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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피터슨이 살아온 참된 교회 참된 영성
    2015-06-19 16:22:00   read : 2701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한줄 독후감/ 결국 유진 피터슨은 ‘큰, 대형 목회’를 한 것은 아니지만,
    ‘성경적 목회’를 하려고 몸부림쳤고, 실제로 그런 귀한 모델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니 그 이전에, 한 사람의 진정한 크리스천의 삶의 모범을 살려고 애썼음을 느끼게 됩니다. / 편.

    ※제가 얼마 전에 <유진 피터슨>이란 자서전 적인 책을, 관심을 갖고서 대강 읽어보았는데,
    너무나 평범하고, 보통의 일상적인 내용이라서.. 약간 지루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너무 세상 성공주의적 관점에 찌들려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역도 크고, 번쩍번쩍하고, 으리으리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유진 피터슨은 그 '평범한/일상적'인 삶을 '진정성 있게 사는 것'이 참된 기독교임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편.


    ◑교회의 본질을 물고 놓지 않는 목회

    그에게서 배우는 첫 번째 교훈은 그가 교회의 본질을 놓지 않았고,
    그 본질을 붙잡기 위한 고민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본질을 드러내어 주는 예배에 올인했다고 했다.
    또 그래서 그는 한 교회를 개척하여, 그 교회를 29년간 섬겼다고 했다.

    자신의 책 제목처럼 ‘긴 순종’(Long Obedience)의 길을 걸었다.
    그 교회가 늘 순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교회의 목회가 재미있어서가 아니었다.

    6년 동안의 긴 목회 침체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 와중에 다른 교회에서 청빙이 있었지만,
    사역지를 옮기고 싶은 자신의 마음 뒤편에 있는 성공을 향한 속물근성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물리쳤다고 했다.

    대신에 그는 그 위기의 시간들을 교회의 본질을 발견하기 위한 광야의 묵상으로 보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나는 그가 목회자로서 이처럼 소명에 충실했던 것에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하고 싶다.
    곁눈질하지 않고 그 소명에 합당한 선택을 29년간 해 온 그에게 존경을 보낸다.
    이 부분은 우리 한국 교회가 정말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믿는다.

    ▲그가 목회를 시작하던 때는 미국 교회의 침체기였다.
    그의 표현대로 하면 “신의 장례식을 치르는 시대”였다.
    과학적 유물론과 합리주의에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에.
    기독교가 몰리고 몰려 신 죽음의 신학에까지 가게 되었고,
    교회는 떠나는 성도들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때,

    많은 교회들이 상업주의적 교회성장을 시도하게 된 때였다고 했다.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실시되고,
    예배는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교회생활은 성도들의 삶을 개선하고 평안을 주는 도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유진 피터슨의 마음 한 쪽에서는
    이러한 식의 교회 부흥이 교회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는 강한 반발심이 생겨났다.

    그래서 그는 그 모든 것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는 교회에서 아무 프로그램을 실시하지 않았다.
    교회에는 예배만이 있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는 본질에 충실한 목회를 하기 원했다.
    그가 목회한 메릴랜드 주와 한국은 상황도 다르고, 회중도 다르고 많은 것이 다르지만,
    교회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던 그의 고집은
    목회자의 생활이라는 현실과 교회의 양적 성장과 성공에 매어
    그것을 놓치고 있는 우리 목사들에게 분명 쓴 약이 될 것이다.

    그는 소명에 충실했고 본질에 충실하려고 몸부림쳤던 30년 목회를
    나에게 이렇게 요약해 들려주었다.
    “목회자로서 어려움이 있었지요. 30년간 목회지에 머무르기가 쉽진 않았어요.
    더 쉬운 일들을 하고 싶은 유혹과 기회들이 있었어요.
    그러나 끝까지 머물렀던 것이 기쁩니다.”

    ▲그는 심지어 설교와 교육과 행정이 목회자의 본래 사명이 아니라고,
    자기 책에 쓴 적이 있다.
    거기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그것은 ‘삼각형 만들기’(Working the Angles)에 나온 것입니다.
    목회자가 하는 일 중에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설교와 교육과 행정입니다.
    이것들이 목회라고 하는 삼각형의 세 변을 이루어 보이는 일들입니다.
    이것들은 중요한 과제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목회자들이 영성이 없이도 이 일들을 행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위대한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가르침도 행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제 책에서 다룬 것은 이러한 대중적인 사역을 받쳐주고 삼각형이
    삼각형 되게 해 주는 세 각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각은 기도와 말씀읽기와 영적지도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주로 대중적인 사역에 사로잡혀서
    하나님과, 계시인 말씀과 영혼에 대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삶의 이야기’로 채우는 목회

    또 한 가지 그에게서 배울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가 목회를 삶의 이야기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야기로 보았다는 것은 철저히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서
    성서의 메시지를 보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정육점 집의 아들로서 삶의 현장에서 일해 온 블루칼라 노동자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는 정육점에서 아버지를 찾아온 사람들을 대하며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을 가슴에 담았다.

    또한 그것은 그의 ‘어머니가 탁월한 이야기꾼’이었다는 데서도 출발한다.
    그의 어머니가 성경의 이야기를 풀어갈 때
    거친 벌목공(회중)들이 웃고 울며,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었으며,
    결국 회심하기에 이르는 것을.. 어린 그는 지켜보았으며

    그것이 그에게 이야기 목회, 이야기 설교의 원형을 이루었을 것이다.
    이것은 내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직도 새들백교회의 101, 201, 301 전략이나,
    전도폭발 프로그램에 익숙한 우리 모두에게 이것은 낯설다.

    그는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에 대한 이야기들을
    교회운영의 지침서나 안내서로 보아서는 안 되고,
    “우리의 상상력 안에 완전히 흡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상상력이란
    성도들의 삶의 자리에서, 그 원형적 이야기를 바라보는 것을 말하는 듯 했다.

    그리하여 유진 피터슨 목회의 중심에는 교제가 있었다.
    예배 후에 각자 싸온 음식들을 나눠 먹으며,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성도들을 변화의 대상으로 보는, 프로젝트의 일꾼으로 보는, 재정적인 부담자로 보는,
    다시 말해서 성도들을 회중으로, 집단으로 보는 관점들을 거절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성도의 삶의 이야기를 경청했던 것이다.

    주 중에도 언약그룹이라고 불리는, 가정에서의 소그룹 모임을 가졌다.
    그 모임에서 서로 자신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함께 기도했다.

    그리고 목사로서 그는
    그 이야기들을 성서의 원형적 이야기로 접목시키고자 했다.
    인격주의라 할까, 존재론적이라 할까, 개인에 집중하는 그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냄새를 맡게 된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 목회’를 재확인하게 된 계기로써
    그는 ‘목회상담 훈련의 기회’를 들었다.

    그는 전문 상담가에게서 상담의 기법을 배우고 실습하면서
    성도들의 삶의 문제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또 그들을 도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그는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러한 상담적 관점이, 성도를 문제로 인식한다는 사실이었다.

    성도들을 ‘해결해야할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본질적인 목회적 관점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상담 전문가의 영역이다.
    목회자는 성도를 ‘하나님의 자녀된 영혼’으로 보아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그는 자서전에 이것을 기록한다.
    ‘내 회중을 이루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고,
    그들이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회중은 자신의 집단적 문제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다.
    회중은, 자신들이 인식하건 못하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
    살아있는 영혼이라는 사실에 의해 규정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유진 피터슨』 218쪽)

    ▲그러나 사람에게 주목하는 이러한 이야기적 관점에 있어서, 그도 완전하지는 못했다.
    그 자신이 말수가 적으신 아버지와 교제가 부족했고, 일을 통해서 아버지와 맺어진 탓이었을까?
    사실 대화 가운데 그는 내게 아버지에 대한 섭섭했던 일화를 나누기도 했었다.

    그는 몬태나주의 단축 마라톤 챔피언을 먹었을 정도로 잘 달렸지만,
    아버지는 그의 경기에 단 한 번도 와보시지 않았다고 했다.
    자기가 달리며 이기는 자랑스런 모습을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한 사람이, 아버지였는데도 말이다.

    피터슨이 ‘일 중심의 사람’이었던 것에는, 혹 어머니의 완벽주의가 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그에게 완전함을 요구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크게는 그가 미국의 공교육과 사회에 만연한 경쟁주의 속에서 자란 탓에
    일중심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유진 피터슨은 (초기에) 그 자신이
    일 중심, 프로젝트 중심, 승부중심의 사람임을 목회 현장에서 깨닫게 된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교회 건축이었다.
    그는 교회건축이 회중들의 삶과 무관한 것이 되기를 원치 않았다.
    회중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녹아 있는 건축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 과정을 당연히 회중들과 함께 민주적으로 진행했다.
    그래서 성도들은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가졌으며,
    어떤 성도는 십자가를, 어떤 성도는 성찬대를 손으로 만들어 바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신바람 나는 건축이 끝났을 때
    교회는 이해할 수 없는 침체를 겪게 되었다.

    그 침체 속에서 유진 피터슨이 발견한 것은
    자신이 뿌리 깊이에서.. 자신이 프로젝트 중심의, 일 중심의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교회의 일들을 그렇게 잘 감당했고, 성도들도 그랬으며,
    그 큰 일이 끝났을 때,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그처럼 흥분되는 일이 없어진 것이다.

    ▲그의 ‘이야기 목회’는 생각보다 뿌리 깊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광야”라고 불렀던 6년간의 고통스러운 목회 침체기를 통과하면서
    “경쟁하는 목사에서 명상하는 목사”로 변신하게 된다.

    우리 같으면 이러한 침체 속에서 당장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를 도입하지 않았을까?
    어느 목사님 말대로 “성도들이 세상생각 못하도록 콩 볶듯 볶아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손쉬운 그 길을 가지 않았다.
    그는 그 침체기를 통해서 자신의 그릇된 면을 발견하고 그것을 극복하는데 주력했던 것이다.

    그래서 “인위적인 자극제나 화학적인 첨가제에 의존하지 않는 깊은 뿌리”
    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유진 피터슨』 336쪽)
    기도와 예배에 집중하면서 다른 것들은 자발적으로 가도록 하는
    “자유”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신비에 주목하는 목사

    또 하나 그에게서 발견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신비에 대한 순응이다.
    이것의 뿌리는 그의 부모님의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그가 만난 다양한 장로교인들을 통해서 구체화되었고,
    장로교 신자인 아내 잰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교리적인 면보다도 그가 자란 몬태나 주의 대자연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신학이 알프스 산기슭에서 꽃핀 것처럼 말이다.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쓰고 있다.

    내 회중을 문제로 대할 때는, 내가 하는 일을 대체로 알 수 있다.
    그러나 목사로서 그들을 대할 때는, 나의 이해와 통제를 벗어나는 신비를,
    하나님과 관련된 어떤 것을 대하는 것이다.(『유진 피터슨』 223쪽)

    하나님의 신비! 그것은 그가 교회, 성도, 목회만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차원을 규정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그의 영성적 깊이가 발견된다. 그는 오랫동안 성경의 이야기를 들었고,
    성경을 읽었고, 그 성경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발견했고 나누었지만,
    사람의 말로 다 해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그는 인정했다.

    ▲내가 그를 인터뷰할 때,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도 그가 생각하는 하나님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피터슨 목사님께서 하나님에 대해 알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습니까?
    아주 어려서부터일 거라 생각됩니다만.”

    그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희 가정에서 하나님은 한 부분이 아니라 전부였지요.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강한 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그러한 의식의 처음은 아니었지만, 제가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때의 기억이 선명합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집에 살았는데, 하루는 마루를 수리하고 새롭게 칠을 했지요.
    그때 어머님과 저는 별채에 앉아있었어요.
    어머님은 늘 그랬던 것처럼 노래를 불러주셨고
    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겠느냐고 권하셨지요.

    저는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고, 그 때 어머님을 따라서 기도를 드렸지요.
    마루에 칠을 한 냄새와, 내가 발을 달랑달랑 흔들며 그렇게 찬송하고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내가 물었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신앙적인 기억이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하나님께 가까워지게 된 어떤 계기들이 있으셨는지요?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는 대답했다.
    “글쎄요. 저는 오순절 교회에서 자라났어요. 작은 교회였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개성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독특한 사람들이었지요.
    나무꾼들, 작업화를 신은 사람들 등등 말입니다.

    그들은 친절하거나 예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좋아했지요.
    그런데 교회 분위기가 제게 잘 맞지는 않았던 것이
    때로 감정적으로 사람들을 몰아가고는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홀로 숲을 거닐면서 기도하게 되었지요.
    혼자 도시락을 먹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숲은 저의 세계였지요. 숲은 저의 정신의 일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영성은 어린 시절에 혼자서 영글어갔던 것 같습니다.

    제가 열 서너 살 때 시편으로 기도하기를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속에 있는 시와 노래로 말입니다.

    그 후 여러 해가 지나서 시편으로 기도하는 것이,
    2천년 동안 되어온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아무도 제게 그런 것을 가르쳐준 이는 없었습니다.”

    ▲내가 반복해서 그에게 깊은 영성이 무엇인지,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피터슨 목사는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체험적 접근의 위험성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때는 언제였는가 하신 식의 질문이
    제게 많은 것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정서적인 사람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러한 감정으로 재는 것은
    뭐랄까 실재를 왜곡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피터슨목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적 이해의 한계를 분명히 인정하며,
    하나님의 신비를 강조해 주었다.

    “저는 의사소통 communication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신 저는 함께함 communion이라는 표현을 더욱 좋아합니다.
    예배와 기도가 그 통로가 됩니다.

    영성이란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 the art of being present to God 입니다.
    여기엔 침묵이 있고, 비움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건이나 느낌으로 검증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문화는 너무나 정보와 활동으로 가득하고
    지속적인 자극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이러한 영성에 반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이러한 것으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내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한 가지 방법적 조언을 주었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이것은 단순한 주의력 simple attentiveness
    혹은 경배적인 주의력 adorational attentiveness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주의를 기울이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그분의 임재함에 대한 감정이나 장치를 만들어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귀를 기울이고, 또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경배의 길로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 세대의 영성적 메마름에 대해 염려하며 조언을 구했을 때,
    그는 하나님에 대해 집중하지 않고 있는 이 세대의 산만함을 지적했다.

    “글쎄요, 이 질문은 가장 어렵고 근본적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세대는 다른 세대와 다르게 특별한 어려움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대를 살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알고 있고, 행하고 있기 때문에
    몇 달 몇 년을 우리는 하나님과 신비에 대해 무지한 채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질문은 주변으로 밀려나 있지요.
    하나님에 관한 질문, 초월에 관한 질문은 우리 조상들에게는 늘 있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긴급한 질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급한 것은 우리의 생활이요 직업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신비와 주권에 집중하는 구체적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기도였다.
    그는 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목회의 길을 걸으면서 많은 시행착오들을 거듭했지만,
    목사의 소명에 관해서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썼다.
    그것은 “기도가 모든 것의 핵심” (『유진 피터슨』 240쪽)이라는 것이었다.

    그 기도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 그는 안식일을 택했고, 대자연을 택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일로 가득 찬 안식일을 진정으로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그는 아내와 함께 침묵의 산행을 시작했다.

    오전 시간 동안 침묵의 산행을 걸으며
    자연의 소리, 내면의 소리, 그리고 침묵 가운데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바위에 앉아 아내와 함께 시편을 읽었다. 그리고 도시락을 먹었다.

    오후 시간에는 “놀았다”고 했다.
    모든 종류의 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기 위해서 그랬다.

    진정한 안식일을 지키려 애쓴 것이다. 강아지처럼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던 그는
    이렇게 하여 “앉는 법을 배웠다.”(『유진 피터슨』 390쪽)

    ▲그 뿐이 아니었다. 그는 담임목사로서 감당해야 할 수많은 “일”들을 내려놓았다.
    그는 교회의 각종 위원회를 모두 빠지기로 결정했다.
    그 시간을 기도하고 공부하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예배를 인도하고,
    또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로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내심 불안했다고 했다. 그 후에도 건축이 있었고 성도들이 500명으로 늘어났지만
    그는 교회를 “운영”하는 일에서 여전히 손을 뗐다.
    이렇게 함으로써 고래잡이 포경선의 작살꾼처럼
    그는 본질적인 영혼구원의 사역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포경선의 작살꾼은, 작살 던지는 일 말고는, 다른 일을 일절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작살을 잘 던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니까, 다른 일은 다 면제인 것입니다. 목회자의 기도와 말씀에 비유됨.

    이것이 한국교회의 담임목회자에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러나 또한 이것은 성경의 이야기가 아닌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려고
    사역 집사들을 세웠던 사도들의 이야기 말이다.

    ▲자기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유진 피터슨은 성도들에게는 주일이 유일한 안식일임을 기억하면서,
    주일에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일요일이 여러분에게 쉼과 기도와 여가의 날이 되도록 보장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일요일에는 아무 것도 채워 넣지 않겠습니다.
    일요일에는 위원회 모임도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아보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구별된 시간을 가지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가 되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도록 우리가 돕겠습니다.
    우리가 월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도록 여러분이 도와주십시오.” (『유진 피터슨』 351쪽)

    ▲이렇게 피터슨은, 그의 바탕에 하나님의 현존과 신비를 모시는 법을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영성가로서의 유진 피터슨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신비를 받아들임으로써 삶을 통제하고 조작하려는 욕심을
    그는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함으로써 그는 심리조작이나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을 움직이려는 노력을 포기할 수 있었다.

    공예배에서 침묵의 기도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성도들은 그것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제는 대표기도나 성경봉독 시간에도 반주를 넣기까지 강박관념에 쫓기고 있는 한국교회가
    이제는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창의성, 친밀함과 환대

    목사가 하나님에게, 예배에 성도의 삶에 집중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유진 피터슨의 목회 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창의성, 친밀함, 그리고 환대였다.

    그가 발견한 창의성이란 단지 인간의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내게 명확한 구분을 주었다.

    “저는 창의성이라는 용어에 대해 불편함이 있습니다.
    창의성이라는 말이 우리가 무엇인가를 한다는데 더 큰 무게를 두는 점에서
    저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말 속에 있는 직접성 (immediacy),
    다른 사람을 모방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살아가는 직접성 (first-handedness)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창의성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그분과의 관계성 안에서 창의성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가 보여 주었던 목회적 창의성은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는 또한 밝혔다.
    다시 말해서 ‘사랑이 창의성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저는 교외지역에서 목회했는데, 제가 발견한 것은 그곳이 최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똑같은 집에 살면서 TV만 보고, 대화는 없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안정된 삶뿐이었습니다.

    제가 자란 교회는 모든 사람이 개성이 넘쳤는데, 거기 사람들은 모두가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 하나하나를
    그들 자신의 모습대로 독특하게 인정해 주고 대하기로 하였습니다.

    비록 그들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만.
    저는 그들 하나하나의 존엄성을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문화와 가치관에 의해서 획일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에 다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한사람은 자신을 독특하게 이해해 주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것이 제가 한 가장 큰 목회사역이었고, 목회자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것이 창의성이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의 목회에는 친밀함과 환대가 있었다.
    내가 그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그 친밀함과 그 대접이었다.

    아내인 잰은 그 오지의 어딘가에서 김치를 구해다가 나를 대접해 주었다.
    그 김치는 오래 되어 거의 치즈처럼 물러버린 것이었지만,
    그들의 섬김의 사랑이 담기어 있었다.

    그들의 목회가 친밀함과 환대로 풍성했던 것은
    아내 잰의 섬김의 달란트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만 집중할 때 생겨나는 사랑이었을 것이고,
    또 성도가 서로의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었을 것이다.

    개개인에게 주목할 때 친밀함이 생긴다.
    그리고 거기에서 생기는 관계성과 개인적 지식 속에서 돌봄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조작적이거나 프로그램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존재론적인 것 외의 모든 것이 성도들에게 맡겨졌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고 성도들의 삶의 이야기에 집중함으로써
    사람들은 자발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내게 말했다.
    “저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역사를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일할 때 인격적으로 해야 함을 압니다.
    그것은 제가 목적이나 원리와 같은 것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그러한 것들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계시는 이야기(narrative)의 형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목적설정은 좋지 않은 영성입니다.
    목적은 필요한 것이지만, 목적지향적인 사고는 이야기를 파괴합니다.
    관계성을 파괴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이야기적인 사고방식을 배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인격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이야기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숙한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죄는 거의 언제나 부분적인 선의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얘기한 경배적인 주의력, 특별한 종류의 수동성, 응답성,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오래 멈추어 서는 것이 필요하지요.”


    ◑깨달은 것을 살아가는 영성

    끝으로 그에게 영성에 관해 물었다.
    “피터슨 목사님, 영성을 무엇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는 대답했다.
    “예. 영성이라는 말도 어떤 상투어가 되어 있기 때문에,
    저는 가능하면 이 용어를 피하고자 합니다.

    저는 ‘신앙인의 삶’으로 그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풀어서 말한다면, 신앙인으로서 포괄적으로 살아가는 것,
    그래서 우리의 행동과 모든 것을 이러한 신앙 안에 포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일관됨과 통합성이 있습니다.

    영성은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이나 규정된 역할들이라기보다 말입니다.
    사람들의 영성을 보면 그 안에는 진정성authenticity에 대한 목마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들 스스로가 되어지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계속적으로 우리를 역할과 이념으로 몰아갑니다. 넓게 보면 그렇습니다...

    제가 리전트대학에서 가르친 것은, 새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영성은 그 자체로서의 주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가르치고자 한 것은 신학과목들에서, 역사학 강의에서,
    또 성서석의학 과목에서 배운 것들을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일이었습니다.

    책에 있는 것들을 그들 안으로 옮겨가는 일이었지요.
    그것은 특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좋은 선생들은 그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저 사상을 전해 주는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진리를 살아감 live the truth’이 아마도 핵심단어일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이 목회자로서 이 모든 길을 신실하게 걸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깨닫게 하신 이 모든 것들을 증언하라는 소명을 주셨다.
    그래서 그는 남은 생애동안 교수와 작가의 길을 가게 되었으며,
    목사들의 목사로서 조언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고,

    또 성경을 미국인의 삶의 언어로 풀어서 쓰는 번역의 일을 하게 되었다.
    내게도 그가 사인해서 선물했던 메시지 성경 말이다.


    ◑성공이 아닌 실패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성취를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내게 말했다.

    “저는 사실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제 교회는 어려운 곳에 있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아무도 내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당회에서는 저에게 경멸하는 태도를 자주 보이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목회자로서 사회적, 정치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다고
    그분들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애 대부분을 통해 주변인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책의 거의 대부분이 많이 팔리지 못했습니다.
    비록 지속적으로, 또 인정할 만큼은 된다고 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쓴 책들은 거의 대부분 지금도 인쇄되고 있습니다.
    ‘더 메시지’(The Message) 성경은 좀 다른 얘기입니다만.

    사실 저는 책을 출판하기 15년 전부터 글을 써왔지만
    아무도 출판을 고려하지 않았었습니다.
    저 또한 누구도 제 글을 출판하리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출판하게 되었지요.
    지난 수 년 동안의 변화는 그 전의 이러한 삶과는 많이 다른 것이었지요.”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삶의 비결이라면 비결로써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꼽기까지 했다.

    “얘기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저의 삶이 있기까지의 한 요소는 제가 늘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저는 언제나 정상에 있었지요. 저는 좋은 학생이자 좋은 운동선수였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었을 때 저는 계속 그렇게 정상의 길을 가고자 했지요.

    그러나 곧 저는 목회가 요구하는 것과 문화를 이해하게 되었고,
    목회시작 후 5년이 지났을 때에는 목회자로서의 모든 야심을 버리고,
    실패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패했지요.

    그리고 40년이 지났는데 김 목사님은 이것을 성공이라고 말하시고,
    저 또한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데 성공했지요.
    비록 제가 지성인들 사이에서 일하기 원해서
    대학교회의 목사가 되고자 꿈꾸었던 것은 그대로 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제 교인들은 그저 TV를 보며 사는 사람들이었지요.(웃음)”

    ▲유진과 잰 피터슨을 만난 지도 이제 10년이 되어간다.
    이 지면에서 다 소개하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영성에 대해 긴 대화들이 있었다.
    이제는 더 많이 늙고 편안해 졌을 그들 부부를 그려 본다.

    할 수만 있다면 그가 한국을 한 번 방문했으면 좋겠다.
    10년 전에는 초청을 완곡히 거절했었다.
    암과 투병했기에 장거리 여행에 자신이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한국교회에 와서
    직접 육성으로 조언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는 쉽게 조언할 사람은 아니다.
    그는 한국교회의 이야기에 먼저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신중하게 자기의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우리가 그의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이제 침체기에 들어서는 한국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가 값싸고 비본질적인 해결책과
    자본주의적 성장 프로그램들을 넘어서서,
    그가 그랬듯이 광야의 길을 택하여 깊어지고 정화되어 “뛰는 법” 뿐 아니라
    “앉는 법”을 배울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김성원 교수 (기독교사상 2011년 08월호)


    ................ 전략된 부분 ................

    ▲글 제목이 좀 과장된 것을 인정하자.
    그러나 최근에 나온 그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이러한 단어들이 내 머릿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나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는 기독교 작가이며 신학자이며 교수이지만, 무엇보다 그는 목회자였다.
    참된 교회를 늘 상상하던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참된 영성을 찾아 순례의 길을 걸었다.

    그는 한 눈 팔지 않고 그 길을 걸었고,
    성도들의 삶 속에서 그 길을 찾으려 했다. 그는 그 길을 살았다.
    그래서 이런 글 제목이 나온 것이다.

    ▲플랫헤드 호숫가 그의 집
    나는 십년 전 몬타나주 칼리스펠 시의 플랫헤드 호숫가에 있는
    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마지막 누우셨던 침대에서 잠을 자고, 그의 산책로를 함께 걸으며,
    또 그가 영감을 얻은 산과 호수를 창밖으로 바라보면서 대화한 적이 있었다.

    짧은 시간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오늘 그의 회고록 『유진 피터슨』(IVP)을 읽으면서
    비로소 그의 이야기들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나는 그때, 영성에 관심 있는 조직신학자로서 그에게 다가갔고,
    그런 나에게 유진 피터슨은 소박하고 정리되지 않은 순수함으로 비춰졌었다.

    나는 그에게 원리적인 질문을 던졌고,
    그는 그런 내게 맞추어 최대한 조직적인 대답을 주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그에게 피곤한 일이었다. 그가 대화 후에 깊은 낮잠을 잤던 기억이 난다.
    이제와 생각하니 미안하고 부끄러운 인터뷰였다.

    이제 그가 담담하게 쓴 회고록을 읽으면서 다시 그를 생각한다.
    다시 그를 만난다면 그렇게 대화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그와 함께 신비를,
    삶과 언어와 주님의 신비를 이야기할 것 같다.
    그가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발견한 그러한 신비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내가 그때 그를 개념적으로 파헤치려고 하면서,
    조금은 조심성을 상실한 접근을 했던 이유 한 가지를 변명하자면
    그가 부유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소박하고 인간적인 분이었지만, 호숫가에 있는 그의 집은 너무도 좋았다.
    그 집의 색유리로 장식한 현관문, 바닥부터 벽과 천장까지 원목으로 지은 내-외부,
    거실의 유리 테이블과 청동 장식품 등 아름다운 집과 집기들이
    한국에서 흔히 보는 고급 별장이나 펜션 같았다.

    그리고 그의 집이 자리 잡은 호수와, 멀리 보이는 눈을 이고 있는 로키산맥,
    그리고 몬태나 주가 자랑하는 큰 하늘(Big Sky)이 있었다.
    그의 서재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자랑스러운 가족사진 액자들이 즐비했다.

    그의 서재는 두 벽면이 유리창으로 이뤄져 숲과 호수를 가득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눈부신 햇살이 그 창문을 통해 들어와 그의 서재를 빛으로 충만하게 채우고 있었다.
    베스트셀러 작가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호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곳은 내가 상상했던 영성가의 집은 아니었다.
    내가 작은 선물로 가져간 백자 항아리가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백자 역시도 우리 왕실의 그릇이었지만, 그 사대부적 미감은 소박하고 맑다.
    백자는 그에게 어울렸지만, 여러 색상으로 가득한 그의 집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히 문화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미국적인 삶의 자연스런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성가의 거처라고 하면 선방(禪房)을 떠올리는 이 한국인에게
    그것은 조금 낯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과 사역과 생각들이 우리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약이 되기에
    이 모든 것은 너무나 지엽적인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안다.

    지금 이 지면에 기록하는 이야기들은 내가 그에게서 배운 것,
    한국교회가 그에게서 배웠으면 하는 것들이다.
    그가 한국 출판계에서 아직도 잘 팔리는 작가라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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