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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의 영광과 한계
    2014-06-04 10:52:00   read : 3516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설교의 영광과 한계 /살전2:13, 딤후4:1-2, 고전2:1-5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1-5)

    오늘 말씀의 제목인 ‘설교의 영광과 한계’는 여느 때와는 좀 다른 주제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설교’는 설교자가 성경 말씀을 해석하여 설교문을 작성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 보면 설교에는 우리가 평소에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흔히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고 설교는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이를 보면 설교 사역이 얼마나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것인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설교 사역은 설교를 준비하여 선포하는 설교자 뿐 아니라 설교 말씀을 듣고 이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회중이 모두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교회의 모든 사역 중 가장 중요하고 광범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국 국왕 조지 5세가 의회의 개회에 맞춰 라디오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연설은 신대륙에까지 중계되도록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막 연설이 시작되는데 갑자기 뉴욕 지국에 설치되어 있던 케이블이 끊어져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불통된 케이블을 원상 복구하는 데는 최소 20분 이상은 소요되는데 그러면 국왕의 연설은 다 허공으로 날아갈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고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해롤드 비비안이라는 젊은 기술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 순간에 다른 선택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손을 뻗쳐 끊어진 케이블의 양끝을 움켜쥐었습니다.

    250볼트가 넘는 전류가 그의 몸을 꿰뚫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격렬한 고통이 엄습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왕의 음성을 듣게 하기 위해 그는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케이블을 붙들었던 것입니다.


    설교가 무엇입니까? 설교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그 긴급한 순간에 자신의 몸을 250볼트 전류의 통로로 삼기 원했던 청년의 고투는, 바로 강단 위에서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설교자의 몸부림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설교의 본질을 좀더 깊이 살펴보며, 우리의 예배 자세를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기 바랍니다.

    설교에 대한 성경적인 정의는 무엇입니까?
    설교와 하나님의 역사는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설교자와 청중에게 요구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1. 설교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말씀임 (= 하나님의 창조, 섭리, 구속, 사랑의 말씀)


    살전 2:13=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본절에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바울의 설교를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칭찬받는 이유였습니다.

    설교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설교에 대한 변할 수 없는 가장 본질적이고 전통적인 정의입니다.


    종교개혁가인 존 칼빈(John Calvin)은 “기록된 말씀(written word)으로서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주의 종들을 통해서 선포되는 말씀(spoken word)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들의 말과 차이가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대사로서의 설교자들이 전하는 설교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강단에서 선포된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성경에 철저히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설교자에 의해 선포되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정통주의 신학자인 칼 바르트(Karl Barth)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설교’를 주장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설교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설교는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 사명에 순종하는 교회의 부름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적절한 인간의 언어로 성경 본문을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칼빈이나 칼 바르트의 견해를 종합하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그 말씀을 해석하여 전달하는 설교 역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종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요, 듣는 사람들 역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설교는 영광스러운 삼위일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설교는 성부 하나님의 말씀이요 성자 예수님의 말씀이며 성령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설교의 근거가 되는 성경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이 없다면 성경이 될 수 없듯이 창조주 하나님이 없는 설교는 설교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 설교는 먼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선포하고 그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의 삶을 주관, 섭리하시는 분임을 선포해야 합니다. 설교는 성부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말씀입니다.

    설교는 죄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과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입니다. 설교는 이 구속의 역사를 선포하는 것이며,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는 설교는 강요와 율법이 될 뿐입니다. 설교는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청중들의 가슴에 뜨겁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구속과 사랑을 청중들의 가슴에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교는 인간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설교 사역에 있어서 성령님의 역사는 필수적입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는 말은 한낱 인간의 언어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입을 통해서 나가는 말이 성령님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설교자는 설교가 성령님의 역사임을 인식하고 먼저 자신이 성령님을 의지해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이 전하는 설교의 메시지를 통해서 성령님의 역사를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설교는 교회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설교는 예배 자리에 참여한 청중들 개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교회들에게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와 고린도교회, 갈라디아교회, 빌립보교회 등에 말씀을 주시면서 주님은 그들을 향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설교는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 또한 교회의 담을 넘어 세상을 향하여 선포되어야 합니다.

    오늘 기독교 설교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대부분의 설교가 교회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으며 세상에 대한 영향력 역시 약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는 무엇보다 먼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그 중심에 위치하는 삼위일체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설교를 통해서 성부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선포하며,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속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오늘도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임재와 역동성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이런 영광스런 메시지를 설교자는 교회의 신자들과 또 세상을 향하여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교회 안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교회 밖 세상과 온 우주 만물의 주님이 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청중은 이런 메시지가 선포되는 현장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주님의 영광을 목도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2. 설교는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행위임 (= 하나님의 계시, 구원, 교제의 방편)


    딤후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1) 설교는 하나님의 계시(啓示)의 방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은 지으신 만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위엄을 드러내시기도 하지만, 그분의 계시 사역은 말씀 선포라는 특별한 방편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은 말씀 선포를 자신의 제일 되는 사역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막 1:14).

    신약시대에 이르면 하나님은 사도들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땅 위에 교회를 세우신 후에도 하나님은 말씀 선포를 통해 자신의 구원 사역을 증거하기 원하셨습니다. 각 지교회의 설교자들은 이 일을 위해 도구로 세움받은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교회를 목회하던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말씀이라는 방편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일을 위해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인간이지만 그 이면에서 말씀하고 계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진정한 의미에서 유일하신 설교자(the only true Preacher)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는 그 교회를 향하신 ‘설교자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그런데 옛적 선지자나 사도들의 선포는 하나님의 직접적이고 초월적인 계시를 자료로 한 선포지만, 오늘날의 설교자의 선포는 기록된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의존적 선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설교자의 선포가 하나님의 계시일 수 있는 것은 설교 중에 역사하는 성령님의 사역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고전 2:4-5=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동일한 성령님이 설교자의 입술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하나님에 대하여(about God)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설교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편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소생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역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며, 그 능력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 옵니다.

    성경은 구원이 말씀을 통해 옴을 반복적으로 증거합니다. 요한복음 6:63을 보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8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고, 나아가 21절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습니다.


    오늘날의 목회자들에게 주어진 책무가 바로 이것입니다. 제임스 단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가 선포하는 말씀이야말로 생산적이고 역동적이며, 창조적이고 구원을 주며, 죄를 소멸시키고 죽음을 물리치며, 치유하고 생명을 준다. 이것이 강단에서 선포되어야 할 말씀이며, 사역자들이 선포하도록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은 말씀이다.”

    어떤 설교학자(Bill Bennett)는 자신의 책 이름을 “죽은 자를 일으키는 30분”(Thirty Minutes to Raise the Dead)이라 정했습니다. 설교는 실로 죽은 자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편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방편인 설교를 위해 부름 받은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고전 4:1). 그러므로 설교자는 구원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고후 6:1).


    3) 설교는 하나님의 교제의 방편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지으신 인생들과 교제하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덴의 첫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기뻐하셨고,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세상과의 교제는 단절되었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고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셔서 계속적인 교제를 갖기 원하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땅 위에 몸 된 교회를 세우시고 두 세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거룩한 영으로 임재하셔서 그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실 때 말씀이라는 방편을 사용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시며, 말씀을 통해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은혜의 손길을 보여주십니다. 말씀 안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해져서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고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랭돈 길키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읽혀지고 선포되고 응답될 때 비로소 그의 공동체인 교회와 자신을 연결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하나님과의 생명적인 만남의 사건이요 역동적인 교제의 순간입니다. 설교를 단순히 예배 중의 한 순서나 설교자가 자신의 사고를 펼쳐보이는 시간, 혹은 성경 해석이나 신학 강의 시간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설교를 통해 하나님은 회중을 인격적으로 친밀하게 대면해주시며, 회중을 신앙공동체로 굳건하게 세워주십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교제는 과거의 화석(化石)과 같이 고착된 사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항상 현재적이고 생동적이고 계속적이며 새로운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위기와 시련과 기회로 엮어져 있습니다. 하루하루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도 같은 세상을 순례자로 나아갈 때 목자가 주시는 사랑의 음성은 생명줄과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마다 강단에서 울려퍼지는 설교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시고, 생명을 살리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십니다. 설교가 주는 은혜를 최고 수준으로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설교 행위는 설교자와 회중에 의해 이루어짐 (= 설교의 이중성)


    설교가 하나님의 계시의 방편이요 구원의 방편이요 교제의 방편이라는 말은 한마디로 말하면 설교는 하나님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인간 설교자는 하나의 작은 도구일 뿐, 그 이면에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설교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행위라면 우리는 결단코 설교를 평(評)하거나 서로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경청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설교라면 그 말씀은 우리같은 피조물에게 의존할 수 없으며 우리가 오히려 그 말씀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영광과 위엄 가운데 입을 여실 때 그 앞에 선 인생들이 취할 바른 태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는 마리아의 고백뿐입니다(눅 1:38).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한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인 행위인 것은 아닙니다. 거룩하신 창조주가 입을 열어 선포하시는 말씀을 피조물이 듣는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창조적이고 적극적이며 생동적인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축(地軸)을 가르며 임할 때 그것을 경청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에게는 가장 놀랍고 영광스러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놀랍게도 인간 도구를 통해 전달됩니다. 하나님은 친히 창공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지 않으시며, 그렇다고 천사들을 통해서 비밀을 알려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옛날 선지자와 사도들로부터 오늘날의 설교자들에게 이르기까지 ‘말씀’은 언제나 인생의 입술을 통해 선포되어 왔습니다.

    그럴 때 말씀의 수종자들은 받은 말씀을 앵무새처럼 기계적으로 되뇌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은 그들의 사고를 거치고, 그들의 인격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도구로 하여 선포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설교는 설교자의 인격을 통한 진리의 전달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우리의 눈높이에 맞추어 연약한 인간을 통해 말씀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설교자보다 더 나은 음성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연약성을 통해 우리를 만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요, 불완전한 땅의 언어로 하늘의 진리를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는 왕의 소식을 전달하는 전령으로 부름 받은 것이지 그 자신이 왕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설교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왕의 말씀을 듣기 위해 기다리는 믿음이요 겸손입니다.

    설교자는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씨름해야 하며, 자신 속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퍼지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오직 받은 말씀을 전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설교자는 성경만을 전하는 본문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서 참된 설교는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대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기에 성령께서 조명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전적으로 그분을 의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다시 들어보십시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설교의 본질적인 성격을 살펴보았습니다. 설교는 참으로 놀랍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그 일에 부름받은 설교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일에 수종들고 있는 것입니다.

    청교도 경건주의자인 카턴 마터는 사역자들을 위해 쓴 그의 책의 부제를 “트럼펫을 울리기 위해 준비하는 천사들”이라고 달았습니다.

    20세기의 대표적인 강해설교자 로이드 존스는 그의 책 “목사와 설교”의 첫 문장을 “설교 사역은 인생이 받을 수 있는 소명 중에서 가장 고상하고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소명이다” 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설교가 유한한 존재들에게 영원을 안겨주며 땅 위의 인생들에게 하늘을 가져다주는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사역이라면 우리는 청중들을 향한 잭 하일즈 목사님의 말에 아멘으로 화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강단에 가까이 갈 때에는 천사들도 날지 못하게 하고, 어른들을 경청케 하며, 아이들은 귀를 기울이게 하고, 젊은이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여야 합니다.

    설교자가 강단에 설 때에는 천국이 응답하고 지옥이 떨도록 전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거룩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럴 때 영원한 모든 것은 떨며 사탄과 그의 사자들은 두려움으로 흠뻑 젖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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