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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교회 “더 낮은 자세로 섬기겠다 / 신으로 군림하던 이재록 교주의 처절한 몰락
    2018-08-31 06:13:57   read : 239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명성교회 “더 낮은 자세로 섬기겠다”

    위임목사 청빙 결의 유효 판결 이후 소외된 이웃 사랑 다짐

    명성교회(담임목사 김하나)는 예장통합(총회장 최기학 목사) 총회재판국의 위임목사 청빙 유효판결 이후 더욱 낮은 자세로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 명성교회 ©뉴스파워

    명성교회는 “그동안 저희 명성교회를 비판하고 반대한 분들이나 지지하고 격려해 주신 분들 모두 저희 명성교회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라 믿고, 저희는 총회의 판결을 겸허히 그러나 무거운 부담감으로 받아들이며 이 모든 것이 한국교회를 잘 섬기라는 주님의 명령으로 알고 주님의 교회로서의 사명을 더욱 성실히 감당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또한 “저희 명성교회 온 교우들은 그동안 명성교회를 염려하셔서 주신 격려와 질책 모두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위임목사를 중심으로 더욱 낮은 자세로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명성교회는 UN 참전국가인 에디오피아에 종합병원과 의과대학 설립, 필리핀 마닐라 아카데미 운영을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숙소 제공, 농어촌 목회자 자녀 장학관 운영, 홀사모들의 거처 마련 등 국내외 사역들을 감당해왔다.

    다음은 입장문 전문.

    명성교회는 엎드려 기도드립니다

    저희 명성교회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염려해 주신 한국교회와 교단의 모든 지도자와 동역자를 비롯한 모든 성도님들께 겸손한 마음으로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 재판국은 2018년 8월 7일 명성교회 위임목사 청빙 결의 무효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여 위임목사 청빙 결의가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저희 명성교회를 비판하고 반대한 분들이나 지지하고 격려해 주신 분들 모두 저희 명성교회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라 믿고, 저희는 총회의 판결을 겸허히 그러나 무거운 부담감으로 받아들이며 이 모든 것이 한국교회를 잘 섬기라는 주님의 명령으로 알고 주님의 교회로서의 사명을 더욱 성실히 감당할 것입니다.

    또한 저희 명성교회 온 교우들은 그동안 명성교회를 염려하셔서 주신 격려와 질책 모두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위임목사를 중심으로 더욱 낮은 자세로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동안 명성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며 주님의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2018.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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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으로 군림하던 이재록 교주의 처절한 몰락



    여신도준강간 혐의로 구속 재판···포승줄 묶여 공판 참석



    ▲ 시공을 초월하는 기도를 드려 지구 반대편의 사람을 치료한다는 이재록 교주

    이재록 교주는 누구인가? 만민중앙집단에서 신으로 군림했던 자이다. 어느 정도였을까.

    오던 비도 그치게 했다고 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기도로 지구 반대편의 병자도 치료한다는 사람이었다.

    그가 공의를 쌓은 대가로 죄사함 받을 기회도 만들었다고 한다.



    ▲ 만민중앙서점에서 팔리는 이재록 교주 액자(기포스 DB)

    그의 얼굴이 찍힌 사진까지 만민 서점에서 팔렸다. 우측 빨간색 동그라미는 열쇠고리다.



    ▲ 이재록 교주를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신도들

    많은 신도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며 하나님의 보좌 좌편에 앉았다던 그다. 만민측 체육대회가 있을라치면 선그라스를 끼고 폼나게 꽃차 타고 등장했었다.



    ▲ 2013년 8월 5일 만민측 체육대회에 꽃차타고 등장하는 이재록 교주



    그랬던 그가, 그랬던 그가··· 2018년 8월 20일 포승줄에 묶여 범죄자들과 함께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사 14:12)라는 말씀이 저절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물론 그는 아침의 아들도, 열국을 엎은 적도 없지만.

    그토록 교인들의 추앙을 받던 존재가 왜 구속 재판을 받고 있을까? 2010년 10월부터 5년간 만민중앙성결교회 신도 7명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 때문이다. 사실 이 교주의 성폭행 의혹은 20여년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의 과거 행각은 이미 ‘말’지 1999년 4월호에 폭로돼 있다. 당시 ‘말’ 지는 한 교주(기사 상에선 목사로 표현)가 △과천의 한 아파트로 여 신도들을 불렀다 △마음이 성결하고 죄가 없으면 아담과 하와같이 벌거벗고 살아도 수치를 느끼지 않는다 △죄가 없으면 옷 입고 있을 필요가 없으니 다 벗으라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치듯 너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칠 수 있느냐 △너희를 부른 건 하나님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너희들의 영을 너무도 사랑하니 그걸 몸으로 표현한 것이다며 성관계를 맺었다고 기사화했다. 말지가 ‘목사’라고 이니셜 처리를 해서 폭로한 이 사람이 곧 이재록 교주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주의 구속 재판은 8월 23일 오후 2시, 27일 오전 11시, 30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제 418호에서 속행된다. 이 씨의 재판에 참석한 한 탈퇴자는 "(속으로) '뭐야 이렇게 노약한 할아버지야'라고 생각했다"며 "저런 노인네에게 꽃다운 젊음을 짓밟힌 우리 피해자들이 가여웠고 그는 반드시 단죄를 해야만 한다"고 전했다.

    한편 JTBC 뉴스룸은 2018년 8월 21일 보도에서 만민중앙 이재록 씨에게 성폭행 당한 피해자들의 실명이 법원에 근무하는 만민중앙 신도에 의해 노출이 됐다고 폭로했다. 해당 보도에서 JTBC 뉴스룸은 "(피해자들은) 경찰 조사에서부터 가명으로 조사 받으면서 철저하게 보호 받아 왔습니다"며 "하지만 법원 내부망에 피해자 실명과 증인 신문 일정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고 한 법원 직원이 이 정보를 외부에 알렸습니다. 이 직원은 '만민교회 신도' 였습니다"라고 밝혔다. 법원이 뒤늦게 징계에 들어갔지만 이미 피해자들 신상이 교회 단체 대화방에 공개된 상황이다. 법원은 해당 직원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고 JTBC는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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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교회에 가는 이유?
    “설교 아니다”



    최근 브랜든 힐게만 목사가 웹사이트 프로프리처에 '사람들이 교회에 가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다음은 그 주요 내용.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는 '이달 초 미국인들이 종교적인 예배에 참석하는 이유'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는 4,729명의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지난 해 12월 4일부터 18일까지 실시됐다.
    한달에 한두번 예배에 참석하는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교회에 참석하는 이유에 대해 약 81%의 응답자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69%는 "아이들이 도덕적 기반을 가질 수 있어서"라고 응답했으며 68%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교회에 출석한다고 응답했다.
    교회를 출석하는 이유 다섯 번째 순위(59 %)는 "설교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라고 응답했다.

    사람들이 응답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대답은 그들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자녀들이 하나님을 따르며 더 하나님과 같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이밖에 "어려움과 슬픔에 대한 위로를 얻기 위해"(66%), "믿음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57%), "가족들의 신앙 유산을 지키기 위해"(37%) 등을 교회 출석의 이유로 응답했다.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19%) 혹은 배우자가 가족을 기쁘게 하기 위해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한다고 대답한 사람들도 있었다.

    정규 예배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한 후속 질문에서 교회에 참석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한 가지에 대해서는 약 60%가 "하나님에게 가까워 지고 싶어서"라고 대답한 응답자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는 8%, "신앙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6%), "설교가 가치 있어서"라는 응답은 4%에 불과했다.

    따라서 설교가 필수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갈급함이 있다.
    나는 그 이유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주일 내내 하나님께 가까이 있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일상 생활의 고민 , 죄의 유혹, 하나님을 믿지 않는 친구, 가족 및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현실 세계에 산다 .

    주일이 돌아오면 그들은 영적으로 매우 굶주린 상태다.
    우리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잊을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데 도움이 필요하다.

    많은 설교는 도덕적 생활과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에 초점이 있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교회에 올 필요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것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기본적인 필요는 더 나은 행동이 아니라 더 좋으신 하나님이다.

    다른 설교는 교회의 비전에 초점을 맞추고 그 비전을 위해 사람들에게 돈과 시간을 할애하라고 말한다. 그것은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가장 큰 필요는 더 큰 교회가 아니라 더 큰 하나님이다.

    설교의 또 다른 경향은 성경에 대한 더 많은 지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 역시 아주 좋다. 그러나 그들의 기본 필요는 성경 지식이 아니라 성경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고려해야 할 질문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교회 예배는 어디로 회중을 데리고 가고 있는가?

    사람들을 더 나은 행동, 참여 또는 더 많은 지식으로 이끌고 있는가? 또는 우리는 사람들을 궁극적으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만남인 하나님을 알기 위해 이끌고 있는가?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는 법을 모른다.

    이것이 일부 교회가 죽어 가고 다른 교회는 성장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성장하는 교회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기대하는 곳에 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의 존재를 느끼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사랑을 경험하기를 기대한다.

    이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지역 사회의 일부가 되고 좋은 설교를 듣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굶주림과 갈증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는 것이다.
    조언이나 도덕을 가르치지 말라.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내라.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족하다면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족하다면 거기에서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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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옥주집단, 신도 폭행 ‘타작마당’ 방영 후폭풍 “신도 통제하고 억압하는 수단”

    지도부 구속·신도 구출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 진행 중… 피해자들 손배소도 추진



    신옥주집단, 신도 폭행 ‘타작마당’ 방영 후폭풍 “신도 통제하고 억압하는 수단” 기사의 사진
    신옥주씨가 타작마당이라는 이름으로 신도를 폭행하고 있다. 신씨는 자의적 성경관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과 통합 고신 합신 교단에서 이단으로 지정됐다. SBS 방송 캡처

    SBS가 25일 방송한 ‘그것이 알고 싶다’가 신옥주집단의 ‘타작마당’ 실제 영상을 공개해 후폭풍이 거세다. 신옥주씨가 신도들의 머리를 쥐고 흔들거나 뺨을 내리치고 자식이 부모를 폭행하게 하는 타작마당의 모습은 이들의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인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지목된 집단이라는 사실을 명시하지 않아 정통교회인 것처럼 혼동할 수 있게 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피지에서 2년간 머물다 지난해 탈출한 김성일(가명)씨는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된 타작마당은 신옥주집단 안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야만적 일들이었다”면서 “한번 폭행하면 죽지 않을 만큼 때리는데, 지금도 신도들이 자기 의견을 펼치지 못하게 통제하고 억압하는 도구로 써먹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타작마당이라는 이름아래 사돈 간에 서로 폭행을 하고 손자와 손녀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폭행하는 일도 있었다”면서 “사악한 종교집단을 그대로 놔두면 자기들끼리 결속해 신도들을 ‘염전노예’처럼 평생 부려먹을 게 뻔하다. 한국 정부는 강한 의지를 갖고 단기간에 조직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2016년 피지에서 탈출한 박명숙(가명)씨도 “지금도 피지 내 식당이나 빵집, 미용실 등에서 일하는 여신도 중 서비스 때 안색이 좋지 않거나 음식 맛이 좋지 않으면 끌려가 타작마당을 당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이런 범죄행위가 가능한 것은 신씨가 자신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세뇌시켜 놨기 때문”이라고 폭로했다. 박씨는 “그들은 피지 주민을 먹여 살리기도 힘든 좁은 땅에서 세계의 난민을 돌보고 신씨의 아들 김다니엘(본명 김정용)을 요셉처럼 총리로 만들어 정치·경제를 장악하겠다는 망상에 빠져있다”면서 “더 큰 사고를 치기 전에 지도부를 한국으로 송환해 모두 구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형택 한국기독교이단상담연구소 소장은 “그동안 신옥주집단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이 써먹는 비유풀이 방식으로 종교사기를 쳐왔다”면서 “이번에 그 실체가 일부 드러난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평가했다. 박 소장은 “방송을 제작한 PD가 크리스천이 아니다보니 정통교회와 이단의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것 같다”면서 “한국교회 연합기구가 나서서 이 같은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용식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장도 “신옥주집단이 경영하는 GR(Grace Road)그룹과의 커넥션 때문인지 현지에서 체포된 지도부가 이틀 만에 피지 정부에 의해 풀려났다”면서 “한국 정부는 피지에 머무는 신도들이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하루빨리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피해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과 소송 등을 통해 신옥주집단을 와해시키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신옥주집단에 6억원을 헌납한 김씨는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다니엘 등 남은 지도부를 구속하고 신도들을 구출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진행 중이다. 현재 관련 국민청원만 15개가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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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교역자들의 씁쓸한 유행어 “설교할 때 홈런치면 안 돼”



    지난 시간 ‘탑(top) 리더 중심의 공동체’에 이어, ‘서브(sub) 리더 중심의 공동체’에 대해 살펴보자. 서브 리더는 탑 리더의 권한을 대행하여 사역과 업무를 주관하게 된다. 여기서 탑리더는 본인의 권한과 책임을 서브리더에게 위임하는데, 그 정도가 서브리더에게 더 많은 경우를 ‘서브 리더 중심의 공동체’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탑 리더가 ‘위임’한 리더라는 것이 핵심이다.

    ◈대부분의 예배팀은 ‘서브리더 중심의 공동체’

    대부분의 교회 예배팀은 담임목사가 탑 리더이고 부목사나 워십리더가 서브 리더인 경우가 많기에, 서브 리더 중심의 공동체가 더 많이 적용되고 있다. 이렇게 위임받은 서브 리더가 공동체에 필요한 이유는, 공동체가 규모가 클수록 즉 많이 모일수록 탑 리더가 모든 관리와 운영을 혼자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예배팀 뿐만 아니라, 교회와 일반 사회 구조 안에서도 효율적인 조직관리를 위해 조직 내 직급이나 계급을 나눠 상하위 조직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러므로 서브 리더는 탑 리더의 위임 정도에 따라 탑 리더의 분신으로 여겨지거나, 특정한 업무만 담당하는 기능적 도우미로 세워질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인 의미와 필요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 주변의 예배팀이나 더 나아가 사역기관, 교회 등에서 탑 리더와 서브 리더간의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서로간의 갑질로 상처받고 공동체가 깨어지는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탑 리더나 서브 리더 개인의 인성문제가 가장 심각

    첫 번째는 탑리더나 서브리더 개인의 인성과 정서의 문제이다. 아무리 정직하고 탁월해도 인성과 정서가 받쳐주지 않으면 존경받지 못하고 공동체를 인격적으로 세워가지 못한다. 특히 상처가 많거나 한번도 실패해보지 않은 사람, 또는 정서가 무너져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성공했고 재능 있다는 이유로 리더가 된 경우에 더욱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임명의 기준에 그 사람에 대한 과거 경력과 더불어, 인성을 보기위해 외부의 신뢰할 만한 사람의 추천을 받게 한다거나, 내부에서 오랫동안 자라오며 자체적으로 검증된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서브 리더들의 유행어 ‘설교할 때 홈런치면 안 돼’

    흔히 부교역자들 사이에 하는 말이 있다. ‘설교할 때 홈런 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서브 리더는 너무 잘 해도 안 되고, 너무 못 해도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필자가 부교역자로 있을 때, 담임목사님이 가르쳐준 명언이 있다. ‘불가원 불가근’, 즉 성도들과의 관계에 있어 너무 친하게 지내지도 말고 너무 멀어지지도 말라는 것이다. 이 중간의 개념이 참 어렵다.

    예배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탑 리더 입장에서 서브 리더가 예배팀과 너무 친해지는 것도 싫고 너무 안 친한것도 싫은 경우라면, 서브 리더는 언제나 잠간의 실수에 책임을 져야하는 긴장감 속에서 섬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된다.

    이런 경우 서브 리더는 자신의 권한과 책임에 대한 애매한 상황을 인식하게 되고, 공동체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탑 리더는 서브 리더에게 위임한 권한을 잘 인정해 주는 동시에, 위임한 권한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탑 리더가 고려해야 할 사항은 권한과 책임의 분배

    이런 가장 큰 원인은 탑 리더의 위임내용에 있다. 위임하면서 탑 리더가 가장 고려해야 할 사항은, 바로 권한과 책임의 분배이다. 위임해야 할 정확한 업무 내용과 그에 대한 권한을 위임하며, 이 모든 내용들을 공동체 앞에서 선언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공동체 팔로워들이 이를 인식하고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 위임할 권한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고, 공동체도 이를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들이 있다. 이렇게 되면 서브 리더는 탑 리더의 지시사항을 받아 일을 하지만, 그 이상의 창조적이고 돌발적인 상황들에 대한 업무가 어렵다.

    더욱이 탑 리더가 나머지 지시하지 않는 일들을 감당해 주지 않는다면, 공동체는 더욱 운영에 어려움을 겪에 될 것이다. 이런 경우 권한을 주지 않는 탑 리더, 그러나 책임을 져야 하는 서브 리더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애매한 위임은 반드시 애매한 상황을 낳는다

    예배팀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담임목사가 부목사를 예배팀 담당으로 세운다. 그러면 기존의 워십 리더에게는 상위 서브 리더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부목사가 담당이라고만 알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감당하게 되는지는 모른다. 이 위임의 문제로 담임목사가 예배팀과 부목사를 모아서 설명해준 적도 없고, 부목사 스스로가 명확하게 자신의 영역을 설명한 적도 없다.

    그런데 부목사는 이미 다른 업무들로 바쁘다. 교역자 사무실의 일들과 1-2개 부서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워십리더는 결국 자신이 팀의 모든 운영을 도맡게 되고, 부목사는 자신이 찬양을 인도하거나 담임목사의 공지를 전달하거나 예배팀에 특별한 문제가 생겼을 때 관여하게 된다.

    그러나 워십 리더 입장에서는 상위 서브 리더와 그 위에 탑 리더를 모셔야 하는 구조 안에서 자신이 운영과 관리를 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목사를 의지하기보다 부목사의 존재에 의문을 가지게 되고, 차라리 담임목사를 직접 만나 소통하고 싶어진다.

    더 시간이 지나면서 부목사의 서브 리더십은 자연스럽게 워십리더에게 넘겨진다. 그러나 워십리더는 여전히 담임목사에게는 부목사 다음으로 직접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애매해진다.

    따라서 반드시 정확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공개해야 하며, 서브 리더가 애매한 리더십이 되지 않도록 효과적인 위임이 있어야 한다.

    다음 시간에는 서브 리더가 갖추어야 할 요건과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효과적인 소통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나눌 예정이다.
    백성훈 목사(<팀사역의 원리> 저자, 김포 이름없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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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 속 모순들을 껴안는 방법

    [서평] 카일 키퍼 <신약: 문학으로 읽는 신약성서>(비아)

    모순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필수 조건이 아닐까. 일관성 있는 삶을 원하지만 삶의 곳곳의 국면에서 모순이 구현되어 기어코 좌절하고 마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영화 '대부'의 주인공 마이클 콜레오네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해병대 장교복을 벗는다. 그는 결혼의 축복과 함께 폭력이 넘실대는 모순의 세계로 진입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죽인다. 그렇게 가족은 파괴되고 그는 소외된다. 아이러니다. 이렇게 냉혹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우리 자신에게서 삶의 아이러니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좀 더 나아가 우리는 그러한 아이러니를 우리 자신이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이 깊어졌을 때, 우리는 우리를 넘어선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러고는 만물의 질서를 주관하는 신이 있을 거라고, 그는 모순으로 뒤엉켜 있지 않으며 그렇기에 모순으로 뒤엉킨 이 세상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가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그는 우리에게 이 모순으로 가득 찬, 아이러니한 삶을 반듯하게 해 주는 해결사가 되어 줄 거라 믿는다.

    모든 그리스도교인이 이러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종교'인으로서, 혹은 종교적 인간으로서 그리스도교인은 이러한 믿음을 보여 왔고 그러한 방식으로 '거룩한 책'인 성서를 읽었다. 많은 그리스도교 독자들은, 모순으로 가득 찬 아이러니한 삶을 '성서'는 '해결'해 줄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고 '믿고', 이 책을 '경전', 더 나아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대하고 읽었다.

    그러나 신약성서를 읽으면 마주하게 되는 건 거룩함으로 감싸진 질서가 아니라 또 다른 혼란이다. 신약성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모순이 해소되기는커녕 모순은 심화된다. 조금만 신경 써서 읽더라도 마르코, 마태오, 루가의 복음서는 서로 내용과 어조가 미묘하게 다르다. 그리고 요한의 복음서는 앞의 세 부분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이 네 편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모습도 사뭇 다르다. 다를 뿐만 아니라 때때로 충돌한다.

    마르코의 복음서에서 예수는 죽음을 앞두고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하느님을 원망한다. 그런데 루가의 복음서에서 예수는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라고 말하면서 짐짓 당당한 자세로 죽음을 맞이한다. 심지어 요한의 복음서에서 예수는 "다 이루었다"면서 초월자적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삶의 모순과 충돌이 여러 물음을 낳듯 성서의 모순과 충돌도 여러 물음을 낳는다.

    카일 키퍼의 <신약: 문학으로 읽는 신약성서>(비아)는 이런 물음을 지닌 독자에게 제안할 만한 책이다. 그는 모순과 함께 걸으면서도 신약성서를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좀 더 나아가 신약성서에 있는 '모순과 함께'할 때 이 텍스트를 더 풍요롭게 읽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신약: 문학으로 읽는 신약성서> / 카일 키퍼 지음 / 김학철, 이승호 옮김 / 비아 펴냄 / 256쪽 / 1만 4000원



    성서에서 모순을 발견한 뒤 이에 대한 반응은 달라질 수 있다. 가장 손쉬운 방법, 혹은 종교 영역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방법은 성서가 진리임을 전제하고, '믿음'이라는 눈으로 성서를 읽는 것이다. '성서는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이다'라는 순환논증에 갇혀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오늘날 대다수 신자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성서를 읽는다.

    문제는 이 '믿음'이라는 것이 일종의 필터로 작용해 신약성서 텍스트 안에서 충돌하는 요소들이나 복잡다단한 면모들을 '제거'하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믿음이 '무엇'에 관한 믿음인지가 사실은 불확실하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하느님'상을 갖고 있으며 '믿음'의 눈으로 본다 해도 '자신이 생각하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틀(혹은 특정 집단이 생각하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틀)에 비추어 성서를 읽는다. 그러다 보니 성서 본문의 풍요로움을 제거함은 물론 '자의적인' 읽기(자신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한 읽기)라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또 다른 반응은, 양질의 지식을 섭취한다면 신약성서라는 음식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성서를 다시 읽는 것이다. 역사적 접근법(historical method)으로 대표되는 이 방법은 성서에 대한 정보를 차곡차곡 머릿속에 쌓아가 신약성서의 모순이 사실은 모순이 아니라고 생각하려 한다. 신약성서 각 저자의 정황을 알고 당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로마제국의 역사에 익숙해지면, 그만큼 신약성서 본문에 있는 낯선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해소될 거라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앞의 방법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성서라는 본문이 지닌 풍요로움을 축소한다. 이는 예술가와 예술 작품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분명 예술가의 시대적 상황, 예술가의 성장 배경, 예술가가 지닌 능력을 파악하면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데 '부분적'으로는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부분'이지 '전체'는 아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생각해 보더라도 다빈치의 생애를 완전히 파악한다고 해서 모나리자 특유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러한 방법은 지나치게 전문적이기 때문에 성서를 읽는 대다수 독자층은 택하기 힘든 방법이다.

    카일 키퍼는 <신약: 문학으로 읽는 성서>에서 앞의 두 방법을 넘어선 '문학'이라는 렌즈로 성서를 읽는 독법을 권한다. 그는 텍스트 안에 있는 모순들을 굳이 해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문학의 렌즈로 성서를 바라본다면 모순은 해소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성서를 풍성하게 하는 핵심 요소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이라는 눈으로 볼 때 신약성서는 더 이상 문제지가 아니다. 캐릭터, 플롯, 어조 등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일대기이자 서간체 문학 또는 통속문학으로 변모한다.

    시인 이성복은 시론집 <극지의 시>(문학과지성사)에서 이야기의 힘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이야기는 "의미 전달이 끝나자마자 효과가 소멸하는 '정보'와 달리, '이야기'는 그 의미를 최종적으로 유보하기 때문에 계속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 정보의 핵심이라면, '모르는 것'은 이야기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신약성서는 그 모순으로 인해 '모르는 것'들이 계속 생겨나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복음서의 모순 사이를 헤매면서 독자들이 다양한 예수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유하자면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얼굴은 한 장의 정밀한 사진이 아니라 여러 초상화'들'에 가깝다. 마르코의 복음서 속 예수는 다빈치가 스토마토 기법을 사용한 것처럼 윤곽선이 흐릿하다. 이에 비해 마태오의 복음서가 그리는 예수의 얼굴은 렘브란트의 초상화처럼 명암 대비가 두드러진다. 루가의 복음서에서 예수는 카라바조 그림처럼 생동감 넘치는 표정과 구도로 그려진다. 문학 작가가 다르면 인물의 표현과 묘사도 달라지기 마련이라는 문학의 단순한 관점을 받아들일 때, 독자는 복음서가 그리는 모순을 모순으로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문학은 실증이 아니라 재현(representation)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울로 서신들에서 발견되는 모순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감지되는 어조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어조는 다르다. 심지어 바울로는 유대인과 말할 때는 유대인임을 내세우면서 이방인과 말할 때는 유대 정체성을 슬그머니 밀어 넣는다. 독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작가의 스타일과 성격이 모순적이라는 사실은 작가로서 함량 미달이 아닐까, 라는 식으로.

    그러나 카일 키퍼는 "서신은 급하게 휘갈긴 메모가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진행한, 수사학적 행위의 결과물"이라고 단언한다. 서간체 문학인 바울로 서신은 일대기 문학이라고 볼 수 있는 복음서와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로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가면(persona)를 쓰는 행위를 주저하지 않았다. 교수님께 성적 정정 메일을 보낼 때 쓰는 가면과 여자 친구(혹은 남자 친구)에게 연서를 쓸 때 쓰는 가면이 같을 수 없듯이, 바울로가 서신을 쓸 때 쓰는 가면도 제각각인 게 자연스럽다.

    이렇게 보면 바울로가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인공 프랜시스 언더우드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울로는 가차 없는 실용주의자(ruthless pragmatist)에 불과한 것일까. 카일 키퍼는 바울로에게 변치 않는 근본이 있으니 그것은 "복음 자체"라고 변호한다. 문학이라는 눈으로 바울로 서신을 읽을 때 독자는 복음이라는 '커다란' 기준 아래 드러나는 바울로의 '사소한' 모순을 곱씹으면서 서신들의 풍요로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남은 질문이 있다. 왜 신약성서가 하나로 묶여야 하느냐는 물음이다. 카일 키퍼는 정경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다양성 그 자체를 정경화"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모자이크 사진의 비유로 정경의 '통합성'을 설명하는데, 나는 박물관의 비유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경은 일종의 박물관이다. 앞서 복음서의 그림들은 1층에 있고 바울로의 서신은 2층에 있다. 요한의 묵시록을 비롯한 성서 본문도 다른 층에 전시되어 있을 것이다. 이 신약성서라는 이름의 박물관에서 독자는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1층과 2층 그리고 나머지 층에 있는 전시들을 비교할 수 있다. 그렇게 각각의 그림을 훼손하지 않고 박물관 전체 콘셉트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모순의 세계를 피해 도착한 신약성서에서 독자는 다시 모순의 세계와 만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삶에서 튀어나오는 모순은 간단히 해소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모순은 그것을 껴안고 뒹굴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임을. 신약성서를 이루는 여러 텍스트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정경'으로서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모순은 섣불리 해결하기보다는 응시하게 하는 것으로 이를 응시하는 나 자신을 더 깊고 넓게 만드는 일종의 선물인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모순과 혼란으로 뒤엉킨) 삶이 궁극적으로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할 때 좀 더 의미심장한 의미를 갖듯, 성서의 모순과 혼란을 정직하게 인정할 때 (손쉽게 해석되지 않는) 이 속에서 울려 퍼지는 다채로운 음성을 감지할 때 오히려 신약성서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 더 나아가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문헌이라는 고백은 좀 더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믿음은 이러한 복잡다단한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갖추어야 할 준비물이 아니라, 이 복잡다단한 세계를 거치며 형성되는 산물일 것이다. 신약성서라는 낯설고도 풍요로운 세계를 그대로 만끽하고자 하는 이들, '자기 확인으로서의 성서 읽기'가 아니라 '또 다른 세계와의 만남으로서의 성서 읽기'를 하고픈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영근 / 대학에서 신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뼈가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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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생 성폭행 가해자 지목된 목사, 셀프 면직 청원

    "부정한 관계에 책임"…10월 정기노회서 처리 예정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강 목사가 노회에 '목사 면직' 청원을 했다.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故 이수연 씨(가명)가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한 강 아무개 목사가 노회에 '목사 면직 청원'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씨의 죽음에 대해 책임 의식을 지고 목회를 관두겠다는 입장이지만, 당시 미성년자였던 이 씨와 연인 관계였다는 주장은 굽히지 않았다.

    신학생이던 이수연 씨는 8월 3일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이 씨가 남긴 유서에는 "강 목사로부터 셀 수 없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적혀 있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강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예장대신) 소속으로, 서울 구로에 있는 A교회 부목사로 지내고 있었다. 강 목사는 A교회에 부임하기 전, 이 씨가 다니던 교회에서 중·고등부 목사를 지냈다.

    강 목사는 이수연 씨의 사망 소식을 누구보다 빨리 전달받았다. 이 씨의 어머니가 유서를 확인한 뒤 강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딸의 부고를 알렸다. 그는 8월 22일 기자를 만나 "이미 A교회에 사임서를 제출했다. 다음 주에 왔다면 나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에 대한 책임 의식을 지고 사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서에 나오는 내용과 달리 자신은 강간이나, 성폭력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강 목사는 다음 날 기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목회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목사직 내려놓겠다. 다시 목회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것 같아 노회에 목사 면직을 청원하겠다. 목회자로서 부정한 관계를 가진 것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한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일간지들도 보도하면서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강 목사가 속한 노회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예장대신 B노회 직전 노회장이자 현 정치부장 이 아무개 목사는 8월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흔한 일도 아니고 이 정도면 당연히 면직 처리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본인 스스로가 면직을 원하고 있고, 사건과 관련해 어느 정도 인정을 하고 있어서 치리하는 건 어렵지 않다. (강 목사 면직 건은) 10월 정기노회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 정도면 결과는 뻔한 것 같다"고 했다.

    이 목사는 고인과 유가족에게 대신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는 "이유가 어찌 됐든 목회자가 학생을 대상으로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고인과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교단과 신학교 차원에서 성교육 등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회가 강 목사에 대한 치리를 예고한 것과 관련해, 피해자 아버지 이명근 씨(가명)는 "나도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강 목사와 같은 사람이 목회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노회가 약속대로 꼭 강 목사를 치리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노회 치리와 별개로 경찰 조사도 이뤄지고 있다. 이 씨는 "지난주 토요일(8월 25일) 서대문서 여청계가 수사를 시작했다고 알려 왔다. 수연이가 쓰던 핸드폰과 노트북을 자료로 제출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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