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8:5-13/ 예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 /조용기 목사 2014-09-10 21:19:51 read : 989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 예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도 사람들에게 많은 호의를 얻을 수 있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다면 하나님의 호의를 얻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사람들에게 상상을 초월한 위대한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사람들의 신앙의 모험을 쫓아서 감동시킬 수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감동을 하시면 우리의 기도가 다 응답 받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 주님을 감동시키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신앙은 예수님을 절대 주권자로써 우리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한곳에 가셨는데 많은 군중들이 모여왔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백부장 로마의 군사만 나타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벌벌 떱니다.
그런데 그래도 주둔군 사령관인 로마 백부장이 예수그리스도 계신 곳에 와서 백부장이 모든 사람들 보는 앞에서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어서 그는 경배하고 주님께 간청을 합니다. 내 집 종이 중풍에 걸려서 많이 고생하고 있는데 주님 치료하여 주옵소서. 이것은 도저히 상상을 초월한 일입니다.
만일 이러한 사실이 상부에 보고되면 이 사람 목이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백부장은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줄까 하니까. 아니올시다. 주님이 감히 어떻게 우리 누추한 집에 오십니까.
나도 권세 하에 있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는데 나도 로마 정부를 대표하기 때문에 권세가 있습니다 이 군인들보고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내가 종들보고 이것 하라 둘 말 않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을 듣고 너무 감동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상기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야. 이 많은 사람의 믿음을 이스라엘 중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함께 많은 이방인들이 동서남북에서 와서 같이 식탁을 함께 할 것이나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러고 난 다음 주님께서 이 백부장을 보시고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러고 즉시로 종이 중풍 병에서 나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킨 것은 이 백부장이 권세에 대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자기가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에 로마가 세계 대 국가로써 거대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정치 경제 군사는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로마를 대표한 관리들은 높은 사람은 더 많은 권세가 있고 낮은 사람들은 더 적은 권세가 있지만 그러나 로마를 대표하는 관리들은 로마의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백부장도 로마의 군인인 이상 로마를 대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위에 높은 사람이 자기에게 명령하면 두 말하지 않고 순종해야 합니다.
가라면 가고 오라하면 와야지요. 권세에 반항하면 심판을 받습니다. 또 이 백부장은 자기가 백부장인 이상 자기 밑에 군사들이 있습니다. 자기도 로마를 대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군인보고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죽을 때라도 들어가라 하면 들어가는 것입니다.
권세는 이와 같이 위대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백부장이 말하기를 예수님은 보통 분이 아니시다. 그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시므로 주님이 구태여 뭐 우리 집까지 찾아와서 병자에게 안수하고 기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권세자의 말 한마디만 하면 다 이루어지니 주님 말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은 다 순종할 것입니다.
우주 만물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 안 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굉장한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을 듣고 흥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향해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했을 때 집 종 하인이 중풍으로 누어 꼼짝 못한 사람이 깨끗이 순식간에 나아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온 우주가 다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권세 가진 예수님께서 우리 주님으로 계시고 우리도 이 예수님의 권세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로써 권세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3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에 빛을 짓고 궁창을 짓고 육지를 내고 모든 열매 맺는 나무와 풀이 나게 하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공중에 새와 물고기와 짐승들을 지으시고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도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창조주이신 것입니다. 그가 육신을 쓰고 이 땅에 33년 동안 와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람으로 오해하면 중대한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고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하나님으로 또 다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그리스도야말로 말할 수 없는 위대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1절에서 3절을 보면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체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요. 본체의 형상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는 것은 하나님을 본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만물을 예수께 후사로 주시며 예수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예수님이 만물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해와 달과 별들이 운행되고 춘하추동 사계절이 운행되고 모든 우주가 질서 정연하게 운행되는 것은 예수님이 이 우주를 지금 경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의 위대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을 불러 놓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20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이 예수께서는 오늘 우리와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의 말씀은 거짓말이 없습니다. 주님은 권세있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주의 그 권세 앞에 죄악이 물러가고 세상이 물러가며 질병이 사라지고 저주가 물러가며 사망과 음부도 철폐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가 구주로 모시고 우리 하나님으로 섬기며 아버지께 나아가 살기 때문에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께 믿음과 기도로 간구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주께서 말씀해 주시기만 하면은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 중에 없는 것은 있게 되고 있는 것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절대로 없을 것이니라. 여기에서 뱀과 전갈이란 마귀와 귀신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마귀와 귀신들을 내어쫓을 권세를 주었다. 마귀와 귀신들은 능력이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만 우리에게는 권세를 주었습니다. 권세는 여러분 힘이 아닙니다. 힘보다 더 위대한 능력입니다. 자동차는 힘이 있습니다. 달리 때 무시무시한 힘이 있지요. 비행기도 힘이 있습니다.
탱크도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통순경은 힘은 없어도 호루라기 하나로 그 힘찬 자동차를 세울 수 있습니다. 군대 장교는 힘이 없어도 무지무지하게 달려오는 탱크를 손가락 하나로 중지시킬 수 있습니다. 부모가 나이 많이 먹어서 노세 했지만 자식들은 힘이 있고 건장해도 노쇠 한 부모가 말하면 가라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옵니다.
왜냐 아들들은 힘이 있지만 부모는 권세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네게 권세를 주노니 너희 말 한 마디로 귀신을 쫓아내고 마귀를 제어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권세가 무언지 잘 알아야 합니다. 권세란 말로써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말만하면 됩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과 그 말씀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과 그 말씀을 대적할 수 없는 것은 그 배후에 하늘과 땅을 지으신 천국의 위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말씀에 저항하면 천국의 위험이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로마 백부장의 명령도 거역하면 로마 정부가 와서 벌하는데 하물며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말씀을 거역하면 하늘이 그 배후에서 형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크게 기쁘게 하려면 우리 주님의 권세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창조주로써의 권세 우주를 보존하는 자로써의 권세 우리 구속 자로써의 권세를 알고 그 발 앞에 엎드려 주를 경배하고 그를 하나님으로 섬기며 그 권세의 말에 복종하고 그리고 그에게 강구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백부장처럼 말씀을 하시옵서소. 주여 말씀해 주시옵소서. 내 가정에 어려운 문제가 있으니 말씀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생활에 어려움이 있으니 말씀해 주시옵소서. 내 몸이 병들어 있으니 말씀해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의 말씀을 구하면 주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설교를 통하여 기도할 때 성령으로 말씀해 주시고 주의 말씀이 오시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그리스도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주의 말씀을 받는 이러한 자리에 설 때 주님이 우리를 기쁘게 생각하고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표시한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땅을 떠나서 잠시 쉬러 왔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바캉스입니다. 예수님도 바캉스를 가셨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예수님도 바캉스를 가셨습니다. 그래서 쉬러 갔는데 헤라의 여인한 사람이 뛰어왔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나이다. 예수님이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이 여자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와서 예수님께 말씀하셔서 내 딸을 고쳐주옵소서. 간청하므로 제자들이 와서 주여. 저 여자가 너무 간청을 하고 뿌리치고 우니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이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 그 말 맞습니다.
십자가의 못 박히기 전에는 아직 예수님은 유대인의 구주로써 와 있지 온 세상의 이방인의 구주는 아닙니다. 이방인의 때가 언제 왔느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짖고 피를 흘려서 구속했을 때 그 때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구원은 온 이방으로 다 펴졌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예수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율법하에 태어나서 유대인을 구원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방인에게 보냄을 받지 않았다. 냉정하게 거절했습니다. 제자들이 와서 소용없습니다. 돌아가세요. 우리 주님이 당신 이방인의 때는 오지 않았다고 어림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뛰어나와서 예수님의 가는 길을 막고서 주님의 길 앞에 엎드려서 주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그럴 때 예수님께서 가혹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는 주지 않는다. 그냥 치료하지 않으면 치료 안해줬지 이제는 개라고 말했습니다.
너 같은 개는 안 도와준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화가 나서 어쩌고 어째요. 안 주었으면 안 줘지 개라구요? 당신 사람 똑똑히 보고 말하시오. 치료받지 않아도 좋아요. 그런데 사람을 개라구요? 이런 몰상식한 소리가 어디있소. 그렇게 할 것인데 이 여인은 그 말을 달게 받아드리고 그는 엎드려서 하는 말이 주여. 옭소이다. 저는 개입니다.
그러나 개도 어린아이가 먹는 밥상 앞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는 먹지 않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아이이면 우리가 개면 그 밥상 앞에 떨어진 부스러기라도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을 그녀를 보시고 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가 이렇게 말했으니 네 딸에서 귀신이 나갔느니라. 집에가 보니까 귀신이 나가버리고 딸이 건강하게 되어서 딸이 침상에 앉아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이 수로보니게의 여인의 믿음에 크게 감동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수로보니게 여인은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밖으로 아무리 냉정한 체 해도 그 마음속에서는 뜨겁고 열렬한 사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처음 부를 때 대답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부탁해도 거부하고 나중에 엎드려 간구하니 자기보고 개라고 부르짖어도 그 수로보니게 여인은 속으로 그렇지 않다. 입으로는 그렇게 말해도 속으로는 사랑하고 영스럽고 뜨겁고 큰 동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토록 예수님이 말하는 것을 보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람의 대한 뜨겁고 끈질긴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로써 주님이 안들어줘도 역시 주님은 나를 일부러 시험해 본 것이다. 제자들을 통해서 거부해도 이것은 내 믿음을 시험해 보는 것이다. 내를 보고 개라고 해도 이것도 주님이 내 믿음이 있는 것인지 시험해 본 것이지 실제로 내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속으로는 나를 뜨겁게 사랑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나는 주님의 어떠한 외부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절대 낙심하지 않는다. 주님의 사랑을 끝까지 믿고 따라간다. 주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고 어떻게 주님이 말씀해도 주의 사랑을 믿고 섭섭이가 들어가도 끈질기게 주님을 따라갈 때 주님은 크게 기뻐하시고 오 너의 믿음이 크도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나오는데 갑자기 시험이 다가옵니다.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고 가시밭이 다가오고 고통이 다가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말합니다. 주님이 날 버렸구나. 주님이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나는 그런 말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35년 동안 목회하면서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생활에 고통이 다가오고 시험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하나님이 나를 버렸어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이제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것은 수로보니게 여인하고 너무나 다른 말입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 보여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려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워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살던지 죽던지 흥하던지 망하던지 성하던지 쇠하던지 어떠한 환경이 되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 속으로는 나를 뜨겁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뜨겁고 열렬하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내 집에 풍파가 다가와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내 생활에 어려움이 다가와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내게 불이익이 다가와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내게 고통이 다가와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믿습니다. 천국에 가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할 줄을 믿습니다. 이 어떠한 환경도 그를 빼 돌릴 수 없는 그 뜨거운 사랑, 환란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냐 기근이냐 칼이냐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과 신념, 이런 것을 주님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그런 사랑이 증명될 때 주님은 말씀합니다.
오! 여자여. 오! 소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쉽게 환경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바울 선생은 말합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천사들이나 권사들이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그 무엇이라도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환경을 보고서 하나님이 사랑한다 안 한다.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십시오. 이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너는 개다. 개 같은 너에게는 안해준다. 정말 모욕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 소름이 끼치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말듣고 그 자리에 가만 있을 사람 없습니다. 죽었으면 죽었지 이 모욕적인 말을 듣고서는 간구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이 말을 그렇게 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시험해 보기 위해서 믿음이 얼마나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큰사랑의 실체를 체험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을 감동시킨 사람은 바로 마가복음 2장 1절에서 12절에 있는 사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버나움에 가 있어서 한 집에 들어갔는데 어찌나 사람들이 많이 왔던지 발 딛을 틈이 없고 방안까지 사람이 꽉 들어찼습니다.
그런데 한 중풍병 환자가 전신을 못 쓰는데 친구들을 불러서 들것에 들려서 나를 예수께 데리고 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들것에 들려 와 보니 뭐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요. 아무리 사정해도 사람들이 길을 않내 줍니다.
그러니까 이 중풍병 환자가 하는 말이 나를 들고 서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어서 구멍을 내라. 야 이 사람아 남의 집 지붕을 뜯으면 주인이 가만있냐. 그러니까 주인 오라고 해라. 주인에게 내가 당신 집을 사겠소. 얼마요. 거기에 웃돈까지 넣어주겠소. 그러고 난 다음에 올라가서 지붕을 뜯습니다.
여러분 주인에게 그 집을 사고 웃돈까지 주지 않는다면 남의 집 지붕에 올라가서 구멍을 뚫는데 주인이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을리가 있어요. 성경에는 주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에게 웃돈까지 줘가면서 구멍을 뚫게다고 하니까 주인이 빨리 뚫어라. 빨리 뚫어라. 안 뚫을까봐 겁이 납니다.
지금. 그러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집안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뚝딱 뚝딱거리고 야단입니다. 그래도 예수님 바로 위에서 구멍을 뚫기 때문에 예수님 머리에 흙이 떨어집니다. 예수님이 꾸짖지 않았습니다.
그거 이상한 일 아닙니까.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데 중풍병자를 지붕으로 끌고가니까 이리 당겨라 저리 당겨라 고함치는 소리 때문에 설교가 방해가 되고 그 다음에는 괭이와 삽으로 지붕을 파니 밑에서 사람들이 저런 나쁜 놈 봐라. 야. 중지 안하냐. 고함을 쳐도 계속해서 삽으로 파고 괭이로 두들기고 예수님의 얼굴에 먼지가 묻어서 눈만 보이고 하얗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왜냐 예수님께서 그 행동하는 믿음에 대해서 크게 감동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줄로 달아서 예수님 앞에 내려갔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그 사람의 믿음을 보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눈에 보이는 믿음에 역사하지 마음속에 숨어 있는 믿음으로는 역사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눈에 보이기 위해서는 행동으로 나타나야만 되는 것입니다. 행동화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적은 믿음은 적게 행동으로 나타나고 많은 믿음은 많은 행동으로 나타나야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앉아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교회까지 온다는 것은 여러분 행동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또 여러분께서 주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행동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행동하는 믿음을 보고 크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 중풍병 환자가 와서 예수님 앞에 올 때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들것에 들려오는 고통이 있었고 사람들에게 아무리 비켜달라고 해도 비켜주지 않으니 그 몰인정함에 슬퍼서 울었고 천장으로 끌려 올라가는데 떨어지면 죽을 수 있는 위험도 있었고 그 남의 집을 파는데 많은 물질적인 희생도 있었고 집을 파고 나니까 사람들에게 욕먹고 고함을 받는 그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행동하는 믿음에는 여러 가지 시험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환난이 다가옵니다. 그래도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내려오니까 예수님을 그를 향해 말했습니다. 소자여 안심하라. 네 죄사함이 구원 받았느니라. 주님은 병 고침 받으려 오는 사람에게 죄 사함까지 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이 속으로 비난했습니다. 저가 사람인데 하나님처럼 사람의 죄를 용서하다니 하나님을 모독한다. 예수님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말했습니다. 왜 마음속에 나쁜 생각을 가지느냐. 내가 죄사함의 권세가 있는 것을 너희들이 의심하느냐.
내가 사람의 죄를 용서함의 권세가 있는 것을 내가 보여주리라. 너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하고 일어나는 병자보고 너 일어나서 침상을 가지고 돌아가라는 말하고 어느 것이 쉽겠느냐.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것은 알만하니까 눈에 안보이니까 그것이 쉽다고 생각하지, 그럼 좋다. 너희들을 위해서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그래서 내가 죄사함의 권세가 있는 것을 보여주마. 이 사람아 침상을 들고일어나서 너희 집으로 가라. 순식간이 이 사람이 나아서 일어나서 침상을 어깨에 걸며지니 길이 쫙열리는 지라 거기로 나가니 사람들마다 박수를 치고 할렐루야를 하고 예수님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입을 다물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병을 치료함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용서와 치료는 언제나 같이 갑니다. 용서와 치료는 손에 등과 앞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시고는 곧장 병든 자를 고쳤습니다. 귀신을 내어쫓았습니다. 오늘날도 여러분 복음을 증거해서 죄의 용서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병 고침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타락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고 몸이 죽게 되었습니다. 병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님을 통해서 죄가 용서함 받으면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는 병을 고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예수의 복음을 여러분이 증거하면 여러분은 또한 병 고치는 일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치료와 용서는 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용서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해가 있으면 해는 변하지 않지만 구름이 끼면 그것이 해를 가려서 그림자 지고 춥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해가 어두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해는 그대로 있었고 구름이 끼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께서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제의 예수님도 오늘의 예수님도 내일의 예수님도 변함없이 그리스도는 절대 주권자이며 한없는 사랑을 가지고 계시며 행동하는 신앙에 대해서 오늘날도 기적을 베푸는 변함없는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
오직 우리 마음속에 구름이 끼었을 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의 주권을 인지하게 하는 무신이 들어왔으며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조금만 어려워지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뒤로 물러서는 그러한 잘못된 신앙을 가졌으며 우리의 생활에 행동하는 신앙이 없습니다.
행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시험만 하려고 하는 그러한 구름이 끼었기 때문에 문제지 우리가 우리의 마음속에 회개하고 오늘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처럼 백부장처럼 주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끈질기게 어떠한 환경에도 그리스도의 대한 사랑의 의심을 추어도 안주하고 주님을 따라가며 이 중풍병 환자처럼 어떠한 역경이 부딪쳐 와도 행동하는 신앙 그는 행위로써 보여주는 신앙 이러한 태도만 가지면 오늘날 우리에게 주님은 큰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적은 하나님이 항상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믿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왜 믿을 필요가 있습니까. 내가 해 버리지. 믿는다는 것은 기적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못하니까 믿지요. 그러니까 내가 못한 것 주님께서 하시니까 기적이지요.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보고 기도하라고 하는 주님은 기적을 베풀겠다고 말씀하신 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우리 삶의 문제의 해답이요. 기적은 우리 생활 속에 항상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지금 함께 우리와 이 자리에 계시는 입니다. 여러분 곁에 계시고 여러분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오직 문제는 우리 마음에 태도인 것입니다. 정말 주님이 절대 주권자인 것을 인정하면 정말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마음속에 확실히 믿느냐. 그리고 정말로 우리 주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행동하는 믿음을 우리 실행하느냐. 이것만 있다면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상상을 초월한 그러한 역사가 여러분 삶 속에 나타나게 되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절대 주권자 예수님 끝없이 사랑하시는 예수님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몸을 짖고 피를 흘려 우리를 대속하게 사랑하신 예수님 그리고 우리의 행동하는 믿음을 따라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이 이 자리에 계심을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변화시키시고 오늘 구원과 치료를 베풀어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