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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와 설교
    2015-12-17 11:06:11   read : 2013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침례신학대학교 문상기 교수

    들어가는 말

    I. 설교자로서의 목회자

    1. 설교의 중요성

    2. 설교의 우선권

    3. 전령자로서의 설교자

    4. 현대적 적용

    II. 성서적 설교

    1. 설교의 성서적기초

    2. 성서 해석으로서의 설교

    3. 설교의 내용

    4. 설교자의 태도

    III. 설교준비: 설교작성 단계

    나가는 말

    들어가는 말

    목사에게 부여된 역할에는 크게 나누어 교회 행정, 목회 상담, 그리고 설교 등이 포함된다. 이 세 가지 영역은 상호간에 어는 정도는 중복되는 것으로서 그 어느 것 하나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들이다.

    이 모든 영역들이 이처럼 목사의 사역에서 모두 중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가운데 설교는 목사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기능이요 그의 사명이다. 물론 설교를 강조하기 위하여 목회 사역의 다른 영역들을 열등한 것으로 본다거나 배타적인 관점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만일 어느 한 목회자가 설교 사역에 보다 강조점을 두기 위해서 사역의 다른 부분들을 소홀히 여긴다면 크리스챤 사역의 본질을 잘 못 이해하고 있음이라 말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 글에서 필자가 설교를 가장 중요한 목사의 사명으로 여기자고 하는 말은 모든 사역의 내역을 충실히 감당하되 설교만큼은 목사의 고유한 사역으로 여기고 설교 중심적인 사역을 하자라고 하는 의미이다.

    평신도를 활용한 사역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는 시대를 맞아, 개 교회 목사는 모든 교회 사역을 혼자서 짊어지고 나가는 독주자(solo player)가 되어서는 안된다.

    평신도 지도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셀(cell) 형태의 소그룹 목회라든가, 사역 내역을 세분화하여 여러명의 사역자들이 함께 일하는 팀사역(team ministry)등이 자연스럽게 기대되는 시대적 환경을 고려해볼 때, 목사의 사역 패러다임에 새로운 변화가 요청된다.

    실제로 목사는 여러 사역 분야를 평신도 지도자 혹은 동역 하는 팀 사역자들과 나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사 자신이 반드시 감당해야할 사역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설교이다. 설교는 개 교회 목사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성을 가지고 감당해야 할 소중한 그의 사역이다.

    교회를 개척하고 점차로 교회가 성장해감에 따라 목사의 사역 내역은 점차 설교 중심적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설교가 목사의 고유의 사역이기 때문이요 교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함이다. 교인들은 자기 교회 목사가 무엇보다도 성실한 설교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하나님의 말씀 증거를 소홀히 여기는 목사에게 그들은 전적인 신뢰감을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설교는 사도들에게 있어서도 일차적인 사명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전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들이 주님의 분부에 충실하였음을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 사건이 증명하고 있다.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당하여 흩어짐을 당하였지만 그들을 가는 곳마다 말씀을 전했다(행 8:4).

    사도들은 육체적으로는 고난을 당하였지만 그들의 설교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 5:42).

    그들이 이처럼 설교사역에 충실 할 수 있었던 것은 설교는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부여받은 명령이었기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이것을 분명히 간증하고 있다: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kerussw, 설교하다) 하나님이 산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행 10:42).

    목사가 설교 사역에 집중할 때, 그는 그의 사명에 가장 충실하는 것이다. 본 논문은 목사의 일차적인 사명이 설교에 있음을 몇 가지 관점에서 증명하고 나아가 설교의 사명에 충실하기 위하여 설교자는 어떤 삶의 태도가 요청되는지, 설교자로서 그의 신학적인 입장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실제로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I. 설교자로서의 목회자

    바울 사도는 목회서신에서 젊은 목회자 디모데와 디도에게 말씀 사역의 중요성과 더불어 실질적인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두 청년 목회자에 대한 바울 사도의 가르침은 이 시대에 부름 받은 사역자들에게 말씀 사역의 소중한 지침을 제공해 준다. 바울은 디도에게 편지하면서 그를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이라 부르면서(딛 1:4)

    목회자의 책무는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는 것인데 이는 성도를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딛 1:9). 여기에서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그대로 지키다’란 헬라어 동사 ‘ntecho’는 어떤 것에 ‘달라붙다,’

    ‘집착하다’ 또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다’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부름 받은 목회자들은 가르침과 선포 사역에 있어 말씀에 열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부단한 노력과 함께 지키고 행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가르치고 권면하는 모든 교훈은 올바른 것이 되어야 함도 동시에 지적하고 있다.

    1. 설교의 중요성

    설교는 기독교의 심장부를 차지한다. 왜냐하면 설교는 구원의 진리를 전하는 가장 주요한 방법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듣기 전까지는 그의 심령을 그리스도 앞에 내어 드릴 수 없다(롬 10:14-15).

    기독교 신앙은 어떤 느낌이나 어떤 황홀경에 빠지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환희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적 삶에 대하여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다. 설교는 한 개인에게 이와 같은 일이 가능 할 수 있도록 구원의 진리를 전달하고 설명하며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계속적으로 성장하여 나가도록 돕는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침례를 주게 하려 함이 아니요 말씀을 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선언하였다. 이것은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사람들에게 일차적으로 주어진 사명은 다름 아닌 말씀 증거의 사명임을 대변하여 준다. 그래서 스승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였다(딤후 4:2).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기독교회가 살아서 역사 하였을 때마다, 설교에 관한 똑같은 강조가 있어왔다. 4세기 경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은 교회의 질병에 대한 결정적인 약은 설교가 회복되는 것이라 했다.

    1070년, 그레고리(Gregory)는 설교를 회피하는 목회자는 마치 상처 난 환자를 외면하는 것과 같이 곧 살인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지난 세기 탁월한 설교가요 목회자였던 마틴 로이드존스(D. M. Loyd-Jones)는 설교는 자신에게 있어 어떠한 소명(召命) 보다도 가장 높고,

    가장 위대하며, 가장 영광스러운 소명이라고 말한바가 있으며 목사의 제일 첫 번째 임무는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1) 일찍이 헨슨(H. H. Henson)은 그의 예일대학의 리먼 비쳐 강의(Lyman Beecher Lecture)에서 설교는 목회자나 기독교 사역자에게 있어 가장 으뜸되는 과제라고 지적한 바가 있다.2)

    이것은 초대 교회의 생성 과정과 이후 교회의 사역이 전개되었던 사도행전의 기록들을 통해서 충분히 뒷받침되는 사실이다. 기독교회의 태동은 설교와 더불어 시작되었고, 교회의 일차적인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사건을 설교(증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울과 베드로를 포함한 사도들은 말씀 증거를 그들의 가장 우선적인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2. 설교의 우선권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목회자에게 주어진 사명은 비단 설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불러서 그분의 종으로 세우실 때는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그를 통하여 복음을 증거함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구약의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해서 각 시대마다 하나님 앞에 부름 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차적인 사명을 부여받았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율법을 준수하며, 이방 신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것을 중점으로 말씀을 선포하였다. 물론 그들은 장차 오실 메시야의 출현과 주님의 날에 대한 예언을 그들의 선포에서 제외시키지 않았다. 신약시대에 침례요한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으로서 임박한 천국의 도래와 메시야의 출현을 선포하였다.

    1) 예수님의 설교에 대한 강조

    마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성육신 하신 목적을 설교와 연관짓고 있다: “이르시되 . . .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 1:38). 마태와 누가 역시도 그들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주로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시는 일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다(마 4:17, 11:1; 눅 8:1; 20:1).

    물론 주님은 그의 사역을 설교로만 제한하지 않으시고 가르침과 치유를 동시에 행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신 사역이 설교사역 이었다(마 4:17).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내보내시면서 주님은 가서 천국 복음을 선포할 것을 명하셨다(눅 9:6).

    그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주께서 지상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하신 일은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부르시고 세상에 나가 복음(십자가의 구원 사건)을 선포할 것을 명하신 일 이었다. 사도들은 이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기 위하여 행정을 비롯한 모든 목회적 요소들을 일곱 집사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말씀 증거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실로 사도들은 복음 선포를 위해 살았으며 특히 바울과 베드로는 부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의 일차적인 사명은 다름이 아닌 말씀의 선포임을 그들의 사역을 통해서 명백히 증거해주고 있다.

    2) 바울의 설교에 대한 강조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권면하면서 말씀 증거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1-2).

    꺼져가는 자기의 생명을 의식하고 자기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젊은 디모데에게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도로써 그의 사역 가운데 그가 가장 중대하게 생각하여 왔던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생의 말년에 들어서야 비로서 디모데에게 설교의 우위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설교의 중요성은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 속에 계속해서 반복되는 주제였다(딤전 4:11; 4:13, 14, 16; 5:17; 6:2). 이것은 또한 목회자였던 디모데가 그의 사역 가운데서 가장 우선하여 행하여야 할 일이 설교임을 말하여 준다.

    3) 설교에 대한 교회사적인 강조:

    사도들을 핵심으로 이루어졌던 초대교회는 설교의 결과로 비롯되었으며 나아가 복음 증거를 교회의 최우선적인 사명으로 여겼다. 사도시대 이후 교회는 계속적으로 이 복음 증거의 사명을 수행하였으나 교회사를 통해서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때때로 교회가 심한 정체의 늪에 빠지기도 했으며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설교의 쇠퇴에 있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20세기 초 런던 대학의 교수였던 포사이트(P. T. Forsyth)는 기독교는 설교와 함께 흥하기도 하였고 쇠하기도 하였다고 증언한 바가 있다.3) 16세기의 위대한 종교개혁은 실상 하나님 말씀으로의 회복이요 복음 설교를 위한 개혁이었다.

    개혁의 중심에 섰던 루터(Luther), 칼빈(Calvin), 낙스(Knox) 등은 위대한 설교자들이었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부흥에서도 똑 같은 사실이 발견된다. 18세기 대각성 운동에서 설교는 언제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존 윗필드(John Whitefield), 존 웨슬레(John Wesley) 등은 그 시대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위대한 설교자들이었다. 19세기 교회는 찰스 스펄전(Charles Spergeon)을 비롯하여 요셉 파커(Joseph Parker), 알렉산더 맥클라렌(Alexander Maclaren)과 같은 능력 있는 설교자들과 함께 교회는 영적 부흥을 누렸다.

    교회사적으로 교회가 영적인 깊은 침체에 빠졌을 때의 원인은 설교가 있기는 하였으나 복음의 선포가 없었기 때문이었으며 그때마다 하나님은 설교자들을 불러 다시금 교회를 개혁시켰다.

    3. 전령자로서의 설교자

    바울은 디모데후서 1:11에서 자신이 전령자(kerux, 이하 케룩스)와 사도로 부름 받았다고 고백하였다. 바울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자신을 그리스도의 전령자(kerux)로 고백한 것은 설교자로서의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묘사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사용된 용어 “kerux” (전령자, herald)는 헬라 문화권 안에서 독특한 위치를 가진 인물을 가리킨다. 당시 헬라 문화권 안에서 케룩스의 역할은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일에 관한 공적인 공중 선포자였는데 그 역할은 왕이나 그 밖의 권위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아 보냄 받은 그 장소에 가서 부여받은 것을 정확히 전달하는 역할이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한 사람의 케룩스로서 설교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고대사회에서 케룩스가 전령자로 보냄을 받은 자였던 것같이 기독교 설교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공중 앞에 그것을 선포한다.

    베어드(J. S. Baird)는, “모든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는 그의 메시지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들어야 한다. 또한 설교자의 삶의 지속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오류 없이 받아서 그것에 더하거나 감하지 아니한 채 전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4)고 밝힌다.

    기독교 설교자는 복음서에 묘사된 것과 같이 예수에 의해 보냄을 받는다. “보냄을 받다"란 복음의 전령자로서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와 같은 정의는 “사도”란 단어에도 적용된다.

    사도란 용어는 유대사회 헬라어 용법에 따라 선택된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보냄 받은 공적인 사람으로서 신약성경에는 복음의 선포를 위해 보내지는 공적 신분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복음의 저자가 되신다. 오직 하나님만이 복음의 선포에 있어 권위자가 되신다. 그 분만이 인간 대리자 즉 전령자를 선택하실 수 있다. 전령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사명을 가진다.

    목사는 설교자로서 단순히 보고자나 진술자가 아니며 또한 자신을 선포하는 자도 아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의 생각을 설교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한다. 그의 설교는 그를 보내신 자의 권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바울의 고백과 같이 기독교 설교자는 자기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다.

    4. 현대적 적용

    고전 1:17-25의 말씀은 설교의 우위성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침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
    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
    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
    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
    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케리그마: 선포)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
    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
    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
    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
    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설교를 할 때 목사는 가장 힘들고, 가장 엄숙하며 가장 영광스러운 그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부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목사)에 대하여 “그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종 또는 기독교 사역자 이기는 하지만 훌륭한 설교자는 아니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대단히 모순된 말이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목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종이요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사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위해 세움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 무리를 먹이는 일로 부름 받은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떼를 양육한다.

    그러므로 목사의 목회 사역 중에서 가장 완벽하고 효과적인 사역은 설교에서 이루어진다. 설교에서 목사는 경고하고, 보호하며, 지도하고, 치료하며, 양육할 수 있다. 목사의 정체는 강단에서 가장 위엄있게 나타나며, 자기 일을 잘하는 목사는 결코 자기 양떼를 허약하게 만드는 법이 없다.

    따라서 이 시대에 부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가장 먼저 자신이 말씀 증거를 위하여 부름 받았다고 하는 자기 정체의식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 나아가 설교를 제 위치에 두지 않는 목회자의 목회사역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결코 성공적일 수 없을 것이다.

    II. 성서적 설교

    1. 설교의 성서적기초

    설교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을 기초로하여 선포되기 위해서는 설교는 마땅히 성서 위에 서 있어야하며 마땅히 신학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현대설교는 심리학과 사회논평과 정치적 수사법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설교는 시대적 적절성을 강조하면서 빈번히 복음을 값싼 강연이나 연설로 전락시키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멀티미어시대로 대변되는 21세기 전자시대를 맞이하여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라는 고유의 기능보다는 청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여야 한다는 필요성만을 강조하여 드라마나, 동영상으로 설교를 대체하려는 시도마저 일어나고 있다.

    기독교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를 근거로 한 성서적 기초를 분명히 할 때 비로서 설교로서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현대설교는 시대적 흐름과 사람들의 기호를 좇아감으로 그 위상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하여 Bryan Chapell은 현대설교의 인본주의적이며 형식주의적 경향을 혹평하면서 “복음주의적 설교가들은 . . . 그들의 메세지 증거에있어 도덕적 교훈이나 사회개혁에 일차적 관점을 기울이는 착오를 범하고 있다”5)고 진언하였다.

    리차드 메이휴(Richard L. Mayhue)는 현대설교가 시대적 적절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요구 앞에 굴복하고 결국 하나님의 계시에 소홀해졌다고 지적하였다.6) 존 맥아더(John F. MacArthur) 또한 현대 복음주의에서 성경적 설교가 사라지는 경향이 눈에 띌 정도가 되었고 강단이 경험 위주로, 실용주의로, 시사적 접근법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논평하였다.7)

    성서적 설교는 우선 무엇보다도 설교자들의 노력을 요청한다. 목회자는 교인의 숫자를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설교하여서는 안 된다. 설교가 단순히 교회성장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설교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청중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위안프로가 되어서도 안 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는 말씀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설교자는 자기 생각이나 사사로운 의견을 하나님의 말씀인양 전해서는 결코 안 된다. 설교자들이 성경의 목적과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만큼 말씀의 권위는 떨어진다.

    설교자가 성서를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주어진 것이다. 설교자에게 주어진 신구약성서는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으며 이미 살아계신 말씀이요 또한 과거에 계시되었던 말씀으로서 이 시대에 다시금 설교를 통하여 전달되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

    설교가 성서적 기초를 벗어남으로 말미암아 현대교회에서 설교의 권위는 쇠퇴하고 있다. 설교의 쇠퇴는 교회가 약해지고 세속화되는 가장 큰 요인이다. 만일 교회가 다시 영적 건강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설교가 적절한 성서적 기초를 확고히 세워야 한다.

    2. 성서 해석으로서의 설교

    a) 성서 해석자로서의 설교자

    신약성경의 최초의 설교자였던 사도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말씀을 들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동거동락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목격자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했던 생생한 인식을 가지고 설교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신 사건에 대하여 기록한 구약성서의 해석을 기틀로 하여 설교하였다. 그러나 현대 설교는 이미 과거에 계시되었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의해 선포되었던 말씀에 근거하여 말씀을 선포하게된다.

    따라서 설교자는 과거에 계시되었던 말씀을 취하여 그것을 해석하고 설명하여 현대적 적용을 제시하는 사명을 가진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마땅히 성서해석자가 되어야 한다.

    b)성경해석의 필요성

    현대설교가 마땅히 성서의 해석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성서의 메시지는 일차적으로 특정한 청중에게 이미 주어졌던 것이며 그들은 역사적 문화적 관점에서 현대의 수신자들과 현격히 상이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설교가 성서의 본문을 단순히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설교자는 현대의 청중으로 하여금 본문의 현대적 의미를 생각하기 이전에 당시 최초의 수신자들의 입장에서 그 말씀을 먼저 이해 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현대설교가 성경해석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성서는 각기 다른 저자들에 의해 각각 다른 상황, 다른 문화, 다른 세계관 속에서 선포된 메시지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석학의 과제는 과거에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의 진의를 발견하고 나아가 오늘 이 시대의 삶 안에서 해석하여 과거의 말씀이 오늘 이 시대에 제시하는 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존 스타트(John Stott)는 이처럼 성서의 세계와 현대를 연결하여 오늘 현대의 청중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설교자의 작업을 다리놓기(Bridge Building)라고 하였다.8) 이와 같은 다리 놓기 작업을 통하여 설교자는 성경이 이 시대와는 관계없는 과거의 말씀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밝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설교자가 주의할 점은 과거와 현대의 갭을 좁히는데 있어 지나치게 현대의 필요에 초점을 맞추려하게 되면 비성서적으로 흐를 수가 있으며 반대로 지나치게 성경의 원래적 의미만을 강조하게 되면 현대의 메시지로서 생명력을 잃을 수 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성서의 원리와 삶의 적용 두 면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잡힌 해석 작업을 하여야 한다

    3. 설교의 내용

    설교에는 반드시 바른 기초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기초를 바탕으로 한 구성이 짜여져 있어야 한다. 성서에 기초를 둔 설교는 자연히 성서의 가르침을 전달하게 된다. 청중들은 하나님이 성경에 무엇이라 말씀하셨는지에 관하여 듣고 싶은 열망이 있으며 정확한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설교를 내용상으로 구분한다면 우리는 두 가지 형태를 말 할 수 있다. 첫째는 구속의 복음을 핵심으로 전하는 케리그마(Kerugma)와 둘째로, 케리그마의 실천적 적용으로서 디다케(Didache)이다.

    1) 케리그마

    케리그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라”는 명을 받고 복음을 선포했던 사도들의 설교에서 그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사도적 케리그마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핵심으로 하는 구속의 메시지이다.

    우리는 이것을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에서 엿볼 수 있다: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2-4).

    구체적으로 사도들의 설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예언적 선포: 사도들은 그들의 메시지의 뿌리와 근거를
    구약에 두었으며 구약의 내용에 비추어 현재 벌어진 십자가 사건을 받아들이고
    설명하였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의 삶: 선지자를 통하여 기록된 것과 같이 예수는 아브라
    함의 씨로 탄생하였으며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한 인간으로 지상적 생애를 살았
    음을 분명히 밝혔다.

    (3) 예수의 죽음: 예수의 죽음은 자신의 죄가 아닌 모든 인간의 죄의 대가를 지불
    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구속의 교리”가 주어진다. 예수는 죽음을 당할

    죄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이 땅의 사람들의 구속을 위한 죽음을 당했다. 사도
    들은 “무지한 백성들이 생명의 주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십자
    가에 못 박아 매달았다”고 폭로한다. 그리고 이처럼 예수의 죽음이 대속적 이었
    음과 더불어 구속의 교리를 제시하였다.




    4) 예수의 부활: 부활 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최 절정을 이루며 예수의 죽음과 더불어 사도적 설교에서 가장 중대한 핵심 내용이 된다. 사도행전에서 발 견되는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는 예외 없이 예수의 죽음과 더불어 부활의 사실을 핵심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그가 고린도에 있을 때 어떻게 그들에게 설교하였는가를 상기시키면서 그 내용은 곧 예수의 죽음과 부 활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5) 회개의 촉구: 회개의 촉구가 없이 진정한 설교는 없다. 사도들은 “예수는 구약의
    예언자들의 예언데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와서 죄 없으신 분으
    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며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음”을 밝히면서 청
    중들로 하여금 그 사실을 믿고 죄 사함 받으며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을 결단 하
    도록 촉구하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행하신 모든 일의 목적
    이 곧 그들을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이제는 그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으라고 하는 다급한 요청이었다.9)

    케리그마 설교는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이 원색적으로 증거되는 설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복음설교(Gospel Preaching), 전도설교(Evangelistic Preaching), 구원설교(Salvation Preaching), 또는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Christ-centered Preaching) 등으로 표현된다.

    2) 디다케(Didache)

    디다케의 문자적 의미가 말하듯이 디다케 설교의 주안점은 성도들을 말씀으로 세워주고 가르치는 것이다. 디다케 설교는 케리그마와 분리해서 논하여 질 수 없다.

    왜냐하면 케리그마를 통하여 복음을 접하고 회심한 무리들에게는 말씀의 가르침을 통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양육(영적 성장)을 위한 단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사도행전 2장은 잘 보여주고 있는데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회심함 무리들은 교회에 들어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이 자라 나갈 수 있었다(행 2:423).

    가르침을 위한 설교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과 그리스도적 삶, 희생과 봉사, 등을 비롯하여 삶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기 위한 목적의 설교로서 상담설교(Counseling Preaching), 문제해결 설교(Problem-solution Preaching), 목양설교(Pastoral Preaching), 때로는 치유설교(Therapeutic Preaching)등이 이에 속한다.

    이와 같은 형태의 설교들은 청중의 영적 필요를 충족시키며 청중의 그리스도적 삶을 성숙시키기 위한 것으로 청중의 영적 상태와 삶의 문제 등을 면밀히 파악하고 이와 같은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가르치고 실천적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청중을 이끌어 간다.

    목회자의 설교는 복음의 제시를 통해서 아직 구원의 문제가 불확실한 청중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와의 영적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케리그마 설교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영적 성장을 이루어 나가도록 하는 디다케 설교의 균형을 잘 유지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설교는 디다케적인 경향성을 띠고 있다.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은 언젠가부터 복음을 전한다고는 하면서도 실제로는 복음의 핵심이 결여된 생명력 없는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케리그마적 메시지 증거를 실천하기 위하여 네 가지 관점이 요청된다.

    첫째, 교회 밖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신약교회는 지역교회이다. 개 교회는 각자가 위치한 지역사회(community) 안에서 그 사명을 다하여한다. 지역사회를 향한 개교회의 최고의 봉사와 사명은 그 지역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 교회들이 교회 안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지만 정작 교회 밖을 향한 프로그램 개발에는 매우 소극적이다.

    일부 복음 전도사들을 제외하고는 어쩌면 오늘의 설교자들은 교회 밖에서 복음을 선포하여야 한다는 의식 내지는 철학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연구하면 얼마든지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둘째, 구도자 예배를 실시하는 것이다. 구도자 예배는 아직까지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영적인 직면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독립적인 예배를 시행하는 것으로서 이때의 모든 초점은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메시지를 접하며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것이다.

    셋째, 주일 아침 예배시의 설교를 통하여 구속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한 주일에 적어도 몇 차례의 예배를 드린다. 주일아침은 대체적으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한다.

    그 중에는 구속의 복음을 구체적으로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복음은 접하였으나 아직 구원의 체험이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사람들을 일차적으로 고려하여 확실한 구속의 메시지를 선포하여 그들로 복음을 접하며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하자는 것이다.

    케리그마의 메시지는 이미 구원 얻은 성도들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이미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성도들도 구속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그들의 믿음을 다시 한번 확신하는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나아가 그들로 구속의 말씀을 전하고 싶은 의욕을 가지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저녁 예배 시간 등을 통하여 영적인 훈련이나 삶의 문제해결을 위한 가르침에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넷째, 하나의 응용된 방법으로서, 소그룹 운동의 활성화를 통해서 복음을 전함으로 교회의 구속사적 사명을 이행 할 수 있다. 과거 한국교회가 유지해왔던 구역이나 속 모임의 형태를 체질적으로 개선하여 작은 그룹들을 구성하여 복음전도를 위한 하나의 유기체적 모임을 형성하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활발한 전개와 함께 교회의 관심을 끌고있는 “쎌(Cell)” 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소그룹의 명칭을 어떻게 정하든지 작은 그룹들의 가장 일차적 목적은 복음 증거이다. 각 그룹을 통해서 하나님을 직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교회공동체의 회원으로서 점차 양육을 받게될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의 설교는 케리그마 복음이 살아 있어야하며 케리그마의 실천적 적용으로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적 삶의 풍성함을 위하여 디다케적인 메시지가 동시에 요청된다.

    4. 설교자의 태도

    많은 목회자들이 훌륭한 설교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설교에 대한 열정이나 헌신보다는 일종의 테크닉이나 어떤 방법론만을 배우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목회자들은 바울의 설교에 대한 열정적 헌신은 외면하고 그의 테크닉 곧 설득력만 모방하여 설교하려 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스타트의 지적과 같이 설교자의 직분은 청지기직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증거하는 일을 목회자에게 사명으로 맡기셨다. 청지기의 책임은 맡은 일에 대한 충성과 헌신이다. 하나님 말씀을 전파할 소명을 받은 목회자는 그 직분에 대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10)

    바울은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디도서 1:3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복음 선포)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또한 바울 사도는 그의 설교에 대한 불타는 사명감을 고린도 전서 9:16-17에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a. 말씀 연구

    설교자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청지기직인 설교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함, 훈련,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설교가 깊이가 없고 내용이 부실하여 지는 주된 이유는 말씀에 대한 깊은 연구의 부족 때문이다.

    미국 달라스 제일 침례교회의 원로목사 크리스웰(W. A. Criswell)은 목사가 그 주간에 깊이 있는 말씀 연구를 하지 않으면 주일날 예배당에 찾아오는 교인들에게 영양분 있는 말씀을 먹일 수 없음을 지적한다.11)

    크리스웰은 목사에게는 무엇보다도 좋은 연구 습관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특히 오전 시간에는 주로 연구를 위한 시간을 가질 것을 권면 하고 있다.

    특히 본문의 내용을 그 배경에서부터 충분히 연구함으로만 가능한 강해설교의 경우,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바람직한 성서적 설교로 강해설교를 인정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부지런한 연구가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스타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강해설교는 제일 힘든 훈련이다. 강해 설교를 잘 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그
    때문일 것이다. 다음과 같은 사도들의 본과 말을 따를 준비가 된 사람들만이 그
    일을 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 . .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 6:2, 4).
    말씀을 조직적으로 설교하는 일은 말씀을 조직적으로 연구하지 않고서는 불가능 하다. 매일 대충 몇 구절 읽는다든지 어떤 성경 구절을 가지고 설교해야 할 필
    요가 있을 때에만 그 구절을 연구한다든지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우
    리는 매일 성경에 우리 자신을 푹 젖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12)

    미국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의 J. 아담스(Jay Adams) 교수 또한 목사의 근면한 말씀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좋은 설교를 하려면 고된 작업이 필요하며 알맹이가 없는 설교를 하게되는 근본 이유는 설교준비에 적절한 시간과 힘을 기울이지 않은 탓이라고 지적한다.13) 탁월한 설교자 헤리 포스딕(Harry Emerson Fosdick)은 1분 설교를 위해 1시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목사처럼 읽어야 할 책도 많고 공부 할 것도 많은 직책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목회자들은 고작 성서를 연구한다는 것이 설교작성을 위해서 뿐이며 어떤 사람들은 아에 그것도 하지 못해 설교준비를 대충 대충 넘어가기 식으로 하며

    어색하거나 잘못된 적용을 내리는 것에 상관없이 어떻게든 청중에게 은혜를 끼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설교자에게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요 그를 설교자로 불러 세워주신 하나님 앞에서 대단히 불충한 일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b. 설교에 대한 열정

    열정적으로 설교한다는 것은 설교 내용을 설교자 본인이 먼저 자기 것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설교자는 먼저 본인이 준비한 자기 메시지의 내용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젖어 들 필요가 있다.

    열정적 설교자는 메시지의 내용을 통하여 자신이 먼저 감동을 받고, 청중들에게 그 은혜를 함께 나누며 그들이 감동 받기를 열망함으로 설교에 임한다.

    로이드존스(Lloyd-Jones)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설교자는 언제나 자기 설교에서 자기가 감명 받은 바를 반드시 전해야한다. 감명
    받은 것이 없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절대로 필요하
    다. 자기가 하고있는 일에 대해 자기가 감동을 받는다는 사실로써 사람들에에 감동
    을 주어야 한다. 그는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하면 잘 전할 까를 고 민 한다. 본인이 설교 내용에 큰 감동과 전율을 느끼므로 다른 모든 사람도 그런 체
    험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따라서 그는 이 일을 정렬과 열정과 사람들에 대한 뚜렷 한 관심을 가지고 행한다.14)

    로이드 존스는 불타는 논리와 감동적인 이성, 즉 정렬과 신학은 별개의 것이 아니며 목사의 설교에서 일치되는 것임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타는 논리! 감동적인 이성! 이 두 가지가 모순된다는 말인가? 물론 이 둘은 모순
    되지 않는다. 당신이 사도 바울과 그 밖의 다른 이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이 진리
    에 관한 이성은 매우 감동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불타는 정열의 신학이다. 정열로
    표현되지 않는 신학은 불완전한 신학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신학에 대한 인간의 이
    해에 결점이 있는 것이라고 나는 주장하는 바이다. 설교란 정열에 불타는 인간을
    통해 나오는 신학인 것이다.15)

    참된 열정은 외적 열심을 넘어선다. 열정은 변화된 마음과 성령의 비췸을 받아 옳게 분별된 말씀의 힘에 격동되고 그 말씀을 개인에 적용하여 활력을 얻는 영혼에서 나온다. 성령의 능력으로 설교자의 가슴이 더워지지 않는 한 그를 통하여 나오는 설교는 결코 뜨거운 설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설교자는 멋지고 훌륭한 설교를 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 편의 설교를 위해 기도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성령이 그를 지배하시도록 기도하여야 한다. 김남준은 그의 책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에서 설교자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함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 . . 그는[설교자] 특별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성령에 의하여 기름 부은 바 된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의 교회와 세상이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설교자가 성령의 손에 붙들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줍니 다.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위대한 영적 각성을 일으키는 도구로 쓰임 받았던 설교자
    들의 사역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특이한 점은 영적인 강인함과 연단된 꿋꿋함 입니
    다. 그리고 이러한 특이한 성격은 모두 그들 위에 임하였던 성령의 권능에 기인 하
    는 것입니다.16)

    인위적 노력으로는 외적 열심을 발휘할 수 있지만 열정은 발휘할 수 없다. 열정을 높은 톤의 음성이나 현란한 기교로 오해하여서는 안된다.

    오히려 열정은 종종 언변 이외의 방식으로 설교자에게서 흘러나와 설교의 뼈대가 되는 부분들을 한데 결합시키는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한다. 열정은 양날 선 검인 말씀이 목회자의 삶에 진한 감동을 주었음과 이것을 증거하고 싶은 뜨거운 그의 심정으로 나타난다. 진정한 열정은 성령의 충만함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III. 설 교 준 비

    질 높은 설교는 우연히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부단한 노력에서 오는 것으로서 창조적 생각, 주의 깊은 탐구, 그리고 성령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기름진 설교를 위한 지름길은 있을 수가 없다.

    설교를 잘하기 원하는 목사는 충분한 시간을 설교준비를 위해 따로 준비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설교준비는 시간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헤리 에머슨 포스딕(Harry Emerson Fosdick) 목사는 설교 시 1분을 위해서 한시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설교자들은 너무 많은 행정에 들이는 시간 때문에 불평할 수 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솔직히 인정할 것은 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목회자는 설교준비를 하면서 본문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과중한 행정을 비롯한 목회적 일들은 하나의 변명거리에 불과하다. 척 스윈돌(Chuck Swindoll)은, 내가 주중에 다른 일에 대하여 ‘Yes’ 하고 말하는 것은 주일 아침 말씀을 사모하는 청중들 앞에서 ‘No’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따라서 설교준비는 다음의 7가지 필수 단계를 위해 적절히 그리고 충분히 고려되지 않으면 안된다.

    1. 첫째 단계: 설교자의 준비

    목사의 모든 삶은 설교준비를 위한 삶이다. 목회사역의 능력은 목사 개인의 충실한 내적 삶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정기적인 경건 시간은 목회자의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게 하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그 심령 안에 떠오르게 한다.

    만일 목회자가 그의 심령에 말씀하시는 영감 어린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면 그의 설교는 생명력을 상실한 표면적 소리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폭넓은 독서 또한 치명적으로 중요하다. 목회자들의 설교를 위한 독서는 전기, 역사, 현대 사회와 심리학 연구 등을 비롯해서 Time지 나 News Week지 등 세상적인 잡지류까지 폭넓게 이루어져야한다.

    과거 교회의 역사 속에 빛나는 신앙의 인물들에 대한 전기와 특히 위대한 설교가들에 관한 전기는 설교자들에게 매우 유익함을 제공한다. 일간 신문은 물론이다.

    스타트의 말과 같이 성경의 시대와 현 시대를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는 설교자에게 성경을 연구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설교자가 그의 세계를 친숙하게 아는 것이다. 위대한 스펄젼은 한 손에 성경 다른 한 손에 신문을 들고 설교한다는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신학자요 설교자였던 칼 바르트(Carl Barth) 역시 이것을 공감하고 주장하였었다.

    2. 둘째단계: 주제와 본문의 선택

    주제와 본문은 어느 것이 먼저 정해지는가? 그에 관한 정해진 원칙은 없다. 어느 것이 먼저 오든 상관없으며 때로는 동시에 결정될 수 도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본문이 있기 때문에 주제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제가 있으므로 적절한 본문을 택할 수 도 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설교할 본문을 가지고 있는 목사는 무엇을 설교할 것인가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설교할 주제만 가지고 있는 설교자는 어느 본문을 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 고민이 될 수 도 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설교할 내역을 미리미리 계획을 세워서 이런 고민으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 설교자들에 따라서 어떤 설교자들은 앞의 3개월, 6개월, 혹은 1년 간의 설교 계획을 세워놓고 설교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3. 셋째 단계: 본문연구

    본문 연구를 위한 세 가지 과제가 설교자에게 주어진다. 순서를 따라 말한다면:

    1) 본문을 여러 번역판으로 읽으라: 다양한 번역판으로 본문을 읽음으로 설교자는 본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그리고 세미한 것까지 살필 수 있다.

    2)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치밀하게 정리하라: 모든 통찰된 사실들을 기록한다. 너무 성급하게 주석으로 달려가면 짜집기 설교가 되고 만다. 설교는 결코 다른 사람의 생각과 나의 아이디어를 종합해서 나오는 2차적 정보 나눔이 아니다.

    1세기 전 미국의 탁월한 설교자 필립스 부룩스(Phillips Brooks)는 말하기를, “설교는 인격체를 통한 진리” 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라고 하는 인격체를 통해서 준비되고 나를 통해서 전달되게 하라. 설교의 개요 작성(설교의 뼈대, skeleton)이 완성 될 때까지는 다른 사람의 아디디어를 참고하지 않는다.

    3) 주석류를 참고하라: 될 수 있는 데로 주석류는 주해적인 것(Exegetical)과 비평적인 것(Critical)을 참고한다. 경건류의 주석은 자칫하면 본문 연구에 혼선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본문에 대한 석의 연구가 완전히 끝나기까지는 경건류의 주석은 참고하지 말자. 주석류는 될 수 있는데로 본문 석의를 도울 수 있는 주해적인 것을 쓰자.

    4. 넷째단계: 자료의 정리(구성).

    이 단계에서 설교자는 발췌한 모든 자료들 중에서 어떤 것을 설교작성에 실제로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것들은 배제될 것이다. 한때, 유명한 달라스 제일침례교회의 목사였던 조엘 그레고리(Joel Gregory)는 한 편의 설교를 위하여 실제로 사용하는 것의 5배의 자료를 모은다고 했다.

    그는 만일 설교자가 자신이 알고있는 모든 것을 말하려 한다면, 그것은 그가 충분히 알고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레고리는 강해의 예술은 삭제하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만일 본문의 연구를 위해 헬라어 구문을 분해하고 문법적인 정리를 하였다고 한다면 설교자는 그것을 일일이 청중들에게 설명하려 하지말고 그 분해분석을 통해 나온 최후의 통찰력 있는 것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5. 다섯째 단계: 설교작성

    설교자는 표현능력, 논리적 능력을 키우며, 그리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설교를 완벽하게 원고로 만드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함으로 균형 잡힌 설교구성에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반복되는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방지할 수 있다.

    미숙한 설교자일수록 설교작성에 있어, 처음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되지 않은 채 말하려하고 하며 자질구레한 느낌을 줄만큼 장황하게 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숙련된 설교자는 처음의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가 그것이 적절하게 표현될 때까지 정리하고 압축시킨다. 설교란 것은 입으로 무엇을 자질구레하게 설명하듯이 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는 귀와 마음에 전달되는 것이다.

    구두적인 것은 문서적인 것과 다르다. 구두적인 것은 간결하여야 하며 전달의 효과를 고려한 것이 되어야한다. 기록된 이야기는 여러번 반복해서 볼 수 있지만 설교는 일회적 구두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6. 여섯째 단계: 준비된 설교에 심취하라

    만일 설교준비가 주말 전,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끝났다면 그 다음 단계는 준비된 말씀에 깊이 젖어드는 것이다. 설교자가 준비된 설교에 더 깊이 잠길수록 그 설교는 그 설교자의 가슴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즉 그와 같은 설교는 그 설교자를 넘어오는 메시지가(come over) 아니라 그 설교자를 통하여(come through) 나오는 메시지가 된다. 필자는 한동안 성가대를 지휘해본 경험이 있다.

    처음 시작했을 때 얼마나 두려운 일이었는지 일주일 내내 다가오는 주일 찬양할 곡을 수 없이 불러보고 악보를 암기하고 거울 앞에 서서 일주일 내내 지휘 연습을 하였다. 마찬가지로 준비된 설교를 가지고 거울 앞에서나 빈 예배당에서 연습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7. 일곱 번째: 성령의 능력을 의지라고 기도하라

    완벽한 원고가 작성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인간적인 준비만으로 설교준비는 끝나지 않는다. 설교준비의 처음도 그렇지만 마지막 단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위한 기도이다.

    준비된 원고를 앞에 놓고 성령의 능력과 도우심을 위해 기도하라.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히기 위한 마음가짐과 영적인 준비를 하라. 성령께서 자신을 자유롭게 사용하시도록 자신을 철저히 준비시키자.

    그리고 준비된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들이 마음이 잘 준비되도록 기도하자. 설교가 다 준비되었음에도 아직 불안한 것은 기도의 부족일 수 있다.

    7 여덟 번째 단계: 말씀의 선포

    준비된 메시지를 가지고 강단에 올라가는 설교자는 긴장감이나 어느 정도의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성실하게 말씀을 준비한 설교자는 담대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주어진 설교 본문을 충분히 이해하고, 정확히 해석하고, 주의 깊게 적용을 꾀하였다면 그리고 성령의 역사 하심을 위해 기도하였다면 담대하라.

    성령이 당신과 함께 하실 것이다. 설교를 하고 나서 어쩌면 당신은 당신의 설교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당신의 그것과 다를 수 있음을 기억하라. 두려워 말고 당신이 준비한 메시지를 선포하라. 성령을 의지하라. 당신의 영은 주안에서 성령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나가는 말

    이 시대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사람들을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설교자의 직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런 것이요 가장 놀라운 사역이다. 과거에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고 성육신 하신 아들 하나님을 통하여 친히 말씀하셨던 하나님은 사도들과 초대교회를 통하여 구원의 복음과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지난 세기들 동안 하나님은 모든 시대마다 친히 불러 세우신 설교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다. 오늘 우리가 살고있는 21세기 또한 하나님은 친히 부르신 종들을 통하여 여전히 말씀하신다.

    성경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은 각 사람 개개인의 구원이다. 하나님의 메시지로서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취하신 구속적 활동을 선포한다. 제임스 스튜아트(James Stewart)는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말씀의 선포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구속활동의 필연적 부분으로 그 자체로서 구속사(Heilsgeschichte)에 속하는 것이다.”17) 설교는 이 시대에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구속적 사건이다.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 시대의 사람들을 계속적으로 대면하신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역에 부름 받은 설교자의 사명은 참으로 지대하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그 분의 종들은 무엇(목회의 여러 가지 사역 내용)보다도 이 구속의 메시지를 전하며 영혼들을 구원해 내기 위하여 부름을 받는다.

    계절도 바뀌고 유행도 바뀌고 시대 풍조 또한 바뀌지만 기독교회의 설교는 변할 수 없다. 그것은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영혼들을 구원해내시며 그분의 뜻을 이 땅위에 선포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설교가 시대를 초월하여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설교자의 임무 또한 변화 될 수 없을 것이다.

    설교자의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충성스럽게 전파하는 것이다. 이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자가 진정한 설교자요 또한 목회자이다. 그러므로 충성스런 목회자는 동시에 성실한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 성공적인 목회자와 충실한 설교자는 동질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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