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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성탄 설교'
    2008-12-19 08:43:32   read : 6549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장운철 kofkings@amennews.com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기쁨의 성탄설교’가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우리의 턱 밑에까지 차 올라왔습니다.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성도들이 그러하니 교회도 그러합니다. 이럴 때 더욱 큰 기쁨이 절실합니다. 성탄 설교가 더욱 더 중요한 때입니다. 성도들에게는 위로, 목회자에게는 능력이 되는 설교 보조 자료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편집자 주>

    ① 대림절과 성탄절의 신학적 이해

    1. 대림절과 성탄절의 의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대림절(혹은 대강절, 강림절)은 원래 ‘옴’, ‘도착’을 뜻하는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뜻한다. 교회절기로서의 대림절은 성탄절로부터 4주일 전인 11월 마지막 주일에서 4주간 계속된다.

    사도신조의 내용에 따라 성부, 성자, 성령의 구속적 활동을 그 내용으로 담은 삼위일체력에서는 성부 하나님에게 속하는 계절인 창조절이 교회력의 시작이지만, 그리스도론을 주축으로 하는 축제력에서는 대림절로부터 교회력이 시작된다. 이 대림절은 단순히 성탄절을 준비하는 기간이라기보다는 세상 끝날에 심판주로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으로 엄수되고 있다.

    앞에서도 밝혔든시 대림절은 구세주의 오심을 감사하는 절기이다. 동시에 다시 오시마고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이다. 동시에 다시 오시마고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이다. 주께서 언제 오실런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주님은 약속하신 대로 오실 것이며, 다시 오셔서 새하늘과 새땅을 완성하실 것이라는 약속은 분명한 사건으로 나타날 것이다.

    성탄절은 인류를 구원하식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성육신의 사건이다. 그는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의 첫 출발점과 시작이 되는 역사적 사건이며 또한 하나의 종말론적 사건이다. 예수의 탄생은 절망과 곤경 가운데 있는 지상의 모든 개인들과 민족들에게 해방의 소식이 되며, 평화의 소식을 알리는 구원의 메시지이기 때문에 하나의 큰 축제가 된다.

    2. 탄생의 성서적 배경

    (1) 확실한 순종의 사건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탄생을 고백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는 치열한 논쟁의 주제가 되어 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사건에 대하여, 기독교의 복음은 안디옥의 잉나류스의 시대 이후로 처녀탄생을 믿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내용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신약성서 안에 처녀탄생을 직접적으로 증거하는 것은 마태복음 1장 18-25절과 누가복음 26-38절에 한정되어 있다. 요한복음 1장 13절과 갈라디아 4장 4절에서도 예수님의 탄생이 언급되어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요한과 바울은 처녀탄생에 대하여 직접으로 증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의 선재성과 성육신에 대하여 초점을 모으로 있다. 요한과 바울의 문서에서는 선재성이 처녀탄생을 대응으로 삼고 있으나 그렇다고 처녀탄생을 불신임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처녀탄생을 알고 있으면서도 선재성이 보다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을 통과함으로써 땅의 존재를 취하신 하늘의 육체를 입은 하늘의 사람이란 의미이다.

    마태의 기록은 예수님의 족보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이 처녀탄생으로 성취되었다고 본다. 이 사실은 천사가 요셉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를 때 강조된다(마태 1:20). 여기서 예수님은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건져낼 사명을 가진 분으로 통고되었다. 이 사실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영원히 함께 계신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사건이다(마태 1:23). 이것은 다윗의 자손이라는 족보를 입증해 주는 것이다. 비록 그 아이가 성령으로 수태되어 났고(20절), 요셉은 예수 출생 이전에 마리아와 성적 교제를 하지 않았지만(25절), 마리아는 여전히 그의 아내요(20절, 24절), 그는 그녀의 남편이다(19절).

    요셉은 예수가 그의 아들임을 인정한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사건은 탄생을 가능케 했던 성령의 수태고지에 대한 천사의 메시지 전달에 대한 요셉과 마리아의 태도였다. 마태와 누가는 요셉(마 1:24)과 마리아(눅 1:38)가 말씀을 순종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사건에서 은총의 주인공이 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같이 하여 역사적으로나 범적으로나 예수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가문에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요셉이 꿈속에서 마리아가 임신된 사실을 알게 되고, 동방박사의 내방, 그리고 헤롯의 강한 분노는 예수님의 출생에 대한 역사성과 섭리적 의미를 더 강조해 주는 것이 된다.

    (2) 새 백성을 형성한 사건
    예수님의 출생 시 천사는 목자들에게 말하기를 이 사건은 전 인류가 축복을 받게 될 사건이라고 한다. 모든 백성(눅 2:10)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아니고(마 1:21 같이) 도리어 누가복음 2장 14절을 비추어 볼 때, 하나님께서 온 인류 안에서 불러내어 형성한 ‘새 백성’으로 이해된다. 누가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에 이 계보를 넣고 있다. 누가는 예수님의 족보를 아담에게까지 소급하여 만든다. 이것은 예수님의 참된 인간성을 강조하려는 데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누가가 예수님의 탄생을 아담으로부터 출발했고, 마태는 이스라엘의 혈통으로부터 그 출발을 삼고 있다고 해도 두 복음서의 족보에는 다 같이 요셉은 다윗의 가문에 속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탄생사건은 이스라엘의 옛백성을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새 백성을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3)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하여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잉태되고 탄생하신 성육신의 사건이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성육하시는 처녀탄생의 이야기는 이사야 7장 14절 예언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하지만,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에 의하여 기적이 일어난 사건은 마태복음 1장 20절, 누가복음 1장 35절에서 나타난다.

    또한 마태복음 1장 21절에 의하면 예수의 출생은 선택된 백성을 그 죄로부터 구원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누가(눅 1:46-55)는 예수의 출생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주마고 약속한 모든 것을 완성할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으로서 찬양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성육신의 사건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처녀탄생을 단순한 원시교회의 창작으로 이해한다든가,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에게 준 은혜로서 이해될 수 없는 ‘자연기적’으로 본다든가, 혹은 생물학적 기형물로 이해하려는 작업을 시도한다면 큰 과오를 범하게 된다. 만약 우리가 처녀탄생의 역사성을 거부하면서 성육신 사건의 정신적인 면이라든가 신앙의 신비로써만 이해하려고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단순히 신화로서만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인 성육신의 사건을 결코 신화적 사건으로 돌릴 수는 없다. 성육신의 사건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요한과 바울은 선재성을 처녀탄생보다 더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의지에 의하여 구원의 사업을 펼쳐 가시고자 하는 첫 출발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4) 해방과 평화의 사건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복된 소식을 출발점으로 한다. 이 복된 소식은 절망과 곤경 가운데 있는 모든 개인과 민족을 행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구원활동을 성취해 가는 첫 관계이다. 복음서의 틀 안에서 본다면 처녀 탄생의 이야기가 가르치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계심으로써, 성령을 통하여 한 ‘거룩한 사람’이 죄있는 인류 안에 출생했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 탄생의 복음은 곧 해방의 복음이 되는 것이다. 탄생의 복음이란 틀 속에서 볼 때 역시 복된 소식의 절정은 평화의 소식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천사들이 궁극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평화를 갈망하는 모든 개인들과 민족들에게, 특히 하나님께서 ‘새 백성’으로 불러서 형성하신 절망과 곤경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긴급히 외쳐져야 할 구원의 메시지인 것이다. 따라서 성육신의 복음이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이루어 가시는 종말론적 사건이라고 볼 때 그 메시지의 핵심은 평화를 주제로 삼게 되는 것이다.

    3. 예수 탄생의 교육적 의미

    이상의 고찰에서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성육신의 사건으로서, 그 사건은 하나님께서 인간 구원 행위의 작업을 위해서 한 첫 단계요, 첫 출발점이요, 시작으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성탄절의 사건은 하나님의 인간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 행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그 주권이 있게 된다.

    그러면 성탄절의 기독교 교육적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여기서 기독교교육의 목적이 분명하게 설정된다. 즉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비인간화의 현장에 오신 예수 그리그도의 성육신은 바로 그곳이 곧 교육의 현장이 될 수밖에 없다. 비인간화의 현장은 바로 우리들의 가정이며, 학교이며, 교회이며, 또한 사회가 된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타락한 비인간화의 역사적 현장에 오셔서 참여하여 사시고 그들의 행위를 위해 함께 대화하시는 곳에서 소외되었던 인간들은 예시 삶의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백성으로서 삶의 새로운 스타일을 형성시켜가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곧 우리로 하여금 이 메시야가 건설해 가시는 새 시대 속에 살도록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백성을 통해 완성해 가시는 세계 구속의 사업을 위해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와 해방과 참 인간성 회복을 통한 평화를 성취시켜 가도록 참여시키는데 교육의 목적을 두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이미 설정된 교육의 목적에 따라 교육의 내용과 교사의 역할 그리고 교육환경을 통한 교육의 새로운 교육방법으로 교회 공동체의 새로운 역군들이 그들의 맡은 바 책임을 감당해 갈 수 있는 공통의 학습과정을 꾸준히 실천해 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성탄절을 통하여 비인간화의 역사적 현장에 노출된 소외층 사람들에게 참 인간성 회복의 작업과 삶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위해 오늘도 계속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육신을 통해 참 사람이 되시고 모범이 되신 그의 뒤를 따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 나아가 비인간화의 현장인 세상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구체적으로 대화하며 구원의 작업을 끊임없이 진행시켜 가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선교’ 현장인 절망과 곤경의 비인간화 작업장에서 민중의 괴로움과 아픔을 함께 나누시며 새 백성을 형성시켰고 또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교회공동체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만드시고 또다시 새 인류의 새싹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을 주신다. 이러한 희망의 공동체 형성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 활동에 참여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 교회절기프로그램, 한국기독교장로회출판사, 1994, pp.382-388


    ② 제목: 예수님을 맞이한 사람들
    성구: 시편 85:9-13, 누가복음 2:8-14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에서도 여러 번 예언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오셔서 30년 동안 사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다시 재림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가장 큰 예언은 예수님의 탄생이고 또 재림입니다. 이것보다 많이 예언된 것은 없습니다. 앞으로 주님은 반드시 재림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처음 주님을 맞이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준비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은 우리에게 너무도 기쁜 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슬픈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보내신 그 날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분명 슬픈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까? 성경을 연구했던 서기관들, 제사장들은 한 명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누가 영접했습니까? 다섯 부류의 사람들이 영접했습니다.

    1. 마리아
    마리아는 당대 모든 여성들 중에 가장 정결하고 신앙이 좋은 여자였습니다. 그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가 “은혜를 받은 자여!”라고 부르면서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될 것을 말하고 사라졌습니다. 처녀가 어떻게 아기를 낳습니까? 처음 마리아는 당황했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위한 길이라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아기를 낳겠다고 결단을 합니다.

    누가복음 1:38에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는 것은 이 땅을 구원하는 데 내 몸이 필요하다면 내 몸을 내놓겠다는 말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몸을 바치겠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처녀는 몸을 바치는 것입니다. 당시 여자가 결혼 전에 부정을 했다고 하면 언제든지 이혼을 당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친정에서는 그 여자를 집안과 동네를 더럽혔다고 해서 동네에서 돌로 때려 죽이는 것이 법이었습니다. 이 형벌을 당할 것을 각오한 것입니다. 마리아만 비참하게 죽는 것이 아니라 가정 전체도 더럽힘을 당합니다. 생명을 바치고 주님을 위해 목숨을 드린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만 하면 기적과 같은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역사도 같습니다.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는 아주 적지만, 모든 것을 다 드렸을 때 전체가 다 먹고도 남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이 땅에서 부자, 많이 배운 자가 아니라 이 땅에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위해 전체를 드리겠다고 고백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을 통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늘에서도 영원히 큰 자가 되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요셉
    마태복음 1:10 이하를 보면 천사가 하는 말이 “너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다. 네가 할 일은 마리아를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마리아를 동침하지 아니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와 어머니를 잘 모시라”고 부탁을 합니다. 큰 어려움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2천년 전에 우리 나라에서 여자는 남자를 위해 일을 해 주고 아기를 낳아 주고 하는 것이 여자의 일이었습니다. 여자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남자가 먼저 죽으면 죽을 때까지 수절을 해야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보다 더 심했습니다. 여자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사람 수에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장정들만 사람이었지 여자와 아이들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여자를 무시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임신한 여자를 데려다가 동침하지 아니하고, 아기와 어미를 잘 모시라고 하는 것은 남자로서 죽으라고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남자로서의 자존심, 수치는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무릎을 꿇고 “아멘”했습니다.

    또 요셉은 일찍 죽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쓸 때 요셉의 아들 예수라고 하지 않고 마리아의 아들 요셉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해서 난 것이냐 아니면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난 것이냐라는 논란이 없게 하기 위해서 요셉을 빨리 불러 가신 것 같습니다. 요셉은 예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을 당했던 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생명을 건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생명을 건 위대한 신앙입니다. 그런 신앙을 통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서 구원자로서의 일들을 이루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목자들
    목자는 양을 키우는 사람인데, 제사를 위해 양을 키울 때 흠과 티가 없도록 기워야 했습니다. 양을 키울 땐 낮이나 밤이나 언제나 양옆에 있습니다. 그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아는 분이 약사인데 하시는 말씀이 “난 날마다 감옥생활을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여기를 떠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목자는 언제나 양과 더불어 살며 짐승과 똑같이 삽니다.

    그리고 새끼를 낳으면 몇 마리 되지 않지만, 사자가 찾아옵니다. 양수 냄새를 맡고 양 새끼를 먹으려고 옵니다. 그러면 사자와 싸웁니다. 입을 벌리고 새끼를 꺼냅니다. 목숨을 걸고 곰과 싸워야 합니다. 작은 일이지만 생명을 걸고 열심히 했던 것이 목자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천자들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기 위해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목자의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걸고 일을 할 때 축복의 주인공으로 이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도 아버지가 맡긴 양을 열심히 돌보았습니다. 사자와 싸우고 곰과 싸우며 목숨을 걸고 열심히 했더니 나라를 모두 운행할 수 있도록 왕으로 이끄셨던 것입니다. 모세도 산에서 40년 동안 양을 돌봤습니다. 날마다 양과 더불어 자고 살았습니다. 나이가 80이 되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합니다. 머리도 희어지고 몸도 구부러집니다. 먹을 것을 제대로 목지 못하고 있는데 그 몸이 얼마나 상했겠습니까?

    이제 인생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때였습니다. 호렙산에서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네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입니다”. 지금 걸친 옷 한 벌하고 지팡이가 전 재산이었습니다. 그렇게 일하면서 겨우 먹고 살던 모세였습니다. “그것을 집어 던지라” 던졌습니다. 뱀이 되어 꿈틀거렸습니다. 다시 집었습니다. 지팡이로 돌아왔습니다(출4:1-4).

    적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전부 드렸을 때 기적이 나타나고, 이 지팡이를 통해 홍해를 가르고 반석을 쳐 생수가 터지게 하고, 하나님의 권능의 도구가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작은 자라도 생명을 걸고 열심히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지금도 영광을 받으시고 축복하십니다. 내가 맡은 직장, 내가 하는 작은 사업이라도 아무렇게나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상사를 곳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열심을 다하면 상사에게 인정도 받겠지만, 하나님께 인정을 받게 되고,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내 앞날도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그 사업장에도 축복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도 인정받고 하나님께도 인정받는 날이 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안창호 선생이 일본에서 공부를 할 때입니다. 어느 집에 가서 집안 청소를 하는 일을 하고 밥을 먹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청소를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곳까지 깨끗하게 청소했습니다. 주인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주인은 그가 소개시켜 주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다며 계속 소개를 받아서 한국 유학생을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늘 “정직하라! 민족을 생각하라! 나라를 생각하라! 내가 하는 손길 하나에 민족이 달려 있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하나님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정직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하늘의 영광의 상급을 받을 날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4. 동방박사들
    동방박사는 날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주님을 기다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늘에 별이 나타났습니다. 직감했습니다. 별이 움직였습니다. 별을 따라갔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만 하면 그 직장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기적도 나타납니다. 별처럼 빛나는 영광이 얼마든지 나타납니다. 동방박사는 그 별을 따라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았습니다. 산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서 지구의 반 바퀴를 돈다는 것은 생명을 건 모험입니다. 결국 아기 예수님을 만나 황금과 유향과 몰약 전 재산을 다 바쳤습니다. 생명을 건 신앙입니다. 목숨을 건 신앙입니다.

    5. 안나와 시므온
    안나와 시므론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아주 평범한 그들이지만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정성을 다해 믿음생활을 하고, 교회의 성장을 위해 돕고 열심히 일한 자들이었습니다. 인간이 보기에는 작은 일꾼이고, 작은 머슴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가 정성을 다해 열심히 하고, 내가 교회에 봉사하고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그들에게 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시고, 인도하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위에 열거한 사람들의 신앙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건 사람들입니다. 주의 뜻을 위해 목숨까지 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이우기 위해서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기 위해서라면 생명도 바치겠다는 각오로 나아갔던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이 나중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 영광의 주인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자를 찾고 계십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있지만 이런 올바른 신앙을 가진 자를 찾기는 힘듭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많이 있습니다. 선교에 대한 지식도 많이 있습니다.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식만 많았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중에 예수님을 영접한 자가 없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명을 포기한 순교의 신앙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목회와 설교자료 2002, 한국장로교출판사, 2001, pp.292-297


    ③ 제목: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성구: 이사야 62:6-12, 디도서 3:4-7, 누가복음 2:1-7, 8-20

    * 구약의 말씀(이사야 62:6-12)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과 회복을 약속하여 주시는 말씀이다.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뒤로 한 채 고국 땅에서 쫓겨나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 포로로 잡혀 가게 되었고 거기서 압제와 고통을 받는 노예 생활을 하여야 했다.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쁨이란 있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이 수고하여 결신한 곡식과 포도주는 원수들이 빼앗아가 버렸다. 온 열방의 웃음거리와 조롱거리가 되었으므로 이스라엘의 입술에서는 찬양이 사라지고 얼굴에는 수치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에게 임하시는 날이 되면, 다시는 곡식을 원수에게 주는 일이 없을 것이며 이스라엘이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들이 마시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입에는 찬송이 다시 가득할 것이요. 저들의 얼굴에서는 수치가 사라질 것이다. 열방들은 이스라엘을 일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 할 것이요. 예루살렘을 향하여는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는 성읍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 신약의 말씀(디도서 3:4-7)
    본문은 그리스도교 구원론의 대강령을 밝힌 구절로서 그리스도교의 구원은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진 것임을 가르쳐 주신다. 성부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사랑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셨는데 그것은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이다. 성자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다. 또한 성령께서는 우리 성도들 속에 함께 계시면서 구주 예수를 믿는 믿음을 굳건하게 해 주신다. 이와 같이 본문은 구원이란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데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 복음서 말씀(누가복음 2:1-7, 8-20)
    일찍이 미가 선지가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서남쪽 10km지점에 있는 곳으로 다윗왕의 고향이기도 하다. 다윗의 후손이었던 요셉은 본래 갈릴리 나사렛이란 곳에서 살고 있었으나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 사람들에게 호적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므로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베들레헴에 머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게 되었으니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이 아기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 옛날 다윗이 양을 쳤을 바로 그 들판에서 목자들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천사들의 찬양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천사들이 전해 주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 설교
    서론: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사람들은 들뜬 분위기 속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한다. 시내에 나가면 거리마다 캐롤송이 가득하고 백화점에는 성탄절을 겨냥한 선물들이 넘쳐나고 있다. 오색 찬란한 등불로 성탄절의 밤을 수놓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성탄절이 왜 기쁜 날인지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인가?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그 성탄 밤에 천사들을 통하여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여 주셨다. 성탄절이 왜 우리에게 기쁜 날이 되는지 그 참된 의미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성탄절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세상에 오신 날임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하여 성탄들에 태어나신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나신 분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사람들과 무관하게 하늘에 홀로 계신 분이 아니시다. 구원의 길을 알지 못하고 절망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를 버리시는 분이 아니다. 구약 시대에는 율법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고 끊임없이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셨다. 그리고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이미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신 대로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야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주신 메시야는 놀랍게도 바로 하나님 자신의 외아들이셨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를 위하여 보내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시켜 주셨다.

    성탄절은 왜 기쁜 날인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된 날이기 때문이다. 성탄의 소식이 왜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인가? 성탄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하여 오셨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성탄절이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날임을 말씀하신다.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라”고 했다.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들과 똑같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근본하나님과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낮춰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우리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않는 분이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을 아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신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강하게 해 주신다. 우리의 배고픔과 우리의 가난함을 아시고 우리를 배불리 먹이시며 풍성하게 하신다. 성탄절은 왜 기쁜 날인가?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신 날이기 때문이다. 성탄의 소식이 왜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인가? 하나님이 우리와 똑같이 되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식 때문이다.

    3. 하나님께서는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주로 세상에 오신 날임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하여 성탄들에 태어나신 예수님은 ‘그리스도 구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죄 가운데 있던 인간들은 모두 멸망당할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성탄을 통하여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실 구주를 보내주신 것이다. 성탄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천하 인간들이 구원을 얻을 만한 유일하신 이름이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멸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성탄절은 왜 기쁜 날인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구원의 이름을 주신 날이기 때문이다. 성탄의 소식이 왜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인가? 죄악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의 문이 열린 날이기 때문이다.

    ** 정장복, 97예배와 설교 핸드북, 홍성사, 1996, pp.120-123


    ④ 제목: 그분이 오신다
    성구: 이사야 60:1-14, 갈라디아서 4:1-7, 마태복음 2:1-12

    오늘날은 교회에서 성탄을 이야기하기도 전에 캐럴과 성탄 장식들이 먼저 등장한다. 교회는 그렇게 요란한 프로그램을 갖지 않을 때에, 매스컴에서는 각종 행사들과 프로그램들이 방영된다. 그러한 것이 고마울 때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신 이 귀한 성탄에 예수를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함께 즐거워한다는 사실이 고마운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성탄에 대한 위험한 도전 앞에 서 있다. 그것은 ‘상업주의’의 도전이다. 상업주의의 도전 앞에서 성탄의 의미가 전도되고 있다. 예수 탄생은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니며, 한 몫 보는 때이고 즐기는 연휴일 뿐이다. 상업주의의 도전 앞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성탄의 복음이다. 또한 그것은 성탄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경배이다.

    그분이 탄생하시는 때를 그렇게 표현한다. “헤롯 왕 때엽. 성탄의 복음을 전하면서 성스럽고 거룩한 복음의 말씀과는 도무지 조화되지 않는 사람의 이름을 거론한다. 예수님이 태어나던 당시의 왕이었던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었으면서도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탁월한 지략과 모략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는 로마 황제의 인정을 받아 유대 나라를 다스리는 분봉왕이 되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때까지 약 50년을 권좌에 앉아 유대 나라를 다스렸는데 굉장한 정치적 역량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면서도 정신병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었고, 성격도 또한 아주 포악한 왕이었다. 그의 아내와 장모, 장남과 두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였던 사람이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암울하고 사회적으로 가장 어둡던 때에 주님은 이 땅에 오셨다. 그 어렵고 암울하던 때에 임마누엘 하시기 위해서 그분이 오고 계신다는 것이다. 삶의 어려움 속에 계시는 분이 있는가? 건강의 어려움, 사업의 어려움, 가정의 어려움, 자녀의 어려움, 인생의 어려움... . 인생의 캄캄한 밤을 지내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가? 올해도 주님은 그 어려움의 현장에 오신다는 것이다.

    그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이름이 들려진다.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저가 저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임이라” 성탄은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놀라운 이름이 선포되는 복된 절기이다. 이 이름이 불리는 곳에 오늘도 하나님의복 주심은 시작된다. 구원의 역사가, 치유의 역사가, 희망의 역사가, 놀라운 위로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사야 본문은 이런 역사들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한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화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잘 생각해 보자. 우리가 예순의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어둠에 속해 있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믿고, 의지하기 전 우리는 율법 아래 놓인 죄악의 종들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갈 4:1-7). 성탄은 복음이 전해지는 때다. 이 복음을 경험하는 사람에게만 이 성탄은 복일 수 있다. 예수, 그분이 오신다는 성탄의 복음을 새롭게 듣게 되고, 경험하게 될 때에 ‘Merry Christmas!’가 되는 것이고 ‘Happy Season’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이 놀라운 은혜, 우리의 영혼을 살리며 우리의 생명을 건지실 하나님의 독생자와 무엇을 비교나 할 수 있겠는가? 성탄은 우리가 다시 살아나게 된 은혜의 순간이다. 성탄은 하늘의 생명이 사망의 세상에 접목되던 때이다. 지옥의 백성이던 우리에게 최초로 하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복음이 전해지던 때이다. 그러므로 성탄의 복음의 깊은 의미를 깨달은 사람들은 성탄의 복음을 듣고 감격한다. 가슴이 떨린다.

    오늘날 예수가 성탄에서 빠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면 첫 번 성탄절에도 그랬다. 오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다. 고향에 호적을 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인해 조용한 산골 마을이 소란해 졌을 때, 한 몫 잡으려는 사람들의 눈이 번득인다.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라 할지라도 사람들의 이기심은 조그만 처소하나 내놓지 못한다. 그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오시는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나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별빛은 아름다움을 더하듯, 놀랍게 성탄을 맞은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게 된다. 나신 아기께 경배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강생하신 하나님의 독생자를 예배하기 위해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성서는 이 아름다운 신앙의 사람들에 대한 이름도 배경도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는 전설이나 문학을 통해서나 그들의 이름에 대해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성서는 그들에 대해서 그렇게 소상히 소개하지 않는다.

    그들은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었다. 별을 연구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들은 언제나 마음속에 메시아가 오실 날을 기다리며 사는 신실한 신앙인이었다. 일상의 일을 하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나라를 꿈꾸며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그들은 희미하지만 한 메시지를 듣게 된다. 그들은 일어선다.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어떤 사건, 어떤 상징을 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인가. 우리 삶의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지 못하고 산다면 영적으로 어두운 세계를 사는 사람이다.

    그들은 별의 메시지를 알았다. 별의 메시지를 이해했다. 그 놀라운 소식을 대하자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이 탄생하신 자리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단숨에 달려갈 수 있는 그런 거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 하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일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영혼을 구원해 주신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야로 인해서 가슴이 뜨거워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멀고 가까운 것,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주님을 섬기는 데에는 시간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없고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주님으로 가슴이 뜨거워진 사람들이냐가 문제일 뿐이다.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진 사람이냐가 문제일 뿐이다.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고 싶은 사랑으로 얼굴이 붉어진 사람이냐가 문제일 뿐이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는 거리 같은 것은 초월되기 때문이다.

    동방박사들은 성탄의 복음이 들려왔을 때, 일어났다. 가장 소중한 것을 들고 그것들보다 더 소중한 아기 예수를 찾아 물을 건너고 산을 넘었다. 경배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온전히 주님을 영접했고, 경배했으며 예물을 드렸고 다시 임마누엘 되시는 주님을 가슴에 품고 삶의 자리로 돌아갔다. 금년에도 주님은 다시 탄생하신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분이 오신다. 성탄의 복음을 듣고 감격하는 그 자리에 서 있는가?
    ** 생명을 빚어가는 해-2001년도 교회력에 따른 예배와 설교 자료, 대한기독교서회, 2000, pp. 9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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