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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의 형태가 새로워져야 한다
    2015-12-17 10:13:43   read : 1452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김 운 용 (장신대 교수, 예배 설교학)

    콜럼비아 신학대학원의 교수, 월터 브르그만은 오늘날 복음의 선포인 설교가 과거와 같이 특권을 가진 요소로 존재하지 못하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다고 주장한다. 진실이 왜곡되는 현실에서 참된 진리를 외쳐야 하는 설교는 그 본질상 어려운 사역일 수밖에 없고,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특권을 박탈당한 위험한 직무”가 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설교와 설교자에 생과 사가 걸려있다고 주장한다. 문화적인 가짜 우상을 만들어 내는 허망한 사람들과 혼돈의 조성자들, 무질서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시대일수록 분연히 일어나 참된 진리를 말하는 설교자가 필요하며, 그 설교자의 설교에 의해서 이 시대는 생과 사의 기로에 서있다고 본다.

    그의 주장처럼 설교는 특권을 크게 박탈당한 시대에 서있으며, 생과 사를 가름하는 중요한 사역이기에 이제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는 중요한 쟁점으로 다가오게 된다.

    사실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설교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불러 세우시고 강력하게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심적인 수단”(the chief means)이 되어왔다. 설교가 강력하게 행해지던 시대는 영적으로 충만했고 교회도 건강했다. 반면 설교가 무기력하게 진행되던 시대에는 교회는 쇠퇴해갔다.

    기독교의 역사, 특별히 설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설교자들은 강단과 회중석 “사이에”(between) 존재하는 거룩한 처소에서 그 둘 사이를 중재하는 놀라운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온 마음을 두고 살았던 존재들이었다.

    이 놀라운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더 좋은 설교를 위해―발버둥쳤던 시대에는 강단은 복음의 풍요를 누릴 수 있었으며 설교의 영광의 시대를 경험하였다. 반면 이러한 노력이 약하거나 희미했던 시대에는 역시 설교의 암흑기와 신앙의 빙하기를 경험하였다.

    이러한 점 때문에 교회는 설교를 새롭게 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 시대마다에서 설교의 붕괴를 개탄하면서 그것을 새롭게 하려는 목소리들을 듣게 된다.

    이러한 목소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인 “설교의 리바이벌(revival)”과 말씀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한 “방법론의 재구성”(re-forming)에 대한 관심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설교를 새롭게 할 것인가는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와 함께 연관지어지는 사안이다.

    형태의 중요성

    덴마크의 죌렌 키엘케골은 “이제 기독교의 세계(Christian land)에는 어떤 정보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는 무엇이다”라고 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기독교의 믿음에 대해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 것인가? 이것은 전통과 권위가 흔들리고 있고, 커뮤니케이션의 다양한 형태들에 익숙해 진 오늘의 상황에서는 이 “어떻게”의 문제는 더욱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는다.

    말씀의 깊이를 드러내지 못한 설교, 풍성하지 못한 내용으로 강요하듯 내던지는 강요하는 설교는 물론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날 설교 사역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설교의 내용(content) 때문에 주어지기보다는 방법(how)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이 있다.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설교자가 그들의 설교를 행할 때 틀린 말을 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보다는 방법이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은 오늘의 시대적인 특성에 깊이 영향을 받고 있는 젊은이들 사역일수록 더욱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얼마 전 전국의 교목들이 모인 자리에서 청소년들 설교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다. 그들의 한결같은 고백은 갈수록 설교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듣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설교해야 하는 교목들의 고충은 어디 사역의 현장에서보다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설교 내용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방법론이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에 장신대의 사경회 강사로 오신 어느 대학의 교목의 경우에는 학교 채플이 완전히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어느 때는 학생들의 기립박수와 환호를 받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분은 어떤 내용이 새로워서이기도 하겠지만 젊은이들의 취향에 민감성을 가지고, 늘 새롭게 설교하려고 하는 분이었다.

    이와 같이 오늘의 시대 속에서 설교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생명을 살리는 말씀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무엇에 담을 것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것은 설교의 형태와 관련된 문제이다.

    설교의 형태는 “마치 설교라는 그릇을 빗어내는 진흙 모형(shape)과 같은 것으로 설교의 자료들이 조직되어지는 구조”를 의미한다. 이것은 설교 가운데서 무엇이 일어나게 할 것이지, 설교를 통해서 무엇을 행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조직적인 계획(organizational plan)이며, 설교의 내용에 따라서 지배받아야 하는 요소이다.

    설교의 내용(content)과 함께 설교의 형태는 효과적인 설교를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이며, 설교가 흘러가는 방향을 결정지어지고, 그 흐름을 결정짓는 강의 제방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설교의 형태는 어떻게 설교가 보다 의미 있게 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절대 필요한 요건이며, 설교에 있어 틀(shape)과 활력(energy)을 가져다주는 요소가 되어진다.

    그러므로 설교의 형태는 설교의 내용과 함께 설교 사역에 있어서 고려되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며, 복음의 커뮤니케이션을 도와주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설교 형태는 “무엇을 말하고 행할 것인가와 무엇을 연결시킬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조직적인 계획”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설교자에게 있어서 설교의 형태에 대한 관점은 철저하게 무시되어왔다. 이것은 성령을 의지하지 않는 처사이며, 믿음이 없는 데서 나오는 “인본적인” 요소라고 매도해 왔다. 이것은 한국 교회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프래드 크래독도 말하기를 “아마도 설교의 형태 혹은 방법론(how)이라는 말보다도 더 학대를 받았던 말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도 존귀하게 여기면서 외면해 온 것이 아니라 무관심과 무시, 경멸과 같은 굴욕적인 형태의 학대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설교의 내용에 대해서만 유쾌한 마음으로 환영하고 있을 때 설교의 형태는 저 복도 밖에서 서 있어야 했다고 풍자적으로 지적한다. 이러한 현상들에서 야기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루함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설교에서 가장 위험하고 적대적인 요소는 지루함이다. 현대의 청중들은 지루함을 용납하지 못하며, 정말 싫어한다. 그래서 그것 자체가 죽음은 아니지만 지루함은 “죽음의 예고편”과 같다. 그래서 키엘케골은 지루함을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했다.

    이렇게 설교자들이 크게 주목하지 아니 하였지만 설교의 형태는 “설교의 의미와 효과에 있어서 실질적이고 절대적인 요소”이다. 설교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설교를 준비할 때 어떠한 형태를 따라서 설교를 작성하게 된다.

    설교자가 설교의 자료들과 내용을 어떻게 위치시키느냐는 설교의 형태와 관련된 사항인데, 오늘의 시대에서 설교의 힘은 어떻게 치장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고, 설교의 구조를 어떻게 하느냐와 달려있다.
    가능한 다양한 형태가 많이 있지만 설교의 목표를 어떻게 이루어가며, 어떻게 설교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는 어떤 설교의 형태를 취하여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렇게 설교자가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동안 설교는 지루함을 야기 시키는 요소로 인식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오늘의 설교자는 변화하는 시대, 달라진 청중들에게 어떻게 말씀을 전할 것인가는 설교자의 지속적인 관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 설교의 보편적인 형태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설교자들은 어떤 형태를 중심적으로 사용하는가? 설교의 형태를 결정 짓는 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 교회의 설교는 주로 전통적인 접근 방법인 설교의 개요(outline)를 따라 진행하는 형태를 따르고 있다.

    지금까지 전통적인 설교의 틀 거리는 주로 전개 형태에 있어서는 연역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구성의 특성으로는 주로 논리적이고 명제적인 설교 형태와 주제 설교의 형태, 3-4개의 대지로 나누어서 주제를 설명하는 대지 설교 형태를 따라 행해왔다. 설교자가 전하려는 주제가 선정되고 그에 걸맞은 본문이 선정되며, 거기에서 주제를 설명하는 대지들이 거기에서 추출되어 나온다.

    여기에서는 성경 해석의 측면에서 문제를 가지는데, 주로 본문의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제시하고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설교자의 설교 아이디어를 위해 필요한 사항만을 추출하는 해석방법과 그것을 증명하는 형식을 가지므로 본문이 말하기보다는 설교자가 말하는 구조가 되며, 본문은 설교자가 하려고 하는 내용에 보조도구화(proof text) 하는 경향을 가진다. 한국 교회 설교자들은 이러한 전통적인 방식에 익숙해 있었고, 고착되어 있었다.

    설교 형태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도 보면 대부분의 설교자들의 경우에 한 가지 설교 형태에 고착되어 있는 실정이다. 다양성은 거의 무시된 채, 단일 방법론을 고집하거나, 어느 한 형태를 절대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즉 주로 대지설교를 하는 설교자는 언제나 대지 설교만, 강해 설교자들은 강해설교 형태에만 고착되어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것은 물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효과적인가 비효과적인가의 문제이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포되었던 말씀이었던 신약성경만 보더라도 얼마나 다양한 형태를 예수님을 사용하셨는가? 사화(史話), 시, 비유, 묵시, 찬송, 전설, 위인전, 비유적인 역사 내용, 네러티브, 논리적 교리, 편지 등 다양한 문학적인 표현과 구두적인 표현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목록들은 오늘의 설교들에게 이어지면서 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4세기 이전까지 고정된 설교의 형식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말씀을 듣는 청중들 개개인과 세대, 그리고 지역과 문화에 특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가져왔다.

    이러한 다양성을 외면한 채 1년 12달 한결같이 첫째, 둘째, 셋째...와 같은 형식만 따른다면 우리는 스스로 말씀의 다양성을 놓쳐 버리는 누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설교의 구조의 측면에서 보면 설교자들은 주로 설교의 효과는 논리적으로 내용을 요약하고 배열할 때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논리를 증명하고 명료화하기 위해 명제와 많은 예화들을 사용하고 있다.

    설교의 기본적인 구조는 주어진 중심 명제를 중심으로 3-4개의 대지로 구분하며, 명제와 관련한 정보를 제시하기 위한 구조로 짜여진다. 그러므로 어떻게 듣게 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조직적이고 논리적으로 이것을 제시하며 전달할 것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그러므로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말씀을 경험하게(experience) 하는 차원보다는 단순히 말씀의 정보를 전달하는(transmit)하는 관점에 의해서 지배받는다. 대부분의 설교는 주제나 본문이 가지는 의미를 설교의 서론 부분에서 설명함으로서 설교를 시작하는 연역적인 구조를 가지는데, 설교의 아이디어나 생각들을 조직하여 논리적으로 선명하게 제시하는 것은 설교 구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긴다.

    이러한 연역적인 방법은 프래드 크래독(Fred B. Craddock)이 주장한대로, 설교의 움직임(movement)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청중들이 메시지를 받는 방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청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지루함과 메시지에 대한 익숙함을 느끼게 하여 역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이러한 설교의 틀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은, 유진 라우리(Eugene Lowry)에 의하면 “짜 맞추는 것”(construct)이며, 이러한 틀을 따라 준비된 설교는 얼기설기 붙여놓은 “개집과 같은 설교”가 되어진다. 여기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형성되기(doing time)보다는 주로 주제를 설명하는 덩어리를 만들어 그것을 설명하고 전해주는 공간적인 관점(doing space) 속에서 행해진다.

    여기에서 준비된 설교의 자료는 전체 개요에 맞추어 끼워 넣는 것이며(assemblage)이며, 짜 맞추는 것은 전체에 대한 부분의 관계이다. 이러한 설교의 틀에서는 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세 개 혹은 그 이상의 작은 설교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에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이동하는 움직임이 존재하지 않으며, 주어지는 메시지에 대해 새로운 감격을 가지고 듣게 하기에는 어려운 구조이다. 즉 청중들이 이 설교에서 이 자료들을 가장 잘 듣게 할 방법은 무엇일까가 설교의 개요를 작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

    여기에서 야기되는 문제는 어떤 정보나 기독교적인 교리에 대해서는 교육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으나 설교의 역동성과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설교를 구성할 때 단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감당한다.

    최근의 설교학의 경향은 오늘의 회중들에게 “들려지기 위한 설교”가 되게 하기 위해 모든 노력들을 경주하고 있다. 특히 성경의 본문을 정확하게 연구하여 메시지를 찾아내는 작업, 설교의 적절한 바른 형태(form)의 추구, 설교의 파트너인 회중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 그리고 보다 적절한 말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설교의 현장에 대한 깊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40여 년 동안의 설교학의 이론들은 설교가 성령님을 통한 하나님의 신비한 인도하심 아래서 본문과 설교자, 회중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가도록 하는데 그 강조점을 두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의 가장자리에 서서 “오늘의 청중(listeners)들을 향한 관심의 전환”은 설교학의 형성에 새로운 발견이며, 가치 있는 공헌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는 오늘의 회중들이 어떻게 말씀을 듣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보다 좋은 설교”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이러한 관심의 표출의 중심에는 설교의 새로운 형태(form)를 추구하게 되었고, 설교의 새로운 틀에 대해서 깊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설교의 형태를 새롭게

    설교가 새롭게 되어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설교의 새로운 회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혹자는 설교자에게서 찾으려 하고, 혹자는 설교의 내용을 강조하기도 하고, 설교의 방법론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한 부분에 대한 강조로 보다는 이 모든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지고 균형을 이룰 때 설교의 영광과 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요인들 가운데서 우리는 지금 설교 형태의 중요성을 보고 있다. 지난 호에 이어서 몇 회 동안 살펴보게 될 “설교의 형태 새롭게 하기”라는 주제가 다루어질텐데, 설교의 형태는 그 설교의 의미와 효과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절대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설교의 형태를 새롭게 하기 위해 설교자들은 다음 몇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첫째로 설교자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설교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방법론을 연구하여야 한다. 잘 준비된 설교의 내용(content)은 적절한 형태를 따라 균형을 잡아가며, 배열할 때 그 내용이 효과적으로 전달되게 한다.

    마치 음식이 잘 준비된 다음에는 그 음식을 담을 그릇을 찾는 것과 같이 설교자는 성경을 통해 증거할 메시지를 발견한 다음에는 그것을 담을 적절한 그릇으로서 설교의 형태를 찾아야 한다. 물론 그 음식을 먹는 손님은 그것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을 수도 있는 것처럼 설교를 듣는 회중들도 설교의 형태에 대해서는 깊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 들었던 설교는 어떤 설교의 형태를 사용했는가를 묻는다면 대부분의 회중들은 그에 대해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의 형태는 설교의 흐름과 방향을 결정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며, 설교에 있어 틀을 가져다주고, 또한 활력을 갖다주는 요소이다.

    적절한 설교의 형태는 설교의 내용을 적절하게 전달해 준다는 점에서 “복음의 커뮤니케이션을 도와주며,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설교의 형태는 “설교에서 무엇을 말하고 행할 것인가와 무엇을 계속 연결시킬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조직적인 계획”이기 때문에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는다.

    둘째로는 설교의 형태의 다양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 동안 한국교회 설교자들은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양성보다는 어느 한 설교 형태에 고착되어 왔음을 들 수 있다. 본문의 특성이나 설교의 내용, 그리고 설교를 듣게 될 청중들이 메시지를 받는 방식은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이 선호하는 방법에만 고착되어 왔다.

    설교의 방법론을 강조하는 것은 비신앙적인 것처럼 매도되면서 방법론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마치 조선시대 후기에 실학을 학문의 축에는 넣어주려고 하지 않았거나 무시하는 경향과도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쓰여진 성경은 다양한 형태들을 사용하고 있음을 앞서 강조한 바 있다.

    성서 기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당시대의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이렇게 다양한 양식과 수사학적인 기법을 동원하였다. 예일대학 교수인 린더 켁(Leander E. Keck)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로마 세계에 복음을 전하면서 히브리 전통과는 다른, 정반대의 질문을 통해 메시지의 핵심에 이르게 하는 연설 방법(diatribe method of communication)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청중들이 궁금해하는 의문사항이 무엇인지를 예견하면서 설교자는 청중들을 위해 대신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서 대답을 제시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복음의 메시지를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그러한 방법은 당시에 스토익 학파의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였던 방법이었는데, 헬라 문화권에 있던 근동 세계는 이러한 방법에 아주 익숙해 있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즐겨 듣는 방법을 사용하여 과감하게 도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의 내용과 관련하여 청중들의 생각이 보다 깊어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헬라권의 청중들을 위해 전혀 새로운 방법들을 도입하였다.

    반면 예수님은 비유(스토리)를 즐겨 사용하셨는데,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는 그것이 널리 사용되던 히브리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히브리적인 방법이 최선이 아님을 감지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설교 방법론은 세대, 문화, 집단의 특성에 따라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으며, 모든 설교가 반드시 따라야 가장 이상적이고 표준적이며, 반드시 이것이어야만 하는 불변의 형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신데릴라의 유리구두와 같이 그것만 착용하면 모두 왕자비가 되게 하는 절대적인 설교 방법론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가능한 한 설교에 있어 다양한 방법론을 따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복음의 제시는 시간과 공간, 대상에 따라 아주 다양한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복음의 특성이 고착된 것이 아니며, 생명력을 가진 유기체(living organism)와 같기 때문이다. 흔히 설교학에서는 전통적인 설교의 형태와 현대 설교학에서 제시되고 있는 새로운 설교 패러다임에 따른 방법론과 실험적인 방법론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설교의 형태들에 대한 장점과 한계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적절하게 병행하는 것은 설교의 새로운 회복을 위한 하나의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설교의 형태를 새롭게 하려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오늘의 회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효과적으로 들려지게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창조적인 설교의 힘은 설교자의 말이나 어떤 방법론적인 시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살아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수면을 운행하시며 혼돈의 세계를 하나님의 질서의 세계로 바꾸셨던 성령님의 역사로만 가능한 일임을 함께 고백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도들은 설교의 모든 것이 충족되는 필요충분조건일 수는 없으며, 이것은 우리에게 복음을 위임하신 우리 주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려는 설교자들이 주님께 드리는 오병이어라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오늘의 시대와 문화의 변화를 읽으면서 설교의 형태를 연구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 시대가 듣고 이해하는 방식이 있다. 각 세대가 선호하는 방식이 있다.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면 기업이 죽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물론 이것은 경영학적인 마인드라고 던져 놓을 수도 있지만 성장하는 교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며, 강력한 설교자들에게는 그냥 되어지기보다는 그럴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얼마 전 대표적인 지식 나눔의 장이요, 만남의 장이었던 종로서적이 문을 닫았다는 보도를 들었다.

    1907년 “예수교셔회”란 이름으로 출발한 종로서적은 같은 자리에서 95년 동안이나 서있었으며, 단순한 책방이 아니라 지식의 샘터이자 젖줄이었다. 최첨단의 경영기법을 도입하였으며, 분야별로 따로 각 층에 배치하고 세분화하면서 독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하나의 상징처럼 자리잡고 있었던 이 서점이 문을 닫게 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주변의 여러 대형 서점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결국 부도로 거의 100년 가까운 유구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단순한 경쟁에서의 패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를 들라고 하면 경영학을 연구하는 이들은 종로서적이 시대변화를 읽지 못하였고, 그것에 민감하게 대처하지 못한 점을 들고 있다.

    시대를 읽을 수 있는 눈이 부족했다고, 그리고 그에 대한 적절한 대처 능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단순히 한 대표적인 서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거대 기업이었던 대형 서점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오늘의 설교 사역에도 타산지석이 되어야 한다.

    주세페 베르디의 작품 가운데 ??팔스타프??가 있다.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윈저의 유쾌한 여인들??을 토대로 쓰여진 것인데, 원작에 나오는 주인공 팔스타프는 날마다 호기심과 열정, 기쁨 속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바람둥이요 주정꾼이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먹고 마시고 떠들고 싸우는 사람들에게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몸가짐을 바르게 하라!”고 말했을 때 그는 “입 닥쳐. 해골처럼 말하지 말라!”고 외친다. 베르디는 그 원작을 중심으로 80세의 나이에 이 오페라를 쓴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그 오페라에서 베르디는 셰익스피어 원작에 나오는 팔스타프에게 또 다른 생명을 부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80의 나이에도 원작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베르디에게서 설교자는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의 열정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열정을. 세상을 향해 바로 살라고 외쳐야 하는 설교자들에게, “해골처럼 말하지 말라”고 외치는 팔스타프의 외침은 우리 설교자들이 들어야 할 외침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어떻게 생명의 말씀을 담아 전할 것인가? 생명의 말씀을 생명으로, 권능의 말씀을 권능으로 어떻게 가감 없이 전할 수 있을 것인가? 설교의 형태가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라면 그것을 새롭게 하기 위한 지속적인 설교자의 노력이 강력하게 요구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적절하게 활용하는 설교의 형태는 또 다른 생명력을 가져올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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