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3:1-5/ 말세에 고통하는 때 /조용기 목사 2014-09-10 21:12:18 read : 1032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큰 정신적인 고통 속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문명과 문화가 앞선 유럽대륙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더라도 그들은 정신생활이 황폐해져서 있습니다. 유럽인들을 보면 두드러지게 2가지 병이 걸렸습니다.
그 첫째는 이혼이요, 두 번째는 정신병인 것입니다. 제가 유럽을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 하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유럽전체가 이혼 병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파리 같은 곳에는 시민의 70%가 이혼을 했습니다.
유럽 어느 곳에 가나 파괴되지 않은 가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병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 같지만 정신적인 고독과 고통 속에서 사람들은 정신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오늘날 사람들은 이와 같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요?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기 백성을 고발해서 예언하기를 예레미야서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팠으나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인본주의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것이 정신적인 갈등이며 마음의 고통인 것입니다. 그 고통은 말세가 될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바울 선생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이 마음의 고통을 받아야 될까요? 무엇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까?
그 첫째가 잘못된 사랑에 있다고 바울 선생은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말세가 되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을 통해서 우주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대한 그 내용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 넣어 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의 내용이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때는 여러분 마음속에 고통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오늘날 문제는 형상과 모양만 가졌지 그 내용이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중심을 점령해야 될 인간 속에 하나님 사랑 대신에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자기와 돈의 우상을 마음속에 채워 놓고 섬기고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자기라는 우상을 세워놓고, 돈이라는 우상을 세워놓고 자기와 돈의 우상에 끊임없이 절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자연적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속에 사랑이 들어와 있어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가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에 인생은 껍데기만 인간으로 살고 있고 내용은 벌써 사람되기를 거부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 속에 참된 행복을 가져오고 이 고통에서 해방 받기 위해서는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진실로 회개하고 자복하고 그리고 그들의 잘못된 사랑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그 우상을 깨뜨려야 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그 우상을 깨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을 중심에 모셔놓고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아서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 그리스도를 모시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내가 이웃을 사랑하는 이 사랑의 역사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이 고통에서 해방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가정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사회적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개인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이것은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없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있어야 할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사랑이 없고 없어야 될 자기 우상과 돈의 우상이 그들 마음을 점령했기 때문에 인간생활에 참된 행복과 기쁨과 평안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단호하게 자기라는 우상과 황금만능의 우상을 깨뜨려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가득히 점령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만 남아 있지 아니하고 그 내용이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옴으로 참 사람으로써의 삶을 이룩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둘째로 말세에 고통이 다가오는 것은 이기주의 때문에 고통이 다가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지의 절대주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지음 받은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우리는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결점은 바로 이기주의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가지고 사는 대신에 자기 중심으로 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에 자기를 섬기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그 결과는 자만하고 교만하고 타인을 훼방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은혜에 대한 감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인간 삶은 끊임없는 대결과 갈등과 분쟁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이기주의적으로 살게 되면 자기만 섬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서도 남편이 이기주의가 되면 아내와 자식들보고 자기만 섬기라고 합니다.
그 결과 대결과 갈등과 분쟁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한 가정의 주부가 자기만 사랑해서 자기 쾌락만 위해서 살면 그때에 남편에게 자기를 섬기라고 하고 자식들도 자기 뜻대로만 운전하려고 합니다. 마음속에 갈등과 분쟁과 대결이 끊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사회는 오늘날 이기주의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집단이기주의가 우리 사회 속에 팽배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자기들의 주장대로만 다 이루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단체행동을 하고 집단 이기주의로써 이해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회사뿐만 아니라 전 사회와 국가 경제가 흔들리게 합니다. 집단 이기주의입니다. 그리고서는 대결과 갈등과 분쟁 속에 노도 사도 절대로 행복이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 여러 집단이 자기집단의 이익만 주장하고 자기들만 잘 되기를 원하고 자기들만 행복하기를 원해서 그것을 주장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나 다른 사람의 평화나 다른 사람의 기쁨은 아랑곳없습니다. 이기주의는 우리에게 무서운 갈등과 고통과 대결과 분쟁을 가져오고 그 결과 가져오는 것은 마음의 괴로움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기주의를 포기하고 마음에 이 병 중에서 고침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 십자가 앞에 나와서 그리스도 앞에 우리 마음과 몸을 내어 맡겨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중심으로 섬기고 그리고 하나님 사랑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서 나로 하여금 이웃을 섬기면서 사는 이와 같은 생활을 할 때 내가 하나님께 받은 복을 이웃과 진실하게 나누면서 사는 생활을 할 때, 우리 마음속에 고통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이웃에 얼마나 고통 당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또 우리의 이웃나라에 고통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때 그것이 내게 축복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내게 행복으로 다가오고 내게 기쁨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말세에 사람들이 이기주의로 자기 중심으로만 살기 때문에 가정도 파괴되고 생활도 파괴되고 나라가 나라를 민족이 민족을 대결해서 싸우고 이 세상은 황폐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가서 이 이기주의의 우상을 깨뜨리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자복하고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함과 동시에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이 마음을 가져야 마음의 고통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이기주의 남편 여러분, 이기주의의 아내 여러분, 이기주의의 자녀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오늘 그 이기주의를 포기하기 전에는 아무리 부귀, 영화, 공명을 쌓아놓는다 할지라도 결코 여러분 마음속에 행복과 안식은 없을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의 마음속에 다가오는 이 마음의 고통은 세속적인 삶이 우리 마음을 점령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닮은 자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의롭고 거룩하시고 선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의와 거룩함과 선함과 진리를 쫓아서 살 때에 참 정상적인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을 빗나가서 이 세속이 마음속에 들어와서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우리를 포로로 잡고 도도히 흘러가는 세속으로 떠내려 갈 때 우리의 마음속에 많은 정신적인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옵니다.
사람이 타락하여 죄가 인간 속에 들어오자 죄는 철저하게 인간성을 부패시켜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썩어질 대로 썩어졌습니다. 수양과 도덕으로 도저히 고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썩어진 곳에 마귀가 들어와서 짝을 지어 그 결과로 만들어진 우리 삶은 무엇입니까? 도도히 흘러가는 썩어져 가는 오늘날 세속입니다.
오늘날 세속은 어떠한 것입니까?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당을 짓는 것과 불리함과 이단과 투기로 그 마음은 마치 암이 들어 썩어져 가는 육체처럼 마음이 썩어져갑니다. 썩어져 가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경험하는 당연한 결과는 정신적인 고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이 세속을 씻어내고 우리 마음이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쫓아서 의와 진리와 거룩함과 선함으로 살기 위해서는 십자가 앞에 나와서 철저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회개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 마음속에 모셔드릴 때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썩어진 마음을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영생으로 변화시켜 주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고는 사람의 힘과 능으로는 이 부패한 마음에서 해방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부패하고야 그 마음속에 참된 행복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오고 십자가 앞에 나와서 회개운동이 일어나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이외에는 우리를 씻어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물로 못 씻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의로운 행동으로도 씻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씻을 때 성령이 와서 우리를 새롭게 거듭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세속을 몰아내고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 아버지가 들어오시고 예수님이 점령하시고 성령이 거하시고 의와 거룩함과 선함과 진리가 우리 마음속에 가득하게 될 때 우리의 마음속에 고통은 사라지고 참으로 행복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의 마음속에 고통이 다가오는 것은 몰인정이 우리 마음속을 점령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사랑에 등을 돌려버린 인간은 몰인정해 집니다. 태양이 비추지 않으면 모든 것이 얼어붙습니다.
오랜 동안 겨울이 있는 북극이나 남극은 태양 빛이 없기 때문에 얼어서 얼음이 점점 쌓여서 얼음투성이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겨울철에는 태양이 따뜻하게 비추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산천초목이 다 얼어붙습니다. 그리고 모든 꽃은 시들고 잎은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태양입니다.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마음속에는 이 사랑의 태양이 비취지 않음으로 사람의 마음이 얼어붙습니다. 냉담해지고 몰인정해 집니다.
하나님이 없고, 예수님이 없는 마음에 냉담하고 얼어붙으면 그 몰인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히틀러는 예수님이 없고 하나님이 없는 그 심정으로 육백 만 유대인을 눈 깜짝 안하고 가스 방에 넣어서 죽였습니다. 그들의 뼈와 살을 갈아서 비누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스탈린은 하나님 없는 그 냉담한 마음속에 공산주의를 심기 위해서 자기의 국민 5천만 명을 죽였다고 한 것입니다. 모택동도 중국을 공산화하기 위해서 냉혈동물로 4천 내지 5천만 명을 죽였던 것입니다. 김일성이 죽인 사람도 부지기수인 것입니다.
사람이 그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등져버리고 사랑의 따뜻한 태양이 비추지 아니하면 그 어느 사람도 짐승처럼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 어느 사람도 냉담해지고 차디차게 몰인정해집니다. 사람이 몰인정해지면 얼마나 사납고 무서운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 사나운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사자나 이리나 곰보다도 사나운 사람이 더 몸서리치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몰인정이 고통을 가지고 옵니다. 몰인정한 남편과 같이 사는 부인은 남편에게 짓밟히고 찢기고 처참해집니다.
몰인정한 부인하고 같이 사는 사람은 이기주의 때문에 남편과 자녀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자녀들이 몰인정하면 부모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이 세상이 서로 몰인정하면 사회는 살 곳이 못 됩니다. 삭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인정이 넘치고 사랑이 넘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랑의 태양 되는 예수 앞으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고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비춰야 됩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 중에 몰인정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예수를 모시지 아니하고 종교적인 기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기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 참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마음속에 비추지 아니한 사람보다도 더 무섭게 냉정하고 몰인정한 사람이 없습니다.
남이야 죽든지 살든지 나는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신앙을 부자방망이로 생각하고 그저 하나님을 부자방망이로 생각해서 두드리면 내게 도움을 주실 것이다. 이것만 생각하고 몰인정 속에서 이기주의에 사는 그런 많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교회가 여러분 주여! 주여! 이름은 많이 부르지만 이런 몰인정 속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더 회개하고 깨어져서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인정이 넘치는 그러한 교회로 변화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으로 변화될 때 우리의 마음속에 고통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몰인정한 사람은 그 몰인정한 자체가 무서운 정신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 자체가 고통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것을 회개하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그리스도의 태양이 우리 마음속에 비취게 해서 우리 마음이 녹아지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인정이 넘치는 따뜻한 인품을 가진 이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나운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몰인정한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이웃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가인처럼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이니이까' 동생에 대해서 무관심한 가인처럼 되지 마십시오. 우리는 서로 인정을 줄 때 인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인정이 넘칠 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우리 마음속에 고통은 사라지고 우리는 치료함을 받습니다.
다섯째로 오늘날 우리의 마음에 고통이 다가오는 것은 쾌락주의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기쁨이 없이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기쁨이 없으면 삶의 의욕이 사라지고 삶의 힘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기쁨을 어디에서 얻는가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기쁨의 원천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그 오른편에는 즐거움이 넘친다고 시편기자는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성령으로 주는 정결한 기쁨, 이것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께서는 복음을 증거 하다가 잡혀서 마지막 사형선고를 받고 로마의 지하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고 있을 때 빌립보 성도들에게 편지하기를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곳에 기뻐할 조건을 없습니다.
지하감옥에 24시간 햇볕은 들지 않습니다. 습기가 축축합니다. 온 몸의 뼈가 쑤십니다. 벌레가 기어오릅니다. 그리고 비위생적입니다. 캄캄한 고통 속에 있으면서 바울 선생은 그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오히려 기쁨을 가지라고 격려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부귀, 영화, 공명을 아무리 쌓아놓아도 자기의 마음속에 기쁨이 없으면 그 부귀, 영화, 공명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에 갔다 놓아도 그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면 지옥이 천국으로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쁨을 잘못 얻는 것이 쾌락주의인 것입니다. 쾌락주의라는 것은 바로 쾌락을 즐기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고 그것이 최고 삶의 가치로 생각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육체의 향락을 통하여 쾌락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쾌락을 얻기 위해서 의리도 배반하고 먼 미래를 바라보지 않는 찰나적인 인생을 삽니다. 쾌락에 몸과 마음을 다 던져버린 삶은 깊고 깊은 허무와 슬픔과 고통의 절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육체의 쾌락을 얻으면 만족이 올 줄 아는데 마치 바닷물을 마신 사람이 점점 더 갈급해져서 그 바닷물을 마시다가 배가 태산처럼 되서 죽는 것처럼 세상의 육신적인 향락과 쾌락이란 얻으면 더 가지고 싶고 가지면 더 가지고 싶습니다. 갈증이 끝이 없어 나중에는 파탄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기생들을 데리고 밤새도록 양자강에서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고 난 다음 아침안개가 뿌옇게 끼었을 때 배를 부둣가에 대면서 그가 읊은 노래가 있습니다.
희락극해여 애정다로다. 밤새도록 육체의 희락을 누리고 돌아오는 그 뱃전에서 그 마음속에 느끼는 것은 슬픔이 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환락은 그 결과로 다가오는 마음의 깊은 구렁텅이와 슬픔과 고통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이 술을 마시는 사람은 술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퍼먹어서 자기가 술을 먹고 술이 술을 먹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먹고 알콜 중독자가 되어 인생의 파탄에 이릅니다.
아편중독자는 마음의 쾌락을 얻기 위해서 제일 처음 조그마한 아편을 취하다가 그 다음에는 아편에 포로가 되어서 더 먹고, 더 마시고, 더 주사 맞고 나중에는 아편중독자가 되어 처참한 인생으로 뱀과 전갈에 물리는 고통 속에서 살다가 인생을 파멸 당하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쾌락을 위해서 도박을 시작한 사람이 그 도박에 마음이 들어서 끌려 들어가면 나중에 폐가망신하고 인생을 처절한 절망에 처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쾌락을 얻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 쾌락으로 말미암아 더 깊은 시름과 고통 속에 빠져버리고 말고 독사의 굴속에 빠져서 나중에는 자기의 일생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참된 쾌락은 회개하여 하나님 안에서 절제 있고 정돈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법을 쫓아 사는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참으로 행복하고 참으로 기쁜 것은 예수 안에서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떠나서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구라파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께 얼마나 복을 받고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했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예수를 버렸던 그 구라파는 모든 사람 속에 우수가 꽉 들어차 있습니다. 쾌락을 추구하다가 깨어진 것은 가정밖에 없습니다. 깨어진 가정에서 남은 것은 상처투성이고 고아들 그리고 서로 미움만 꽉 들어찼습니다.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면 경건하게 사는 그 속에서 참된 기쁨과 행복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 모든 것은 사탄의 거짓말인 것입니다. 속임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이 많은 고통이 다가오는 것은 육체적인 쾌락과 향락주의 때문에 다가오는 고통인 것입니다.
여섯째로 여러분 형식적인 종교가 가지고 오는 고통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말세에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은 부인하는 그러한 교회와 신자들이 있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게 지어진 것입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 믿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형상과 모양이 하나님인 것입니다. 알맹이가 하나님처럼 된 것은 아닙니다. 알맹이는 하나님으로 채워 넣어야 됩니다.
성경에는 사람을 성전이라 혹은 그릇이라 말했습니다. 성전은 아무리 지어놓아도 그 속에 하나님께서 와 계시지 아니하시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릇은 그 속에 밥을 담아 놓던지 국을 담아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전이요 그릇이라면 그 속에 아버지가 와 계셔야 되고 아들 예수님이 와 계셔야 되고 성령이 왜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와 계실 때 성전은 완성되고 그릇은 완전한 것입니다.
사람 속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들어와 계시지 않으면 사람은 껍질만 사람이지 실제는 내용이 없습니다. 들과 밭에 있는 허수아비를 보십시오. 사람처럼 만들어 놓았지만 그 속에 사람의 영혼이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에 그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지 내용이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 형상과 모양 속에 성령이 와서 들어와 있을 때 비로소 내용이 꽉 들어차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때에 마음에 기쁨과 소망과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위대한 교부인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내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는 내 마음속에 결코 안식함이 없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의 돈을 찾고, 지위를 찾고, 명예를 찾고, 권세를 찾고, 쾌락을 찾으려고 헤매이지만 그것은 다 물거품같이 지워도, 지워도 손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행인과 나그네와 같이 이리 방황하고 저리 방황하면서 결코 마음속에 안정함을 얻지 못하다가 지옥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이 교회가 두 가지 악을 범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생수의 근원 되는 하나님을 버리고 신학이니 철학이니 제도니 이것 가지고서 왈가왈부합니다. 그리고 인간들이 만든 종교 속에는 생수가 없습니다. 터진 우물입니다. 터진 우물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지요. 종교로서 기독교는 터진 우물입니다.
텅 빈 구라파의 교회와 텅 빈 구라파 사람들의 마음과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구라파 교회에 갈 때마다 느낍니다. 구라파는 기독교회의 묘지입니다. 옛날에 예수교가 있었지 지금은 기독교가 없습니다. 그 텅 빈 교회들을 보고 그 다음에는 텅 빈 사람들의 가슴을 봅니다. 오늘날 교회가 비면 사람들의 가슴도 비어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용이 없는 교회, 형식적인 종교적인 의식적인 교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속에 참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하므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멍에는 더 무서운 고통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는 참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나오지 않고는 참으로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위해서 죄와 질병과 저주와 절망과 죽음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렸지 않습니까?
그 피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들여서 우리는 진실로 죄에서 해방을 얻고 미움에서 해방을 얻으며 질병에서 자유를 얻고 저주에서 자유를 얻고 죽음과 음부에서 해방을 얻는 새로운 삶을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기도함으로 성령이 충만하고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방언으로도 기도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할 때 마음이 물댄 동산같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하루에 네 장, 다섯 장 읽어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해야 되고 적어도 하루에 한시간 이상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하고 하늘나라가 그 마음속에 살아서 역사해야 되며 그 가운데서 전도와 사랑을 실천하는 이와 같은 경건이 살아서 움직이는 이런 신자가 되고 이런 교회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형식과 의식만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멍에를 사람에게 덮어 씌워 주는 이러한 엉터리 교회, 이러한 엉터리 신앙은 우리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오늘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회개하고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산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충만하고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 사랑을 실천하는 그러한 삶을 살 때 우리는 경건을 실천하는 사람이요. 경건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빈집과 같습니다. 그 속에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와 성령께서 와 계시면 그 빈집이 가득해지고 천국으로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신에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마음을 점령하고 세속주의, 몰인정, 쾌락주의, 형식적인 종교가 들어와 앉으면 그때로부터 고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임이라' 말세에는 사람들이 이 마음을 지키지 않습니다. 이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습니다. 이 마음에 쓸데없는 세속이 꽉 들어차서 마귀가 들어와 있기 때문에 고통은 자꾸 증가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자복하고 십자가 밑에서 참으로 우리 마음속에 들어있는 잘못된 자아사랑, 물질사랑의 우상을 내어쫓고 우리의 마음속에 세속주의와 몰인정과 쾌락주의와 형식적인 종교를 다 토해내고 씻어내고 보혈로 씻고 성령으로 다 쫓아내고
우리의 마음속에 성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뚝 점령하고 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하나님을 섬기고 이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이 하나님의 은총을 가지고서 우리가 이웃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하는 섬기고 봉사하는 그런 삶을 살 때 우리는 진실로 치료함을 받고 참된 인생을 살고 금세와 내세에 소망이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 기 도 -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어야 될 것을 가지지 못하고 있지 말아야 될 것이 들어와서 마음에 고통을 가지고 옵니다. 아버지 하나님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면서도 마음속에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우상이 점령합니다.
이기주의가 들어오고 세속주의가 들어오고 몰인정, 쾌락주의, 형식적인 종교가 들어앉아서 마귀가 판을 치고 마음속에 고통은 날로 증가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모든 귀신들은 오늘 내어 쫓아버리고 성 삼위일체 하나님이 마음을 점령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강물같이 넘쳐 나게 도와 주시옵시고, 인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사랑을 이웃과 세계와 나누는 이들이 다 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