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레스 웃사 - 곽희주 목사 2002-08-13 17:08:51 read : 3909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사무엘 하 6:1~15 // 2002. 8. 4.
월드컵이 끝나고 그 열기가 한달 하고도 조금 지났습니다. 월드컵 때 그 기쁨을 맛본 청년들이 다시 한번 그 기쁨을 맛보고자 애를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울 대학로나 청년들이 모이는 곳이면 이벤트를 만들거나 프로그램을 만들어 청년들을 유치시키려고 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나요? 삶 속에 기쁨이 있다고 하는 것은 신선한 에너지가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기쁨을 신앙적인 안목으로 나눌 때 둘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즉 내가 원하던 것을 이루었을 때 갖게 되는 성취의 기쁨, 인정받았을 때의 그 기쁨, 보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 등 이 모든 것을 두고 상대적 기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절대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갖게 되는 하늘의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지극히도 기뻐하는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체통도 체면도 벗어 던지고 기쁨에 못 이겨 덩실덩실 춤을 추는 다윗을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 속에서 너무너무 좋아서 기뻐해 본적이 있습니까?
너무 좋아서 춤춰 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다윗의 기쁨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엘리제사장때 블레셋과 싸우다가 그만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겨 버리고 맙니다. 블레셋 지경에서 70년이나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순간인데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 법궤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법궤는 길이가 120㎝, 높이와 넓이가 각각 60㎝ 되는 직사각형의 나무상자에 금으로 입힌 것입니다. 양 가장자리에는 천사를 만들어 서로 날개가 맞닿게 했습니다. 이것을 두고 속죄소라하고 시은소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첫째 십계명이 새겨진 돌 판이 들어 있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의 계약입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저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계약이 언약(言約)인 것입니다. 여기서 '언' 자는 언(言)으로 씁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백성들은 기도로, 찬양으로, 감사로 하나님께로 나가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다가오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즉 돌 비의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1700년 경 영국의 유명한 작곡가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56세사 될 때까지 인정도 못 받고 있었기에 삶을 포기하였었습니다. 마침 그의 친구가 와서 위로하며 성경을 주고 갔는데 그것을 읽으면서 놀라운 것을 경험합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24일 동안 미친 듯이 써내려 갔던 것이 헨델의 메시야 대곡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감동시켜주셨고 감동 받은 그것으로 또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안내하는 것입니다. 감동과 기쁨을 찾아다니는 이 시대에서 여러분은 어떠한 곳에서 기쁨을 누리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감동을 누려보시지 않겠습니까?
둘째 만나 담긴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만나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가는데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이 아침 일찍 나가보니 깟씨 같기도 하고 꿀처럼 단 것이 있었는데 모양이 이상합니다. 그래서 서로 보며 '이것이 무엇이냐?' 물었는데 만나의 뜻이 '이것이 무엇이냐?'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마시게 해 주신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너희는 나만 바라보아라!' 그러면 모든 것을 채워 주겠다 하신 것이 만나의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의 필요를 왜 못채워 주시겠습니까?
셋째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담겨 있었습니다.
민수기 16장에 보면 고라와 그 일당들이 모세와 아론을 거역하고 대적하였습니다. 그래서 열두지파의 지도자들의 지팡이를 하나씩 하나님의 법궤 앞에 두면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살구 열매 맺는 자의 지팡이 주인이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거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 아론의 지팡이에서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신적 권위를 택한 백성에게 위임하는 것'이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고 좀더 가까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세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말씀의 하나님, 광야에서 나를 바라보라 하신 하나님,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법궤는 그러한 하나님의 특성을 잘 알고 모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법궤를 옮기는데 묘한 사건이 하나 일어납니다. 아효는 수레 앞에서 웃사는 뒤에서 가고 있습니다. 나곤의 타작마당에 와서 소가 풀쩍 뛰니 웃사가 손을 내밀어 잡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잘못이라 하여 그 자리에서 쳐서 죽였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사랑의 하나님이시요, 용서와 자비의 하나님이신데 말입니다. 문제는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법궤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①손으로 만져서는 안되고(민4:15) ②들여다봐서도 안되고(민4:20) ③운반할 때는 싸서, 채를 메고(민4:15, 출25:14) 운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웃사는 새 수레를 만들었고, 손으로 만졌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주의해야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자기 편의에 따라 행동하고, 사람들에게 충고하고, 으스대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단정지어 말하고, 행동하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좌지우지하려고 하는 자리에까지 가게되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이미 웃사의 그 심령은 서서히 죽어 갔던 것입니다.
반면 다윗은 어땠습니까?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의 어린양이었고, 하나님은 목자요, 방패와 승리의 뿔이었습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을 관리하거나 하나님을 좌지우지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실 은혜를 생각하니 기뻤고, 단지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의 하나님께서 오늘 여기 계시니 기쁨과 감격의 마음을 한번 가져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계시니 너무 기뻐요' 하고 말입니다.
그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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