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4:1-10/작은 일의 날: 충성 / 한경직 목사 2014-08-23 22:02:37 read : 1091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 네가 알리라 하였느니라.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슥 四․八-十)
이 말씀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선지자 스가랴를 통하여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바벨론 에서 해방을 맞아서 예루살렘에 돌아와 곧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이 말하자면 피난민들로서 그들의 힘은 매우 미약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황금시대인 솔로몬 왕이 지은 첫째 성전의 역사와는 가히 비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해서 아마 그 때 사람 가운데 이 작은 일을 미미한 일로 멸시하면서 본 이들이 없지 않아 있은 것 같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큰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의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이 성전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계속해서 권면한 말씀이『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지 말라고 권면 하였습니다.
왜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지 말라고 권면 하였습니까?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줄 생각합니다.
첫째는 작은 일들이 모여서 큰 일이 됩니다.
여러분, 자동차 조립하는 공장을 구경할 분이 몇 분이나 되시는지 모르지만 제가 일찍이 그런 큰 공장에 가서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큰 넓은 공장 안에 직공 수백 명이 좌우로 열을 지어 섰습니다. 그 가운데로 자동차 몸체가 천천히 지나갑니다.
그 옆에 선 수백 명 직공은 작은 일 한가지씩만 합니다. 어떤 사람이 부속품 하나를 가져다가 볼이기만 합니다. 그 다음 사람은 나사 못 하나를 갖다가 꽂기만 합니다. 그 다음 사람은 그것을 조여 줍니다. 또 그 다음 사람은 좀더 단단히 조입니다. 수백 명 직공이 작은 일 한 가지씩만 합니다.
그 작은 일들의 모여서 마지막에 보면 큰 자동차가 三분만에 하나씩 되어 나옵니다. 자동차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큰 제트기도 이렇게 되어 나옵니다. 작은 일이 모여서 큰 일이 됩니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서 넓은 태평양 바다를 이룹니다.
작은 티 끝이 모여서 큰 태산을 이룹니다. 진합태산(塵合泰山)이란 말이 거기서 나왔습니다. 한 초, 두 초, 작은 시간이 모여서 한 시간이 되고 그게 하루가 되고 그게 일년이 되고 그게 五十년, 六十년, 七十년이 지나가면 인생 일생이 다해집니다.
작은 개인이 모여서 큰 교회를 이룹니다. 작은 개인이 모여서 큰 나라를 이룹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작은 것이 자라서 큰 것이 됩니다.『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서 새가 깃을 들인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도토리 시에서 싹이 나서 점점 자라면 하늘을 덮을 듯 큰 상수리나무가 되는 것을 우리가 보는 것입니다.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물줄기가 점점 모여서 마지막에는 압록강이 되고 또한 두만강이 되는 것입니다. 작은아기가 점점 자라서 큰 사람이 됩니다. 어른이 됩니다. 작은 교회가 점점 자라서 큰 교회가 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것으로 시작해서 큰 일을 하십니다. 모세의 작은 지팡이를 통해서 넓은 홍해를 갈랐습니다. 다윗의 손에 있는 작은 물매 돌 하나를 가지고 그 때에 큰 장수 골리앗을 격멸(擊滅) 했습니다.
엘리야가 가멜산 위에 가서 하나님께 비가 내리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니 먼바다에서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올라와 그 구름이 점점 커져서 큰 소낙비가 내려서 三년 六개월 동안이나 메말랐던 온 땅을 적셨다고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기억하십니까? 꿈에 보니 큰 우상이 있습니다. 금, 은, 동, 철로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키가 큰지 하늘에 닿을 듯 싶습니다. 그랬는데 저 하늘 한편에서 작은 돌 하나가 내려옵니다. 그 돌이 그 우상에 부딪칩니다. 우상이 쓰러졌습니다. 쓰려졌을 뿐더러 가루가 되어서 아주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작은 돌이 커서 온 땅과 하늘에 충만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천국운동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지금 인간이 제일 큰 힘은 가장 작은 원자 속에 있는 원자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천국운동을 갈릴리 근방에서 시작하실 때에, 사실 얼마나 미약했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갈리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그 어부들 몇 사람, 농촌에 있는 여자들, 혹은 아이들 이런 사람들을 데려다 놓고서『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요』를 비롯하여 여덟 가지 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 사람을 향해서『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때에 세상의 세력을 잡은 사람의 눈으로 그것을 본다면 얼마나 미미했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 멸시할 줄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가지고 그 때에 큰 도시 로마로 다니면서 몇 사람 모아 놓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파한 다음에는 몇 사람이 개인의 집에 모여서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고 성경을 보고 이렇게 작은 교회가 이 도시에도 일어났고, 저 도시에도 일어나고 다 일어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의 형편을 본다면 모이는 수로 보든지 또 모이는 사람의 형편을 보든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요, 또 무식한 사람들이요, 또 종들도 상당히 섞인 모양입니다.
참 미미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할 때에 솔직히 노골적으로 무슨 말을 기록했느냐하면『너희 가운데 잘 난 사람이 많지 않더라』고 기록했습니다. 당시 정치가나 군인들이나 학자의 눈에는 참으로 미미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당시 불신자들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문헌에 나타나 있는 믿는 사람의 형편을 본다면 참 멸시하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동방에서 온 새로운 미신을 이 사람들이 믿는 모양이라고. 그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죽은 목수를 숭배하더라고! 교회를 어떤 때에는 장례조합이라고 이렇게 불렀습니다. 왜? 아마 사람이 죽으면 모여서 장례를 늘 잘했던 모양입니다.
멸시했습니다. 미미한 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운동이 두 세기를 채 지내지 못해 그 떼에 제일 강대한 나라 로마 제국을 영적으로 정복하였습니다. 그 나라를 다스리는, 로마 황제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목수 앞에 무릎을 꿇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작은 일의 날을 멸시하지 않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작은 데서 시작해서 큰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왜 작은 일을 멸시하지 않아야 되느냐고 하면, 작은 일을 게을리 함으로써 큰 일이 잘못되는 수가 있습니다.
몸에 작은 상처가 생길 때에 그것을 돌보지 않으면 작은 균들이 그리로 들어옵니다. 작은 균들이 점점 커집니다. 큰 병이 생깁니다. 마지막에는 그로 말미암아 큰 사람이 죽는 수가 있습니다.
몇 달 전에 일본에 큰 사건이 일어난 일이 있지요. 구주 지방의 탄광이 폭발되어서 四백여 명이 몰사하고 요꼬하마(橫浜)와 동경 사이에 열차가 삼중으로 충돌이 되어서 거의 二백여 명의 사상자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잡지를 보니까 그 두 사건의 원인이 어디 있었느냐 하면 작은 못이 빠진 까닭이라고 합니다. 탄광의 경우는 깊은 탄광에서 석탄을 운반해 올려오는 차를 연결하는 쇠사슬에 꽂았던 못 하나가 어떻게 빠져나가서 그것이 뒤로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충돌되어 폭파가 됐다고 합니다.
기차의 경우는 기차 바퀴에 박았던 못이 어떻게 빠져서 바퀴가 하나 떨어져 나갔다고 합니다. 자연히 탈선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탈선되면서 열차들이 충돌됐다고 합니다. 작은 못 하나 빠짐으로 말미암아 큰 사고들이 생겼습니다.
서양에서는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노래 가운데(세가 그대로 우리 노래로 번역할 수는 없지마는)이런 내용의 노래가 있습니다. 저는 본 일이 있는데 여러분, 다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에 대한 얘기인데 말에는 말 신이 있습니다.(둥그런 것)말에다가 말 신을 신깁니다.
그래야 말이 잘 달릴 수 있지요. 그 말 신을 무엇으로 신기느냐 하면 못을 박아서 신깁니다. 여기에 대한 노래인데 말 신에 못이 하나 빠졌습니다. 그러니까 말 신이 벗겨졌습니다. 말 신이 벗어지니까 그 말이 가다가 거꾸러졌습니다.
말이 거꾸러지니까 그 말 우에 탓 던 기병이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말에 탓 던 기병이 거꾸러지니(전쟁에 나가서 그렇게 되었으니)전쟁에 졌습니다. 그 전쟁에 지게 되니까 그만 나라가 망했다고 하는 노래입니다. 못 하나가 빠져서 마지막에는 전쟁에 지고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것을 작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것을 조심할 줄 알아야 됩니다. 작은 죄를 삼갈 줄 알아야 됩니다. 불결한 생각은 아무리 작다고 할지라도 우리 마음에 용납하지 않아야 됩니다.
시기하는 마음, 음란한 마음, 허영심, 원한, 교만, 이와 같은 것은 아무리 작다고 해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거짓말을 작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도둑질이라고 해서 훔쳐서는 안 됩니다. 못 된 싸움이 작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의무가 작다고 작은 의무를 태만히 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 우리 서울에서 한 민의원 선거 결과를 신문을 통해서 보니 대체로 약 五할 二부가 선거에 참여한 모양입니다. 그것을 보면 四할 이상의 서울 시민이 선거를 안 했습니다. 작은 일입니다. 가서 투표하는 것 작은 일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민주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데 국민이 전부 기권해 버리는 것은 무슨 뜻이냐고 하면『그까짓 것 될 대로 되라』그 태도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나라는 장차 어떻게 되겠습니까? 작은 투표 안하고 자기 일만 하므로 나라가 망합니다. 작은 죄로 말미암아 한 개인의 일생이 망할 수 있고, 작은 죄로 말미암아 큰 교회가 손해를 받을 수 있고, 작은 죄들로 말미암아 나라가 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작은 것들을 조심해야 됩니다. 작은 일을 크게 알아서 작은 일을 바로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작은 일에 충성한 자가 큰 일에도 충성하고, 작은 일에 충성하지 못한 자는 큰 일에도 충성하지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비유를 말씀하실 때『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니 내가 큰 일도 맡기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작은 이레 부지런한 사람이 큰 일에도 부지런합니다. 작은 일에 양심적으로 하는 사람이 큰 일에도 양심적으로 합니다. 좋은 생각은 아무리 작아도 어떻든지 우리 마음가운데 품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사랑과, 희락(喜樂)과, 화평(和平)과, 인내와, 진, 선, 미의 모든 생각은 아무리 작아도 항상 우리 마음가운데 품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작은 핑계는 아무리 작을 지라도 어떻든지 우리가 안 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여기 지금 YMCA를 재건하느라고 굉장히 힘을 쓰는 중에 있지마는 저는 이 YMCA일을 늘 볼 때마다 본래 이 YMCA에 기부해서 지어 주었던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실업가 와나메이커(Warnermaker)라고 하는 사람을 기억합니다. 그 사람의 일화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이가 젊어서 어떤 상점에 가서 물건을 하나 샀는데 사 가지고 와 보니까 자기가 꼭 원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상점에 도루 가지고 가서『이거 내가 꼭 원하는 물건이 아니니 이걸 좀 바꿔주시오』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상점 주인이 대단히 성이 나서『아, 한 번 사간 것을 뭘 다시 가지고 왔는가?』고 하면서 불친절하게 거절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청년이 대단히 섭섭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 때에 이 청년은 그것 때문에 반발하지 않고 왜 장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손님에게 불친절하나? 나는 앞으로 친절하게 장사를 해 보겠다. 어떤 사람이 물건을 샀다가 다시 바꿔 달라고 해도 기쁜 마음으로 친절히 바꿔주겠다 하는 결심을 하고 작은 상점을 경영하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문자 그대로 친절본위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사업이 잘되어서 지금 필라델피아나 뉴욕에 가 보아도 굉장한 와나메이커 빌딩이 있고 큰 상점이 그냥 있습니다.
작은 친절을 우리가 힘쓸 줄 알아야됩니다. 선은 아무리 작을지라도 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냉수 한 그릇을 목마른 사람에게 주어도 내 이름으로 주면 절대로 상을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작은 의무를 바로 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내가 전에 어렸을 때에 어떤 신문을 보니 미국의 큰 철도회사 사장이 죽었는데, 본래 사장이 그 회사에 들어갈 때에는 사환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사환으로 들어가서 자기의 맡은 바 책임을 얼마나 잘 했던지 점점 올라가서 마지막에는 그 회사의 사장으로 있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작은 책임을 바로 하는 사람이 큰 책임도 바로 합니다. 여러분은 다 큰 전도사가 될 수 있을지 그건 모르겠어요.
여기 빌리 그래함 목사처럼 한꺼번에 수백 명, 수천 명을 회개시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 하나가 개인적으로 내 친구, 나 아는 사람에게 권면 해서 그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는 개인전도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역사를 본다면 큰 부흥회를 통해서 그 때의 교회가 발전된 것 아닙니다. 이 믿는 사람 하나 하나가 개인적으로 권면 해서 이 작은 개인전도를 통해서 마지막에 온 로마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든 것입니다. 작은 의무, 작은 전도를 우리가 힘쓸 때에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 헬라의 스팔타 나라에서는 항상 그 국민들에게 외치던 말이『너희 하나 하나가 벽돌이 되라. 산 벽돌이 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 때 스팔타 사람들이 벽돌로 성을 쌓고 있었는데 너희 하나 하나가 산 벽돌이 되어서 나라를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은 하나 하나가 민주주의를 비키는 산 벽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교우는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보키 위해 하나 하나가 벽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 하나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 밀 알이 되면 얼마나 많은 수확을 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 하나 하나가 큰 등불이 될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 하나가 작은 촛불은 다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 하나가 작은 촛불이 되어서 여러분의 사는 그 곳을 밝힌다고 한다면 온 한국이 아마 거의 밝아질 것입니다. 찬송가에 있는 말씀과 같이『천사같이 말못하고 바울 같이 못하나 네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 많도다.』우리 하나 하나가 개인 개인이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 개인 전도를 통해서 온 민족을 구원하고 온 민족의 대부분이 기독교로 돌아오게 될 때에 자연히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방면에 큰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큰 문제는 아직까지 교회가 많다고는 하지만 서울의 전 인구로 보면 아직도 열 사람에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백 명에 일곱 명 전도입니다. 아이들까지 전부 다해서 백 명에 일곱 사람 정도입니다.
오늘이 본 교회 창립 十八주년 기념일입니다. 十八년 전 그 때는 이 곳이 일본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던 천리교회 서울본부로 지금 구 예배당 자리가(베들레헴) 본전이었다고 합니다. 거기 한 구석에 한 二十명 피난민이 모여서 예배를 그리기를 시작한 날이 바로 오늘인 것입니다.
그 때는 그 베들레헴도 여러 간으로 막았습니다. 맨 뒷방이 좀 넓어서 그 뒷방에서 모였는데 그 곳에는 그 때까지도 그 사람들이 우상같이 뭘 써놓고 만들어 놓았던 나무로 된 제단이 그냥 한편 옆에 있고, 또 사람들이 모일 때 치던 큰북이 그냥 매달려 있었는데 그 다다미방에서 한 二十명이 조그만 난로를 피워 놓고 오들오들 떨면서 예배를 처음으로 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생각하면 매우 미미한 작은 일의 날이었습니다. 북한에 좋은 예배당 다 지어 놓고, 그러나 거기 있을 수 없어서 그것 다 북한에 두고 여기 와서 천리교가 남긴 집에서 예배보는 그 형편을 돌이켜 생각만 해도 참 얼마나 미미한 존재였는지 말할 수 없습니다. 작은 일의 날을 멸시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거기 모였단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제단을 중심으로 해서 기도를 힘쓰고, 성경을 읽고, 같이 심장을 하고, 같이 전도를 하고 또 장로는 장로의 책임, 집사는 집사의 책임, 반사는 반사의 책임, 구역 장과 권찰(勸察)은 구역 장과 권찰의 책임, 이렇게 자기 책임을 각각 하는 중 알지 못하는 가운데 十八년 후 오늘에 와서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교회로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의 힘이 아닙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요, 오로지 무명 성도들이 각각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자기의 책임을 충성되게 하는 가운데 오늘의 교회로 이룩하게 된 것입니다.
전에 우리 동양의 성현도 어떻게 하면 나라가 잘 될 수 있느냐고 물으니까 얼은 쉽게 대답하는 말이『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하였습니다. 임금은 임금 노릇 잘하고, 신하는 신하 노릇 잘하고,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 잘하고, 아들은 아들 노릇 잘하면, 나라가 잘 됩니다.
교회가 잘 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교역자는 교역자 노릇 잘하고, 장로는 장로 노릇 잘하고, 권사는 권사 일 잘 보고, 집사는 집사 일 잘 복, 평신도는 평신도로서 자기의 책임을 다하고 그러면 교회가 부흥됩니다. 작은 일에 각각 충성되게 하는 가운데 큰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작은 교회라고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아마 여러분도 대부분 농촌에서 믿다가 여기 오신 분이 많을 줄 알지마는 제 과거를 돌아볼 때에 항상 감사히 생각하는 것은 제가 아주 벽촌에서 태어났는데 제가 날 무렵에 어떤 선교사가 와서 내가 난 바로 그 동네에다가 조그마한 교회를 세웠습니다.
한 오륙십 명밖에 못 모이는 예배당이었습니다. 혹 어떤 때에는 목사가 있고 어떤 때에는 장로가 있었지마는 언제나 독조사(獨牧師 獨助師)는 써 보지를 못했습니다. 목사 한 사람이 그 지방에 네 교회를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한 달에 한 번 박에는 목사 얼굴이나 전도사 얼굴을 못 보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교회가 있었고 거기 교회와 같이 조그마한 학교가 설립되었고, 교회와 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그 온 지방에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어려서 우리와 같이 자라나던 어린이들 가운데 지금 목사가 된 사람이 여덟 사람 있습니다.
그 작은 교회에서 말입니다……. 그 중 네 사람은 지금 서울에서 목사 일을 보고 있습니다. 다른 한 사람도 서울 근방에 있습니다. 인간적 견지에서 보면 그 때 조그마한 교회가 없었더라면 아마 이 네 목사가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개척교회의 보고를 들을 때에 三十명 모입니다. 四十명 모입니다.
이런 보고를 들으면 언제나 교회 구실 할꼬! 우리는 항상 이렇게 생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라고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교회를 통해서도 큰 일을 이루십니다. 우리 교인 중 한 분이 전에 강원도 어떤 지방에 가서 무슨 일로 한 달 동안 계시다가 오셔서 그 경험을 저에게 말씀하는 가운데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어떤 군(郡)에 가보니까 면(面)이 일곱인데 한 면에만 교회가 있고 아직까지 여섯 면은 아주 산골이고 교회가 없더라고, 이 여섯 면은 아주 캄캄한데 이 사람들한테 도무지 무슨 말을 해도 통할 수 없고, 그저 막걸리나 사 먹어야 말이 통하겠다고……
그러기에 하는 말이 그저 교회 없는 면에 꼭 교회를 세워야 어서 민족이 깨지, 다른 길이 도무지 없다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농촌의 작은 교회라고 멸시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이 작은 교회를 통해서 장차 우리 민족을 구원해 주시고 장차 우리 민족의 장래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작은 일의 날을 멸시할 자가 누구냐? 우리는 어떠한 작은 책임을 맡았든지, 어떠한 작은 성의든지, 어떠한 작은 친절이든지, 어떠한 작은 친절이든지, 어떠한 작은 의무든지, 이 작은 것을 잘 수행해야 될 것입니다.
오늘 창립 十八주년을 맞이해서 十八년 전 영락교회를 회상하면서 우리가 다 이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