다.

    소허당은 매주 토요일 무료로 개방한다. 아마 북촌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소허당에서 차 한 잔 마셔봤을지 모른다. 전통차를 무료로 제공한다. 황 목사는 "지역 주민과 북촌을 찾는 분들을 위해 열어 놓은 공간이다. 저도 가끔 토요일 소허당을 찾은 분들과 얘기 나누는데 얼마 전에는 약주를 하신 분이 오셔서 저한테 인사를 했는데…(웃음).

    종교를 떠나 그냥 편안하게 소허당에 와서 휴식을 얻고 가는 것만으로도 참 보기 좋더라. 소허당이 동네 사랑방처럼 누구나 부담 없이 들러 얘기 나누고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황 목사는 "안동교회가 이웃을 섬기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계획한 건 많은데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게 많다"며 "앞으로 이웃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안동교회를 기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매주 화요일 오후 1시 30분 소허당에는 단전호흡을 하기 위해 교인과 지역 주민이 모인다. 교회에서 단전호흡을 한다는 게 뜻밖이지만 강사 민경숙 권사는 단전호흡을 기도라고 정의했다. 민 권사는 근육질환을 심하게 앓던 중 한 목사님에게 단전호흡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놀랍게도 단전호흡을 하고 난 후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민 권사는 남들에게 단전호흡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유경재 목사에게 제안했고, 유 목사는 받아들였다.

    민 권사는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호흡이 기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숨을 마실 때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내쉴 때 '죄인인 저를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면 이게 곧 기도고 자연스럽게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신이 맑아지면 기도에 집중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오랜 시간 기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전호흡하면 단학선원 또는 기체조라는 편견이 따른다. 이에 대해 민 권사는 "국선도라는 우리 전통 체조에서 나온 호흡이다"고 강조했다.정효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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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주인공



    며칠 전 목사가 되기 위한 전도사들의 심사가 있었다. 어느 전도사의 설교문을 심사하던 중 한 목사가 매우 심각하게 질문을 던졌다.

    "전도사님, 욥기의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전도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을 질문한다는 듯 "욥입니다"라고 답했다.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목사는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설교문이 이렇게 밖에 안 되는 것이잖아요. 욥기의 주인공이 욥이라고 생각하니 성경을 읽어도 깨닫지 못하고 메시지를 얻지 못하는 거예요. 욥기의 주인공이 어떻게 욥입니까? 하나님이지요.

    어느 성경이나 주인공은 언제나 하나님이에요. 아브라함도, 다윗도, 제자들도 다 엑스트라예요. 성경을 이렇게 읽어야 메시지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성경 읽기만 그렇겠는가? 우리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라 생각하는가? 우리 인생의 주인공은 언제나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고 주님이시다. 이것이 분명하면 인생의 길도, 문제의 답도 분명해진다.
    유기성 목사(선한목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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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이 자살했을 때 동생이 자살할 가능성이 높은가?

    김충렬 박사의 ‘살자’ (11)- 자살의 생물학적 원인



    ▲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1. 성경에 나타난 자살과 그 유형
    2. 한국인의 자살 실태와 기독교인의 자살
    3. 기독교인 자살의 심각성
    4. 자살의 역사적 이해-(1) 고대(古代)
    5. 자살의 역사적 이해-(2) 교부시대
    6. 자살의 역사적 이해-(3) 르네상스 시대
    7. 자살의 역사적 이해-(4) 종교개혁 시대
    8. 자살의 역사적 이해-(5) 계몽주의 시대
    9. 자살의 역사적 이해-(6) 낭만주의 시대
    10. 자살의 역사적 이해-(7) 19-20세기
    11. 자살의 원인-(1) 생물학적 원인

    지금까지 우리는 자살을 역사적으로 고찰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살의 개념이 시대마다 달라졌고, 더 나아가 기독교에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자살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 이런 노력으로 자살에 대한 이해는 상당히 넓어졌다. 계속될 수 있는 자살의 진위를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히 대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만들었다. 실제로 자살은 계속해서 일어났고, 여전히 계속되는 진행형이다. 다만 시대적인 상황과 관점에 따라 이해가 달라지는 양상을 보였다.

    이제는 이런 자살에 대해 원인론적으로 연구해야 할 때다. 사람은 왜 자살하려는 것일까? 이런 원인을 연구하다 보면 왜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까지도 자살하려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자살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면서 그 대강이 조금은 드러났지만, 보다 심도있게 원인을 파악해 보자는 것이다. 이에 기초해 가장 궁금한 점을 몇 가지로 구분해서 다루고자 한다.

    1) 자살의 생물학적 원인

    자살의 생물학적 원인은 자살을 연구하는데 일차적이다. 자살의 생물학적 이해는 신체 조건이나 신경 전달물질의 균형, 그리고 자살의 유전인자 등이 관심의 대상이다. 신체적 문제는 자살하려는 사람이 어떤 신체적 조건이나 상태에서 정신이 통제력을 잃고 무력화될 수 있는가의 문제일 수도 있다. 여기서 자살의 유전적 측면은 유전인자를 가진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자살의 유전적 측면은 어느 정도 자살하는 당사자와 무관하게 유발된다는 점에서 책임이 다소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자살의 생물학적 연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 자살의 유전학적 요인

    사람들은 자살의 생물학적 요인 중 ‘유전’ 여부에 가장 관심이 많다. 자살하는 사람은 집안에 (자살) 유전인자가 있다고도 한다. 자살은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집안 내력이라는 생각도 갖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결혼할 때 집안에 자살한 사람이 있는지를 고려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자살의 유전성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살도 정말 유전될까? 자살이 유전되는가의 문제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자살 행동을 파악해야 한다. 자살 행동(suicidal behavior)이란 자살 사고(suicidal ideation)와 자살 수행(completed suicide), 그리고 자살 시도(suicidal attempt) 등을 포함한다. 자살과 관련된 여러 행동을 포괄해 관련시키는 것이다. 자살 사고는 아직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상태의 자살에 대한 생각이나 징조를 가진다. 자살 사고 또는 생각은 자살 시도와 수행보다 흔하며, 남성보다 여성에게 2배 많이 나타난다.

    여성는 힘들고 어려운 때마다 자살을 생각하지만, 실제로 자살 시도 때는 남성보다 죽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편이다. 그러나 남성은 시도 자체는 적지만 실제로 죽는 편을 택해 자살율은 여자보다 높다. 이런 문제는 자살 행동이 자살 의도, 자살 방법, 치명도, 충동성이나 공격성과 충동성이 높고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 자살 행동은 여성보다는 남성에게서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자살은 실로 복합적인 측면이 작용해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자살 사고는 정신과적 질환과 관련이 있지만 자살 심각도는 자살 사고부터 자살 시도, 그리고 자살 수행까지가 연속선상에 있다. 또 극단적인 방법은 종종 약물남용이나 의존, 그리고 정신과적 질환 등이 관련있다. 여기에 자살 수행은 비교적 낮은 정도의 자살 행동으로 자살하려는 생각을 하고 자살하려는 행동을 감행해 보는 비교적 낮은 단계다.

    그에 비하면 자살 시도는 확고한 자살 계획을 갖고 매우 치명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심각한 행동부터 사회적 위기 등의 스트레스 때문에 위험하지 않은 방법을 동원, 충동적으로 시행한 자살 행동까지를 포함한다. 이런 자살 행동과 관련하여 유전자의 관련성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세로토닌계와 관련된 유전자다. 세로토닌계는 많은 연구를 통해 기분, 충동성, 공격성 또는 자살 행동과의 관련성이 밝혀졌다. 실제로 자살에서 세로토닌계와 관련된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많은 편이다. 세로토닌은 뇌 전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는 호르몬으로 하나의 세로토닌이 수많은 신경을 상대로 전체 뇌의 상태와 분위기를 형성하고 조절한다. 이는 세로토닌이 활성화된 사람은 평상심을 잘 유지할 수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세로토닌의 기능에 대해서는 활성화 상태와 비활성화 상태를 정리하면 이해가 쉽다. 세로토닌은 자율 신경에 영향을 줘 몸을 충분히 준비된 상태로 만든다. 세로토닌 신경은 각성 상태에서 낮은 빈도로 규칙적인 자극을 보내는데, 이것은 자동차차 엔진에 시동을 걸면 저속으로 규칙적인 회전이 시작되는 것과 같다.

    몸을 움직이기 위한 준비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침 기상과 동시에 세로토닌 신경에서 자극이 잘 발생하면 쉽게 일어나 상쾌한 심신상태를 맞이할 수 있다. 이는 세로토닌이 뇌에서 작용하는 중요성을 의미한다. 자살과 관련된 세로토닌계 유전자들은 대개 TPH(Tryptophan hydroxylase)유전자, 세로토닌 전달 유전자, 그리고 세로토닌 수용체 유전자들을 말한다.

    이외에 MAO-A(Monoamine oxide A)유전자, COMT(Catechol-O-methytreansferase)유전자, 도파민 수용체(Dopamine reseptor) 유전자 등도 자살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다.

    (2) 자살 행동의 가족 연구

    자살 행동이 가족간에 유전되는 경향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유전성은 정신과 질환의 유전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자살 위험이 높은 기분장애 환자의 친척들은 자살률이 높지 않다는 보고가 있다. 그럼에도 자살의 유전적 경향은 여전히 무시되지 않는 편이다. 이는 생물학적 특성이 자살과 관련이 높음을 시사한다.

    쌍둥이 연구에서 이란성 쌍생아보다 일란성 쌍생아들이 자살 수행 및 행동 일치율이 의미있게 높았다. 오스트리아에서 시행된 쌍생아 연구는 일란성 쌍생아의 심각한 자살 시도 위험이 17배 높다고 보고했다.

    양자 연구에서는 자살을 수행한 입양자의 생물학적 친족에서 자살률이 약 6배 정도 높았다. 이런 결과에 의하면 자살 행동은 43% 정도는 유전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나머지 57% 정도는 환경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여기에 브렌트와 만(Brent & Mann)은 자살 또는 자살 행동의 유전성은 정신과적 질환의 유전성과 충동-공격성 또는 다른 성격 특성의 유전성 등에 의해 결정될 수 있으며, 이 두 유전성이 공존한다면 자살 행동의 위험이 매우 증가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자살 위험인자는 반드시 유전적 요인만은 아니다. 환경적 요인으로도 빈발하고 있다. 오늘날 자살자의 90% 이상은 정신과적 질환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자살의 약 60%는 기분장애의 경과 중 나타나고 나머지는 정신분열병, 알코올 중독, 약물중독 그리고 인격장애 등 다른 정신과적 질환과 관련있다.

    정신병리 유무가 자살의 강력한 예측인자이지만, 정신과적 질환을 가진 환자 중 소수만이 자살을 수행하고, 자살자가 반드시 정신과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격성, 충동성, 불안, 절망감, 비관주의, 알코올 등 약물중독, 아동기 학대의 과거력, 두부손상 또는 신경학적 질환, 흡연 등 임상적인 특징도 자살 위험을 증가시키는 요인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자살의 위험인자이면서 동시에 자살의 중간표현형(intermediary)으로 제시된다. 자살과 관련된 생물학적 연구에서는 자살 행동뿐만 아니라 이런 중간 표현형인 위험 인자들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만(Mann)은 자살 행동의 스트레스 소인 통합모델(stress diathesis model)을 제시했다. 이 모델은 자살 위험이 정신질환의 심각도와 관련이 없고, 어떤 자살과 관련된 소인의 변화에 의해 자살이 유발된다고 설명한다. 자살의 생물학적 혹은 유전적 소인을 가진 사람에게 생활사건 또는 스트레스가 가해졌을 때 자살 행동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이런 자살 행동에서 비관·절망, 그리고 공격·충동성은 자살의 주요 소인이 된다. 이러한 소인에 성별·종교·가족력 또는 유전적 요인·아동기 경험·콜레스테롤 농도를 낮추는 요인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들 중 일부 요인은 세로토닌, 콜레스테롤 그리고 다른 생물학적 요인과 관련이 있다.

    (3) 자살 행동의 신경생물학적 요인

    자살 행동은 신경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이해된다. 신경생물학적 관점이란 뇌신경의 변화가 자살을 유발하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인간의 생각을 조절하는 뇌의 작동성과 기능성이 모두 뇌신경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뇌의 원만한 기능과 조화는 그대로 정신 작용으로 이어진다. 이런 신경생물학적 요인은 신경에 변화를 주는 이른바 신경전달물질의 조건이 중요시된다. 신경생물학적 요인은 앞에서 다룬 유전자 기능과 유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뇌신경 변화에 영향을 주는 중복되는 측면이 다소 있다.

    우리는 이상에서 어렵지만 자살과 관련된 생물학적 요인을 살펴봤다. 이런 연구들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복잡하게 생각될 것이다. 솔직히 전문가들에게도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그러기에 이런 전문적인 연구들은 아직 제한적이다. 그것은 여전히 신경생화학적 연구들이 활발하지 못한 원인도 있다. 중추신경계와 자살 행동 연구의 기술적 제한과 그들 사이의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여기저기를 참조하고 더러는 베끼고 각주를 달며 고생하면서 이를 정리했다. 이제 이를 종합 정리하면 자살 행동과 관련있는 생물학적 원인은 대개 신경생화학적 소견들로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는 세로토닌계 활성 감소다.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HPA축)의 과활성은 노르아드레날린계의 과활성 또는 과도한 분비와 그에 따른 노르아드레날린 결핍이라는 신경생화학적 변화를 의미한다.

    세로토닌의 활성 감소가 주로 전전두엽의 배내측에서 관찰되면 전전두엽의 배내측 기능 이상은 충동 및 공격성을 증가시키고 자살 행동의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다. 자살 행동과 관련있는 스트레스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의 과활성을 유발하며, 이로 인해 노르아드레날린계의 과활성이 유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자살 행동의 유발인자다. 자살의 유전적 요인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유전자 후보는 TPH1 유전자와 5-HTTLPR 유전자다. 아직 연구 결과들이 일관되지는 않지만 TPH1 유전자 다형성은 세로토닌 기능의 부전을 설명하고, 5-HTTLPR 유전자 다형성은 자살 행동 중 극단적인 자살이나 반복적인 자살 시도 등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MAO-A 유전자다. 이 유전자에 관한 연구는 그것이 자살 행동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일부 연구에서는 극단적 자살방법을 이용한 남성 자살자는 MAO-A 유전자 다형성의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그 외에 세로토닌 수용체, COMT, 도파민 수용체 등의 유전자에 대한 연구는 자살과의 유의미한 관계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생활에서 직면하는 심리적 자극과 반응은 또다른 생물학적 요인을 변형 내지 형성해 나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에는 자살의 심리적 원인을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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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안에는 '예'만 있습니다

    씨알공동체를 꿈꾸며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로마서 8:6)

    왜 본회퍼인가?

    "만일 어떤 미친 운전사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인도 위로 차를 몰아 질주한다면 목사인 내 임무는 희생자들 장례나 치러주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자동차에 올라타서 그 미친 운전사로부터 핸들을 빼앗아야 할 것입니다." (본회퍼)

    내가 본회퍼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아마도 84년 결혼한 해부터 다닌 한빛교회에서다. 당시 한빛교회는 민주화 운동의 거인들이 드나들던 곳으로 나도 그들처럼 유명한 민주투사가 되고 싶었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든지 그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신학은 물론 성경에도 문외한이었던 내가 접한 본회퍼 목사에 대한 정보는 미친 운전사의 손에서 핸들을 빼앗아야 한다는 말을 한 신학자라는 것과 히틀러에 저항하다 처형당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나중에 <옥중서간>을 읽었지만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유명한 신학자 글이니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대충 읽고 서가 깊숙이 꽂아 놓고 말았다.

    그러다 <나를 따르라>를 접한 건 90년대 이후였으니 그의 신학을 거꾸로 접한 셈이다. 당시에는 혼자서 산기도 다니면서 하나님을 체험하려는 갈급함이 있었다. 나름대로 평신도로 제자가 되려는 마음이 있던 터라 <나를 따르라>를 통해 받은 영향은 컸다.

    주로 기독교서회에서 번역한 그의 책을 읽어가는 중에 본회퍼에게 세속화 신학, 무신 신학의 창시자라는 멍에를 씌운 <옥중서간>이 결코 <나를 따르라>의 제자도와 무관한 책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천재 신학자가 감옥에서 결코 엉뚱한 소릴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세상에서 제자도를 실천하려면 어떤 의식을 가져야 하는지를 끝까지 밀고 나갔던 것이다.

    그는 자기 생애 중 '핑켄발데 목회자후보생신학원' 원장 시절을 가장 만족스러워 했다. 그곳에서 그는 신학원생들과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말 그대로 거룩한 삶을 살고자 했다. 이 때 가르친 강의 내용이 1937년 <나를 따르라>, 1939년 <신도의 공동생활>로 출간되어 그를 일약 세계적인 유명 인사로 만들었다. 특히 <나를 따르라>는 전 세계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평신도들에게 제자도의 확고한 신학적 토대를 구축해 주었다.

    <나를 따르라>는 목사후보생을 위한 글이었지만, 오히려 루터의 만인사제설에 따라 자각한 평신도들에게 예수를 따르는 건 성직만이 아니라 세속의 노동이나 직장 생활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운 책이다.

    <옥중서간>도 예수를 믿는다는 건 세상 한가운데서 모든 것을 하나님 손 안에 맡기는 것,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하며 많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에게 현실 참여에 대한 신학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래서 민중신학, 해방신학은 본회퍼 신학에서 비롯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이다.

    "최근 오직 자기 보존을 위해서만-마치 그것이 자기목적적인 것처럼-싸워온 우리 교회는 인간과 세계를 위한 화해하고 구원하는 말씀의 담지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교회가 이전에 가졌던 말들은 무력해졌고, 교회는 침묵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독교인다움은 두 가지 존재방식에 있어서만 성립할 것입니다. 인간을 위해 기도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기독교와 관계된 모든 사고와 발언과 조직은 이런 기도와 정의를 실천하는 행동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 다시 사람들이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세계를 변화시키고 갱신시키는 날이 언제 올 것인지를 미리 말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날은 올 것입니다. 새로운 언어가 나타날 것입니다.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그러나 예수의 말씀처럼 해방적이고 구원하는 새로운 언어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말씀에 놀라겠지만, 새로운 정의와 진리의 언어, 하나님의 평화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는 그 말씀의 능력으로 극복될 것입니다." (옥중서간, 192쪽)

    본회퍼는 보수 일색의 한국 교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마치 미국의 목사 짐 윌리스가 그의 책 <하나님의 정치> 홍보 여행을 하였을 때 만났던 수많은 미국 기독교인들에게서 느낀 것과도 같다.

    "나는 방문했던 거의 모든 곳에서 수많은 참여자가 그저 내가 하는 말을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님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나아가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표출하고자 했다."(<회심>, 짐 윌리스, IVP)

    또한 본회퍼의 제자이면서 친구였던 에버하르트 베게트가 본회퍼 전기에서 밝힌 것과 같다.

    "<나를 따르라>는 교회와 특히 비판적인 관계에 있다. 교회가 공적인 발언권을 부여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아무 소리도 내지 않자, 본회퍼는 교회의 정당성과 공신력에 문제를 제기하고 선포자의 상태를 진단하고 개선하는 길로 나아갔다." (<디트리히 본회퍼>, 에버하르트 베트게, 복있는사람)

    본회퍼는 친구 베게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를 따르라>의 내용이 위험하다고 했다. 그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상수훈을 철저히 지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그의 삶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실제로 그는 신학원 원장 시절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참전하고자 하는 목사후보생들에게 병역거부를 해야 한다고 넌지시 말했다고 한다.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요구하는 세속 사회에서는 상당히 위험한 주장입니다. 마치 미국 내에 섬처럼 존재하는 아미쉬 공동체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병역을 거부하여 히틀러 나치 정권을 이롭게 하는 반국가 단체로 낙인 찍혔듯이 말이다.

    만일 북한과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내가 교회 청년들에게 병역을 거부하고 참전하지 말라고 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참전00회 등 보수 단체 인사들의 항의 시위는 물론 검찰은 국가보안법을 들이대며 구속하려 들 것이다. 그래서 "평화를 말하는 사람은 거룩하게 보이나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말이 생겨나 보다. 이렇듯 산상수훈의 말씀을 철저히 지키고자 하는 사람에겐 십자가 고난이 따른다.

    촛불집회와 하나님나라

    나는 시청광장 촛불집회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곳에 참가하고 하나님나라의 전조를 읽을 수 있었다. 광장에서는 누구나 촛불 하나를 들면 예언자가 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과 비전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씨알 민중은 세상 권세자들에게 탄압 받고 예언자들은 예레미야와 같이 우물의 진흙 바닥 같은 감옥에 처박히고, 우리의 열망과 꿈을 밝힌 촛불은 시청 앞 광장에서 사라졌다. 나라 전체가 어둠에 휩싸였다.

    그러나 가난이 어떨 땐 축복이듯이 어둠도 그것을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거룩한 밤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이 어둠은 고난이기에 축복이다. 씨알인 민중이 받는 고난을 하나님도 함께 받고 계시기에 거룩하다. 이 어둠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 자궁 같이, 씨알 속 같이 어둡기에 거룩하다. 원래 창조는 어둠과 혼란 속에서 발현한다. 그러므로 예언이 틀린 것도 아니고 꿈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무릇 징계는 어떤 것이든지 그 당시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여겨지지만, 나중에는 이것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에게 정의와 평화로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히브리서 12:11)

    "회개하라, 하나님나라가 가까웠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외쳤던 구호에 당시 유대 민중은 열렬히 호응하며 예루살렘을 발칵 뒤집어 놨다. 촛불이 승리하려면 먼저 스스로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야 한다. 왜 촛불이 꺼졌는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내 탓이요!"를 강조해 씨알 민중의 행동을 호도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왜 촛불집회 이후 대대적인 검거 사태와 탄압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각자 삶 속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촛불집회의 전략을 수정하고 온전히 하자는 말이 아니다. 씨알이 씨알에게 하는 말이다.

    지난 날 민중운동하는 사람들은 민중을 우상화하고 자기를 절대화하여 하나님을 가리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였습니다. 민중운동하던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변절과 패악을 저질렀고, 나 또한 내 안의 탐(貪), 진(瞋), 치(痴)를 보면서 앞으로 씨알운동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성찰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다시 씨알공동체운동의 출발이 되어야 한다. 자기를 모르는 눈 먼 자가 누구를 인도하겠는가? 우리는 말로는 씨알을, 가난을, 공동체를, 하나님을 찾으면서 속으로는 남을 지배하고 싶어하지 않았는가? 십자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세속의 성공과 부도 함께 얻으려 하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오마이뉴스>에 실린 한 노동운동가의 주장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이라도 민주노총에 속한 모든 정파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야 한다. 그래서 노동운동을 하는 모든 이들한테 전태일 정신에 바탕을 둔 품성교육을 시키기 위한 기구를 만드는 것에 합의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민주노총을 이끄는 사람들이 전태일을 모르지 않고, 또한 전태일 정신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알면서도 실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전태일 정신이 무엇인가? 다름 아닌 실천이다. 전태일은 모든 것을 실천을 통해 깨달았고 깨달은 것을 실천한 것이다. 세상에는 좋은 말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 좋은 말씀들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것은 '장식'에 불과할 뿐이고 명분에 지나지 않다. 전태일은 그 장식에 지나지 않은 근로기준법을 '화형'시켜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준 것이다.

    위기에 처한 민주노총, 아니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이제라도 전태일을 배우고 따르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서 거듭나야 한다. 해답이 없어서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라 답이 있는데 그것을 간과하고 실천하지 않아서 위기에 처한 것이다. 전태일 정신은 반드시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구할 것이다." (<오마이뉴스>, 2009.2.24, 민종덕 /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씨알이 가난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겸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못된 고집이나 편견,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불만으로 가득 차서 남을 배려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부족한 사람도 많다. 오히려 그들은 세상의 갖은 세파와 허위에 노출되어 시달리면서 마음이 바위 같이 굳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부자들이 모든 것을 돈의 가치로 판단하는 마음 때문에 말씀의 씨앗을 사탄에게 빼앗겨 버리듯 말이다.

    여기서 회개할 품목을 늘어놓지는 않겠다.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말한 것처럼 각자 하나님을 바라보는 동시에 자기를 바라보길 바란다. 우리는 회개보다 남을 비판하는 일에 더 익숙하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씨알 민중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모세와 예수님과 같은 '겸손함'이다. (민수기 12:3) 공동체를 이루는 최고의 덕목은 사랑이다. (고전 13) 돈 벌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생명 살리고 평화 이루는 공동체 만들기와 같은 기도는 소홀하지 않았는지 성찰해야 할 때다.

    씨알공동체와 하나님나라

    씨알공동체 운동은 초대 교회처럼 하나님나라 공동체의 열망을 되살리는 운동이다. 하지만 초대 교회도 시간이 지나면서 열정이 사그라지고 분열 위기를 겪어야 했다. 바울파냐 아볼로파냐 하고 갈라진 고린도 교회가 대표적인 예이다. (고전 1:11-13) 공동체의 중심은 개인이나 공동체 자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공동체의 머리이며 우리의 중심이다.

    씨알재단(http://www.crlife.org)에서는 올해 2월 15일부터 씨알공동체 예배 모임을 매주 일요일 오후 3시 서울 시청 앞 씨알재단 강당에서 연다. 첫째 주는 서울 명동 전진상기념관에서 외부인사 초청 월례 강좌로 진행한다.

    "씨알공동체의 생명평화운동이 한국 교회를 새롭게 하고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모여서 깊은 영성과 철학을 탐구하고 생각과 삶을 나누며 씨알정신과 씨알공동체를 널리 펼치려 합니다." (씨알공동체 발문 중)

    씨알재단 상임이사 박재순 박사는 씨알공동체 예배 모임에서 창세기 3장의 핵심 내용인 선악과에 대해 설교했다. 왜 인간이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으면 안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인간의 눈이 밝아져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을 왜 하나님께서 굳이 금지하셨는가? 박재순 박사는 명쾌하게 설명했다. 설교 내용 중 일부를 여기에 옮겨 본다. 용산 철거민 참사나 촛불재판으로 불리는 사법부 파동과 비교하며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

    "생명·인격·영혼은 선악 판단의 목적이고 선과 악의 피안에 있다. 선과 악을 구별하고 판단하는 것은 생명과 인격과 영혼이 선하고 옳고 힘차게 살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먹고 입고 자는 기본 생활에 대해서는 선과 악의 판단,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먹고 입고 자는 것은 허락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사회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교육을 받는 일도 조건 없이 허락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가난의 늪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들의 삶을 보고 선과 악, 더러움과 깨끗함,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삶의 나락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삶은 절대 긍정되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사회와 정부, 교회와 시민단체는 가난과 병으로 허덕이는 이들을 조건 없이 살리고 돌봐야지 무능하다, 게으르다 비난해서는 안 된다. 짓밟히고 고통당하는 삶은 선과 악의 피안에 있다.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선과 악을 나타내는 히브리말은 '토브와 라'인데 도덕적 선·악뿐 아니라 좋고 나쁨을 뜻한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선악,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을 사유화하고 독점한 것을 뜻한다. 내게 이롭고 좋은 것이 선하고 좋은 것이고, 내게 해롭고 나쁜 것이 악하고 나쁜 것이 된다. 사람마다 자신이 선악 판단의 기준과 목적이 있으면 세상에는 선악의 기준이 없어진다. 선악 판단의 결과, 선악 판단의 열매를 직접 따 먹으려 하면 공동체의 토대가 사라진다.

    선과 악의 판단은 공정한 기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선악 판단의 공정한 기준 가운데가 진리이고 하나님이다. 선과 악의 판단이 절대로 공정해야 하는데 공정을 잃고 개인이나 집단의 욕심이나 이익에 따라 선과 악을 판단하면 파국에 이른다는 것이다. 선악 판단의 열매를 개인이나 집단이 따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게 이로운 것이 선이고 해로운 것이 악이 된다. 나의 이로움을 위해 남을 해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인다. 서로가 자기의 이익과 선을 위해 남을 해치고 죽이면 결국 서로 죽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 결과는 죽음이다. 선악 판단의 열매는 모두가 함께 누리도록 가운데 놓아두어야 한다. 서로에게 유익이 되게 서로를 살리게 해야 한다. 선과 악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데서 나오는 열매를 내가 직접 따 먹으려고 하면 서로를 해치고 죽이는 길에 들어선다.

    사람이 선악 판단의 목적이라는 것은 선악 판단의 결과, 열매라는 것을 뜻한다. 사람은 선악의 열매를 직접 따 먹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악의 열매가 되어야 한다. 씨알은 열매를 따먹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열매가 되자는 것이다. 인류는 선악과를 따 먹고 타락했다. 그래서 전쟁과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 인류 문명은 선악과를 따 먹자는 것이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선악과를 따 먹는 일을 극대화한 사회다.

    선과 악, 좋음과 나쁨에 대한 지식과 판단에서 나오는 열매를 효과적으로 최대한 따먹으려 한다. 땀 흘려 일하지 않고 나무 열매만을 따 먹자는 것이 자본주의다. 잘하고 못하고 좋고 나쁜 기준을 정해 놓고 무한 경쟁을 시킨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만이 살고 진 사람은 낙오자가 되어 삶의 권리를 박탈당한다. 인간이 공부하고 발명하고, 물건 만드는 것은 잘 살기 위한 것인데 잘하기 위한 경쟁이 다수의 사람들을 낙오시키고 희생시키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런 사회는 오래 갈 수 없다.

    삶 자체가 선악 판단의 피안에 있다. 삶 자체가 선악 판단의 기준이다. 삶 자체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목적이고 열매다. 선악 판단의 목적, 경쟁하는 목적을 찾아야 한다. 삶이 바로 그것이다. 삶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하나님만이 선악 판단의 기준이다.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세상에서 하나님을 가장 잘 드러내는 존재는 씨알이다. 씨알이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있고 세상의 가운데를 드러낸다.

    선악 지식의 열매를 따 먹지 마라. 개인이나 집단이 따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 사법부나 검찰, 경찰이 선악 지식의 열매를 따 먹으면 사회는 결단난다. 선악 판단의 열매가 내게 돌아오게 해서는 안 된다. 판사가 자기 유익과 편의를 위해서 판결을 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누구를 선하다, 악하다고 말한 것이 내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면 선악 지식의 열매를 따 먹은 것이다. '그 사람 나쁜 놈이야!'라고 해서 내 마음에 위안이 된다면 역시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이다." (<선과 악의 피안>, 박재순, 2009.3.8 씨알공동체 예배 모임 설교)

    박재순 박사의 설교를 통해서 왜 하나님이 생명의 나무를 지키기 위해서 불과 칼로 막아두었는지를 알게 되다. 창세기의 창조이야기는 인간의 이기적인 선악 판단이 결국 인간의 생명을 해치게 됨을 표현한 진리의 말씀이다.

    씨알공동체는 바닥공동체이다. 평신도가 주체로 서는 민중공동체이다. 한국판 남미의 가톨릭기초공동체이다. 씨알공동체는 하나님나라 씨앗으로 겨자씨 공동체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커지면서 공동체 정신이 퇴색했지만 초대 교회는 하나님나라 공동체의 예표였다. 오늘날 많은 수도공동체들이 하나님나라 공동체를 표방하는 것이 그것이다. 사랑의 공동체가 하나님나라 공동체이다. 하나님나라는 겨자씨 같은 씨알공동체들이 연대하는 가운데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일 신학자 몰트만이 <성령의 샘>에서 주장했듯 가난의 반대는 부자가 아니라 공동체이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헨리 나우엔의 마지막 사역지였던 <라르쉬공동체>의 창시자 장 바니에 프랑스 신부는 그가 쓴 책 <공동체와 성장>에서 성령의 활동은 우리를 환상적인 꿈이 아니라 현실주의적 입장으로 전환하게 만든다고 하였다. 그는 우리 삶을 활성화시키고 영감을 불어넣는 꿈과, 그 반대인 야망과 도피이자 환상에 해당하는 꿈을 구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그 분의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일은 우리의 꿈보다 우리에게 훨씬 깊이 와 닿는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며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의 꿈이 소멸된다고 해도 결코 낙담치 않게 된다. 공동체 안에 사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공동체와 자기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느냐고 물어 온다.

    사도 바오로는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랑이란 결코 영웅적인 행위가 아니며 특별한 행위도 아니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사랑은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것도, 예언을 하는 것도, 온갖 신비와 온갖 학문을 깨우치는 것도, 심지어 대단한 신앙을 갖거나 재산 전부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거나 순교를 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참고 봉사하는 것이다. 질투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계속 자기 얘기만 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을 과장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자기보다 타인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다. 사랑은 성내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타인을 공격하지 않고 타인의 잘못을 들추어 내지 않는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고 무슨 일에서나 진리를 추구한다." (<공동체와 성장>, 장 바니에)

    씨알, 생명과 평화를 말하다

    우리들이 기존의 운동 방식을 두고 자기 성찰을 해보자는 것은, 민중을 탄압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불의한 세력과 다시 맞장을 뜨면서도 올바른 길로 돌려 세우는 생명과 평화의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세리와 부자들의 집을 드나드셨던 예수님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자유와 평등의 대동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하기 전에 우리 마음속에서 누구는 배제해야 한다는 편협하고 강퍅한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자는 것이다.

    "국가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세상 한가운데에서만 그리스도일 수 있습니다." (본회퍼)

    세상이 그것을 인정하든 안 하든 그 분은 세상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기준이 하나님이시듯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우리는 평화의 사도로서 세상 가운데서 정의와 진리를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종교인이 아닌 보통 사람으로서도 우리는 진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비기독교인들과 더불어 사는 가운데 그들보다 더 진리 가운데 임해야 하며 더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한다.

    신학자들은 말로는 생명과 평화를 말하면서도 실제로 전쟁에 임해서는 "의로운 전쟁"이라는 개념으로 전쟁의 정당성을 변호하고 있다. 그러나 간디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거부했다. 평화는 목적만이 아니라 과정으로서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간디는 인도 민중을 설득하여 비폭력 평화 운동으로 대영제국에 대항하여 정신적·도덕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승리할 수 있었다.

    1948년 간디가 죽기 바로 2시간 전 미국의 기자가 간디에게 물었다. 만약 핵폭탄을 실은 비행기가 날아온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고. 간디는 일관되게 비폭력을 주장했다. 비행기가 날아오는 하늘 방향을 향해 두 팔 벌리고 기도하면서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그의 말을 들으면 마치 예수가 나는 스스로 죽을 권리가 있다고 하는 말을 다시 듣는 것만 같다. 그는 죽음을 초월하여 끝까지 자신의 신에 대한 순종을 보인다.

    기독교의 비폭력 사상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는 명제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물리적 힘에 의한 평화를 철저히 거부하는 하나님, 원수를 미워하는 인간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위험하고도 끔찍한 신이다. 그래서 교회는 베드로 이후 십자가를 그다지도 끈질기게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라는 용어조차 교묘하게 마음 공부하는 데에만 한정하여 사용하려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제시한 십자가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베드로 이후 십자가는 언제나 교회 현실 앞에서 거리낌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마가 8:34) 하고 말씀하십니다.

    성령과 촛불

    예수 그리스도가 일으키는 성령의 불꽃으로 우리가 다시 촛불을 켤 때가 올 것이다. 그 불씨는 생명과 평화이다. 씨알공동체는 생명과 평화, 진리와 자유를 공유하는 그런 각성과 깨달음의 지성소로 진리의 영이신 성령과 함께 할 것이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진리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함께 한다.

    예수님은 성령은 바람과 같아서 아무도 그가 오고 가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요한 3:8) 그날의 촛불들처럼 그렇게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발화하는 시점과 방법을 우리 스스로 알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선험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만 같다. 그러나 다시 촛불이 어둠을 밝히고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로 환하게 열리는 천지회통(天地會通)의 때가 올 것이다. 씨알 민중의 마음이 환하게 열려서 집단 인격, 혹은 집단 지성으로서의 통일지가 하나님의 뜻과 하나를 이루는 때가 올 것이다.

    촛불은 그것을 염원하는 자의 마음에서, 그것을 켜기 위해 헌신하는 자에게서 먼저 발화할 것이다. 씨알은 회개를 통해 치유되고 회복된 새 사람이다. 각자(各者, 覺者) 민중인 씨알들의 마음이 먼저 진리의 영으로 밝아지면 세상도 덩달아 환하게 밝아질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이 가난과 어둠을 인내하면서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하나님나라의 씨알공동체를 확장시켜 나가자. 아멘. 안창도 / 하남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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