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4월 23일 (수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    빗속에서도 울려 퍼진 부활의 기쁨 / 지구촌교회 제4대 담임 후보에 한인 목회자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 '무장공비→ 목사' 김신조 별세 / 이재명 지지율 1위               헌재 전원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 /교회 건물 명의만 소유했던 목사…법원               산불 피해 한국교회 지원 총력 / 고령 교인 10명 중 6명               기독교인 수, 감소 멈추고 안정세 /일제 침략으로 예수 믿었으니 '수고했다'고 말해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이마에 십자가 인터뷰 출연               사순절에 대한 흥미로운 5가지 사실/ 트럼프 2기 첫 내각 회의, 목사·장관인 터너의 기도로 시작               국회 앞 25만 인파 “3.1정신으로 체제 전쟁 승리” /인사만 잘 해도 좋은 일이 생깁니다               수십만 시민들 모여 “탄핵 반대” “자유 수호/ 이만희 교주로부터 수년간 성폭행 피해               교회가 농촌 살릴 수 있다 /목회자 10명 중 6명 "노후준비 못하고 있다              

  홈     강대식     강문호     계강현     고신일     곽선희     곽창대     권오선     권오진     김경진     김광일     김기석     김도완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상수     김성광     김성수     김승규     김양인     김영훈     김용혁     김원효     김은호     김의식     김재곤     김정호     김진수     김진흥     김창규     김창진     김형익     김홍도     남수연     노창영     노환영     류영모     명설교(A)     명설교(B)     명설교(C)     문기태     박병은     박봉수     박신진     박요한     박일우     박진호     박한응     박형근     배영진     배의신     배진기     배혁     서명성     서진규     손재호     송기성     스데반황     신만교     신현식     안두익     안효관     양인국     양향모     염두철     오주철     오창우     옥한흠     원영대     유기성     유민용     유은호     유장춘     유평교회     이강웅     이건기     이국진     이규현     이기복     이대성     이동원     이동희     이백민     이삼규     이상호     이성우     이성희     이양덕     이영길     이영무     이우수     이윤재     이은규     이익환     이일기     이재철.박영선     이재훈     이정원     이정익     이종철     이준원     이지원     이하준     이한배     이호준     임현수     장부완     전승문     정근두     정오영     정준모     조봉희     조상호     조성노     조영식     조용기     조학환     조향록     주준태     지성래     지용수     차용철     채수일     최동규     최인근     피영민     피종진     하용조     한경직     허창수     홍문수     홍정길.임영수     홍종일     외국목사님     .     괄사(왕)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주례사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구약사건     신약사건     구약삽화     신약삽화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김기홍 설교학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설교(내부에 많이있음)
  웃음치유와 영업
  기타

설교내용검색

성경 찾기

네이버.다음.구글


검색



Daum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김명혁목사
  • 김형준목사
  • 양인순목사
  • 이동원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Home

    말씀의 위대성
    2002-10-16 11:35:26   read : 4552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편 19:1-14 // 2002년 10월 6일

    오늘을 우리 교회에서는 <기독교교육 진흥주일>로 지킵니다. 원래 우리 감리교회에서 제정한 기독교교육진흥주일은 지난 9월 15일이었습니다만, 기독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기에 오늘 지키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올해로 기독교 진흥주일 69년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선, 기독교교육이 무엇인지를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교육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닮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되, 사람과 세상을 구원하며 변화시키는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교육입니다." 이 세상의 교육은 보다 많은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여 인류의 복지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교육은 그 중심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렇게 볼 때 기독교교육의 대상을 어린 학생들에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나이가 30-40만 되면, 아예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자부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교만한 것이고, 그런 사람은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훌륭한 성도라고 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려고 하고, 또 말씀을 깊이 깨닫기 위해 부단히 말씀을 묵상하고, 배우는 사람이 훌륭한 성도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말씀을 배우는 일은 평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모자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3에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배우는 일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체험의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를 나눔으로써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학문을 연구하는데도 평생이 걸려도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하던 것을 제자가 받아서 하고, 또 그 제자가 연구를 이어 갑니다. 그래서 학파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분석심리학만 해도 그 창시자 칼 융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에는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 그리고 그의 제자들인 고틸프 이즐러, 한스우엘리 에터, 테오 아프트, 레기네 슈바이처, 에바 베르텐슐라그, 브리기트 야콥스 등으로 이어지고, 그리고 제가 그들에게서 배우고 있고, 또 저에게서 배우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상적으로, 저는 융의 계열에서 4대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 학문도 이렇게 평생을 해도 모자라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어찌 쉽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디모데전서 4:13에 보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표준 새번역으로 보면, "내가 갈 때까지 성경을 회중 앞에서 낭독하는 일과 권면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십시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참된 아들로 생각하는,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은 시편 19편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성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위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왜 위대한 것일까요?



    1. 우리 <영혼을 소성>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7절 앞부분에 보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하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표준 새번역으로 보면, "주의 교훈은 완전하여서 사람에게 생기를 북돋우어주고"라고 되어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사람들에게 진정한 만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예전보다 훨씬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뻥∼ 뚫린 것 같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 성도들이 좋아하는 요한삼서 1:2에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凡事)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을 잘 보십시오. 여기서 제일 먼저 말씀한 것이 바로 "영혼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영혼(靈魂)의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영혼이 잘 되어야만 이러저러한 일(凡事)이 잘 되고, 또 강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상적인 것, 건강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우리 영혼이 만족할 수 있는 삶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하나님을 앙망(仰望)하는 것, 다시 말해,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영혼이 생기를 찾을 수 있는 길입니다. 이것을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는 피곤한 자에게 능력(能力)을 주시며 무능(無能)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나니... 오직 여호와를 앙망(仰望)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困憊)치 아니하리로다"(사 40:28-31).



    여기서 독수리의 상징에 대해 잠깐 살펴봅시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잠 30:19)는 힘과 인내의 상징입니다.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는 새끼를 날개에 태우고 목적지에 데려다 주는 독수리의 배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마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독수리 같이 그 날개를 펴사 자기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신 32:11). 시편 기자는 신앙이 돈독한 사람에 대해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는도다"(시 103:5)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시간 영혼이 지쳐서 어쩔 줄 몰라하는 현대인들, 바로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부름 받아 그리스도의 제자 된 자여! 네가 아직 낡은 옷을 입고 있으므로, 거룩한 샘,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라. 그리고 하늘 높이,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날아 오르라!"



    2. 하나님의 말씀은 어리석은 자에게 <지혜>를 주기 때문입니다.

    7절 뒷부분에 보면,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어서 어리석은 자를 깨우쳐준다는 뜻입니다. 지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의 지혜가 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지혜 또는 성령의 지혜가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는 영적인 지혜(성령의 지혜)에 비하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제아무리 인간이 영리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신비를 이해하는 일에는 당나귀가 음악의 화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존 칼빈이 말했듯이,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적인 지혜를 취할 수 있는 길이 있고, 또 하나는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의 삶을 사는 것이 있습니다. 억만장자인 빌 게이츠 보다도 영적인 지혜의 기준으로 볼 때는 가난한 자들의 종으로 살았던 마더 테레사 수녀가 이 세상의 모든 빌 게이츠를 합친 것 보다 지혜롭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일반적인 개념을 초월합니다. 세상에서는 공부 많이 하고, 지식이 많은 자를 똑똑하다고 인정하고 대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에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메고 가신 멍에를 메고,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 더욱 지혜로운 것이고, 또 이런 것을 우리 하나님은 인정하시는 복되다 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40에 보면,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52에 보면,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갈 때,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이기도 합니다. 고린도전서 12:8에는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이라고 했는데, 참다운 지혜나 지식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매일 마다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고, 주님을 닮아, 주님이 가신 섬김의 길을 간다면, 우리도 지혜로운 사람이요, 날마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지혜는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지식이 많다고, 교양이 있다고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런 것과는 하나도 관계가 없습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말씀을 사모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지혜를 받아, 복된 삶을 살 수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3. 말씀은 우리 마음에 <기쁨>을 안겨주고, 우리 <눈을 밝혀> 주기 때문입니다.

    8절 앞 부분에 보면, "여호와의 교훈을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기쁨보다는 고통과 아픔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즐겁고 기쁘게 살기보다는, 참으로 힘들고 어렵게 살게 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삶의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음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구원의 기쁜 소식(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이나 조건에 놓인다 하더라도, "생을 긍정"(yes to life)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자세야말로 믿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편 4:7에 보면,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시편 30:5에는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특히 저는 고린도후서 7장 4절을 읽는 가운데 힘이 되는 말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회개를 기뻐하면서 한 말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큰 확신을 두고 있으며, 여러분에게 큰 자랑을 느낍니다. 나는 온갖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특히, 온갖 환난가운데서도 위로와 기쁨이 넘친다는 바울의 고백이 마음에 꼭 듭니다.



    바울 보다 환난을 많이 당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는 수많은 환난·고통을 당하면서도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산 분입니다. 그것은 그가 온전히 말씀가운데 살았기 때문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있노라고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보면 신앙이 하나도 없는 사람같이 행동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환난을 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어려운 일이 있어도 불평하고, 불만을 늘어놓고,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런 걸 생각하며, 마더 데레사의 말을 듣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당신의 마음 속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기쁨을 잊지 않도록 당신의 가슴을 슬픔으로 가득 채우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우리 수중에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가져야 하며, 바로 이 순간에 하나님과 함께 행복을 같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행복이란 그가 사랑하신 대로 사랑하는 것이며, 그가 도움을 주는 대로 도움을 주는 것이며, 그가 주신대로 주는 것이며, 그가 봉사하신 대로 봉사하는 것이며, 그가 구원하신 대로 구원하는 것이며, 그와 하루 24시간 내내 함께 하는 것이며, 비참한 모습을 한 그를 치료하는 것입니다.



    본문 8절 뒷부분을 보면, "하나님의 계명(말씀)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5:8에서 "마음이 청결(淸潔)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의 청결(purity of heart)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役事)를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니까 눈에 자꾸 비늘 같은 게 끼는 것입니다. 사실, 눈에 낀 모든 비늘이 다 떨어져야 새로운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 바울이 되기 전,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러가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눈이 멀었다가 아나니아에게 안수를 받고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 후로부터 그는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교만한 마음과 세상에 속한 욕심과 정욕적인 생각이 다 없어지고, 새로운 존재가 되어,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귀한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눈에 비늘이 잔뜩 끼어서 볼 것을 제대로 못 보고, 안 보아도 될 것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서 쳐서 복종시켜 주시기를 간구하십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27절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자꾸 생각나서 늘 요즘 계속 되 뇌어봅니다. 아직도 나의 못난 자아(自我)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걸 보면서, 이것이 완전히 없어져야만 되겠다는 생각에서 "주여, 나를 쳐서 복종시켜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곤 합니다.



    기독교교육 진흥주일은 일년에 한번의 행사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기독교 교육을 진흥하는 것은 교회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는 일입니다. 성도는 어떤 연령층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성을 깨닫고 늘 말씀을 사모하는 가운데,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役事)를 경험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영혼이 소성 함을 입고, 지혜를 얻으며, 늘 기쁘게 주신 사명을 다하며, 청결한 마음을 갖게되고, 그 눈이 떠져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존귀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금(순금) 보다 더 사모하고, 송이 꿀을 먹는 것보다 더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道)을 사모하는 게 이 정도가 될 수 있도록 사십시다.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고난중에 누리는 기쁨과 평안
    치유는 어떻게 가능한가?
    존귀한 사람(4):
    존귀한 사람(3)
    존귀한 사람(2)
    존귀한 사람(1)
    말씀의 위대성
    하나님께로 나아가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아름답고 즐거운 일
    새벽을 깨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평안을 얻는 길(2)
    평안을 얻는 길
    야곱 같은 사람들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 김효자 /사업자번호831-29-0156/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 /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4394-4414 /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