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 한경직 목사 2014-08-25 19:48:14 read : 1331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 아래 16절을 제가 다시 읽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오늘 이 두 구절의 말씀이 우리에게 축복이 되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이 구절 안에 있는 내용을 잠깐 생각하고자 합니다.
먼저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으니” ‘말씀’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우리의 말은 우리의 속에 있는 생각을 나타냅니다. 생각은 우리 속에 있습니다. 속에 있는 생각을 우리의 말이 나타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하나님 품 속에 계셨습니다. 이 품 속에 계시던 하나님의 생각이 말씀으로 나타나실 때에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나타나셨습니다. 곧 독생자로 탄생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시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을 읽어 보세요.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 만물도 하나님의 영광을 물론 나타냅니다. 아침 햇빛, 저녁노을, 푸른 하늘, 반짝이는 별들도 그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또 옛날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한 구름기둥, 혹은 불기둥에도 그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지은 성막 위에도 그의 영광이 나타났다고 하였고, 솔로몬의 성전에도 그의 영광이 나타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가장 찬란하게 그리스도의 얼굴과 그의 생활에 나타났습니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먼저, 그리스도는 은혜가 충만하십니다. 은혜라는 것은 거저 주는 선물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일을 해서 무엇을 받거나 혹은 값을 주고 무엇을 사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일 해서도 얻을 수 없고, 값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을 누가 준다고 하면 그것은 참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 인간이 무슨 공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결과입니다. 곧 은혜입니다. 거저 주는 혜택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는 이 은혜가 충만하십니다.
그리고 둘째는, “진리가 또한 충만”하시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는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사를 통하여 많은 철학자들이 우주의 진리이신 하나님을 추상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 설명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그의 몸으로서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라고 아무리 추상적으로 설명을 하여도 보통으로는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것과 같이 꽃 한 송이를 보여주면서 아름다운 것은 이런 것이라고 하면 곧 누구나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한 송이 꽃입니다. 그가 곧 진리의 화신이요 계시자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그의 성품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그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생활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고, 그의 부활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을 또한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는 진리로 충만하십니다.
그리고 그 아래, 16절에 계속해서 이렇게 기록했어요.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하였습니다.
‘그의 충만’에 대하여 조금 더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9절에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골로새서 2장 9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그 안에 거하시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리스도 안에는 은혜와 진리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계십니다. 곧 하나님의 무진장한 그 능력과 지식과 지혜와 사랑이 가득하십니다. 곧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십니다.
그 다음에 보세요.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라고 하였는데, 여기에 특별히 ‘다’라고 하는 말과 ‘받는다’는 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께로부터 충만한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리스도의 그 충만한 가운데서 무진장의 은혜, 진리, 사랑, 기쁨, 화평, 순결, 능력,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고 중심으로 그를 의지하며 그의 충만한 데서 받는 은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계속적으로 은혜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마치 메마른 시내처럼 이따금 조그만 물웅덩이가 있는 시내가 아니고, 언제나 물이 철철 넘치는 시내와 같이 계속적으로 은혜가 넘친다는 뜻입니다.
어릴 때에는 유년시절에 적당한 은혜를 주십니다. 청년시대에는 젊었을 때에 필요한 은혜를 주십니다. 장년시대에는 장년시대에 적절한 은혜를 주십니다. 노년시대에는 그 시대에 필요한 은혜를 충만히 받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변하는 환경을 따라서 은혜를 주십니다. 비천할 때에는 그때에 필요한 은혜, 풍부할 때에는 그때에 적절한 은혜, 그리고 건강할 때에도 약할 때에도 평안할 때에도 환난의 날에도 언제나 풍성한 은혜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충만하여 언제나 그 은혜가 새롭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생활은 마치 설악산이나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금강산을 구경하면서 ‘산산수수(山山水水)’ 네 글자를 썼다고 합니다.
곧 ‘산에 산이요 물에 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금강산에 가보면 산 뒤에 산이 있고, 물을 건너면 또 물을 건너게 됩니다. 계곡을 올라갈수록 산기슭을 돌아갈 때마다 새로운 경치가 전개됩니다.
가령, 제일 먼저 외금강 온정리에만 들어가도 모두 절경입니다. 그러나 신개사가 있는 골짜기에 들어가게 되면 그 경치는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그리고 많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서서히 올라가노라면 문자 그대로 푸른 옥 같은 작은 호수가 여덟이 있고, 이것을 하팔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올라가면 그런 못 여덟이 더 있는데, 이것이 곧 상팔담입니다. 그리해서 조금 더 오르면 세계적 장관인 절벽 위에 흰 비단을 드리운 듯한 구룡폭포, 그리고 그 아래는 천지의 신비를 담은 듯한 구룡연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장관이 아닌 것이 아니지만, 다른 편 골짜기로 조금 돌아서 만물상을 대하게 될 때에 그때야말로 조물주 하나님의 솜씨를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기묘묘한지 말로 다할 수 없고, 누구든지 자기가 생각하는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하는 만물상입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은 여기에 그칠 수 없습니다. 물론 수고롭기는 하지만 끝까지 올라가 비로봉 위에 서게 될 때에야 금강산 일만이천 봉의 대장관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38선이 열리면 이다음에 한 번씩 다 금강산 구경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믿고 그 충만한 데서 충만히 받는 은혜의 생활이 이러합니다. 세상에는 비록 먼지와 안개가 많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심령이 그리스도와 동행할 때에 우리는 위로부터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새로운 은혜를 받습니다.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그때에 꼭 필요한 새로운 힘을 주십니다. 새로운 용기도 주십니다. 새로운 위로와 기쁨과 화평을 주십니다. 우리가 최후로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꼭 그때에 필요한 은혜를 풍성히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에는 마치 금강산을 올라가던 이들이 비로봉에서 일만이천 봉의 경관을 한눈에 보는 장엄하고도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화평과 만족을 체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송가의 한 구절과 같이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 안에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늘 찬송을 부릅니다.
이렇게 주님께로 받는 은혜는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시편 23편의 말씀과 같이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 은혜의 잔은 넘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경험이 다 이러합니까? 스스로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한 분이라도 그렇지 못하다면, 여러분 마음 속에 아직도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물리학의 ‘불가입성의 원리’를 우리는 다 기억합니다. 한 공간에 두 가지 다른 것이 가득히 찰 수는 없습니다.
마땅히 버릴 것을 버려서 그 심령이 빌 때에, 가난하여질 때에 주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다. 또 가난한 심령이라도 때로는 믿음의 그릇이 작아서 생명수를 흡족히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큰 믿음의 그릇으로 은혜를 받으셔야 합니다. 큰 믿음을 가지세요. 믿을 바에는 큰 믿음으로 믿고 의지하세요. 우리 주님께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이 충만한 은혜를 받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우리 주님께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것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함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충만하신 가운데서 우리에게 그 모든 은혜를 충만히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기쁘고 즐거운 주님의 날에 하나님의 전에 경배하러 나온 아버지 사랑하시는 자녀들 마음 속에 이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으로 각 방면의 은혜를 풍성히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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