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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장 목사 1045명 "한신대 채수일 총장 즉각 사퇴 요구 / 목사가 왜 칼을 잡았나
    2015-11-06 10:53:26   read : 4649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기장 목사 1045명 "한신대 채수일 총장 즉각 사퇴 요구

    기장 목회자들 "채 총장 조속 사퇴, 한신대 전면 개혁" 촉구

    CBS노컷뉴스 천수연 기자



    한신대 채수일 총장이 경동교회 후임으로 청빙되면서 임기 중에 학교를 떠나게 됐다. 이렇게 되자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목회자 천여명이 채총장의 즉각 퇴진을 촉구했다. 이들은 나아가 학교의 개혁을 위해 투명한 절차로 신임 총장을 선출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회자 1045명이 오늘(5일) 서울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한신대 이사회를 상대로 학교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성명의 첫 주장은 채수일 총장의 즉각 사퇴.

    목회자들은 성명에서 개교회 청빙으로 총장직을 내려놓는 채 총장의 행동은 무책임한 것이라면서 이사회는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김희헌 목사는 "책임있는 조치라는 것은 이사회에서 이 부당한 채 총장님의 처신에 대해 즉각 사퇴할 것과, 이것에 대한 이사회 절차를 11월 말까지 완료하기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학부와 신대원의 미달 사태, 교수들의 양적 질적 저하 등 한신대의 신학교육이 크게 후퇴했다고 지적하며 한신대의 전면적 개혁을 요구했다.

    또 투명하고 공정한 과정으로 개혁적 인사를 새 총장으로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에서는 "이사회는 신임 총장 후보들에게 한신대학개혁방안을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기초로 개혁에 대한 비전, 계획, 실행력이 가장 뛰어난 인사를 총장으로 선임하여, 한신대학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야 한다"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목회자들은 성명 동참자가 닷새 만에 천 명을 넘을 정도로 학교개혁에 대한 열망이 밑바닥에서부터 일고 있었다며 채 총장 개인에 대한 감정적 대처가 아님을 강조했다.

    이들은 총회장과 이사장을 잇따라 만나 목회자들의 개혁 의지를 전달하기로 했다.

    또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으고, 개혁방안을 마련해 제시하는 등 후속활동도 이어갈 계획이다.

    이날 경기중부노회는 노회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채수일 총장의 조속한 사퇴와 개혁적 신임 총장 선임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학교 개혁 요구가 다른 노회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한편 한 교단 관계자는 이번 목회자 성명과 관련해, 자칫 학교법인에 대해 교권이 개입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이사회가 조만간 총장선임과 관련한 모임을 가질 것이라면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후속 절차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또 총장선거와 관련해 총장 후보는 이미 공개모집하고 있으며, 교수협의회가 후보들을 초청해 정견발표회를 갖고 했었다면서 마치 밀실인사를 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올 수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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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비하고 무릎 꿇을 때 한국교회 영적 기류 바뀔 것”

    ‘제18회 다니엘기도회’, 오륜교회서 개막… 21일간 전 세계 함께해



    ▲다니엘기도회에 참석한 성도들의 모습. ⓒ오륜교회 제공

    “우리가 21일간 합심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보좌 위에 쌓아두셨던 은혜를 가득 부어 주실 것입니다. 한 말씀을 듣고 함께 부르짖을 때, 하늘의 문이 열리고 참석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되는 간증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연합기도의 장’이 된 제18회 다니엘기도회가, 11월 1일부터 서울 성내동 오륜교회(담임 김은호 목사)에서 21일간의 일정에 돌입했다.

    1998년 12월 작은 상가교회 시절부터 시작된 다니엘기도회는 2005년 현 오륜비전센터에서 열리고 있으며, 2008년 제11차 때부터는 기도회 중 ‘사랑의 헌금’을 모아 이웃을 돕기 시작했고, 2013년부터는 한국교회와 함께하고 있다. 2013년 35곳, 2014년 264곳에 이어 올해는 역대 최다인 1,044개 교회가 함께한다.

    올해는 해외에서도 세네갈·베트남·중국·일본·캐나다·미국 등 6개국 30여 교회가 동참하고 있다. 해외나 지방에 있는 교회들은 다니엘기도회 홈페이지(danielprayer.org)를 통한 인터넷 생중계로 각자 교회에서 함께 기도하게 된다. 이들은 DAN-NET이라는 이름의 네트워크를 이뤄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오륜교회는 생중계를 시청하는 교회들을 위해 해당 교회의 미디어 시설을 고쳐줬으며, 갈수록 늘어나는 인터넷 참가자들을 고려해 관련 시설을 크게 늘렸다.

    다니엘기도회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성도들이 같은 비전을 바라보면서 한마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이다. 다니엘기도회에서는 공동 기도문을 낭독하고, 기도회 전 전국 시도별 기도제목을 보여주면서 중보기도를 요청하며, 생중계를 통해 같은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하고 있다. 준비위원회 측은 전국 교회에서 모은 950여 개의 기도제목들을 책자로 만들어 참석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기도회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성도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 ⓒ오륜교회 제공

    이날 기도회는 오후 8시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됐지만, 3-4시간 전부터 기도회가 열리는 ‘본당’에 들어가려는 성도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성도들은 입장 시각인 오후 6시 30분부터 자리에 앉아 기도하면서 개회를 기다렸으며, 들어오지 못한 성도들은 간이 의자를 비롯해 교육관과 좌우 통로 등에까지 빼곡하게 들어찼다. 오륜교회에서만 총 6,500여 명의 성도들이 함께 기도했다.

    첫날 설교는 김은호 목사가 맡았다. 김 목사는 ‘쌓아두신 은혜를 경험하라(시 31:19, 단 10:1-3)’는 제목으로 “교회만이 이 땅의 희망이고, 하나님은 다시 이 땅에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길 원하신다”며 “우리가 우리 민족과 지도자들의 죄악을 자복하면서 마음의 옷을 찢고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 땅 가운데 다시 부흥의 역사를 이뤄 주실 것”이라고 밝혔다.

    김은호 목사는 “한국교회가 신학적 지식이 없어서,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졌기 때문에 위기에 봉착했다”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거룩한 예배와 기도의 무릎을 꿇는 이들이 사라진 이 땅에서, 다니엘기도회를 통해 한국교회의 영적 기류가 바뀔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다니엘기도회는 첫날이 중요하다. 우리가 이 첫날에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기로 결심하고 기도의 무릎을 꿇어 하늘 아버지 앞에 부르짖어 기도할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며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다니엘이 응답을 받기까지 21일이 지체됐듯, 기도 응답까지는 치열한 영적 전쟁이 있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마 18:20)”며 “혼자 골방에서 기도할 때도 하나님은 들으시지만, 주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여 기도하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고 했다.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였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계급장을 떼었다는 말”이라며 “세상의 지위와 지식, 선행과 의로움을 다 내려놓고 오직 중보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혈의 능력을 힘입어 기도해야 한다. 오순절 다락방 성령의 역사처럼, 기독교 역사를 봐도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할 때 더 폭발적인 역사가 일어났다”고 강조했다.



    ▲김은호 목사가 설교 후 기도회를 인도하고 있다. ⓒ오륜교회 제공

    김 목사는 “목회를 할수록 자신감을 얻는 게 아니라, 한계를 많이 경험한다. 많은 성도들을 상담하면서 아픔을 느끼고 함께 울지만, 그들의 문제를 제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부모로서 자녀의 아픔에 울어 줄 수 있지만, 그들의 눈물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며 “그러나 자신의 한계를 아는 자만이 주께로 피할 수 있다. 그 한계를 실감하는 자만이 주님의 보좌를 향해 달려간다”고 덧붙였다.

    설교 후에는 김은호 목사가 직접 기도회를 인도했으며, 오륜교회를 비롯해 생중계로 참석하는 모든 성도들은 기도제목마다 함께 기도했다.

    설교 전에도 ‘기도합주회’ 시간이 마련됐다.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체험하는 기도회 되게 하소서(창 22:14)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구하며(눅 4:18-19) △한국교회의 회복과 부흥의 비전을 바라며(겔 47:9, 12) 등 첫날을 맞아 다니엘기도회 일정 등을 위한 기도가 진행됐다. 기도합주회에서는 매일 다른 주제로 기도하게 된다.

    영상 인사도 있었다.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는 “21일간 열리는 다니엘기도회를 통해 하늘 문이 열리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 은혜가 임하는 기적이 나타나길 바란다”고, 배우 박신혜 씨는 “다니엘기도회가 은혜로 시작하게 돼 감사드린다. 저도 21일간 여러분들과 한마음으로 기도하겠다. 참여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 은혜를 체험하고 자랑하게 되길 간절히 원한다”고 각각 인사했다.

    다니엘기도회에서는 21일까지 정성자 권사(4일), 김문훈 목사(6일), 박에녹 목사(7일), 최남수 목사(8일), 권성수 목사(10일), 김진규 감독(13일), 서우경 교수(16일), 송채완 집사(19일) 등 다양한 강사들이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찬양에는 마커스, 디사이플스, 어노인팅, 라이즈업워십밴드, 홀리임팩트, 강명식 등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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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잡이 목사는 왜 칼을 잡았나

    건달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배신과 복수의 심리학
    김기대 | gilbert@newsm.com



    '목사끼리 칼 휘둘러' 라는 제목으로 모든 뉴스에 실려 한국 교회 신뢰추락에 일조한 황규철 목사와 박석구 목사의 칼부림 사건. 두 명 모두 지금은 탈퇴한 상태이지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평동노회 소속으로 가까운 사이였다.

    황 목사는 2011년 9월부터 2014년 9월까지 예장합동 총무로 지내며 가스총을 비롯한 온갖 추한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22일 황목사는 박목사의 예복교회로 찾아가 박목사에게 칼을 휘둘러 9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을 정도의 중상을 입혔다. 황목사 측에 따르면 황목사도 간과 횡경막, 손가락 등에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뉴스앤조이>가 입수한 사고 당일 녹취록에 따르면 "우리 죽자"라면서 황규철 목사가 먼저 박목사를 공격하고 자해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황규철 목사가 2011년 9월 총무로 당선되던 당시 박석구 목사가 참모 역할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하지만 박목사는 후에 금권선거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금권선거의 대행자였던 박목사가 자신의 얼굴에도 침이 튈만한 일을 폭로한 것은 황목사로부터 선거운동의 보상으로 약속 받은 각종 이권이 무산되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다 이번 사건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그 과정에는 항상 돈이 있었고 다른 교회와 관계된 '정치'가 있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47살의 박목사는 68살의 황목사를 형님이라고 호칭한다. 한국 호칭 문화에 비추어 볼 때 21살 차이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조폭 세계에서도 함부로 '형님'이라고 불렀다가 뺨따귀를 맞는 장면이 한국 영화에 많다. 그들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사장','실장' 등의 공식 직함을 선호한다.

    그러면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녹취록에 따르면 그냥 '양아치' 스러운 관계다. '형님', '같이 죽자'와 달리 '너는 살고 나는 죽어야 해'라는 대화에서는 자신이 책임을 지는 듯한 보스의 면모가 살짝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칼끝은 상대방을 향하고 있었다.

    조직의 보스는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데 한 때 보스 행세를 하던 황목사가 칼을 직접 든 것은 그가 지금 외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의 반증이다.그의 헛된 위상을 보여주는 것은 사고 이후부터 예복 교회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황목사의 벤츠 승용차 뿐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면 황목사가 박목사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복수를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한 강연에서 배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흔한 대사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배신이라는 말이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우리가 배신이라고 말하는 것들 중에는 무늬만 배신, 즉 ‘유사 배신’이 많다. 배신당했다, 뒤통수 맞았다는 말을 하기 전에 그것이 진짜 배신인지 분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태까지 내 행동은 동기부터, 남의 행동은 현상부터 보아왔다면 내 행동은 현상부터, 남의 행동은 동기부터 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배신의 과잉을 해결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더불어 인간관계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인용문을 황목사에게 적용할 수 있다면 '심리적 퍽치기'라는 용어는 박목사에게 적용할 수 있다.

    정박사에 따르면 "배신을 범죄로 비유하면 ‘퍽치기’에 가깝다. 퍽치기는 일말의 타협의 여지도 없는 범죄다. 사람들은 이러한 일방향적인 관계에서 심한 공포감을 느낀다. 이런 점에서 배신은 ‘심리적인 퍽치기’라고 말할 수 있다."

    박목사는 상대방(황목사)이 믿고 있는 사이에 퍽치기를 당한 것이다. 게다가 배신은 나와 타인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시하는데 부터 잉태한다. 황목사는 박목사를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했지만 박목사는 황목사의 분신이 되어 주지 않았다. 이것이 황목사의 복수심을 불러 일으켰다.

    심리학자 데니스 라이너는 "배신을 경험한다는 것은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많은 공통점이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 죽음을 느끼는 것과 같은 배신감이 황목사의 "나는 죽고' 라는 말에 투영되어 있다.

    마이클 맥컬러프에 따르면 인간에게 "복수심은 복수심이라는 허기를 채워주는 욕망의 산물로 복수를 함으로써 생기는 쾌감과 희열감을 잊을 수 없기에 복수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치명적인 욕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가해자에게 공감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뻔한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뻔한 결론조차 적용하기 쉽지 않은 것이 이번 사건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뒷골목의 파렴치한 범죄의 공모자로서 누가 누구를 배신하고 누가 누구에게 복수해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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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소 5주년 맞는 소망교도소] 인성교육·믿음으로 교화…

    재범률 일반 교도소의 15% 그쳐



    ▲경기도 여주 소망교도소 수용자들이 지난해 12월 교도소에서 열린 개소 4주년 기념 감사예배에서세례를 받고 있다. 소망교도소 제공

    국내 최초 기독교 민영교도소인 경기도 여주 소망교도소(소장 심동섭)가 다음 달 1일 개소 5주년을 맞는다. 소망교도소는 일반 국영교도소보다 현저히 낮은 재범률(재복역률)로 주목받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최근 발간한 ‘민영교도소 운영성과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6월 현재 소망교도소의 재범률은 3.36%다. 이는 최근 5년간 국영교도소 재범률 22%에 비해 현저히 낮다. 보고서는 또 소망교도소 운영으로 110억원이 넘는 국가재정 절감효과가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한국교회가 뜻을 모아 모금한 건축비와 후원금까지 합하면 국가재정에 400억원 가까운 기여를 한 셈이다. 소망교도소의 수용자(재소자) 인성교육 프로그램의 효과는 교정당국도 인정하고 있다. 국영교도소도 소망교도소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에 착안한 집중인성교육 과정을 지난해부터 도입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소망교도소는 현재 20대부터 60대까지 350여명의 남성 재소자들을 수용 중이다. 출소자는 총 499명이다. 직원은 117명, 자원봉사자는 222명이다. 재소자는 입소하면 6∼8주 과정으로 기초인성교육을 받는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재소자들은 열혈 인문학도가 되고, 교도소 텃밭에서 땀 흘리며 배추와 상추를 키우는 농부가 되기도 한다.

    이곳 재소자 10명 중 6명은 강력범이지만 수용실(거실)이 아닌 식당에서 교도관들과 같은 메뉴로 한솥밥을 먹는다. 강력범은 한곳에 모아두면 안 된다는 교정상식을 깬 것이다. 교도관들은 새로 들어오는 입소자 한 명 한 명을 따뜻하게 환영해준다.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믿게 된 재소자들에게 세례를 베풀기도 한다.

    소망교도소 인성교육 프로그램의 원형은 브라질 ‘아파키(APAC) 교도소’에서 유래했다. 최근 소망교도소 심동섭 소장과 김무엘 교육교화과장, 유정우 연구관 등 3명은 브라질 미나스제나이스주 이타우나 지역에 위치한 아파키 교도소를 찾았다. 소망교도소의 인성교육 심화과정을 개발하고 민영 소년원 추진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며 운영체제를 벤치마킹하기 위해서다.

    ‘아파키’는 변호사이자 기자였던 마리오 오토보니 박사가 1972년 브라질에서 처음 시작한 인성교육 특화 비영리 민영교도소의 일반명칭이다. 현재 브라질에는 45곳의 아파키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남미와 유럽, 미국 등 전 세계 60여곳의 교도소가 아파키를 모델로 하고 있다. 독일의 ‘제하우스’도 아파키를 모델로 설립된 민영 소년교도소로 알려져 있다.

    아파키는 ‘이웃사랑이 예수사랑’이라는 포르투갈어 문장의 머리글자를 모아 만든 슬로건으로, 오토보니 박사가 자신의 교정 프로그램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했다. 78년 이 단어를 그대로 살려 아파키라는 이름의 비영리단체를 설립했다.

    81년 아파키가 주목받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상파울루주 자카레이시 교도소에서 일어난 폭동을 중재하던 프란츠 카스트로 아파키 부대표가 폭동현장에서 총격으로 사망한 것이다. 카스트로 부대표는 성직자를 꿈꾸던 젊은 변호사로 75년부터 오토보니 박사와 함께 아파키를 이끌었다. 아파키는 그의 희생을 기려 아파키의 공식명칭을 ‘프란츠 카스트로 홀르위즈 사회재통합센터’라고 부르고 있다.

    아파키의 설립이념은 ‘수용자 회복’ ‘사회 보호’ ‘피해자 지원’ ‘회복적 정의의 실천’이다. 아파키 교도소에서는 재소자를 ‘리쿠페란도(회복자)’라고 부른다. 아파키 교도소 벽에는 ‘사람은 들어오고 죄는 밖에 머물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회복시킬 것이다’ ‘예수님과 우리는 하나다’ 등의 긍정적 글귀가 적혀 있다.

    97년부터의 누적조사에 따르면 아파키 교도소에서 교화교육을 6개월 이상 받은 출소자의 재범률은 8%다. 브라질 전국 교도소의 재범률은 75%에 달한다. 매년 100여명의 국내외 학자 및 교정 관계자들이 아파키 교도소를 찾아 인성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하고 있다.

    심 소장은 “이번 출장은 미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려진 ‘아파키 사역’을 직접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며 “국내에선 그동안 언어장벽 및 브라질 법제도에 대한 이해부족 등으로 아파키 교도소가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이번 참관을 통해 말끔히 해소됐다”고 말했다.

    심 소장은 "오히려 이번 참관을 통해 종교적 인성교육을 통한 교화의 실효성이 검증돼 현지 교정당국에서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소망교도소와 한국공안행정학회는 오는 24일 오후 교도소 강당에서 '아파키 교도소'의 운영과 재소자 개선 효과를 소개하는 '개소 5주년 기념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주제는 '수용자의 인성교육 그리고 한국교정의 현주소와 과제'이다.

    심 소장은 "우리나라 교정정책의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며 "사람을 가두는 교도소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공동체가 된 소망교도소의 사역은 한국교회의 기도 및 관심과 함께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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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병월 목사 6남매, 모두 사역자로

    故 한 목사, 사업가에서 목회자 변신… 교회 5곳 개척·신천리기도원 설립



    ▲한자리에 모인 한병월 목사의 6남매. 왼쪽부터 장남 한상훈 목사, 차남 한양훈 목사, 장녀 한옥심 사모, 차녀 한성훈 목사, 삼녀 한전훈 목사, 삼남 한동훈 목사다. 부모의 신앙유산을 이어받아 모두 목회의 길을 걷고 있는 6남매는 내년에 부친의 신앙과 영적 유산을 기리는 기념문집을 발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양훈 목사 제공

    1970년에 목회를 시작 5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음성신천리기도원을 설립, 영성운동을 펼쳤던 한병월 목사(1924-2013·예장 합동·사진)의 6남매가 모두 신학을 전공하고 5명이 목사, 1명이 사모인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에서 미곡상을 크게 운영해 부유한 사업가였던 한병월 목사는 집사 시절에 삼각산 산기도를 통해 큰 은혜를 체험, 사재를 교회에 모두 드린 뒤 40대 후반에 교회를 개척했다. 한 목사는 타협없는 올곧은 신앙과 자신을 온전히 비우는 깊은 영성으로 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영성가로도 유명하다. 특히 은퇴 직전까지 운영했던 신천리기도원은 국내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의 영성훈련 장소이기도 했다.

    장남 한상훈 목사(67·음성샘터교회)는 부친처럼 목회를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소속교단(개혁측) 총회장으로 한기총 공동부회장을 맡고 있다. 목회학 박사로 교단신학교에서 강의도 한다.

    부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차남 한양훈 목사(63·신광교회)는 깊은 회개를 강조하며 11권의 신앙서적을 집필한 영성신학자로 교계에 알려져 있다. 총신대와 합동신학대학원애서 공부하였고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깊이있게 성경을 연구하고 발표하며 최근 종교개혁 498주년 기념세미나를 주도하기도 했다.

    삼남 한동훈 목사(52·새소망선교교회)는 중국선교사로 17년간 사역했으며 현재 한국에 온 수많은 유학생들을 영적으로 훈련시키고 중국어로 신학을 강의하는 과정을 국내에 만들어 보겠다는 비전을 갖고 기도하고 있다.

    장녀 한옥심 사모(59)는 인천 예랑교회 소속으로 남편 김선영 담임목사의 사역을 기도로 잘 내조하고 있으며 차녀 한성훈 목사(57)도 예랑교회 협동목사로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삼녀 한전훈 목사(54)는 한사랑치유센터 원장으로 기도운동, 영성운동에 진력하고 있다.

    “부친이 목회를 하면서 저희 6남매는 풍요롭게 지내다 졸지에 극심한 가난을 겪게 돼 사실 무척이나 고생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이정애 사모·1932-2009)께서 저희 6남매 모두 주의 종이 되도록 항상 눈물뿌려 기도하셨는데 그것이 응답된 것을 보며 새삼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과 은혜를 기억하게 됩니다.”


    이렇게 부친을 회고한 한양훈 목사는 “어려서부터 새벽기도와 주일성수, 세상으로 눈돌리지 않는 경건성을 철저하게 교육받아 6남매 모두 곁길로 빠진 일이 없다”며 “아버님은 밤 10시면 교회에 가셔서 밤새 기도하고 새벽예배를 인도한 뒤 집으로 오시곤 했다”고 회고했다.

    한상훈 목사도 “가정 보다 이웃에게 더 베풀고 섬기는 본을 보이셨던 부친이 야속했던 적도 많았지만 이제 목회자로 일선에서 사역해 보니 그것이 참으로 존경스럽게 느껴진다”며 “기도 가운데 부친이 세운 교회들은 교파를 따지지 않고 훈련받은 사역자를 그때 그 때 선임해 교단이 다 틀린 부분도 특별하다”고 말했다.

    또 6남매의 자녀 여러명이 총신대 및 신대원을 졸업하고 목회 및 사역자의 길을 걷고 있어 영적 가문으로서의 명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편 최근 모임을 가진 6남매는 내년에 부친 한병월 목사의 일대기와 목회사역, 설교 등을 정리하고 자녀들이 소회까지 담은 부친의 회고기념문집을 출판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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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당을 예술 공간으로… 건축·음향 새 흐름 한눈에

    ‘대한민국 교회건축·리모델링 박람회’ ‘국제음향·무대·조명·영상산업전’ 개막



    ‘대한민국 교회건축·리모델링 박람회’와 ‘국제음향·무대·조명·영상산업전’이 4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사흘 일정으로 개막했다.

    국내 최대 규모 교회건축 및 리모델링 종합전시회인 ‘대한민국 교회건축·리모델링 박람회(2015 KOCAD)’가 4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사흘 일정으로 개막했다. ‘국제음향·무대·조명·영상산업전(KOSOUND+STAGETECH 2015)’도 함께 열렸다.

    국민일보와 ㈜젠코리아 서울전람㈜ ㈔무대예술전문인협회가 공동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교회방송기술인연합회가 후원하는 박람회에는 교회건축 관련 업체 100여곳이 참여해 교회건축 및 리모델링 음향 조명 영상 분야의 새로운 기술과 흐름을 선보였다.

    백석대 인테리어디자인 전공학생들은 최신 동향을 반영한 강대상 10여개를 전시했다. 친환경을 강조한 목재 제품이 많았다. 행사 중에는 30만∼40만원을 할인하는 데 이미 팔린 것도 여러 개였다.


    ㈜예일디자인그룹은 서울 도림교회(정명철 목사) 경주중앙교회(오세동 목사) 등 리모델링하기 전과 후의 사진을 게시해 관심을 끌었다. 이선자 ㈜예일디자인그룹 대표는 “우리 회사가 손을 대면 건물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홍보했다.

    ㈜케빅은 랜케이블 만으로 음성 및 영상 신호를 송·수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보여줬다. ‘정우아우름’사는 ‘이동식 합창대’를 선보였다. 합창단원들이 설 수 있는 계단식 발판으로 5초 이내에 접었다 펼 수 있는 제품이다.

    ㈜세진예공건축사사무소, ㈜디자인메소, 예장건설, 칸·도시건축사사무소, 규빗건축사사무소, 성애성구사 등이 부스를 마련했다.

    ‘국제음향·무대·조명·영상산업전’에는 70여개 업체가 참가했다. 사운드솔루션, ㈜미디어하우스, 인터엠 등이 자사의 제품을 전시·홍보했다.

    문금주 ㈔무대예술전문인협회 이사장은 “교회건축에서 음향 조명 등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어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다”며 “특히 음향 시연회는 해외 유명 브랜드에 버금가는 국산 음향 기기들의 소리를 직접 들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음향 시연회에는 해외 브랜드 6곳, 국내 브랜드 4곳이 참가했다. 관람객 이형민(37)씨는 “평소 스피커에 관심이 많아 시연회에 왔다”며 “가격 대비 국산 음향기기들의 수준이 상당한 것 같다”고 놀라워했다.


    박람회에선 각종 워크숍도 진행된다. 국민일보 교회건축자문위원들이 하루 네 차례 강연하고 있다. 4일에는 ㈜하나플러스 건축사무소가 ‘작은 교회가 아름답다’를 주제로 강연했고, 5일엔 ㈜필하우징종합건설이 ‘바로 그 교회-빛의 공간, 색채 공간’, 6일엔 규빗건축사사무소가 ‘교회 건축의 이해’를 주제로 강연한다.

    개막행사에는 국민문화재단 이사장 박종화 목사와 국민일보 최삼규 사장을 비롯해 백석대 최갑종 총장, ㈔무대예술전문인협회 문금주 이사장, ㈔무대음향협회 박임서 이사장, 무대협회 박동순 회장, 교회건축자문위원회 백창건 위원장, ㈜예일디자인그룹 이선자 대표 등이 참석했다.

    최 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교회는 예배 공간이자 지역주민의 사교의 장”이라며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해 교회건축의 수준을 높이고 관련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교회는 건물 음향 무대 영상 등이 있는 종합예술작품으로 그 안에 특별히 하나님이 계신다”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교회를 건축하면 훌륭한 예술작품이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총장은 축사에서 “4세기 이후 건축되기 시작한 교회 건축물이 서양 예술을 이끌었다”며 “이 자리에 계신 교회건축 관계자들이 대한민국의 문화와 예술을 선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람회 입장료는 5000원이다. 교회건축·리모델링 박람회(kocad.co.kr)와 국제음향·무대·조명·영상산업전(kosound.co.kr)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 초청장을 내려받을 수 있다(02-711-4546·facebook.com/kosound.koc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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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더우드의 기도'는 소설 속의 한 장면

    '아펜젤러가 쓴 글'에 상상을 더한 허구…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게 아냐
    옥성득 sungoak@hotmail.com

    2005년에 본 언더우드 기도문, "그런 기도는 없습니다"

    2005년, 새문안교회 역사를 집필한 한성대학교 윤경로 교수(새문안교회 장로)가 필자에게 "언더우드의 기도가 떠돌아다니는데, 그것이 언더우드가 쓴 게 맞는지" 질문했다. 당시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의 의뢰로 <언더우드 자료집 제1권, 1885~1892>을 출판했고,

    이어서 <언더우드 자료집 제2권, 1893~1900>을 편·역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2권은 2006년 6월에 출판). 나는 언더우드가 남긴 초기 자료를 모두 수집하고 정리한 터라 쉽게 답할 수 있었다. "그런 기도는 없습니다." 그리고 온라인에 검색해서 나온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에 간단한 댓글을 달았다. 2005년 11월 6일이었다.

    "이 기도문은 어떤 분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며, 언더우드가 썼다는 증거는 없다. 일종의 작문이다."

    미국에 있던 필자는 그 기도문에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고 잠시 잊고 지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기도문이 영문으로 번역되어 돌아다니고, 동영상과 노래도 등장해 더 널리 퍼지고 있었다. '감동'과 '은혜'를 받았다는 댓글을 많이 볼 수 있는 블로그들도 상당수였다.

    언더우드의 기도는 정연희의 소설 <양화진>에 나온 글

    지난 몇 년간 이미 여러 사람이 그 기도문을 조사해서 정연희의 소설 <양화진: 이야기 선교사>(홍성사, 1992), 235페이지 나오는 글임을 밝혀냈다. 그런데 그것이 허구임에도 아직도 언더우드의 기도인 줄 알고 있는 이들이 많아 다시 이 글을 쓴다. 왜곡된 사실이라도 은혜만 받으면 된다는 사고방식 때문에 오늘 한국교회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고, 꿩 잡는 게 매라는 말이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유행했다. 그래서 간 서울(교회 성장)이, 그렇게 잡은 꿩(대형 교회)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소설 <양화진>을 보면 언더우드가 1885년 4월 서울에 도착한 후, 선교의 자유가 없어 본격적인 전도를 하지 못하고 제중원에서 환자를 돌보며 지낸다. 그러다가 6월 21일 서울에 온 감리교회 선교사 스크랜턴 여사(스크랜턴 의사의 어머니)를 만나 대화를 나눈 후 위로받고,
    "생각할수록 (중략) 이곳에서 스크랜턴 여사를 모시고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리고 언더우드는 집에 와서 성경을 읽으며 묵상한 뒤 기도한다. 그 기도가 문제의 '언더우드의 기도'다. 개척 선교사로서 느꼈을 수도 있는 언더우드의 심정과 당시 한국 상황을 상상해서 쓴 글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쩌다 실제 기도로 알려지게 되었다.

    비록 이 기도가 소설에 나오는 것임을 알지만, 언더우드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기도를 드렸을 수도 있다고 수긍하는 자들도 있다. 오늘 이 글을 통해 언더우드라면 그런 기도를 드릴 수 없었고, 그 내용에 오류나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밝히려고 한다.

    주요 내용은 아펜젤러의 글에서 인용한 것

    소설 원문을 분석해 보자. 1992년에 쓴 글이라 당시 한국교회의 선교 이해나 한국교회사 연구 수준이 반영되어 있다. 논의를 위해 기도문에 번호를 붙여 행을 구분했다.



    ▲ 문제가 되는 언더우드의 기도문.

    1~2행.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청청하고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 이는 1885년 4월 2일 아침 아펜젤러가, 부산항에 들어갈 때 받은 인상을 쓴 글에서 가져왔다.

    조선 후기에는, 외국인의 해적질이나 침략을 막는 해금(海禁) 정책의 하나로 해변에 있는 산을 민둥산으로 만들어 외부인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했다. 또 19세기 후반, 인구가 늘면서 난방과 취사 용도로 나무를 남벌했기 때문에 숲이 줄었다. 가뭄이 잦고 송충이와 붉은 산이 늘었다. 또한 부산의 영도(절영도)는 조선시대에 말(軍馬)을 기르는 목도(牧島)여서 숲이 없었다.



    ▲ 1894년 부산항의 모습. 앞에 영도가 보이고 산에는 나무가 없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입항한 1885년에서 10년이 지난 후라 일본인 주택이 많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아펜젤러는 영도와 부산 해변의 산을 보며 불모의 땅이라고 혹평했다. 이것은 한국에 오기 전 일본에서 한 달 이상을 보내며, 아름다운 자연과 잘 가꾸어진 정원과 발전한 도시들을 보고, 또 기선을 타고 오면서 일본 해변의 아름다운 숲들을 보았기 때문에 한국의 산이 더 황량하게 보였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와 뉴욕에 익숙했던 눈으로, 요코하마와 도쿄를 보며 비교하다가 다시 일본에 익숙해진 눈으로 부산을 보면서 비교했다. 이른바 '이중굴절의 오리엔탈리즘'의 렌즈가 작동하고 있었다.

    한국을 지칭하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나 '은자의 나라'라는 용어는, 바로 일본의 시각을 반영한 미국의 오리엔탈리즘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래서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렀고, 한국 교인들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으로 바꾸어 불렀다.

    정연희가 쓴 소설에는 아펜젤러가 본 부산 인상을 언더우드가 서울에서 드렸다는 기도문에 넣은 것이 첫째 오류요, 서울을 나무 하나 제대로 자라지 않는 불모지로 그린 것이 둘째 오류다. 남산만 보아도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사실 당시 내륙을 여행한 선교사나 외국인의 글을 보면, 한국의 자연은 아름답고 자원이 풍부하나, 한국인은 무지하고 자연과 자원을 잘 관리하거나 개발하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그런 근대주의 사회진화론과 자원 개발론이 깔려 있던 전형적인 19세기 말 서구인의 식민주의적 자연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한 것이 <양화진>의 세 번째 오류였다.

    3행.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1세기 바울의 선교가 로마의 도로 발달에 힘입었다면, 19세기 후반 서구 교회의 세계 선교는 기선의 발달과 함께 가속화했다. 언더우드와 초기 미국 선교사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형 기선을 타고 하와이를 거쳐 요코하마에 오는 태평양 노선 여행을 '기적적인' 항해로 묘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선 항해나 노선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던 부산에서 제물포까지의 항해가 더 힘들고 위험했다. 1876년 개항 후 일본과 중국의 회사들이 독점 운영하기 시작한 한국의 기선 노선은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사실 아펜젤러는 1902년 제물포-목포 노선에서 선박 충돌 사고로 사망했다.

    (한국의 연안 기선들은 아직도 독과점 운영에 비리가 많고 위험하다. 세월호 사건을 보라.) 아펜젤러의 메모와 보고를 보면, 4월 2일 부산을 떠나 3일간 멀미와 고생을 하며 4월 5일 부활절 오후에 제물포에 도착했다고 써 있다. 그래서 '단단한 대지'에 내린 제물포 상륙이 감격스러웠다.

    5행.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6~7행은 4월 8일 제물포 대불호텔에서 쓴 아펜젤러의 보고서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아펜젤러의 기도'에서 가져온 말이다. 어둠 속에 노예처럼 묶여 있는 조선인에게 빛과 자유를 주는 선교사의 모습이 아펜젤러가 그린 선교사 상이었다. 선교사는 문명과 복음의 시혜자였고, 조선인은 미개인이요 우상숭배자였다. 그런 이분법적 사고가 아펜젤러와 언더우드에게 있었다.

    이런 20대 중반의 개척 선교사가 보인 미성숙한 태도와 시각을, 정연희는 소설에서 당연하고 바른 태도인 양 그렸다. 그것이 20세기 말 보수적인 한국개신교의 선교신학이기도 했다. 특정한 작가만 비판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계속 그런 시각을 고수한 것은 아니다. 1886년 한국에 온 엘러즈 간호원은 한국에서 40여 년을 보낸 후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선교사도 변하고 그들의 한국관도 변했다.

    "나는 이 나라에 오면서 이곳 사람들이 나무와 돌을 숭배하며 절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이자 무지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의 고대 문명과 높은 문화 수준, 다양한 예술적 역량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들의 고상함과 천부적인 존엄성, 자부심, 겸손함도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은 내가 무지한 자였고, 그래서 그들과 그들의 상황을 경시했다.

    그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이전부터 내가 과거에 가졌던 생각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한국인들이 자주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힘을 보여 주고, 분노 가운데서도 자신을 통제할 때, 그와 같은 통제력이 부족한 내가 부끄럽다. 한국인은 삶에서 아주 중요한 많은 분야에서 훨씬 더 앞서 있다. 한국인은 존경과 감사와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Annie Ellers Bunker, "Personal Recollections of Early Days," In Within the Gate, ed. by Charles A. Sauer [Seoul: Korean Methodist News Service, 1934], 66.)

    9~10행. "장옷을 쓰고 다니거나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찌할까." 쓰개치마나 가마는 외출용이었다. 집에서는 비록 내외법에 따라 남녀가 별도로 거주했고 상류층 여자를 볼 기회는 적었으나, 잠시 만나거나 볼 수는 있었다. 언더우드에게는 집안일을 하는 한국인 여자 하인도 있었으므로, 한국인 여자를 볼 기회는 있었다.

    11행.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기도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문장이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조선의 마음(조선심)이란 게 과연 있을까? 누구의 마음을 보고 읽어낸다는 것은 대단히 한국 문화적인 말이다. 누군가의 복심을 알고, 그 마음을 읽고 그 지도자의 마음에 따라 정책을 정하고 입장을 바꾸는 것은 체면 문화, 인맥 문화, 보스 정치 문화 속에 살아남는 생존법이자 출세법이었다.

    따라서 서울에 온 지 두 달이 지난 언더우드가 조선심이니 '한국인의 마음'이니 '한국인의 정신'과 같은 단어를 사용했을 리가 없다. 언더우드나 아펜젤러의 초기 글에 그런 말은 나오지 않는다. 1900년경 게일 등이 '한국인의 정신'(the mind of Koreans)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 오면 '일본인론'의 영향으로 '조선인론'이 등장하고, '조선인 개조론'이 등장한다. 한국인은 의타적이고, 게으르고, 분열적이고, 등등의 이등 종족론이 나온다. 식민사관의 변형이었다. 해방 이후 '조센진론'은 '한국인 병'이라는 말로 옷을 갈아입었다. 국가적 사업이 안 되면, "한국인은 어쩔 수 없다", "핫바지가 별 수 있나" 등의 말이 나왔다.

    다시 말하지만 언더우드는 조선의 마음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작가 정 씨가 한국 문화에 젖어서 자신도 모르게 쓴 단어다. 누군가의 마음을 보고 싶은 심리, 그것은 1910년 이후 식민지 지배를 받은 서글픈 '조선인'의 심사였다.

    16행. 1885년 미국 선교사를 '양귀'로 불렀을까? 최소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1885년 자료에는 이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교사들은 양반집에 살면서 하인들이 있고 정부가 보낸 포졸 경비인 기수(旗手)가 집을 지켰으며, 알렌과 헤론은 정이품이나 종이품 등 벼슬을 받고, 고종의 시의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洋교사'와 '洋대인'으로, 그들의 아내는 '洋대부인'으로 불렸다.



    ▲ 이화학당에서 내려다 본 정동(1887년). 선교사들 이런 양반가를 하나씩 사서 거주했다.
    19행.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박대만 가득하다"는 말도 확인되지 않는다. 1885년 6월이면 이미 고종과 정부가 제중원을 허락해서 알렌 의사가 진료하고 있었다. 이 기도문을 썼다는 그때의 두 번째 의사 헤론도 도착해서 바로 병원에 출근하고 있었다.

    정부 관리들은 우호적이었다. 언더우드에게도 곧 영어를 배우러 오는 양반 자제들이 있었다. 경계와 의심은 있었지만 멸시·박대는 없었다. 위의 16행 설명에서 보았듯이, 미국 선교사들은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처음부터 정부의 호의 속에 권세를 누려서 심한 박해를 받거나 순교를 당한 경우가 없었다. 지방에서 강도나 반정부 반란군에 의해 공격을 당한 경우도 드물었다.

    허구에 바탕한 '감동'은 뿌리 없는 나무

    결론적으로 언더우드의 기도는 언더우드가 드릴 수 없었던 기도다. 굳이 부르자면 '아펜젤러의 기도'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하지만 내용에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아, 더 이상 초기 내한 선교사들의 기도라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기도를 인용하면 할수록, 언더우드를 욕보이는 것이다. 오히려 초기 선교사들을 오리엔탈리즘에 젖은 나쁜 선교사로 만드는 일이 된다.

    허구라도 감동을 주면 좋은 걸까? 감동이란 감화·감동의 준말이다. '감화'란 하나님의 말씀과 영에 연결되어 변화하는 것이다. '감동'이란 그 영에 이끌리어 '행동'하는 것이다. 단순히 마음이 찡하는 값싼 '은혜'를 주는 설교를 할 게 아니다. 인격과 삶을 변하게 하고 실천을 통해 사회운동까지 나아가도록 하는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모로 가도, 넓은 길로 가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 아니다. 바른 길, 좁은 길로 가지 않으면 천국에는 갈 수 없다.


    옥성득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임동순·임미자 석좌 부교수(한국기독교)이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국사학과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을 거쳐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와 보스턴대학교에서 기독교 역사를 공부했다. 2002년부터 UCLA에서 한국근대사와 한국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 <한반도 대부흥> 등이 있다.


    =================================
    역사의 부름에 응답한 마르틴 루터

    속(續) 평신도를 깨운다 15 (로마서 1:17)
    천정근 yasnayapalanya@gmail.com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

    오늘은 종교개혁 498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비텐베르크 대학교회 정문에 교황주의와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적은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인 날이 1517년 10월 31일입니다. 루터란(lutheran)과 조합교회가 이날을 종교개혁기념일(Reformation Day)로 정했고, 개혁주의 및 복음주의 전통에 따르는 교회들도 가세해 기념하게 됐습니다. 그게 500년이 된 겁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아니한다"(<용비어천가>)는 말을 새삼 새겨보게 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각자 구명도생(苟命徒生)하는 것도 바쁜데, 누가 종교개혁의 역사까지 기억하겠습니까? 모름지기 95개조의 반박문은 몰라도 <잊혀진 계절>은 기억할 겁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 시월의 마지막 밤을 /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 우리는 헤어졌지요." 농담이 아니라 제목과 가사가 참 절묘합니다. 사실 우리는 사는 게 너무 빠르고, 바빠서 살아온 걸 잊고 삽니다. 40년, 50도 까맣게 잊기 쉬운데 500년이면 어떨까요? 망각은 당연하고 자연스럽습니다. 그런 연고로 명절이 있고 기념일이 있는 거겠지요? 저는 전도사 시절부터 종교개혁주일에는 특별히 기념 설교를 해 왔습니다. 추수감사절도 아니고 종교개혁주일을 기념한다고 하면 동료 목사들도 특이하고 의아하게 받아들입니다. 새삼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제 바람을 말씀드리자면, 새삼스럽지 않은 게 아니라 새삼스러워야 하고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 새삼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대부분 역사는 몇몇 권력자나 천재를 중심으로 기술되게 마련입니다. 종교개혁사도 불가피하게 마르틴 루터부터 거론하게 됩니다. 그러나 루터 얘기를 하는 것은 영웅 루터의 위대함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도구입니다. 정작 루터의 위대함은 오히려 소박함에 있었습니다. 루터는 여러분이 사진을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전형적인 독일 병정 스타일입니다. 장군감도 아니고 성직자감도 아니고 기품 있는 귀족이나 지성미 넘치는 학자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르낙(Adolf von Harnack, 1851~1930)이라는 신학자는 그를 가리켜, "현명함 없는 현인이며, 정책문(政策文) 없는 정치가이며, 예술품 없는 예술가이며, 세계 안에서 세계를 구하는 사람이며 (중략) 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며, 권위를 비웃으나 권위에 매어 있고, 이성을 배격하나 또한 옹호한다"고 평했다고 합니다.

    현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그녀는 동독 출신 목사의 딸입니다)도 그렇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독일 역사를 보면 그런 경우들이 더러 보입니다. 비근한 예로 저 악명 높은 히틀러도 출신을 생각하면 그의 권력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어집니다. 비교할 수는 없는 위대한 인간이지만 루터에게도 그런 점이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그에게 왜 비범함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강조해야 할 것은 루터를 통해 드러난 복음입니다. 복음의 위대함이 그를 각성하게 했고, 루터는 복음의 부름에 소박하게, 정직하게, 그리고 용기를 다해 응답해 나갔던 겁니다. 이 점이 끝까지 역사의 현장에서 고립되지 않은 지도자로서 일반적인 권력자들과 다른 그의 위대함일 겁니다.

    3.

    마르틴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의 아이스레벤에서 구리광산 광부의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는 중세기의 끝부분으로 개명하지 못한 시대였습니다. 교황과 고위 성직자, 황제와 제후들의 각축과 전쟁 아래 민중들은 신음했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의미를 자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교황과 교회에 순종적인 분위기였던 겁니다. 곧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회가 제공하는 순례와 죽은 자들을 위한 미사, 성자숭배, 성모 마리아와 그녀의 어머니인 성(聖) 안나 숭배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부유층에서는 성자 유골 수집이 유행했고, 면죄부가 팔리고 있었습니다.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 시대 교황과 추기경들의 이야기를 통해 종교개혁 전야를 보여 준 바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그러나 문제는 이런 상태가 일상이라는 데 있겠지요? 일상이란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늘 그래 왔던 겁니다. 성직매매, 친족 등용, 성직 겸직, 축첩 등에 얽힌 온갖 추문과 협잡과 살인과 음모는 늘 그래 온 일상이었기 때문에 특별할 게 없었습니다. 새롭게 이름 붙여지는 세금과 공공요금과 벌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게 다 관행입니다. 고위 성직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면 피라미드처럼 타고 내려가 결국 평민들이 짊어지게 되는 구조입니다.

    한편 상층부와 달리 실제 목양을 담당하는 하위 성직자들은 대부분 교육을 받지 못했고 지독히 가난했습니다. 교육을 받았다 해도 별 수는 없었을 겁니다. 구조적 무력함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변화라는 것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해집니다. 워낙 움치고 뛸 수 없는 전체적 구조 속에서 몇 사람이 각성을 한다고 개혁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놀라운 건 바로 이런 정체 속에도 계속되는 영적 흐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설교는 교회와 강단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역사 속으로 들어오시는 하나님은 도구에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모든 게 그의 도구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가르칠 수 없을 때는 세상이 교회를 가르치기도 하는 겁니다.

    교회가 세상의 위협을 받는 것은 종교에 대한 무관심 때문만은 아닙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진리를 전파하려는 것만큼이나 세상도 교회를 향해 그것을 요구합니다. 역설이지요? 고통이 있는 곳에 발생하는 영적 갈망이야말로 교회의 위협이 된다는 역설이 있습니다. 가장 성서적인 입장이 가장 교회의 위협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시대의 영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 때 각성은 교회 밖에서도 옵니다. 16세기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9∼1536)가 주도한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의 활동이 그런 것입니다.

    인문주의(人文主義, humanism)는 르네상스(Renaissance, 고전 시대로의 부흥·재생·복귀의 종합적인 문화 운동)의 열매로 생겨난 경향입니다. '휴머니즘'은 '인간중심주의'라는 의미와 '박애주의'의 의미를 같이 갖습니다.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은 거룩한 문학과 인간적인 문학, 성서와 인문·교양을 함께 연구하고 가르쳐서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이때 세상이란 교회이기도 합니다. "교회를 변하게 해야 세상이 변화된다",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종교다"는 의미입니다. 지난해 개봉한 <쿼바디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 인터뷰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교회가 바뀌지 않으면 한국이 망할 거다." 이 말이 그런 의미일 겁니다. 교회를 무조건 적대하고 분쇄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대하고 있다는 거지요? 이런 점이 인문주의자들과 개혁자들의 교집합이자 합집합입니다. 루터도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나고 자랐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4.

    루터는 어렸을 적부터 자신의 죄성과 불안의 문제에 대해 깊은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종교와 자의식이 따로 존재한 게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모든 문제가 곧 종교의 문제였던 겁니다. 1501년 문학 석사를 마치고 법학부에 다니던 어느 날 급우가 낙뢰로 사망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공포 속에서 그는 성(聖) 안나에게 수도사가 될 서약을 하게 됩니다. 똑똑한 아들에게 기대가 컸던 아버지는 매우 화를 냈지만 그는 끝끝내 법학을 포기하고 아우구스티누스 은둔 수도원으로 들어갑니다. 자기 영혼의 문제에 관해서라면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다는 고집과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수도원에서 루터는 철저한 금욕과 계율에 입각한 청빈 생활을 하면서 설교와 성서 연구를 하게 됩니다.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탐구하는 진지한 학자로 수도원의 연구 책임자가 됩니다. 동시에 수도원 교구를 맡아 설교자로 사역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영혼이 안식하지 못한다는 뿌리 깊은 고뇌가 늘 붙어 다녔습니다. "내가 하는 이 일을 하나님이 인정하신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심지어 사제로 서품되는 순간에도, 첫 미사에서도, 그는 불안과 의심으로 딴 생각에 빠져 의식을 망쳐 버립니다.

    덴마크의 민담에 이런 게 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목사님이 두 요정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려 합니다. 그 요정들은 제대로 따라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첫 문장부터 "하늘에 계시지 않은 아버지여"라고 말해 버립니다. 그런 정도는 아닐지라도 이런 곤혹스런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말하자면 루터는 이러한 믿음의 곤혹들을 믿는다는 자기 세뇌로 덮는 게 아니라 그 실존의 고뇌와 싸우면서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1502년 작센의 선(選)제후 프리드리히 3세가 세운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가 됩니다. 그리고 1510년에서 1511년까지 로마를 여행하게 되는데 거기서 또 한 번 기억할 만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곧 죽은 삼촌을 위해 면죄부를 산 루터는 다른 조상들의 영혼도 자꾸만 생각났지만 돈이 모자라 살 수가 없었던 겁니다. 참 난감하면서도 회의스런 일이었겠지요? 곧이어 참회를 위해 바티칸 성당 계단을 피가 나도록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이 모든 일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고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됐던 겁니다. 믿고자 하면 할수록 거룩하고자 하면 할수록 그 반대도 커졌습니다. 안 믿는 것도 아니고 믿는 것도 아닌 상태, 그 상태에서 하는 확신 없는 행위들. 누군가 가르쳐 준 대로 따라하는 관행.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정한 체험이 없는 일방적 신앙의 무의미함을 절감했던 겁니다.

    루터는 1512년 신학 박사가 되었고, 성서학 교수로 시편과 신약성서를 강의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평안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를 압도하는 하나님 앞의 죄의식은 고해성사와 금욕으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고해신부는 그가 너무나 자주 고해를 하러 오니까 "죄들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가지고 오라"거나, "참된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온다"며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죄를 지으라"고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사변적인 신학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러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 때, 로마서 말씀이 그를 구원해 줍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구원이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용서에 근거한, 하나님과의 새로워진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직 무조건적 용서만이 구원이었습니다. 자신의 오랜 회의와 고통의 의의가 이로써 밝혀집니다. 곧 구약성서적인 율법은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죄인에게 죄를 깨닫게 해 주고 '자기 의'를 철저히 부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데 뒤엉켜 통일되고 일관된 신앙을 가르쳐 주지 못하던 지식들이 정리되고 분명해지면서 마음의 고뇌가 뚫렸습니다.

    5.

    깨달음 뒤에는 항상 "그렇다면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무엇인가?" 비판적 의문이 따라옵니다. 그것이 깨달은 자의 사명입니다. 루터는 이러한 깨우침에 입각하여 가톨릭교회의 가르침들의 비성서적인 지점을 발견합니다. 교회가 가르치고 요구하는 행위들을 통해 하나님이 은총을 주신다는 가르침은 거짓이고 인간들의 지배욕의 도구들에 다름 아님을 밝혀냅니다. 그것은 이미 한 개인의 구원을 넘어선 문제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1517년 루터는 갈수록 더해지는 교회의 악폐에 반대 의사를 표명해야 할 의무를 느끼게 됩니다. 이 해에 교황 레오 10세는 알브레흐트라는 성직자에게 한 번에 세 곳의 주교직을 허용했습니다. 목회하지도 않고, 앉아서도 천리 밖의 세금을 걷어 들이게 된 겁니다. 알브레흐트는 은행가에게 거액을 빌려 겸직금지를 면제해 준 교황에게 상납을 합니다. 그 대신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을 위해 교황이 발행하던 면죄부를 자기의 모든 교구에서 팔고 그 절반을 자기 몫으로 받기로 계약을 합니다.

    수금 담당자는 요한 테첼(Johann Tetzel, 1470~1519)이라는 부흥사였습니다. 그는 가능한 많은 수입을 위해 온갖 극적인 효과를 낼 줄 아는 능력 있는(?) 설교자였습니다. "금고 안에 동전 한 닢이 소리를 내며 떨어질 때 한 영혼이 연옥에서 솟아오른다." 그러나 이 말쟁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테첼은 작센에 입국을 허락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어쩌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면죄부를 사러 갔습니다. 이에 루터는 면죄부 판매를 맹렬히 비판하는 설교를 하고 '95개조의 반박문'을 써서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를 관할하는 알브레흐트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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