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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수감사주일 설교/ 추수감사절의 진짜 의미
    2019-11-23 23:26:21   read : 170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박진호 목사

    2019년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본지에 '신앙문답'을 연재하는 미국 남침례교단 박진호 목사의 지난해 추수감사절 예배 설교를 소개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추수감사절은 틀린 말이다

    오늘의 본문은 신자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들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 항상 기뻐할 수 없습니다. 평생 수도원에서 수양하는 자라도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범사란 불행한 일도 포함되는데 매번 감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18절 끝에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절대적으로 지킬 의무가 있는 명령이 아니라 당신께서 소망한다는 것이므로 더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울대를 목표로 최선을 다해 공부하다 보면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는 들어갈 확률이 높듯이 이 세 계명이 동기부여를 강하게 하여 힘을 돋우는 종교적 구호나 계명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신자를 세상에서 불러내면서 신자에게 거는 당신의 기대와 계획은 신자가 생각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나고 경이롭습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맨 먼저 말하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길 원하십니다. 하늘의 보화를 이 땅에 옮겨 심는 것이 신자의 소명입니다. 하늘에 있는 그 보물 창고를 열 수 있는 열쇠는 믿음이 아닙니다. 이미 믿음 안에 들어온 신자라야 그럴 수 있기에 그 열쇠는 오직 하나 순종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그분의 더 깊고 풍성한 은혜를 결코 누릴 수 없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본문의 세 계명을 실제로 다 실천했을 때 그 인생이 얼마나 기쁨으로 충만해지겠습니까? 그러나 막상 우리의 현실은 범사에 감사는 아예 불가능하며 수시로 생기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 원망이라도 안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문제와 고난이 겹치니까 그마저도 힘듭니다. 또 일 년에 하루 따로 날을 정해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에도 가슴에서 저절로 치솟는 기쁨과 감사가 없는 것이 솔직한 영적 실상입니다.

    그렇다고 의지를 동원해 긍정적 낙관적으로 사고의 패러다임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건과 여건이 훼방을 놓습니다. 거기다 기질과 성격에 더 좌우되는 문제인데 그것들은 하나님이 각자에게 합당하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억지로 바꾸라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셈이기에 근본적으로 교회에서 가르쳐선 안 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소망대로 범사에 감사는 안 되더라도 오늘 하루마저 진정한 감사를 할 수 없는 까닭은 우선 추수감사절의 의미조차 정확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교회의 전통이지만 구약성경의 맥추절을 제정한 의미와 오늘 본문의 뜻과 일치하기에 모든 한국교회도 따라 지키는 교회의 공식적인 절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이 예사로 넘어가는데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추수감사절이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이 되려면 영어로 "Fall Harvest Festival"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영어로 "Thanksgiving Day"이므로 감사절, 더 정확히는 하나님에게는 '감사드림절'이, 이웃에게는 "감사나눔절"이 되어야 올바른 번역일 것입니다.

    물론 맨 첫 번째 감사절에도 분명히 수확을 감사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으나 극히 일부분이었습니다. 우리말로 '추수'(秋收) 자가 붙는 바람에 아무래도 올 한 해에 하나님께 받은 현실적 축복에 초점이 모입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힘든 일이 해결 안 된 채 겹겹이 쌓였는데 진정한 감사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인들끼리 더 풍성하게 교제하거나 홈리스처럼 끼니를 못 잇는 사람들에게 한 끼 따뜻하게 대접하는 날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비탄의 첫 감사절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청교도들 102명이 1620년 12월에 보스톤 남쪽 풀리머스 항에 도착했습니다. 너무 추워서 배 안에서 삼 개월을 지내다 이듬해 3월에야 상륙했습니다. 아무리 여유 있게 식량을 준비했어도 절식 금식하며 겨우 버텼을 것입니다. 항해 중에 죽은 자를 포함해 상륙 직후에 이미 반 이상이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신대륙은 그들로선 물도 다르고 풍토병도 있고 지도는커녕 어디가 어디인지 전혀 모릅니다. 아무리 땅이 비옥해도 처음부터 땅을 개간해야 합니다. 농사를 지을 만한 날씨 온도 등에 대한 기초적 자료도 전혀 없습니다. 시쳇말로 완전히 "맨 땅에 헤딩"하기였습니다.

    틀림없이 여러 시행착오를 겼었을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주변의 왐파스아크라는 인디언 부족에게서 옥수수 재배법을 배워서 겨우 첫 수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에는 사냥을 하거나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했을 것이며 새 옷을 지어 입을 여유도 없어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첫 번째 감사절을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상상해보십시오. 칠면조를 굽고 온갖 풍성한 요리를 마련하고 화려한 옷으로 차려 입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밴드에 맞춰서 스퀘워 댄스를 추는 것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었습니다. 상륙한지 거의 8달이 흘렀기에 그 사이에 희생자가 더 나왔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슬픔과 비탄의 예배였을 것입니다. 음식이라곤 옥수수로 만든 것 몇 가지 조촐하게 차렸을 것입니다. 요컨대 풍성한 수확에 대한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에 대한 처절한 감사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최근에 잃었거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와보지 못한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감사절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민한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지금 남미에서 미국으로 올라오는 캐러밴이나 한국 이민 1세대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는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영국 국교도들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키려는 뜻이었습니다. 당시는 개신교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잡아 죽였습니다. 그렇다고 개종하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었습니다.

    대양을 장기간 항해하는 것은 당시의 일반인에게 아주 위험했습니다. 또 미지의 대륙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영국을 출발할 때부터 그들은 자기들 목숨을 하나님께 완전히 저당 잡았습니다.

    먼저 희생되는 자는 아무래도 노약자 부녀자 아이들이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추수감사절 잔치는 부모와 자식을 겨우 몇 달 전에 여윈 사람들의 통한의 예배와 함께 이뤄졌습니다. 반 이상 죽었으니까 죽지 않은 가족이 있는 가정은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는데 풍성히 즐길 여유가 과연 있었겠습니까? 옥수수로 만든 그 간단한 음식마저 목이 메어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께 원망을 돌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단순히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로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했던 것처럼 신대륙에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자기들의 소명임을 확신했습니다. 먼저 죽은 자들은 그 일을 위해 순교의 제단에 피를 뿌렸을 뿐 아니라 이 땅과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좋은 천국에 이미 가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하루라도 온전한 신앙생활을...

    기독교인들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우상숭배가 만연하고 자식을 불에 태워 바치는 사악한 갈대아 땅에선 도무지 인간답게 살 수 없음을 절감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향해 갈 바 모르지만 믿음으로 고향을 등졌습니다.

    그의 매일의 삶은 생사의 기로에 선 셈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하루도 생존케 해주셨음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내일도 죄로 타락한 이방 족속들 사이에 새로운 하루를 여호와 신앙을 지키며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원했을 것입니다.

    필그림파더(Pilgrim Father)들이 지키려 했던 신앙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인간의 행위로 특별히 교회가 정한 규정을 준수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인 교황과 인간들의 조직체에 불과한 교회가 절대로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절대적 주권으로 주시는 선물이 구원임을 믿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위대한 업적을 쌓고 칭찬을 받아도 인간 스스로의 공적으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에게 365일 24시간 한 시라도 없어서는 안 되고 그래서 모든 사람이 반드시 소망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미국으로 이민 온 필그림파더들은 영국에서 살고 있는 한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베푸시는 예수님의 그 십자가 사랑조차 제대로 받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첫 감사절에는 생존했다는 사실을 넘어서 어떤 핍박에도 방해 받지 않고 예수 십자가만 붙드는 신앙생활을 맘껏 행할 수 있음에 더욱 감사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지 않으면 범사에 감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자니까 그래야 한다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범사를 예수 십자가에 드러난 공의와 사랑으로만 즉, 죄는 죽기까지 철저하게 저주하고 죄인은 죽기까지 철저하게 사랑하는 당신만의 의와 긍휼로 인간 만사를 주관 통치합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의 은혜 안에 들어온 신자들도 그 구원의 경륜을 정확히 알고 그분의 거룩한 통치를 지금 받고 있기에 범사에 감사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도 범사에 다른 의의 죄는 죽기까지 저주하고 그 죄인은 죽기까지 사랑하는 방식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첫째 의미가 무엇입니까?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사형 집행일이 확정된 사형수를 아무 이유와 근거도 없이 완전하게 사면 석방시킨 것입니다. 또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왕의 신하로 중용한 것입니다.

    그 후의 인생은 당연히 덤으로 살며 왕에게 목숨의 빚진 자이므로 범사에 왕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왕의 신하,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워졌기에 하늘의 보화를 이 땅에 옮겨서 심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일을 하고 있기에 항상 기뻐할 수 있으며 그 일을 더욱 성실히 행하기 위해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있는 감사절

    우리 모두는 아직 체질이 진토 같고 죄의 본성이 살아 있어서 왕을 만족시킬 만큼 순종하지 못합니다. 또 필그림파더의 감사절도 점차 풍성한 현실적 수확에 대한 감사로 옮겨졌을 것입니다. 우리도 현실의 삶의 풍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와 고난을 없애달라고 빌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신자라면 분명하게 알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인생에서 문제와 고난은 불변의 상수로, 죄송하지만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수에 대한 감사만 하자면 어떤 해도 참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엄격히 말해 교회에서 구태여 추수감사절을 절기로 지낼 필요도 없습니다.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십자가 없는 추수감사절은 유사 이래 어느 세대 어느 민족에게나 항상 있어왔습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도래하기 전부터 추석이 있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 십자가가 있는 추수감사절은 1621년 현실적 축복이 아닌 예수 십자가 생명 안에서 영혼에 기쁨의 열매를 맺은 사실만으로 피와 눈물을 제단에 쏟은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들은 하나님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짜로 주시는 일반 은총입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와 근거는 차고도 넘칩니다. 그러나 신자는 세상에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신하로 부름 받은 특별 은총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면서 그분이 보이신 사랑을 세상에 실현해야만 합니다.

    첫 번째 추수감사절에서 필그림파더들의 감사의 본질은 예수 십자가 복음을 놓치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뻔 했다는 데에, 그래서 그런 신앙을 계속 지킬 수 있었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풍요하고 형통해도 예수가 없다면 죽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지금 엄청난 고난 중에 있으며 전혀 호전될 기미가 없고 더 큰 고난이 겹쳐서 죽음과 방불할지라도 예수 십자가 안에 있기에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다는 뜻입니다.

    목사로서 제가 독단적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산사수훈에서 신자가 누릴 여덟 가지 복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마5:1-12) 성경은 원래 장절이 없습니다. 끊어서 읽지 말고 죽 연결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팔복강화 전에 4:24에는 각종 질병, 간질, 귀신 들린 자, 중풍 병자들이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고 그들이 무리를 지어 주님을 따라왔습니다. 주님이 그들을 모아놓고 찬양시의 형식으로 감탄하면서 말씀하신 것이 팔복입니다. 당시에 하신 말씀을 그 느낌을 살려 쉽게 풀어서 바꿔 보겠습니다.

    "너희들에게 지금부터 인간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로 좋은 복 여덟 개를 말해 줄게. 너희가 방금 중병이 나은 것과도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정말, 정말 최고로 좋은 복이야! 그 첫째 복이 무엇인지 아니? 하나님 앞에 심령이 가난해지는 것이야. 그럼 천국을 차지하게 될 것이야!."(마5:4) 요즘으로 치면 말기 암이나 나면서 불구를 기적적으로 낳은 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침 오늘 주제와 합당하기에 제 개인적인 간증을 하나 나누는 것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으로 약 20년 전 일입니다. 제가 암을 선고 받았고 월요일 수술을 앞둔 주일이었습니다. 저희 교회 출신으로 목사가 된 분이 멀리 샌프란시스코에서 저를 문안할 겸해서 와서 주일 예배를 인도해줄 참이었습니다. 주일 예배 전에 그분과 교회 중직들이 저희 집에 모여서 간단히 예배드리고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었습니다.

    다들 주일예배를 드리러 교회로 가고 집에는 저와 제 집사람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통곡이 계속 터져 나왔습니다. 미세한 음성의 동일한 말씀이 제 내면의 뇌리에 맴돌았습니다. 직통계시처럼 귀에 들리지는 않아도 저에겐 분명한 문장으로 인식되었고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일이라 성령의 충만한 역사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결국 예수님 밖에 없구나. 모든 인생이 너무 불쌍하구나. 예수님의 사랑이 없으면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니구나. 예수님 사랑합니다. 정말로 사랑합니다. 저에게 이런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주변에 불쌍하지 않는 자들이 단 한 명도 없으며 특별히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이 더더욱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절대로 과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 집사람이 곁에서 지켜본 증인입니다. 휴지를 다 쓸 정도로 30-40분을 엎드려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정말로 암으로 죽을 수 있다는 염려가, 또 수술에 대한 걱정이 저나 집사람에게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열두 시간의 어려운 수술이었음에도 말입니다. "오직 예수님뿐입니다!"라는 고백만 제 입에서 계속 절로 나왔습니다.

    신자의 기쁨을 이웃 앞에 보여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첫째 복인 가난한 심령이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내게 그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어디로 향해 살아야할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실제로 교제 동행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보화를 땅에 심고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이 예수 믿는 자 즉, 하나님의 일군이 된 자의 특권과 은혜를 고린도후서 6:4-10에서 어떻게 이야기 했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없는 깨끗함을 받고, 성령의 감화를 얻으며, 거짓 없는 사랑을 누리고, 진리의 말씀을 소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는 무명이요 죽은 자요 근심이 많은 자이나 하나님 안에선 유명하고 생명이 넘치며 항상 기뻐할 수 있다고 담대히 선포했지 않습니까?

    첫 번째 추수감사절에서도 바울 사도가 설명한 신자 된 바로 그 기쁨을 실현해 보였습니다. 현실적으로 도움을 준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함께 식사를 나눴습니다. 단순히 은혜를 갚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인디언들이 볼 때는 백인들은 모든 면에서 자기들보다 문명이 월등하게 발달된 줄 알았을 것입니다. 집을 짓는 것이나, 가구나 도구를 봐도 그렇고, 입고 있는 옷만 해도 달랐을 것입니다. 간단히 그들이 타고 온 그 큰 배만 봐도 쉽게 인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고향을 등지고 대양을 건너와 생면부지의 땅에서 사서 고생하는 이유가 무척 궁금했을 것입니다.

    거기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항상 새까만 색의 작은 책을 펼쳐서 읽고 기도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삼개월 간 상륙을 준비하면 배 안에서 월동(越冬)할 때도 종일 기도 말씀 찬양으로 지샜다고 합니다. 그들은 도무지 기뻐할 수 없는 그 고달프고 어려운 가운데도 진정으로 감사하며 찬양했습니다. 최소한 어떤 어려움에도 평강을 잃지 않았습니다.

    인디언들은 같이 식사하는 동안, 아니 그 전부터도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물었을 것이며 필그림파더들은 서로 말이 안 통하지만 손짓 발짓으로 십자가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그럴 수 있는 유일한 이유와 근거는 예수님이 자신들을 대신해서 죽은 은혜와 사랑 가운데 살고 있기에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어쩌면 그 중에는 인디언 말을 배워서 신약성경을 번역한 자도 나왔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 많은 희생을 냈음에도 그럴 수 있었던 까닭은 바울이 말한 대로 중생의 기쁨을 소지했기 때문입니다. 또 폴리머스에 상륙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만약 다른 곳에 상륙하여 호전적이고 배타적이며 잔인한 인디언들을 만났더라면 미션(Mission) 영화처럼 상륙하자 곧바로 몰살당했을 것입니다. 폴리머스에 상륙하여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생존을 유지할 수 있게 되자 그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자신들의 소명임을 더욱 확신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폴리머스에 가면 그 인디언 추장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돈이 복음인가? 십자가가 복음인가?

    예수님이 탄생할 때의 로마 황제 아구스도는 당시의 지중해 세계를 평정했습니다. 식민지들 사이의 교역이 활성화되었고 특별히 애굽의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로마 제국 안에선 전쟁이 없는 태평성대를 이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되고 실제로 복음(헬라어로 유앙겔리온-GOOD NEWS)라고 불렸습니다.

    바로 그 때에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비천한 말구유에 아기 예수가 태어났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땅에서는 평화요 하늘에선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찬양했습니다. 예수야말로 참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성경은 사람은 두 종류뿐이라고 말합니다. 현실에서 아무리 차고 넘쳐도 예수님의 사랑이 없는 자들입니다. 서로 자기를 높이고 치장하려고만 하니까 그들 사이에는 거짓, 시기, 음란, 살인만 난무합니다. 아무리 돈을 벌고 형통하여 출세해도 여전히 갈급하고 허망함에도 끝까지 돈이 복음이라고 믿는 다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만이 절대적인 진리이자 생명이기에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인간이라면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길의 끝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보장되어 있음을 확신합니다. 범사에 그분의 사랑이 개입되지 않는 것이 없음을 알고 또 체험으로 그 사랑을 누리기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한마디로 예수 참 복음 안에 사는 자들입니다.

    알기 쉽게 바꿔 설명하면 전자는 울음이 끝나고 기쁜 일이 생겨야 웃을 수 있는 자들입니다. 후자는 극소수이지만 울음이 끝나지 않는데도 울면서도 그와 동시에 웃을 수 있는 자입니다. 한국 속담에 울다 웃으면 엉덩이에 뿔이 난다고 합니다. 그만큼 세상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범사에 하나님의 사랑의 기적을 누리며 사는 자입니다.

    신자의 일생은 사실상 울면서도 웃을 수 있는 일의 연속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미쳤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범사에 특별히 고난 중에도 하나님과 신자 본인만이 아는 아름답고 풍성한 교제와 동행의 은혜가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첫 추수감사절이 바로 울면서도 웃은 날이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진짜 팔복 중에 마지막 최고 복이 당신의 이름을 위해 핍박 받는 것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은 현실의 기쁨이 없으면 웃을 줄 모릅니다. 현실의 기쁨이 있는데 웃지 않을 자는 없습니다. 신자는 고난 중에도 예수님이 있기에 웃을 수 있는 자이고 진정으로 그 풍성하고 오묘한 기쁨을 누리면 그 기쁨을 모르는 자에게 당장에 나눠주고 싶어집니다.

    첫 추수감사절은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예수를 믿었다는 의미도 바로 마땅히 죽을 자 가운데서 주님이 살려주셨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저희 교회만이라도 올해부터는 추수감사절이 아니라 예수 십자가 참 복음 안에서 하나님에게 '감사드림절'이요, 이웃에게 '감사나눔절'로 지키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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