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5:12-22/ 부활의 승리 / 조용기 목사 2014-09-07 07:59:31 read : 911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부활의 승리'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봄이 되면 땅 속에서 엄동설한동안 설한 북풍 속에 얼어붙어 얼음과 눈 아래 눌려 있던 생명체들이 갑자기 땅을 헤치고 고개를 내밉니다. 온 천지가 부활의 기운으로 가득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4월이 되면 욥의 탄식을 언제나 기억합니다.
욥기 14장 7절로 12절에 욥은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 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사람은 죽으면 소멸되나니 그 기운이 끊어진 즉 그가 어디 있느뇨? 물이 바다에서 줄어지고 하수가 지나서 마름같이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과연 인생은 욥의 탄식과 같이 절망적인 존재일까요? 자연은 죽은 것 같으나 다시 살아나고 썩은 것 같으나 그 뿌리에서 다시 새싹이 이는데 사람은 한 번 죽고 나면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까요?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존재로서 인간을 만드셨을까요? 오늘 이 부활의 아침에 이것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로 왜 사람이 죽어야 하는가? 를 생각해 봅시다.
인간의 죽음이란 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죽을 운명을 가진 존재로서 짓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서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생명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속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지음을 받아서 하나님의 영이 함께 거하시므로 영적으로 생명의 근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죽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육체도 죽을 수 없게 하나님은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죽을 수 없는 존재로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으신 후 말씀하시기를 "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지 않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죽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죄가 들어오면 영혼도 죽고 육체도 죽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꾀임을 받아 저들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욕망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손을 내밀어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죄를 짓자마자 순식간에 그들 속의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갔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분리시켰습니다. 죽음이란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샘물에서 끊어진 물은 썩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영에서 끊어져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육신 속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 보이는 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의 영혼은 죽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그 영혼이 죽어버리고 말았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죄의 결과로서 아담에게 "너희는 흑이니 흙으로 돌아가라"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체가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육체 속으로 부패가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 병이 들고 연약하게 되어 몸이 썩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을 얼마나 위대하고 훌륭하게 만들어 놓으셨던지 영혼이 죽은 후에도 육체가 죽는데 900여 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만드신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음으로 인한 것입니다.
욥은 욥기 18장 13절에 "그의 백체가 먹히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 지체를 먹을 것임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망에도 장자와 차자가 있습니다. 사망의 장자는 우리 영혼이 죄를 지어 먼저 죽은 것이고 사망의 차자는 죽은 영혼이 우리의 지체를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죽음으로 육체도 따라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아담의 후손은 자연히 아담과 하와가 죽었으므로 죽은 존재로서 태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이미 영과 육이 죽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아담이 그 자손들을 낳았을 때 그 자손들은 아담의 씨를 받았기 때문에 아담처럼 영혼이 죽은 체로 태어나고 육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죽음이란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죽는 사람을 보고 우리가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지극히 자연적인 것이라면 죽음을 즐거워하게 될 것이고 죽은 자를 보고 통곡하게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 죽음을 향해 우리는 저항하고 죽은 사람을 보고 웁니까? 사람들은 왜 죽음을 싫어하고 이를 보고 탄식합니까? 이것은 비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을 필요가 없는데 죽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므로 해서 사람이 지배하던 이 자연 조차도 죽음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사람에게 주어졌는데 사람이 사망의 노예가 되자 자연 만물도 죽음에 짓밟히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9절로 22절에 "피조물의 고뇌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매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초목과 곤충들도 실제로 죽지 않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해서 죽으니 주인이 죽는데 그 밑에 있는 것들이 죽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자연도 신속히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나타나 사망이 지구에서 없어지고 자연도 영원히 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탄식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은 태어나선 죽고 또 태어나고 죽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사람의 범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죄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리 의학과 과학을 발전시켜도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그러면 둘째로 우리는 이 죄의 문제에 대해 어떤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까? 기독교 이외에도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이 모든 종교들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종교가 자력 종교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죄의 용서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혹은 고행을 함으로 죄의 대가를 지불하려 하고 또는 적선을 많이 함으로 말미암아 죄 값을 갚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느니라"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 생각하고 먹고사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인간의 힘으로 죄를 피하고 극복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나요? 만일 인간의 자력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간은 영원히 죄를 벗어날 수도, 죄의 값인 사망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절망적인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를 갚아줄 자를 이 세상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의 빗을 졌으니 남의 죄의 빗을 갚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인생을 세상에 보내셔서 그 죄 없는 자가 죄 있는 모든 자의 빗을 다 가지고 대신 청산해 주도록 계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사람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셔야 했습니다. 죄 있는 아담의 피를 받은 사람은 배속에서부터 죄의 씨를 받아 태어나기 때문에 죄 없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씨를 받지 아니하고 여인의 후손으로 태어날 자를 만드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아담의 씨를 받지 아니하고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은 죄 없이 태어나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33년 간의 일생은 죄 없이 사신 생애였습니다.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의 죄를 지적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할 때 그리스도를 정죄 할 수 있는 죄목을 아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원하셔서 우리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내어놓기 원하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자원하시지 않으셨으면 그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 중에 12 영이나 되는 천사를 불러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시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그 죄가로 몸을 찢고 피를 쏟으므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자원하셨기 때문에 끝까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속죄의 제물이 되어 마지막으로 "내가 다 이루었다"다시 말해 "내가 빗을 다 청산했다"고 외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하셨다는 증거는 부활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의 대가로 죽음의 감옥에 들어가셨는데 죄를 이겨야 그 감옥에서 나오시지 죄에 눌려 지셨으면 죽음의 감옥에서 나오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 우리 한국의 조선 시대에 나라 돈 천냥을 도둑질하면 감옥에 갇히어 참수를 당했었습니다.
그러나 일정한 기간을 정부가 주어 그 가족들이 천냥을 갚게 했는데 그 빗을 갚으면 죄인은 감옥에서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라 돈을 도둑질하여 감옥에 갇혔던 한 사람이 얼마 있지 아니하여 감옥을 나와 거리를 활보합니다.
그것은 그 가족들이 천냥을 갚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고 죽음의 감옥에 들어가셨으면 그 죄악을 다 갚아야 그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을 못하시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죄를 못 갚으셨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아담 이후로 죽어서 다시 살아난 자 없습니다. 석가모니, 공자, 마호메트도 죽은 후에는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어떠한 좋은 말들을 했을 지라도 그들이 죽은 후 그 죽음의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다면 그 죄에 대해 패배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덤에 들어가신 후 사흘만에 무덤 문을 헤치고 부활하셔서 우리 인류의 모든 죄를 성공적으로 다 청산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이 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인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은 진리입니다. 베드로가 외쳐 말한
"천하 인간에게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느니라"것은 진실인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가 그 죄를 청산한 증거로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면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다 죄를 짓고 못나 버림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까요? 부활의 증거를 저는 얼마든지 여러분에게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셋째로 저는 부활의 증거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신 후 사흘이 되었을 때 여제자들이 예수님의 몸에 기름을 바르기 위해 아침 일찍 무덤을 향해 갔습니다. 그 날은 주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산에 이르자 갑자기 산이 진동하고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놀라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예수님의 무덤 가에 가보니 큰 무덤의 돌이 옮겨졌고 그 위에 빛나는 천사가 앉아있는데 수비하던 로마 군인들이 얼굴이 창백히 질려 혼비백산으로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와서 '너희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구나 그는 죽지 않았고 사시고 부활하셨다 누운 자리를 보라'하여 제자들이 보니 주님이 누우셨던 자리엔 옷만 남았고 주님은 온데 간데 없었습니다. 이것을 본 막달라 마리아는 뛰어가서 베드로와 요한의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여, 우리가 무덤에 가보니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님께서 이미 부활하셨다고 말하고 시체는 온데 간데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있는 힘을 다해 뛰어가서 무덤 속에 가보니 과연 예수님이 누우셨던 자리에는 옷만 있고 예수님은 안 계셨습니다
. 막달라 마리아는 혼자 남아서 그 자리에서 울었고 베드로와 요한은 내려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아침의 햇빛이 긴 그림자를 내면서 막달라 마리아의 앞을 덮었습니다. 그림자가 비추자 산지기가 온 줄 알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옮기었거든 자기에게 가르쳐 주어서 그 시체를 인수하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마리아여" 막달라 마리아가 너무 좋아 예수님의 발을 안으려 하자 "내 몸에 손을 대지 말아라 나는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했다 그러나 곧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너희 하나님 곧 나의 하나님, 너희 아버지 곧 나의 아버지께로 돌아간다' 라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것을 보고 너무 기뻐서 제자들에게 뛰어갔고 열 한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말을 전했지만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예수님께서 갑자기 저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미시며 "내 손과 옆구리를 보라 영은 뼈와 살이 없으되 인자는 있느니라 너희에게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고 먹다 남은 고기 토막을 드리니 그것을 잡수셨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놀라고 감격하여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라지시자 곧장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모두 흥분되어 있을 때 도마가 나타나 흥분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우리에게 나타나셨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도마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이들의 말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어리석게 믿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그 손바닥의 못 자국과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면 내가 믿겠다'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8일 만에 또 주일날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있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도마 앞에 스시고 "너의 손을 내밀어 내 손바닥에 넣어보아라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믿지 아니하는 자기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을 보고 너무 놀라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주여"하고 말하니 예수님께서는 "네가 본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 예수님은 또다시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 떡을 구워 먹이시고 생선을 먹이시고 교훈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사랑하는 5백 여명의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 감람산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이후로 사도 바울은 사울일 때 교회를 회파하고 기독교인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고 그리스도 성도들을 잡으려 다메섹으로 가다가 그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대낮에 하늘에서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비취고 음성이 나서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뉘시나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흉악한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은 위대한 바울로 변화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오늘날도 예수님은 전 세계만방에서 주의 백성들을 불러모으시고 우리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부활하신 것을 확정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2절로 33절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의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고 기도할 때 성령을 받고 방언을 말하고 은혜를 입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성령을 선물로 받아 우리들에게 부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이신 것입니다. 오늘날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여러분과 저와 이 자리에도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2천년 전의 예수님이 아니요 장차의 예수님이 아니라 지금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내 가운데 와서 부활의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면 넷째로 주님께서는 부활의 역사를 어떻게 베푸실 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심판의 죄를 청산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결과 육체가 병들고 썩어 부패되었습니다.
그의 환경에는 저주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나게되었고 그들은 죽어서 한 줌의 흙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아담 예수님이 오신 것은 처음 아담이 지은 모든 죄를 다 인수인계 하시고 이를 청산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십자가 위에 올라가셨고 사흘만에 이 모든 것을 다 던져버리고 승리하시어 무덤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은 위대한 공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공로를 통해서 오늘도 죄를 청산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모시면 예수님이 여러분 생애에 들어오셔서 그의 흘리신 피로 우리들의 죄를 깨끗하게 청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과거의 죄, 현재 그리고 미래의 죄를 청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은 사람처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를 용서받은 의인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과 우리의 손을 마주잡을 수 있도록 이어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게 하시어 그 결과 성령을 충만히 받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부활의 역사는 바로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역사요, 성령으로 충만케 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우리들의 마음의 병, 육체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무덤에 들어가서 이를 다 청산해 버리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육체의 병에서 우리는 놓여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이일을 지금도 행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우리들의 모든 생애에 있는 저주를 제하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저주를 받은 몸으로 무덤에 들어가셨지만 그 저주를 주님께서 찢어버리시고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을 가지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애 속에 들어와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저주를 없애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 생애 속에 가져와서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생애 속에 들어오셔서 죽음의 공포를 제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망과 무덤을 철폐하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젠 예수님 안에서 죽음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리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으로 가거니와 예수님 강림하시는 그 날에서 이 육신이 부활하여 영원히 주와 함께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는 말씀은 참말인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부활의 위대한 역사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들의 믿음을 통해 오늘날도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부활의 승리를 나타내고 게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이 증거 되는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이나 감각을 통해 믿는 것 아니고 우리들의 심령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을 때 그 믿음을 통해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우리들의 생애 속에서 부활의 위대한 역사를 계속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의식이나 형식이 아닙니다.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제가 증거 하는 이 말씀을 진심으로 마음에 받아들이십시오. 믿음을 화합하십시오. 믿음으로 일어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 믿음을 퐁해 부활의 위대한 열매를 여러분에게 나누어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사망을 철폐하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께서 우리 대신 죽음을 짊어지시고 이를 다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영원한 소망을 얻게 됨을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부활의 화창한 봄날 같은 생명 속에 들어가게 하시고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고 믿다가 타락한 사람은 음산하고 처절한 절망의 포로 되어 있다가 지옥으로 떨어지지 말고 이 광명한 부활의 천지로 들어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을 아직 믿지 않은 사람들을 오늘 성령으로 감화하시어 변화시켜주시고 그들이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