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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딤전1:12-20/ 인생항로와 파선 / 한경직 목사
    2014-08-23 07:55:14   read : 1264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一․十九)

    오늘 봉독(奉讀)한 말씀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항해의 경험이 많이 있는 분이올시다. 바다 여행을 많이 하신 분이올시다. 그러는 동안에 파선하는 것도 많이 보았고 파선을 친히 체험한 일도 종종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파선의 비극을 잘 알고 있는 분입니다. 고린도 후서 十一장에 보면 그가 세 번 파선을 당하였는데 一주야를 깊은 가운데서 지냈다고 하는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 전서를 쓸 때까지 당한 경험이올시다. 그 후에도 이 비슷한 경험을 계속해서 당한 줄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사도행전 二十七장에 기록된, 사도 바울이 로마를 향하여 갈 때에 그레데 섬 근방에서 큰 폭풍우를 만나서 그의 탔던 배가 열 나흘 동안이나 지중해에 표류하다가 마지막 밀레도 앞 바다에서 파선이 되고 겨우 인명만 구조된 그런 기록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옛날 뿐 아니고 오늘날에도 계속하여 일어나는 사건이올시다. 지금은 과학이 발전되었다고 하지마는 이와 같은 비극은 아직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금년만 할지라도 우리 해안에서 큰 태풍으로 말미암아 파선된 어선, 침몰된 어선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바로 우리 나라 배 한 척이 멀리 사이판 섬에서 태풍을 만나서 침몰되었다고 하는 보도를 읽었습니다. 파선으로 말미암아 오는 생명과 재산의 손해는 얼마나 많은지 이루 다 헤아려서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바다 밑은 이 파선의 잔물(殘物)로서 덮였다고 생각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대에는 바다 위에도 이 파선의 잔해가 떠다니는 까닭에 오히려 배들의 항해를 곤란케 할 때가 할 때가 없지 않아 있다고 합니다. 바다에는 이 파선의 비극이 종종 있습니다.

    옛날부터 우리 인간의 생활을 항해와 같이 본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해서 인생항로란 말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 세상을 바다로 본 이가 많습니다. 흔히 괴로움이 많다고 해서 고해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한 작은 배로, 일엽편주로 본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우리 하나 하나는 말하자면 일엽편주를 타고 한 잎 작은 조각배를 타고 이 망망한 대해를 건너가는 나그네로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행선(行船)에는 물론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저 언덕 피안을 향하여 갑니다. 곧 하늘의 항구를 향하여 우리는 다 배를 탔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다는 거울 같이 잔잔할 때도 있지마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바다는 위험을 내포합니다. 때로는 큰 풍랑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경험한 바와 같이 우라굴로 같은 폭풍우가 인생의 바다에도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혹은 지금 우리가 흔히 신문 보도를 통하여 아는 대로「사라」호니 무슨 호니 하는 태풍이 불 때도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아마 배 여행을 하다가 이과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이 우리 가운데도 더러 계실 줄로 생각합니다. 저도 배 여행을 많이 하지는 아니했지만, 두어 번 이런 경험을 당해 보았습니다. 한 번은 제가 평양에서 숭실대학에 다닐 때에 어떤 여름에 진남포에서 배를 타고 구미포를 향하여 가던 도중이었습니다.

    처음에 떠날 대에는 바다 가 잔잔하였지마는 해가 질 무렵에 갑자기 풍랑이 일어나고, 특별히 황해도 장산곶이라고 하면 물결이 거세기로 유명한 곳인데 그 곳을 지나갈 때에 어떻게 배가 흔들렸는지 아마 그 때 선원과 아이들 외에는 전부 멀미가 나서 정신을 잃은 광경을 복도하고 또한 체험해 보았습니다.

    제가 배로도 태평양을 아마 너 댓 번 건넜습니다. 마지막에 배로 미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 번 태풍을 만나서 산 같은 물결이 배 위를 덮치는 그런 위험한 항로를 항해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렇게 바다에는 때로는 풍랑이 일어납니다. 또는 바다에는 때때로 안개가 낍니다. 운무가 앞을 가려서 지척을 문간하기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레이더 장치가 있어서 안개가 있을지라도 어느 정도까지 앞을 내가 볼 수 있는 기계가 있지마는, 옛날에는 물론 그런 기계도 없을 때입니다.

    그 뿐더러 바다는 위에서 보기에는 물밖에 없지마는, 어떤 때는 속에 암초가 있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저 북극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빙산이 있어서 불시에 배가 위험한 일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유명한「타이타닉」호의 파선의 비극은 빙산에 부딪쳐서 그 당시는 제일 크게 만들었던 배가 조각 조각으로 파선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의 바다에도 종종 위험이 있습니다. 큰 풍파가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세계전쟁이 일어납니다. 六․二五 사변이 일어납니다. 전쟁과 기근과 환난이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개인 생활에 있어서도 사업에 실패할 때가 있고 실직이 될 때가 있고 중병에 누울 때가 있고 큰 슬픔을 당할 때가 있고 유혹의 풍파가 휩쓸 때도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안개가 바다 위에 끼는 것처럼 모든 일이 혼돈하고 복잡해서 전도 난측(難測)으로 앞길을 헤아려 내다보기 어려운 때가 종종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시대에 우리가 매일 매일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의심의 안개와 근심의 구름이 우리의 앞길을 가리울 때도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그보다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는 보이지 아니하는 유혹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마는 갑자기 닥치는 시험이 있습니다. 악한 마귀의 올무가 있습니다. 영적 암초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바대에서도 파선의 비극을 우리는 종종 보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좋은 아름다운 배를 창해에 띄워 순풍에 돛을 달고 떠났지마는, 얼마 못 가서 거슬리는 바람과 노한 물결에 휩쓸려서 파선을 당하는 청년 남자들도 있고 청년 여자들도 적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문자 그대로 그야말로 안전고투로 四十년 혹은 五十평생을 거친 바다를 건넜지만, 항구를 지호간에 두고 어떤 큰 유혹과 시험의 암초에 걸려 파선이 되어 전공이 가석하게 되는 중년 남자와 여자들도 적지 않게 우리가 보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신생의 바다에는 그 밑에 분자 그대로 인간 파멸의 파편이 깔렸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거친 물결 위에 이 인간 파편의 흉악한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볼 수밖에 없는 이런 세계에, 이런 바다에 우리는 항해를 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한 번밖에 갈 수 없는 인생의 항로를 안전히 가서 무사히 마칠 것입니까? 이것이 우리 하나 하나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인생항로에 가장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셨습니까? 여기에 경험이 많은 사도 바울은 이미 제가 본문에 읽은 대로 이렇게 권면 합니다.『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먼저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 하였습니다.

    배가 거친 파도를 헤치며 전진하여 나가려고 할 것이면 무엇보다도 힘이 필요합니다. 물론 작은 강은 사람의 힘으로 노를 저어서 건너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큰 바다는 우리의 힘으로 건널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사람들은 다른 힘을 빌었습니다. 풍력을 빌었습니다. 바람의 힘을 빌었습니다.

    바람의 힘을 빌기 위해서 돛을 달았습니다. 머 대양을 건너가는 배는 여러 돛을 달아서 돛을 통해서 바람의 힘을 빌어 대양을 건너가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좀 더 문화가 발전되어서 바람의 힘보다는 다른 힘을 씁니다.

    혹은 화력을 빕니다. 석탄을 피워서 물을 끓이고 증기의 힘을 빌어서 프로펠러를 돌려서 배를 나아가게 합니다. 혹은 전력을 빌어서 배를 움직입니다. 최근에 와서는 여러분께서 보시는 대로 원자력을 빌어서 배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의 힘만으로는 바다를 건너갈 힘이 부족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바다를 건너는 데도 우리 사람의 힘만은 부족합니다. 우리 사람의 의지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보다 더 굳센 힘이 필요합니다. 이 힘, 이 능력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와 같이 험난한 인생의 바다를 향해서 나아갈 때에 자기의 힘으로 항해해 간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친히 증거한 대로『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히 못한 것이 없느니라.』자기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그 능력 주시는 자의 능력으로써 모든 것을 이기고 나아간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은 믿음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물질적 능력을 이 우주에 준비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생으로 바른 길을 가게 하기 위해서 신령한 능력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 능력은 오직 믿는 이에게만 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튼튼히 의지하는 그 믿음이 있어야 이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이 능력을 통해서야 아무리 물결이 거칠다고 할지라도 이 바다를 능히 건너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환난이나 유혹의 파도가 높다고 할지라도 돌파하여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이 믿음이 있는 이에게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약속까지 주셨습니다. 이사야 四十三장을 볼 것이면『물을 건널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물이 너는 침몰치 못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항해를 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사도 바울은 먼저『믿음을 가지라』고 권면 합니다. 믿음을 가져야 인생항로를 바로 건너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 하였습니다. 착한 양심이라고 하는 말은 뜻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이 있는 양심이 아닙니다. 왜곡된 양심이 아닙니다. 화인 맞은, 마비된 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본래 주신 그대로 순결한 착한 양심입니다. 여러분, 항해에 가장 필요한 작은 기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침반(羅針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혹은 지남 침(指南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지남 침 있어야 아무리 운무(雲霧)가 앞을 가리운다고 할지라도 배가 옳은 방향으로 그냥 계속해 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이 속에 지남 침 하나를 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것이 곧 양심이올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작은 배, 우리 손에 지남 침을 주셨는데 이것은 곧 양심입니다. 부끄럽지 아니한 착한 양심입니다. 양심은 영혼의 지성소올시다. 양심은 마음속의 촛불이올시다. 밝힙니다.

    양심은 마음에 새긴 하나님의 율법이올시다. 양심은 속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이올시다.『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 하십니다. 이 양심이 우리의 생활의 방향을 지시하여 줍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여 줍니다. 시비를 판단하여 줍니다. 갈 길과 안 갈 길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양심은 우리를 격려하기도 하고 혹은 책망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옳은 길을 갈 때에 우리를 칭찬하고 우리의 마음을 평안케 해서 우리를 격려해 주고, 안 된 길을 가려고 할 때에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가책을 주어서 우리를 책망하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항로를 바로 가려고 하십니까? 하나님이 주신 양심 그대로 양심을 지니고 저버리지 마십시다. 양심의 음성을 거역하지 마십시다. 양심의 음성을 무시하지 마십시다. 아무리 어려워도 양심의 음성에 순종하십시다. 아무리 손해가 나도 양심의 명령에 순복 하십시다. 아무리 부끄러워도 양심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빅토르 유고의 유명한「쟝발쟝」의 이야기를 여러분은 기억하시지요. 그 사람은 여러 가지 죄는 많이 지었습니다. 그리고 몰래 도망했습니다. 먼 곳으로 갔습니다. 변 성명 했습니다. 그 곳에 가서 정계(政界)에 투신했습니다.

    성공을 해서 그 곳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더러운 죄를 많이 지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른 도회에 가서 변 성명하고 새 사람으로 시장의 자리에까지 올라가서 평안히 삽니다.

    그러나 한 번은 신문을 보니까 자기가 살던 그 도회에서 어떤 죄인이 하나 붙잡혔는데 도적질을 하다가 붙잡혀서 그 당국자는 이 사람이 곧 전에 악한 짓을 많이 하던 쟝발쟝이라고 인정을 하고 고문까지 해서 자백을 아마 받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 중형을 내린다고 하는 신문의 보도를 보았습니다.

    자기는 지금 평안한 시장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문을 보고 그 날 저녁에 잠을 못 잤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밤새도록 고민하다가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그 곳으로 마차를 타고 달려가서 그 재판장에게 자기가 실상 쟝발쟝이니 이 사람을 놓아주라고 말했습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많이 손해 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양심의 명령에 순복 하였습니다. 이리해서 인생 길을 마지막에 바로 갔습니다. 우리가 인생항로를 바로 마치려고 하면 양심의 명령에 순복 해야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어떤 사람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이 양심을 버리게 되면 그 사람의 신앙생활, 그 사람의 인격, 그 사람의 전 생활은 파선하고 마는 것입니다. 양심의 명령에 순복 하십시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런 말씀이 없지마는, 한두 가지 더 말하지요. 항해를 잘하는 데 필요한 것은 항해도(航海圖)입니다. 바다에 대한 지도입니다. 자세한 바다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어느 곳이 섬이 있고 어느 곳에 물이 얼마나 깊고 어느 곳에는 암초가 있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다에는 다 배 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그저 물위라고 함부로 가다가는 암초에 걸립니다. 자세한 지도가 필요합니다. 이 지도를 보고 옳은 길을 찾아가야 우리가 행선을 바로 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항로에 있어서 자세히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지도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이 신구약 성경이올시다. 이 신구약 성경은 옛날로부터 예수 님 오실 때까지의 여러 사람의 생활을 기록해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며 어느 곳에 암초가 있고 어느 곳에 물이 얼마나 깊다는 것을, 즉 인생항로의 모든 경험을 우리에게 자세히 보여줍니다.

    어느 길이 생명의 길이요. 어느 길이 멸망의 길인 것을 가르쳐 줍니다. 어느 길이 축복의 길이요 어느 길이 저주의 길인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 인생항로를 바로 가려고 하십니까? 이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서 이 성경이 가라고 하는 길만 가면 틀림이 없습니다. 파선될 염려가 없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예기할까요? 여러분, 예수 님의 제자들이 어떤 날 밤에(예수 님은 다른 곳에서 기도하실 때에)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밤은 캄캄한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큰 걱정이 생겼습니다.

    물이 배로 들어옵니다. 제자들이 어찌할 줄 모를 대에 멀리 보니까 어떤 이가 바다 위로 걸어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슨 유령이 아닌가 해서 겁이 났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보니까 예수 님이 풍랑 위로 걸어오십니다.
    예수 님께서 그 배 위에 올라오시니까 거친 파도가 잔잔해지고 아무 염려 없이 무사히 제자들이 그 배를 타고 저 언덕까지 평안히 건너갔습니다.

    물론 항해를 잘하려고 하면 숙련된 선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의 배를 무사히 저어서 저 언덕까지, 하늘의 항구가지 무사히 가기를 원합니까? 내 힘으로는 부족합니다. 숙련된 선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 가운데 영접해서 그리스도께서 내 작은 배의 선장이 되게 하십시다. 그러면 바로 갈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배는 어떠한 형편에 있습니까? 혹 여러분의 배가 파선의 위기를 당면한 이는 없습니까? 여러분이 탄 배가 지금 옳은 길을 가고 있습니까? 내가 탄 배가 지금 어떠한 형편에 있습니까? 살펴보십시다.

    튼튼한 믿음을 가져야만 이 뱃길을 바로 갈 수 있습니다. 항상 성경을 읽을 때에 이 길을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해서 주님께서 내 작은 배를 인도할 때에 우리는 틀림없이 이 길을 바로 갑니다.

    배를 타고 미국에 가노라면 흔히 샌프란시스코에 닿게 됩니다. 그 샌프란시스코 항구는 대단히 넓고 좋은데 그 넓은 항구가 있기 전에 좀 작은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을 영어로「골든 게이트」(Golden Gate)라고 합니다.

    황금 문이라는 말이지요 그 문이 참 좋아요. 골든 게이트라고 하는 가 만전에 문이 있습니다. 좌우 편에 육지가 나오고 좁은 목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 위로 다리를 놓았습니다.

    「골든 게이트 브리지」(Golden Gate Bridge)라는 다리를 놓았는데 좌우 옆에 아주 높은 탑을 세우고 다리를 매달아 놓아서 아주 높고 그 가운데는 아무 받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큰배라도 다 그 다리 아래로 지나갑니다. 사실 문자 그대로 황금 문을 들어가는 기분이올시다.

    우리가 다 이 인생의 바다를 많은 수고를 하면서 행선을 하다가 마지막에 우리가 다 황금 문, 하늘의 황금 문으로 들어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까지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 하나를 인도하시고 축복해서 다 무사히 하늘의 황금 문에 도달할 수 있는 이런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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