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0:35-39/ 적극적으로 나아가라 /조용기 목사 2014-09-11 15:18:59 read : 957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적극적으로 나아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은 쉽게 불안과 공포의 노예가 되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수차 다가와도 그 기회를 잡지 못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적극적인 사람을 통하여 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구약에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여호수아나 다윗이나 다 적극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큰 기적을 체험한 이들은 한결같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가장 적극적인 인물인 베드로는 가장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사람들 즉 수로보니게 여인, 로마의 백부장, 회당장에 들것에 들려온 중풍병자, 혹은 열두 해 혈루병으로 앓던 여인 등은 모두 다 적극적으로 주님을 찾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소극적이 되고 부정적이 되어서 나는 못한다. 나는 안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능력이 없다. 힘이 없다. 돈이 없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등을 돌려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인생을 긍정적으로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으로 살아 나갈 수 있겠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도전에 대해서 어떻게 적극적으로 응할 수 있을까? 그것을 우리가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속에 꿈이 있어야 됩니다. 꿈은 내일을 가슴에 잉태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이 없는 개인이나 민족은 내일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마음속에 꿈이 없는 사람은 내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내일이 없는 사람은 희망이 없고 유익도 없고 적극적인 삶을 가질 이유도 없고 망하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꿈을 품는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꿈을 품고 꿈을 좇는 그 사람이 내일이 있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 할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꿈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75세에서 120세가 넘도록 그는 꿈을 좇아 산 사람입니다.
75세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너는 네 전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 주며 복 주고 번창하고 번창케 하리라. 너를 복 주는 자에게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니 온 땅의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니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이 75세에 빈손 들고 미지의 세계로 개척의 인생을 떠난다는 것은 마음속에 꿈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그 찬란한 꿈을 받아 안고 그는 그 아내와 손을 잡고 가나안 땅으로 혹은 애굽으로 다시 가나안으로 평생을 꿈을 좇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상주의자요. 꿈을 좇는 사람이었지마는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복을 주셔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게 하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꿈을 얻기 전에는 미디안 광야를 양떼와 함께 방황하는 잊어버린 목동에 불과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이가 이미 80세입니다. 눈은 어둡고 허리는 구부러졌고 머리는 백발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이제 사라져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호렙산 가시떨기 앞에서 하나님께로부터 꿈을 받았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불타는 하나님의 꿈을 받고 그 당시 세계 최대 강국인 애굽이 자기 백성을 430년 동안 포로로 잡고 있었는데 이 백성을 구출하기 위해서 군대도 외교도 도난도 없는 그가 지팡이 하난 집고서 나갔습니다.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백성을 포로생활에서 구출해야 된다는 그 찬란한 마음의 꿈이 있었기 때문에 80세 노구에도 그는 일어나서 인생을 재출발하는 적극적인 삶을 살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제자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별로 교육도 없는 너무나 평범한 갈릴리의 어부들이나 세리들이었습니다.
아무도 그 사람들이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게 되고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난 다음 그들은 꿈으로 불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천하에 전해야 갰다는 활활 타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통해서 세계가 변화 받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사람들의 가르침은 우리가 지금도 배우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학식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변화시킨 위대한 사람들이 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꿈을 받은 꿈의 사람들 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여러분, 1958년도에 제가 불광동에서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고 교회를 시작할 때 외형적으로 볼 때는 절대로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속에 하나님이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이 와서 큰 교회를 세우는 비결을 말하라고 할 때 언제나 제가 말하고 싶은 말이 있으나 그 말을 안합니다. 해봤자 별로 믿어 주지 않으니까. 큰 교회를 세운 비결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마음속에 설레는 꿈을 주실 때 그 꿈을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
그 처지에서 황당하기 짝이 없는 꿈입니다.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깔아 논 그 처지에서 한국 최대의 교회가 될 것이다. 세계 최대의 교회가 될 것이라는 설레는 꿈이 마음속에 들어왔습니다. 자나깨나 그 꿈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너무나 황당한 꿈이라 사람들에게 말하면 미쳤다는 소리밖에 들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꿈을 사람들에게 말 할 수는 없었으나 저는 지금까지 그 꿈에 사로 잡혀서 그 설레는 불길 속에서 살아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꿈속에서 세계를 교구로 주셨습니다.
천하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설레는 꿈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지혜가 많은 것도 아니고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나 가슴속에 설레는 꿈 때문에 그 꿈에 잡혀서 북 남미, 유럽, 아프리카, 태평양, 대양주 쉴새 없이 뛰었습니다.
왜냐? 꿈에 잡혔기 때문에 그리고, 그 꿈이 많은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을 이루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저의 체험으로 잘 압니다. 제 마음속에 꿈이 꺼지는 그 날에는 저는 적극적인 인생을 그치고 맙니다. 저의 바퀴는 중지하고 맙니다.
여러분도 한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꿈이 있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저녁 늦게 누우며 적극적으로 인생을 도전하면서 살 수 있게 되는데 꿈을 잃어버리면 그만 적극적인 삶을 잃어버리고 내일의 희망을 상실하고 여러분의 삶의 기력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반드시 하나님 앞에 꿈을 구해야 됩니다. 성경에는 말세에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 주리니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꿈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여러분께서 소박한 적은 꿈으로부터 시작해서 큰 위대한 꿈까지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꿈을 받아 그 꿈을 품에 안고 사람들이 비웃든, 믿지 않든, 인정하지 않든, 상관할 필요 없이 꿈에 잡혀서 뛸 때 꿈이 여러분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꿈을 품으면 꿈이 여러분을 변화시키고 상상시키고 여러분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꿈이 없는 개인이나 집단이나 백성은 내일이 없는 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환경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있어도 그 사람은 그 환경을 낙원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게 보여주십시오. 여러분의 내일을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꿈은 이와 같이 인생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가장 위대한 힘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부터 꿈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꿈을 받고 그 꿈을 품고 사는 사람이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믿음의 삶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동 보다 지식보다 더 위대한 힘입니다. 아무리 돈과 지식이 많다고 할지라도 겁에 질려 있으면 아무 것도 이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과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복을 받는 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믿는 사람에게야 신념이 있을 턱이 없지요. 하나님이 있어도 아무리 찾아보다 벌만 주고 환란만 주고 고통만 주고 복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믿을 수가 없지요. 저는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 전통적인 예수를 믿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면 하나님은 우리를 쫄딱 거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고통과 괴로움을 줌으로 울고 울면서 천국까지 가야 된다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와서 좋은 것은 다 빼앗아가고 나에게 고통을 주고 시련과 환란을 주고 십자가를 걸머지고 따르라고 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내 팔자가 좋지 못해서 일찍 예수 믿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죽을 때 믿을 것을 잘못했다. 그런 생각을 했지 적극적인 믿음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불광동에서 개척 교회를 할 때 미국의 부흥사 오랄 로버트 목사의 책을 읽고 나의 생애 속에 거대한 변화가 들어왔습니다. 나는 그 목사님을 통해서 처음으로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너무나 소박한 말입니다만 하나님이 좋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배웠을 때 온 몸에 전율이 다가왔습니다. 요한3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깨닫게 되자말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가슴에 넘치게 되고 사랑이 넘치면 믿음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고 나에게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 그래서 다윗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래서 좋은 하나님을 알고 난 다음에 마음속에 끝없는 믿음이 솟아났습니다.
그래서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시므로 좋은 결과가 올 줄로 믿습니다. 그러한 신념이 있어서 모든 역경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십니다.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이러한 좋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믿고 순종 할 때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복을 주십니다. 어떤 복을 주십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그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여 절대로 해를 받지 않게 만들어 주신다.
그러므로 어떠한 역경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원수가 쳐들어와서 나를 짓밟고 나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진수성찬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성령의 기름을 발라 내 잔이 넘치게 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눈앞에 원수들이 나보다 힘이 세어서 나를 물고 찢고 내 살을 먹으려고 할지라도 담대하고 강하게 믿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내편이시다. 하나님께서 원수가 오면 진수성찬도 차려주시고 나에게 잔이 넘치는 삶을 주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원수 앞에서 오히려 할렐루야!!를 하고 찬양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곤경에도 하나님께서 해답을 갖고 계심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결과는 결코 환경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어도 환경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이 계신데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이 있느냐?
하나님을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역경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환란의 깊은 계곡에 떨어지고 시험에 떨어져도 환란 날에 나와 같이 계시는 하나님.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응답하겠고 너를 영화롭게 하겠다고 하셨으므로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항상 바라기 때문에 마음에 확신이 있고 그리고 오래 오래 참을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눈에 아무 것도 안보여도 오래오래 참을 수가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이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보이지 않는 가운데 역사 하심으로 종국적으로 위대한 승리가 올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버티어 갈 수가 있고 믿음의 결과는 승리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우라 해도 될 것이요. 능치 못하심이 없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결과는 승리요. 성공이요. 영광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살을 때 여러분, 우리는 적극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담대해야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담대함이란 용기 있게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항상 내가 잘 아는 내 집, 내 동네 박에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겁 많은 사람이요. 우물안 개구리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대양으로 나가 헤엄치는 개구리가 되어야지 우리 민족이 오늘날 국제화 시대에 잘 살아 가려면 우리의 마음을 열어놓고 옹졸한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끼리만 모여 살아서는 안됩니다.
세계를 내 집으로 삼고 내 무대로 삼고 세계로 나가서 살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한국 민족들이 특히 폐쇄적이고 그리고, 우물안 개구리라는 것을 자백합니다. 왜냐? LA에 가도 미국사람들과 섞여 살지 않고 한인타운이라 해서 한국사람끼리 미국에서도 모였습니다.
뉴욕에 가도 코리안 타운이라며 한국사람끼리 모였습니다. 일본에 가도 한국사람끼리만 모여 삽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수십 년을 살아도 외국말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왜 그렇게 폐쇄적으로 삽니까?
이 세계를 내 집으로 삼고 가슴을 열어놓고 세계와 함께 호흡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담대하지 못해서 겁이 나서 자기들끼리 모여서 삽니다. 배짱 있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간을 배 박에 내놓고 살아야 합니다. 용감하게 살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담대하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므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여호수아야, 내가 너와 함께 가니 강하고 담대하라 마음을 강하게 하고 지극히 담대하라 마음을 담대히 하라." 그렇게 늘 부탁하시고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것을 다 행하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고 기도해서 성령이 충만해서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알게되면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CA 고등부 여학생 한 사람이 나에게 며칠 전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는 목사님과 꼭 상담을 해야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주님께 눈물로 기도를 많이 드리는데 주님이 한번도 들리는 음성으로 대답을 안하십니다. 그러니 제 기도는 일방적인 독백에 불과합니다. 일방적으로 기도하고 기도해도 한번도 하나님은 나에게 들리는 음성으로 말씀을 안하시니 너무 답답해서 목사님하고 무엇이 내게 잘못인지 좀 상의를 하려고 합니다."
그 편지에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하나님이 너에게 한번도 말씀 안했다고 그랬지? 나는 36년 간 목회를 해도 한번도 말씀 안하시더라. 36년 간 죽도록 힘을 다해 주님을 위해서 일해도 들리는 음성은 한번도 못 들어봤다.
나는 오직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 때 성령이 마음속에 생각을 통해서 말씀하여 주시더라. 내 마음에 변화가 오고 내 생각이 달라지고 문득 문득 마음의 생각과 소원을 통해서 말씀해 주시지 한번도 못 들었다.
그러므로 내게도 들리는 음성으로 말씀 안하시는데 너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겠느냐? 그러므로 성경 말씀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만족하도록 하라."고 제가 편지를 했습니다.
여러분, 직접 하나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대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귀신의 음성을 듣고 맙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서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찾고 기도하면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말씀을 찾고 기도하면 성령이 우리마음속에 고요하고 잠잠하게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담대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기도를 통해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분별해야 됩니다. 이것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나도 하나님의 것이고 세계도 하나님의 것임으로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결정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내가 마음속에 확신하게 되면 강하고 담대하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담대하지 위해서는 모험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예 간을 배 박에 내어놓고 살면 살고, 죽으면 죽으리라, 흥하던지 망하던지, 성하던지, 쇠하던지 하고 뛰어들어야 합니다.
수영을 배우기 원하는 사람보고 물 밖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백날 말만해서는 수영 못 배웁니다. 수영을 배우려면 물 속에 밀어 넣어버려야 합니다. 내려가서 앉기도 하고 물도 좀 마시기도 하고 버둥대고 그래야 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그 뒤에 수영을 배웁니다.
담대해야 배우지요. 성경은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고 말하고 잇습니다. 주님께서 상용한 위대한 믿음의 용사들은 다 담대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같이 75세에 인생을 새 출발한다는 것은 담대하지 않고는 못합니다.
그리고 80세에 한사람의 군인도 없이 세계의 최강국인 애굽에 포로로 잡힌 백성들을 구출하겠다고 지팡이만 집고 나가는 사람은 미친 사람 아니면 담대한 사람인 것입니다. 담대했습니다.
다윗은 아버지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을 물고 가면 겁이 나서 그냥 앉아 있지 아니하고 뛰어나가서 그 양을 빼앗고 곰이나 사자가 달려들면 어울려서 수염을 잡고 박치기를 하고 주먹으로 쳐서 잡았습니다.
그는 담대했습니다. 담대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그가 형들을 방문했을 때 마침 사울 왕은 군대를 거느리고 블레셋과 전쟁 중이었습니다. 블레셋의 대장군인 골리앗은 "나와서 이스라엘 중에 남자가 있으면 나오라. 나와 싸우자. 네가 이기면 우리가 너희 종이 되고 네가 지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라. 나오라."
모두다 겁을 집어먹고 전부 이스라엘 군이 들어가 수풀 뒤에 숨고 흙더미 뒤에 숨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에게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것을 조그마한 소년 다윗이 보고 분개했습니다. 다윗이 말하기를
"저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 앞에 만군의 야웨 하나님의 군대가 모욕을 다하는데 이렇게 뒤로 숨기 바쁘냐? 내가 가서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형들이 와서 "너 미쳤냐? 가서 양이나 쳐라." 그 말에 다윗은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형들이 도망을 치니까 그렇지 안습니까?" 그 말을 사울이 듣고 "네가 정말 가서 싸우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싸우겠습니다."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용사인데 너 같이 어린 소년이 어떻게 싸운단 말이냐?" "제가 아버지 양을 칠 때 곰이나 사자가 와서 양을 움켜쥐면 가서 빼앗고 달려들면 주먹으로 쳐서 죽였는데 저 놈도 그 곰이나 사자의 한 놈밖에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담대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자의 도구를 몸에 걸치고 물 맷돌을 들고서 나갔습니다. 골리앗은 거대한 장군이 오는 줄 알고 위를 쳐다봐도 안보이니까 어디에 있나 찾다가 밑을 보니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나옵니다. 그러니 골리앗이 얼마나 모욕을 느꼈는지 "야. 이놈아 내가 개인 줄 알고 나왔느냐?" 그때 다윗이 말합니다.
"내가 오늘 너를 찢어서 죽여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으로 만들겠다." 다윗이 무어라고 말했습니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을 의지해서 나오거니와 나는 네가 모욕하는 하나님. 만군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느리라 내가 오늘 너를 죽여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으로 만들겠고 온 세상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게 하겠다."
그래서 그는 물 맷돌을 흔들면서 뛰어나가 놓아버리니 돌이 나가서 골리앗의 이마에 정면으로 파고 들어가 골리앗이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의 목을 칼로 베어서 피가 뚝뚝 흐르는 머리채를 휘어 감아 드니 그때야 이스라엘 백성이 담대해 져서 물결치듯이 습격해 블레셋을 풍지박살 내었습니다.
완전히 이스라엘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담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했지 다윗이 담대하지 못했으면 하나님은 역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베드로를 존경하는 것은 베드로는 담대한 사람입니다.
캄캄한 칠흑 같은 밤에 파도가 치고 바람은 부는데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니 유령이라고 다 고함을 치고 움츠립니다. 그때 예수님이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니 그때 베드로가 "만일 주시면 나로 물 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오라." 그 캄캄한 밤에 출렁이는 배에서 베드로가 걸어 나갑니다. 내 간이 다 서늘해집니다. 나갔다가 물위로 못 걸으면 뭐, 영원히 고기밥이 되는 것입니다. 어마 어마하게 담대합니다. 캄캄한 밤에 천둥은 치고 바람은 부는데 그 물결 속을 향해서 베드로가 걸어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물위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인류 역사상에 물위를 걸은 이는 베드로 밖에 없는데 담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했던 것입니다. 담대함이 없었으면 그런 일이 일어날 리도 없습니다. 저도 짧은 목회생활이지마는 제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짱 있게 담대하게 나갔을 때 가장 큰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지을 때 단돈 백만 원가지고 서울시에 가서 이 땅을 계약하고 이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나이도 지금보다 젊었고 간이 배밖에 나왔어요. 사실 아예 담대해져서 뭐 죽으면 죽으리라고 나왔는데 만일 그때 제가 담대하지 못하고 소극적인 마음을 가졌으면 그때 서대문에서 여의도로 나오지 못하고 우리는 세계적인 교회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 담대함을 가졌기 때문에 주님이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제가 병자를 위한 기도를 할 때도 그랬습니다. 언제나 담대한 믿음이 생겨서 아주 강하고 담대하게 병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병자를 일으켰을 때는 굉장히 기적이 많이 생겼었는데 그만 겁이 나가지고 소극적으로 기도했을 때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안았습니다.
저의 생애에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알았을 때에는 아예 그냥 죽든지 살든지 하고는 담대하게 나갔을 때 가장 큰 역사가 일어났던 것을 체험했습니다. 너희는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 이러므로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분께서 용감하고 담대하게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가나안은 광야의 끝에 있지 광야 중간에도 처음에도 있지 않습니다. 광야를 지나고 난 다음에 그 끝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있습니다. 여러분,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우리가 연단을 받고 고집이 깨어지고 탐욕을 버리고 그리고 연단을 통해서 강한 믿음을 얻게 되면 그 결과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광야가 없이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은 없습니다. 반드시 시련의 광야가 있습니다. 작은 광야, 황막한 광야, 인생의 광야를 우리가 인내를 가지고 들어가야 결국에는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광야를 통과할 때 낙심하지 말고 뒤로 물러가지 말고 끝까지 인내를 가져야 됩니다.
성경에는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서 100세까지 25년 동안 인내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견뎌냈습니다. 이삭은 모리아 산의 죽음의 시련을 견뎌냈습니다.
야곱은 17세부터 30세까지 13년을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흔들리지 않고 견뎌냈습니다. 모세는 40년을 광야에서 버림받은 생활을 살면서도 뒤로 물러가지 않고 견뎌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결국에 그들에게 승리의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주셨습니다.
가장 위대하게 인내한 사람은 바로 욥이었습니다.
욥은 자식이 남자 7명, 여자 3명, 모두 10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양이 7천 마리, 약대가 3천 마리, 소가 5백 걸, 암나귀가 5백 걸, 동방에서 제일 큰 부자였는데 순식간에 하루아침에 자식을 다 잃어버리고 몸은 종양성 문둥병에 걸리고 아내는 떠나가 버리고 잿더미 위에 앉아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는 비참한 인간으로 전락되고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는 끝까지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하나님을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담대했습니다. 나는 지은 죄가 없다. 나는 하나님 앞에 시련을 겪고 있다. 담대했습니다.
그리고 욥은 끝까지 참았습니다. 내가 참고 나면 정금같이 나오리라.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그 광야를 지난 욥을 높이고 복을 주어서 전보다 배나 되는 축복을 넘치게 했습니다.
야고보서 5;10-11절에 보면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욥은 그 인내를 통해서 그 시련의 연단의 광야를 지나 축복의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여러분에게 크고 작은 시련의 광야가 다가옵니다.
이것을 적극적으로 인내를 가지고 견디면 나중에 그 시험과 환란의 동등, 그 이상의 복이 반드시 내려온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삶은 전쟁터입니다.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자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성경은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르리라. 열릴 것이니라. 이 얼마나 적극적입니까? 가만히 앉아 있어도 열린다고 하지 안았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들이고 나아가는 적극적인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못한다. 나는 안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능력이 없다. 나는 돈이 없다. 그런 말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도 등을 돌려버리고 맙니다. 그런 사람은 내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비록 교육이 부족할지라도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을지라도 건강이 나쁠지라도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구해서 꿈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는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그리고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여 환경에 흔들리며
두려움을 갖지 말고 끝까지 인내하면서 적극적으로 인생을 계속하여 살면 결과에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가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너무나 뒤로 물러가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담대함이 큰상을 얻는다고 하셨으니 우리 아버지, 오늘 원하오니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인생을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부정적으로 파괴적으로 인생을 살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은 모든 면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 수 있는 이유가 가득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여, 말씀과 성령으로 오늘 설교를 들은 모든 사람들이 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인생을 대처해서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시고 모두다 승리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