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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와 금식외에는
    2002-06-18 14:47:27   read : 4621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막9 :28-29) // 2002/06/10

    미래 학자인 {아이스비트} 라는 사람은 그의 책 {현대를 바라보는 관점} 이라는 책에서 오늘의 시대를 한 마디로 이렇게 정의해 주었습니다. "현대는 메가 크라이시스 시대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개되는 엄청난 위기의 시대라는 말입니다. 그러한 위기 속에서 현대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혼돈의 문제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다양한 가치, 다양한 문화, 다양한 세대들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어느 때 보다도 혼돈과 당황스러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전개되고요, 아이들이 어른들을 보면 왜 그러나 하면서 또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럭비공처럼 예측 할 수 없는 방향으로 톡톡 튄다고 해서 X 세대가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인터넷을 즐기고 사용하고 탐닉한다고 해서 N 세대가 있습니다. 그들은 New Generation 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첫 번째 특징은 New,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세대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갖는 세대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두 번째로는 Net, 가상공간 혹은 사이버 공간에서 그들의 삶을 삽니다.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Now,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현재 어떻게 사는가? 현재를 어떻게 즐기며 사는가가 중요한 세대입니다. 그런 와중에서 H 세대가 있습니다. H 세대는 Happiness Generation, 즉 행복한 세대입니다. 첫째로 이들은 Harmony, 조화를 추구합니다. 새로운 것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N 세대와는 달리 구별되게 그들은 하모니를 이루며 사는 무리들입니다. 둘째는 Heart, 가슴입니다. N 세대가 가상공간에서 삶을 살지만 H 세대는 즉 인격과 인격의 만남, 마음과 마음의 만남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입니다. 셋째는 N세대가 현재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이들은 Hope 즉 희망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입니다.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이 동시대에 사람들은 다양한 가치와 문화와 성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작고한 유명한 복음 전도자 프란시스 쉐퍼 박사는 "오늘의 시대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기란 너무나 어려워졌다" 고 말씀하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 잠시 여러분의 생각을 20년 전으로 돌려보십시오. 아니 십 년 전으로 돌려보십시오. 교회가 얼마나 평화스러웠습니까? 저 멀리 교회당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믿음을 가진지가 그렇게 오래 되지 못합니다.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체육대회를 한다고 해서 운동을 좋아하는 제가 운동하기 위해서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저는 그 때부터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저희 집에서 교회까지는 5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산을 건너고 들을 지나고 방죽을 세 개 건너야 교회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교회 가는 것이 기쁜지 몰랐습니다. 제가 가장 먼 곳에 사는 사람이었지만 언제나 저는 일등으로 교회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일 중에 하나는 교회 종을 치는 일이었습니다. 교회 안에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교육전도사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교회가 그렇게 좋았고, 찬송하는 것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학생회 때 월례회를 하면 그렇게 진지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 하는 소식을 들으면 십리고 이 십리고 상관하지 않고 그 교회를 갑니다. 그 교회에 가면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교회당 안에 가득 찼습니다. 항상 목격하는 일이지만 강대상까지 가득 찼습니다. 밤늦게 끝나고 형들과 함께 교회에 돌아오는데 그것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부흥강사 목사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좌우지간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였습니다. 명진홍 목사님이라고 동국대학을 나와서 승려가 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탁발승이 아니라 배운 승려, 인테리 승려입니다. 이분이 예수님을 믿고 개종을 한 다음에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되어 전국에 돌아다니며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 목사님이 교회에 오신 것입니다. 그 부흥회에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지 강대상까지 꽉 찼습니다. 문밖에서 앉아서 듣는 분도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그 분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한가지 기억나는 것은 이분이 기가 막히게 판소리를 섞어가면서 말씀을 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분명한 사실은 성도들이 그렇게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탄의 계절이 돌아오면 산과 들에 햐얀눈이 소복하게 쌓였습니다. 성탄 이브 행사를 마치고 각 가정에 돌아가면서 성탄 축하 찬양을 하기 위해 새벽 송을 부르러 다닙니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지 가다가 미끄러져 쓰러지기도 하고, 논을 건너다가 물에 빠지기도 하고 그래도 그것이 왜 그렇게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교회가 좋았습니다. 전도를 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그냥 교회에 몰려왔습니다. 교회당만 크기 짓기만 하면 지은 크기만큼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 그렇게 성경공부, 제자훈련을 많이 합니다. 그렇게 유능한 사람들, 훈련된 사람들이 교회를 섬깁니다. 좋은 시설, 교육관등을 마련하였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전도에 힘을 기울이고, 사회봉사도 많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의 교회에 대한
    평가는 가혹합니다. 교회가 사랑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점점 교회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당은 많아지지만 교회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자꾸만 둔화되고 있습니다.

    올해 초 대학생선교회에서 서울에 있는 몇 개 대학의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종교란에 자기의 종교가 기독교라고 답한 청년들이 30%가 되었습니다. 천주교 14%, 불교 14%에 비해서는 월등하게 많았습니다. 그런데 종교가 없다고 답한 사람들이 38%가 되었는데 그 사람들에게 또 한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영원한 베스트 셀러인 성경과 역사의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아갈 기회가 있다면 참여하겠습니까?" 그랬더니 65%의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의 영적인 상황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죽음 후, 내세에 대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인식하여야 합니다. 이런 영적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거기에 따른 정확한 처방을 할 때만이 진정한 회복과 부흥의 계절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우리 주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상에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변화산상에서 일어난 기이한 일을 체험합니다. 변형되신 예수님, 그리고 그 옆에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한 모습입니다. 영광스럽고 황홀한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다음에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내려와서 보니 산에 올라가지 않은 남은 제자들 주위에 많은 군중들이 몰려 대단한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불쑥 나타나더니 "여기 있는 이 소년은 내 아들입니다. 어릴 때부터 경련을 일으켰고, 또 땅에 엎드려지기도 하였고 거품을 내기도 하는 아주 불쌍한 아이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 아이를 고쳐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제자들이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오라 하더니 귀신을 내어쫓아 주었고 그 아이는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일 후에 제자들과 예수님은 집에 돌아가셨고 그 때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그 귀신을 내어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그 때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제자들은 최선을 다해보았습니다. 아니 확신을 가지고 해보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주님께서 그들에게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주셨고 그것으로 귀신들을 내어쫓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그들이 성공적으로 그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와서 너무 기뻐하고 뽐내는 잘못을 범하였을 때, 우리 주님께서 그들에게 충고한 말씀이 있습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눅10:20)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자들이 질병으로 고통 하는 아이를 고치는데 있어서 얼마나 큰 확신을 가졌겠습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설마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확신과 모든 힘을 다 동원해서 시도해보았지만 그 아이는 전혀 낫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난처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물은 것입니다. "주님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내어쫓지 못하였습니까?" 그 때 주님께서 "이런 유는 기도와 금식 외에는 나갈 수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우리가 주목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유' 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기도와 금식 외에는 나갈 수 없느니라."

    그러면 '이런 유', '이런 경우'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너희가 이제까지 성공을 가져왔던 유, 너희가 그처럼 성공을 거두었던 유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경우라는 말입니다. 이번에 귀신은 그전에 너희들이 쫓았던 귀신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번의 귀신은 아주 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을 이해하십니까? 귀신과 귀신사이에도 등급이 있는 것을 아십니까? 악한 나라에도 등급이 있고 일종의 계급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세상에 속한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그 악한 나라에도 등급이 있고 최고의 우두머리는 사단입니다. 사단은 그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다양한 여러 영들과 권세들과 세력들을 동원합니다. 그것들은 힘과 지혜에 있어서 차이가 있고 등급이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전에 약한 등급에 속한 것들을 쉽게 쫓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은 이번의 경우는, '이런 유' 는 더 큰 힘을 가진 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영은 너희가 주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이전에 했던 방식대로, 이전에 가지고 있는 능력을 믿고 사용하다가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전에 황급히 처방을 내리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앞에 벌어진 '영적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지 못하고 무조건 많은 활동을 하고, 열심을 내고 있는 현대 교회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각종 세미나를 합니다. 많은 프로그램을 도입합니다. 이웃을 돕습니다. 교회시설을 확충합니다. 주차공간도 만듭니다. 다양한 성경공부도 합니다. 전도도 열심히 합니다.

    저는 이것이 필요 없다는 말씀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필요한 것입니다. 말씀 공부에 대한 부족이 있고, 교회가 충분한 사귐과 교제의 장이 되고, 쉼의 공간이 되고, 이웃을 섬기는 터전이 되어야 할 부족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또 교회를 교회 밖에 있는 이웃들에 잘 알리기 위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 그리고 다양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알려야 합니다. 간판도 크게 하고, 아파트나 은행이나 동사무소나 식당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관공서나 터미널이나 역 광장에 교회 간판을 해놓는 것 그것도 우리교회가 해야할 부분입니다. 지금 우리교회가 부족한 부분이 바로 그런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 부족을 채워야 할 책임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본질적이고 진정한 부족'에 대한 처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보다 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겉으로 보이는 그런 부족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본질적인 부족, 진정한 부족인 악한 영적인 현실들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그 진단에 따른 처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합니까? 박카스 한 병 마시면 됩니까? 주사 한 대 맞으면 낫습니까? 보약을 열심히 먹으면 됩니까? 그렇게 하면 조금은 좋아지겠지요. 그러나 본질적으로 치료되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가 해야할 일은 병원에 가서 정확하게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를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진단의 배경 위에 정확하게 치유를 받아야 회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악한 영적 현실

    그러면 우리 시대 지금의 악한 영적 현실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조금 전에 말씀드린 십 년 전, 이십 년 전의 시대와 다릅니다. 너무나 강퍅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영적으로 무지합니다. 영적 세계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천국과 영생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진리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경고한 것처럼 말세가 되면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자긍하고 부모를 거역한다" 고 하였는데 비로 오늘의 시대가 그런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영적 현실에 대한 진단을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다섯 가지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관심의 세속화 시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작금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항상 이 세상에 있습니다. 내세와 천국과 영생과 부활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잘 살고 잘 먹고 잘 놀고 출세하고 성공할까? 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그렇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비관해서 자살을 하기고 하고, 가족들과 함께 동반해서 죽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잘살고 성공하면 진정으로 행복하겠습니까? 아닙니다. 반드시 그 다음에 몰려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허무주의입니다. 공허합니다. 허무합니다. 잘살지만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진정한 비전이 없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뚜렷한 명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기와 돈과 명예를 얻었지만 삶의 방향이 없으니까 술과 마약에 손을 대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직면한 영적 현실은 도덕적 기준의 붕괴입니다.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없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느끼는 대로 살아라" 하는 암시를 받으며 삽니다. 그래서 오늘의 사람들은 아주 그동안 금기시 되어 왔던 질문을 던지며 행동합니다. "살인하면 안되는거야? 간음하면 안 돼? 왜 남자는 꼭 여자하고만 살아야 해?" 텔레비전에서 성 전환한 사람을 우상화하고 있는 것을 보시지요? 동성애를 용납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억하십시다. 교회가 건강하고 부흥할 때는 반드시 그 시대의 도덕과 양심이 살아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속화되었을 때 사회는 어둡고 부패하였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 우리 시대 영적 현실은 상대주의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합니다. 이 포스트 모더니즘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가지는 질서와 규격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질서가 없으면 그 다음에는 무엇입니까? 혼란과 끝입니다. 질서를 영어로 'Order' 라고 합니다. 질서가 파괴된 것을 'Out of order' 라고 합니다. 고장났다는 말입니다. 혼돈과 파괴를 향하여 치닫고 있는 시대, 즉 멸망을 부추기며 멸망을 향하여 나가는 시대입니다.

    네 번째 이 시대의 특징은 실용주의 시대입니다. 무엇이 진리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내게 편리한가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진리보다는 편리라는 우상을 따르고 추구하고, 편리를 위해서라면 진리를 언제든지 버리거나 상대화 시켜버립니다. 편리가 좋습니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편리를 좇다보면 만족이 없습니다. 끝이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 진정한 기쁨과 자유는 진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우리 시대의 영적 현실은 멀티 미디어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이나 영화나 비디오의 가공할 만한 영향력을 압니다. 그런 멀티 미디어들이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고 몰락의 사람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한약 상을 하는 부모님을 불에 태워 살해한 박한상군을 아실 것입니다. 박 군은 공부는 좀 못했지만 교회를 재미 삼아 열심히 다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그 교회에 중직자였습니다. 박 군은 여름 수련회에 가서 성령을 받고 방언의 은사도 얻기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공부를 못했지만 이제는 열심히 해서 주님의 일꾼이 되려는 결심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박 군이 고3학년이 될 무렵 그의 아버지가 그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강남으로 이사를 하고 그를 현대 고등학교에 전학을 시켰습니다. 그런 후에 박 군에게 말을 합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얼마든지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니 고3년 동안은 절대로 교회에 나가서는 안 된다."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고 기쁨으로 학교생활도 하려고 하던 박 군은 공부하는 것이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교회를 나가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 때문에 말입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공부를 하였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만큼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전문대에 합격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판단하기를 이 아이가 이대로는 자기의 사업을 이어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를 무작정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적응하지 못하고 어학이 뒷받침되지 못한 이 아이가 통제가 안된 미국 땅에서 무엇을 하고 지냈겠습니까? 날마다 비디오를 빌려 봅니다. 가공할 만한 공포영화를 봅니다. 그는 거기서 힌트를 얻어 아버지, 어머니를 살해할 무서운 계획을 세우고 한국에 돌아와 불에 태워 죽여버렸습니다. 우리는 좋든 좋지 않던 이런 가공할 멀티미디어의 영향을 받고 살아갑니다.

    이런 사악하고 강퍅한 악한 영들의 세력을 우리가 어떻게 결박하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나갈 수 있겠습니까? 20년 전, 10년 전의 방식으로는 안됩니다. 분명 지금은 그저 거리거리에 부흥회 포스터 붙이고 잠깐씩 기도로 준비하면 구름 떼처럼 모였던 그 시대가 아닙니다. 그때에 역사 하였던 악한 영과 지금 역사 하는 악한 영에는 현저한 등급의 차이가 있습니다. 훨씬 더 강하고 교활합니다. 그러기에 옛날의 방식, 옛날의 경험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처방-기도와 금식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이런 유'는 옛날의 경험으로는 안됩니다. 나갈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진 힘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주님의 처방을 들으십시오.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왜 주님은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까? 이 말은 우리가 무조건 기도만 하면 된다는 의미일까요? 연쇄 기도를 하고 특별 새벽기도를 하면 다 된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란 내가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주님의 주권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금식은 무엇입니까? 나의 자아를 완전히 죽이고 주님 앞에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왜 귀신을 내어쫓지 못하였습니까? 자기 힘으로, 자기 방식으로, 자기의 경험으로 하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이 악한 영의 세력들은 철저하게 우리의 힘과 지혜와 우리가 경험했던 옛날의 방식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항복해야 합니다. 나를 의지하려는 욕망을 완전히 버리고 주님께서 역사 하시도록 나를 드릴 때 비로소 주님의 능력으로 악한 영들은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악한 영들을 결박하고, 악한 세대를 극복하기에는 나는 너무나 미약하고 연약한 존재라고 하는 철저한 절망적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악한 영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경험과 연륜과 성경 지식이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사회학적인 접근 방법이 이길 수 없습니다. 거대한 광고 시스템이 현대의 악한 영적 현실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처방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우리가 전 인격적으로 항복하면 그 때부터 주님께서 역사 하시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내 자아가 살아 있다면 주님은 침묵하십니다. 나의 자아와 신념과 확신이 다 사라질 때까지 주님은 침묵하고 기다리십니다. 그러다가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주님 앞에 무릎 끓을 때, 주님의 긍휼을 구하고, 자비를 구할 때 그 때 주님은 일하시기 시작하고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너희들의 힘으로, 너희들의 경험으로는 이제 귀신은 안나간다. 오직 나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단다.' 그런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무릎을 꿇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으면, 우리가 주님 앞에 나의 무능함을 고백하면, 그 때부터 성령의 권능이 임합니다. 성령의 권능은 무한한 능력입니다. 이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권능은 사단의 어떤 세력도 능히 이깁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원천도 어디에 있었습니까? 성령의 권능에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2:28절에 주님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내어쫓으면 너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느니라." 사도행전 10 :38절에 누가는 예수님의 능력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며 착한 일을 하시고 나귀에게 눌린 자들을 고쳐주셨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사역의 원천, 능력의 원천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었다면 오늘 우리에게 얼마나 성령의 권능과 기름부음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오늘의 영적 현실을 타파할 수 없고, 극복할 수 없다고 하는 절망적 인식 속에 주님 앞에 완전히 항복하고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금식하면 성령의 권능이 여러분에게, 우리교회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십시오. 성령의 권능이 없는 우리의 어떤 시도와 노력과 활동도 한 사람의 영혼을 움직일 수 없고 강퍅한 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없음을 인정하십시오. 이제 우리는 무릎을 꿇어야 할 때입니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간절한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여러분에게 필요한 때입니다. 기도와 금식을 통해서 성령의 권능이 여러분에게 부어주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부어주심을 통해서 이 강퍅한 시대를 구하고 악한 영들을 결박하여 사람을 살리고 병든 자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진정한 부흥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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