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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12:1-3/ 하나님의 뜻과 꿈과 믿음 /조용기 목사
    2014-09-11 14:10:46   read : 950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뜻과 꿈과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몇 일전에 참으로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보통 꿈은 꾸면은 잊어버리는데 그 꿈은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고 내 마음속에 영롱하게 살아있습니다. 제가 꿈에 어느 해변가에 갔는데 물이 그렇게 파랗게 맑을 수가 없어요. 모래도 기가 막히게 희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물이 철썩 철썩 모래를 때릴 때 마치 하늘의 노래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래사장 뒤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는 산이었습니다. 그 절벽은 마치 병풍 같은데 너무나 험하고 높아서 감히 사람이 그 절벽을 기어오르려고 생각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그 절벽을 기대어서 아름다운 호텔을 짓고 있었습니다. 아주 멋있는 호텔입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고층건물이었습니다. 내가 볼 때 너무나 험하고 힘들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으로 변화시키는 역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호텔이기에 그 발판을 타고 제가 그 벼랑을 올라가서 큰 홀에 들어가니까 키가 1미터 65센치쯤 되는 70세쯤 된 할아버지가 아주 얼굴이 버얼같고 몸이 퉁퉁한 분이 서있었습니다.

    머리도 백발이고 수염도 백발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반갑게 인사를 하니까 그 분이 하는 말이 바로 "내가 이 건물을 짓고 있는 건물주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저를 쳐다보더니만 "조 목사님 오늘날 세상의 큰 문제가 사람들이 꿈과 환상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내가 칠십 고령에 이 역사를 하는 것은 내가 무슨 돈벌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젊은 세대가 꿈과 환상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그들에게 꿈을 가지고 환상을 가지면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젊은이가 마음속에 꿈을 잃어버리고 환상을 잃어버리면 내일은 없습니다. 그들은 살았다고 하나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70세 노인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런 곳에 호텔을 짓는 꿈과 환상을 가질 수 있다면 젊은 사람들도 물론 가져야하지요. 나는 오랫동안 이곳에 호텔을 짓겠다고 꿈을 가졌습니다.

    오늘 그 꿈이 조목사님 보는 앞에서 이루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흡족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고 있는데 그 장면이 끝나고 제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는 마치 날보고 하는 말 같았습니다.

    "조 목사 꿈을 가져라.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굉장한 마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날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 그 할아버지의 음성이 늘 울려옵니다.

    젊은이들이 꿈과 환상을 버리므로 이 세대는 희망을 잃게 되었다는 그 말이 마음속에 떠나가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이 세상을 창조적이고 생산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첫째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만 됩니다.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주의 절대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셔서 하나님 백성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에 대한 계획이 있고 한 가정, 사회국가, 세계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하나님의 뜻을 딸라 나갈 때 우리의 삶은 보장되어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본주의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의 지혜와 총명과 수단과 방법으로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리고 "신은 죽었다." 하고 무신론으로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세우려고 하던 소련 공산주의 실험이 70년만에 박살이 난 것을 볼 때 인간의 계획으로 무력으로 남한을 정복하고 통일 공산국가를 세우려는 김일성의 그 계획도 산산조각으로 무너진 것은 그의 꿈이 하나님을 따른 것이 아니고 인본주의를 따른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구해야 되는데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우리는 직관적인 깨달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내가 도저히 머리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성령으로 말미암아 직관적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이것은 아니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직관적인 깨달음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마치 파도와 같이 밀려와서 우리마음을 깨달음으로 점령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마음의 뜨거운 소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면 마음속에 뜨거운 소원이 구름기둥과 불기둥 같이 일어나서 하나님이 원하는 소원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 기쁘신 뜻이 우리 마음속에 소원이 되어서 넘쳐나는 것입니다. 이 소원이 마음속에 구름기둥과 불기둥같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은 기도하면 할수록 점점더 강해지고 불타오르는 것입니다. 인간의 소원이나 마귀가 주는 소원은 기도하면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뜨거운 소원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그렇지 않으면 꿈이나 환상이나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고넬료는 오후 시간에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는데 환상 중에 천사가 나타나서 "욥바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를 청하라. 그가 구원에 대한 말씀을 전해주겠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베드로는 또한 욥바에서 점심준비 할 때 그는 다락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환상 중에 보자기 하나가 내려오는데 그 안에 보니 여러 가지 부정한 짐승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 먹으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어려서부터 부정한 것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부정하다고 하지 말라." 이러한 현상이 두 번 반복되는데 밖에서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면서 찾습니다.

    "이곳에 베드로라는 사람이 우거하느냐?" 가보니까 바로 고넬료 집에서 보낸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은 더럽다고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이 정하게 하시므로 더럽다고 하지 말고 담대하게 따라나가라는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꿈이나 환상이나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보여줄 때가 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 줄 때가 있습니다. 호세아서 11:4절에 보면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했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우리를 이끌어주는 것 아닙니다.

    사랑의 줄, 정말 나를 사랑하고 정말 나를 돌봐주는 사람,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 이러한 사람이 그 사랑으로 끌어줍니다. 자기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사람의 줄, 사랑의 줄로서 끌어 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 뜻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신학을 졸업하고 난 다음 어디로 가서 개척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최자실 목사님을 통해서 사람의 줄 바로, 그 사랑의 줄을 통해서 저를 불광동에 개척을 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불광동에서 교회가 크게 자랐을 때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존 허스턴 목사님을 보내 주시여서 사람의 줄, 그들이 나를 사랑해서 사랑의 줄로 서대문으로 이끌어 주어서 서대문에서 교회를 세우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줄, 사랑의 줄로서 하나님이 이끌어서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 줄 때도 종종 있습니다.

    또, 그렇지 않으면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다 막아버립니다. 우편도 막아버리고, 좌편도 막아버리고, 뒤도 막아버리고, 꼭 가야할 한 길만 열어 놓습니다.

    아무리 다른 대로 가려고 해도 갈 길이 없어요. 이길 밖에 없어요. 하나님이 환경을 통해서 우리를 이끌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지 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눈에는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이것이 하나남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담대히 나갈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1-2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였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자인 것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자는 인간주의 인본주의로 살지마는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여러분을 도와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보통사람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저에 대한 하나님의 뜻. 이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제게 보여 주시옵소서." 간구하고 기다릴 때,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마음속에 꿈을 품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꿈이 없는 사람은 저버립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꿈을 준 것을 보십시오. 그 나이 75세로 이제는 늙었고, 지쳤고 그는 그대로서 이제는 인생의 종말을 구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찬란한 꿈을 부어 주셨습니다. 마음속에 꿈이 들어오면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꿈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이도 상관없습니다. 인종도 상관없습니다. 늙어도 상관없습니다.

    마음속에 꿈이 들어오면 그 꿈을 통해서 그는 새사람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2:2-3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 지라.'

    이 얼마나 창대한 꿈입니까? 온 몸에 소름이 끼칠 만큼 하나님이 크나큰 꿈을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넣어주었습니다. 그 꿈이 아브라함을 점령하자 아브라함은 자기 나이도 잊어버렸습니다. 자기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슴에 품고 불타는 마음으로 그는 인생을 재출발하며 가나안 땅으로 출발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꿈을 심어 주고 그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끌었습니까? 그들에게 하나님이 너희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자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 사람이 한 말 중에 이보다 더 위대하게 우리에게 꿈을 심어준 말은 없습니다.

    세상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얼마나 기막힌 축복의 땅을 말하는 것입니까? 모든 백성이 이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흥분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서 그들이 자손들과 함께 살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흥분되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꿈속에 사무쳤습니다. 그래서 430년을 산 애굽을 등지고 단호하게 일어나 가나안 땅을 향하여 진격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하루 수녀 한 사람이 자기 상사 수녀에게 와서 머뭇거렸습니다.

    상사 수녀가 왜 왔느냐고 물으니까 "내가 고아원을 하나 세워서 고아들을 돌봐 주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상사 수녀가 "너는 고아원을 세울만한 돈이 있느냐?" 하고 물으니 그 수녀가 손에 십 원짜리 몇 푼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상사 수녀가 "이 사람아, 십 원짜리 몇 푼을 가지고서 어떻게 고아원을 세우려고 하느냐?" 고 물으니까 이 수녀가 계면쩍게 웃으면서 "내 손에는 십 원짜리 몇 개만이 있지마는 내 마음속에는 고아들을 기르는 고아원의 꿈이 불타고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사가 하도 기가 막혀서 "그래? 네 마음대로 해 봐라."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는 고아원을 세웠습니다. 수많은 고아들을 돌보았고 그는 또 죽음의 집을 세웠습니다. 방황하며 집이 없이 죽어 가는 거리의 거지들을 데려다가 안락하고 편안하게 죽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인도의 성자 테레사 수녀입니다. 테레사가 고아원을 세우고 그 죽어 가는 많은 사람을 돌보는, 노벨 평화상을 타게 한 위대한 일을 할 때 그는 손에는 십 원짜리 몇 푼과 마음속에 불타는 꿈을 가지고 출발한 것입니다. 꿈이 라는 것은 여러분, 헛된 것이 아닙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꿈을 주고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은 로마서 4:17절에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신다.'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것은 꿈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실은 각박합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괴롭습니다. 현실은 꿈을 가지고 볼 수 없습니다. 꿈은 내일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일에 대한 위대한 일을 이룰 것을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마음속에 영롱하게 바라보고 그 꿈속에 사는 사람. 이런 사람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꿈은 소망과 정열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꿈이 없을 때는 소망도 없고 정열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75세에 꿈이 없을 때는 그 고향 전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꿈이 들어오자 무시무시한 정열이 그 마음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뜨거운 소망과 정열을 가지고 그가 부조 전례로 살아오던 전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단호하게 갈 바를 모르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마음속에 꿈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꿈이 있어야 삶의 목표가 있고 전력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바람 부는 데로 불결치는 데로 흘러갑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살았다하나 죽은 사람인 것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마음속에 목표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시간도 물질도 청춘도 거기에 몰두해서 성공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청년들이 꿈이 없이 허덕입니다.

    더구나 강남일대 오렌지족이라 해서 혹은 수입 오렌지족이라 해서 청년들이 꿈을 잃어버리고 편하게 시간을 허송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비통한 생각이 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꿈이 없는 청년은 내일이 없으니 젊었으나 이미 죽은 자나 같습니다.

    그러나 꿈이 있는 노인은 그의 나이와는 상관없습니다. 그 마음속에 꿈이 있는 이상 젊은이보다 더 젊으며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은 내일을 산출하는 근원적인 힘이기 때문에 오늘날 역사를 변화시키고 인간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일들은 모두다 가슴속에 꿈을 품은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경 말씀에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이유가 거기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성령으로 꿈을 얻으십시오. 성경은 말하기를 젊은이들에게는 환상을 늙은이들에게는 꿈을 성령께서 주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크리스천들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속에 꿈과 환상을 얻어서 나가기 때문에 오늘 세계의 역사와 운명을 변화시키는 크나큰 일을 이룩했고 또, 이룩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현실과 다릅니다. 현실은 피상적이며, 이성적이고, 순위 계산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현실 환경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적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주의자가 보게 되면은 꿈을 가진 사람이나 믿는 사람은 미친 사람같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하나님을 그의 생활에 계산하며 넣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 나가서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 기만 명을 데리고 말씀을 증거하고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저녁에 그림자가 길게 드리울 때 주님이 말씀을 그치자 사람들은 배가 고파 허덕였습니다.

    남녀 할 것 없이 풀밭에 들어 누워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 가장 지혜로운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아, 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빌립은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는 타산에 밝았습니다. 계산에 밝았습니다. 그는 현실에 굳게 서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계산을 해보니까 도저히 예수님 말씀대로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는 주님께 가서 말씀했습니다. "주님, 제가 계산을 해보니까 이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씩 먹일 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한데 우리는 돈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빵을 살 곳도 없고요. 시간도 늦어서 못 먹입니다.

    흩어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빌립은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가 말한 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참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광야도 보았습니다. 돈이 없는 것도 보았습니다.

    현실적으로 시간이 늦은 것도 보았지마는 빌립이 안본 또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안드레는 그 광야 가운데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하늘과 땅과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께서 같이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예수님을 계산에 안 넣었을 때 안드레는 예수님을 계산에 넣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할 일을 다하고 나면 거기에 예수님을 플러스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못한다고 주저앉았을 때 안드레는 나가서 음식이 있는가 찾아보았습니다. 어린아이가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늦게 그것을 먹으려고 하는 것을 발견하고 설득했습니다.

    이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서 안드레는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미쳤습니다. 도대체 이 많은 군중에게 어린아이의 도시락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무엇을 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안드레는 자기의 믿음과 광야에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계산에 넣었습니다. 예수님을 계산에 넣으니까 주께서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빌립은 안드레를 비웃었습니다. "너는 비현실주의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지성적인 사람 아니냐?"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을 제겨버렸습니다. 예수님은 꿈을 갖고 믿음을 가진 안드레를 받아 들였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 위에 예수님의 축복을 보내니까 그 광야가 잔칫상이 되고 말은 것입니다.

    넘쳐 나옵니다. 떡이 넘쳐 나오고 생선이 넘쳐 나옵니다. 사람들은 떡을 원대로 먹었습니다. 생선을 원대로 먹었습니다. 다 배가 불렀습니다. 남은 것을 거두니 열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나왔습니까?

    믿음은 초인적인 기적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계산에 넣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플러스 표가 왜 있습니까? 현실에 플러스, 예수님을 더해라.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이 계시면 우리는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담대하게 믿음의 행진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밤이 칠흑같이 어둡고 파도는 치고 검은 파도가 지옥같이 휘몰아쳤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그 배를 바로 잡기 위해서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런데 물 위로 예수님이 걸어오십니다.

    흰빛 같은 것을 비취면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다 유령이라고 고함을 치고 놀랐습니다마는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주시어든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주님께서 걸어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것은 기적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것입니다. 기적을 믿지 아니하면 믿음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밤은 어둡고 바람은 불고 먹장 같은 파도가 치는데 거기에 플러스 예수님을 하면 기적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그것은 물에 빠져 죽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베드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플러스 예수님을 해서 믿음으로 그 밤바다를 걸어갔는데 그 물이 삼키지 못했습니다. 그 바람이 그를 날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저벅저벅 물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향했습니다. 왜냐? 예수님을 여러분의 인생의 플러스로 넣으면 주님은 여러분에게 기적을 나타내주시는 것입니다. 기적이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반드시 기적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가슴속에 꿈을 품으시고 그것을 믿음으로 실천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우리가 마음속에 받아들인 새로운 사랑과 믿음을 입으로 담대하게 고백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힘은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생겼습니다. 궁창이 있으라 하니 궁창이 생겨나고, 육지가 나타나라 하니 육지가 나타났습니다.

    말씀하시매 해와 달과 별이 생겼고 공주의 새와 물고기와 짐승들이 지음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을 지을 때 말씀의 힘으로 지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역하실 때 주님의 사역은 모두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병자보고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 할 때 나아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귀신을 보고 나오라 할 때 나와버렸습니다. 파도가 일어난 바다보고 잠잠하라. 고요하라 할 때 파도가 잠잠하고 고요해 졌습니다.

    주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실 때도 말씀으로 만드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보고 청년아 일어나라 하니 일어났고 나흘동안 무덤에 있던 나사로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 할 때 수의를 동인 채 나사로가 살아나서 나왔습니다.

    주께서 하신 모든 역사는 그 말씀을 통해서 하셨습니다. 오늘날 주님께서 그러므로 이 입술의 고백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 구원 자체도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에 이릅니다. 형식과 의식을 통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0: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를 구주로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한번 시인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나의 구주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진실로 시인했으면 시인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입술의 시인이란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을 가져오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구십 구 세가 되었을 때 창세기 17:4-6절에 보면 하나님이 와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나이 구십 구 세가 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하였는데 이제 하나님이 오셔서 그에게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해주겠다는 생각과 믿음을 주시면서 이제 이름을 바꾸라 아브라함. 열국의 아비라는 이름으로 바꾸라. 입술의 고백을 바꾸라 했습니다.

    그리고는 또 창세기 17:15-16절에 보면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구십 구 세 된 아브라함에게 팔십 아홉 된 아내가 아들을 낳아 주겠다고 그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많은 자식의 어미인 사라라고 이름을 바꾸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백세에 자식을 낳겠다는 생각을 주고 믿음을 주었지마는 이것을 입술로 고백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웃었습니다.

    창세기 17:17-19절에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자기 첩에게서 낳은 아들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두 손에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겠다고 해도 아브라함이 백살이요. 아내가 구십이니 살았다하나 그 몸이 죽은 것 같음으로 믿지 안았습니다.

    하나님말씀을 듣고 웃으면서 "하나님 웃기지 마세요. 내가 어떻게 자식을 낳습니까? 내 아내가 어떻게 잉태를 합니까? 젊을 때 하갈이라는 첩에게서 나온 이스마엘이나 있으니 그나 살아 있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아니라 하나님께 능치 못함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졌으면 담대하게 입술로 고백하라.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말하라. 백살이 되어도 너는 열국의 아비요. 너의 아내는 열국의 어미다. 그렇게 하라. 그들의 이름을 바꾸어주었습니다.

    일년 내내 열국의 아비요. 열국의 어미요. 서로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입술의 고백대로 아브라함이 백살이 되고 사라가 구십 살이 되었을 때 아들을 낳았으니 그 이름이 이삭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차원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과 삽니다.

    여러분과 나는 보통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라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가르치는 방법대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반드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뜻을 차지하십시오. 마음속에 꿈을 잉태하십시오. 꿈이 없이 살지 마십시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실천하십시오.
    그리고, 두려워 말로 입술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고백하며 시인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와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니라.

    너희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그 곳에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노라. 볼지어다. 세상 끝날 까지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하리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이 모두다 예수의 사람이 되었은즉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삶에, 계산에 넣고, 여러분, 꿈의 사람, 믿음의 사람, 입술의 고백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무력하다고 말하고 무능력하다고 말하고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 없는 사람이 그렇게 말 할 수 있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꿈을 가지며 믿음을 가지고 행하며 입술로 고백하며 나갈 때 주께서 함께 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해 주심을 감사 드리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뒤로 물러가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신앙을 가지고 환경과 운명을 변호시키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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